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67화 (67/477)

제67화 지금부터 나도 당신들을 죽일 거니까(1)

“동진은행과 장운증권입니다.”

“아니, 동진은행이 왜 퇴출 대상이야?”

“그건 제가 묻고 싶은 겁니다. 하지만 퇴출 대상이더라고요.”

“거참, 희한하네. 둘 다 꽤 괜찮은 기업인데.”

동진은행과 장운증권은 퇴출 대상이 아닌데도 퇴출명단에 있었다.

금감원에 밉보였나?

아, 이건 나의 추측이다.

“그건 그렇고, 조화은행을 정상화하려면 최소한 2조는 넘게 들어갈 텐데.”

“정확히 2조 7천억 원입니다.”

“투마로우뱅크에 그만한 여력이 있느냐?”

“당연히 지금은 없죠.”

“그럼 현재증권