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72화 (72/477)

제72화 소신껏 행동하라고 하셨습니다(1)

국장 여럿이 재준에게 달려들려 하자 윤 원장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마치 자신이 해결하지 않으면 쪽팔리지 않느냐라고 항변하듯이.

“상당히 충격적인 말을 지껄이는데.”

“장운증원만큼 충격적인 것 같진 않은데요. 하루아침에 온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는 심정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지금 이 행동, 한국 정부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겠네.”

풋.

이놈이 자꾸!

“아, 죄송합니다. 웃긴 얘기를 들으면 웃음이 나도 모르게 나와서요. 한국 정부 도전……. 풋, 근데 금감원이 언제부터 공공기관이 된 겁니까? 원래 정부로부터 분리되어 관치금융을 없애고 올바른 금융계를 세우는 게 목표 아닌가요?”

“우리도 엄연한 공직유관단체야.”

“그러니까, 유관이잖아요. 비슷하지만 똑같지 않은 거. 공무원에 준하는 혜택은 받지만, 공무원 지위는 못 누리는 거. 아닙니까? 유관 이거 괜찮네. 아, 그래서 왜 자꾸 정부를 대변하려 하십니까? 유관단체이면서. 이게 관치랑 뭐가 다릅니까?”

“그래, 맘대로 지껄여. 이제 지옥을 볼 테니까.”

아. 노안인가.

재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거 참, 방금 문자 받으셨는데 잘 안 보셨네요. 다시 한 번 보세요.”

윤 원장이 눈짓을 하자 국장 하나가 윤 원장에게 문자를 다시 보여주었다.

“거기, 거기 보이죠. 투마로우뱅크 현재증권 인수 희망. 그래서 지금 회사에서 인수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게 뭐 어쨌다는 거지?”

“에이, 알면서 모르는 척하시는 거죠? 현재증권은 이 시간부터 대주주가 미국 은행입니다. 외국 자본에 기업을 팔아먹었거든요. 혹시 애국심 이런 거 기대하지 마세요. 이제 한국에서 기업 활동 못 해 먹겠다 싶으면 기존 주식과 채권을 시장에 다 쏟아붓고 이 땅을 떠날 겁니다.”

뭐?

윤 원장의 볼살이 잘게 떨렸다.

“그게 가능할 것 같은가?”

“왜요? 불가능할 것 같으세요? 어떻게, 가능하게 해드릴까요?”

흐흐흐.

한번 해볼 테면 해보라는 비웃음이었다.

“할 능력도 없으면서 말부터 앞서는구나.”

“원장님도 참, 딱하십니다. 진짜 능력이 없네. 그냥 국가에서 밀어주니까 자신이 실력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살고 있어요. 좀 불쌍하다.”

이놈이!

윤 원장이 뒤에 있는 국장을 쳐다보며 뭔가 지시하려고 할 때였다.

“Good morning. 미스터 미셀.”

재준이 누군가 핸드폰으로 인사를 주고받자 방안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미스터 미셀?

IMF 총재?

실제로 이맘때쯤 IMF 총재는 한국을 극비리에 방문한 적이 있다.

대통령을 만나고 그 이후 행적은 아무도 모른다.

그게 내가 됐지 뭐야.

나는 미국 온라인 증권 1위 스톡체인의 주인이거든.

스톡체인 소유는 투마로우뱅크, 투마로우뱅크는 L.S.Company, L.S.Company 소유는 임재준, 임재준은 현재증권 회장의 손자.

IMF가 한국을 혹독하게 다루고 있는데 임재준이란 놈이 한국인이었다?

IMF로서는 뒤집힐 일이지.

급하게 미국 증권 연합이 한국을 구조조정하고 있는 미셸을 한국으로 보낸 건 당연했다.

“미셸, 약속대로 그곳에서 만납시다.”

재준이 핸드폰을 접으며 윤 원장을 바라봤다.

“원장님, 봤죠. 이게 능력이라는 겁니다. 진짜 능력. 남이 준 게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낸 능력. 자, 이제 맘대로 해보세요. 딱히 할 일도 없을 테지만.”

“…….”

재준은 임병달에게 다가가 깍뜻이 고개를 숙였다.

“회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우리 답변이 잘 마무리된 듯하니 이제 돌아가시죠.”

임병달도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구만. 가자.”

임병달이 먼저 앞서가고 재준이 그 뒤를 따랐다.

두 명이 사라지자 윤 원장의 날카로운 시선은 부원장과 국장들을 향했다.

“저놈 말이 사실인지 알아봐.”

“사실이라면 어떡하죠?”

윤 원장은 근심 어린 부원장을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확실히 죽이는 방법을 찾아야지.”

이놈,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은 없다.

***

IMF 총재를 만난 재준은 스톡체인에 대한 운영은 전적으로 미국 회사인 L.S.Company와 투마로우뱅크에 맡긴다는 확답을 주었다.

미셸 총재는 현재증권의 활동에 적극 지지한다는 약속을 했다.

투마로우뱅크는 조화은행을 순조롭게 인수하고 정 실장은 정 행장이 되었다.

임병달과 재준, 그리고 정 행장이 회장실에 모여 그동안 성과를 점검했다.

“아이고, 이제 한시름 놓네. 이제 조용히 살자 재준아.”

“네.”

그게 그렇게 마음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정 행장도 순순히 대답하는 재준의 말에 그럴 리가 없다는 듯 못 미더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정 행장. 행장이란 말이 입에 잘 안 붙네.”

“그냥 예전처럼 정 실장으로 부르십시오.”

“예끼 이 사람아. 큰일 날 소리를. 남들이 들으면 근본 없는 기업이라 놀려요. 직위는 부르라고 있는 거야. 그래야 책임도 늘어나지.”

“명심하겠습니다.”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니지만, 어려운 건 없지?”

“잘 되고 있습니다.”

“은행은 처음이라 고생이 될 거야. 특히 대출 말이야.”

“걱정 마십시오. 도련님이 지적한 기업들을 제외하고 대출이 이루어지고 있어 순조롭게 되고 있습니다.”

“그래.”

재준은 외환위기에 퇴출되는 기업들을 일일이 적어 정 행장에게 주었고 정 행장은 묻지 않고 당연하게 그 기업들을 제외했다.

대출은 채권으로 만들어져 투마로우뱅크에 의해 매입되었다.

1조 정도의 돈이 대출로 나가면 채권으로 팔려 다시 1조의 돈이 돌아왔다.

이 순환이 끝없이 이루어지며 돈은 추가로 들어가지 않으면서 기업들의 대출 규모는 점점 늘어났다.

이제 국내에서 정 행장의 입지가 더욱 단단해지게 될 것이다.

“재준이 넌 이제 좀 잠잠히 있어라. 나도 좀 쉬자.”

“무슨 소리세요?”

뭐?

두 명은 재준이 정색하며 부인하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하지 마라. 재준아.”

“이제 내실을 다져야 합니다. 도련님.”

“이거, 이거 아세요?”

둘의 충고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재준은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새마음 금 모으기 운동]

“이건 작년 새마음부녀회 중앙연합회에서 자발적으로 실시한 ‘애국 가락지 모으기 운동’ 아닙니까?”

“맞아요. 이때 1억 3,095만 원이 모여 중소기업지원금으로 기부되었습니다.”

임병달이 재준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안 된다 재준아. 금은 건드리면 큰일 나.”

“제가 아니라 지금 정부가 준비 중이거든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았……. 아니지, 네가 그러면 그런 거지. 근데?”

“저희가 해야죠?”

꿀꺽.

임병달이 마른침을 삼켰다.

“왜? 굳이?”

“정부는 금에 대해 잘 모르잖아요.”

“무슨 소리. 재경부도 있고 금감원도 있는데. 아니, 너는 잘 알고?”

“저는 잘 알죠. 아주 잘 알아요.”

“그럼 말해 봐라. 말을 들어보고 이해가 가면 생각해 보마.”

“네. 우선 사람들이 금을 가져오면 바로 제값을 쳐서 매입합니다.”

“그거야 당연한 거지.”

이게 그렇지 않았어요.

2~3% 낮게 값을 책정했거든요.

“그다음 일정량은 국내 세공업자들에게 맡겨 수출용 가공품을 만듭니다. 국내 경기 활성화를 위해 일조하는 거죠.”

“금세공? 시간이 걸리겠구나.”

“조금 걸리지만 상관없습니다.”

원래 정부는 수집된 금을 덩어리(잉곳)으로 만들어 종합상사를 통해 해외에 팔았다.

근데 굳이 왜 그랬는지 모를 일이었다.

덩어리로 만들려면 제련을 해야 하는데 이게 한국에 실력이 딸려서 전부 외국에 제련 작업을 맡겼다.

비용이 발생한 것이다.

금 모아 해외에 팔겠다고 해놓고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이럴 바에는 국내 세공업체에 맡겨 가공해 팔았으면 30% 이상의 수익을 더 벌었을 것이다.

물론 시간은 좀 걸린다.

근데 그게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현재증권은 금덩이를 해외에 빨리 팔아야 할 만큼 급하지 않으니까.

누구는 시간에 쫓겨 급하게 팔아 손해만 보았지만.

어쨌든 이 금덩이를 만들어 파는 바람에 시중에 금이 사라지고 금값은 뛰어 중소세공업자 80%가 문을 닫았고 50% 이상이 직장을 잃었다.

아니 도대체 금을 팔아서 손해 보고 국민은 직장을 잃게 만드는 걸 왜 한 걸까?

“일부는 세공해서 팔고 나머지는 어떻게 하려고.”

“가지고 있어야죠.”

“돈을 들여 샀는데, 그냥 가지고 있겠다고?”

“돈은 10만기 채권을 발행해서 충당하면 됩니다.”

“이자 나갈 거 아니냐?”

“금 시세가 올라갈 겁니다. 충분히 이득이 됩니다.”

이 당시 금 시세가 한 돈 가격이 47,000원

10년 후 2007년 한 돈 가격이 96,000원으로 오른다.

금리 2% 10년 만기 채권이 딱 좋겠다.

당연히 투마로우뱅크코리아가 발행해서 해외에 팔아야 한다.

“정부가 못하게 하면?”

“정부가 모은 금을 우리가 사면 되지요.”

“정부가 우리한테 팔까?”

“당연하지요. 금 모아서 가져오면 무게 달아 제값 치러 주겠다는데 왜 안 팔아요? 제련비용도 절약되고 보관 비용도 안 나가고 이리저리 머리 쓸 일도 없는데요.”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 금을 모으려는 재준의 속뜻은 따로 있었다.

금감원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한국은행을 이용하기 위해서다.

더 나아가 정부도 현재증권 쪽으로 기울기를 바랐다.

한 번 시비를 건 금감원에게 뒤끝 작렬이었다.

아예 현재증권 쪽으로 오줌도 안 누게 해야 한다니까.

“한국은행에 팔면 어떨 것 같냐?”

“그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설득을 좀 해야겠지만요.”

“설득까지 해야 하니?”

“한국은행이 금에 대해 그런 면이 좀 있습니다.”

금이 외환 보유고에 들어간다는 걸 몰랐나?

어쨌든 한국은행은 금 보유에 부정적이었다.

보관 비용이 들어가고 유동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였다.

이때 한국은행이 보유한 금은 13.4톤.

그중 9톤은 미국 FRB에 보관 중이었다.

정말 애들 장난이다.

이게 한 나라의 금 보유량이라니.

다른 나라 중앙은행의 30분의 1 수준이었다.

아니, 보관 비용이 들어간다고 하면서 FRB에는 왜 보관해 가지고 비용을 들이는 건데?

그냥 국내 시중은행 금고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비용이 적게 들 텐데.

어쨌든 나중엔 금을 사겠다고 난리를 쳤는데 종합상사가 이미 계약이 체결되었다고 한국은행에게 금을 팔지 않았다.

그래도 어찌어찌해서 겨우 3톤의 금을 매입하긴 했다.

227톤의 금이 걷혔는데 3톤.

아, 재벌 그룹의 종합상사.

금모으기 운동의 최고의 빌런.

정부의 금모으기 운동 수출 담당은 재벌의 종합상사였다.

근데 금을 해외에 팔고 그 금을 다시 0.5% 높게 사 왔다.

그것도 무역신용을 이용해 12% 외상으로.

들어온 달러는 한화로 환전하고 국내 고금리 상품에 투자했다.

이게 말이나 되나?

하지만 이렇게 해도 이익이 났다.

잔머리의 대마왕들이었다.

어쨌든 이번에는 종합상사에게 돌아갈 금은 없다.

“그럼, 투마로우뱅크코리아가 금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내겠습니다.”

“어휴, 빌어먹을 손자. 난 잡지 인터뷰 한번 하마.”

와우, 이게 학습효과인가.

이제 다들 알아서 척척하시는데.

“전 한국은행에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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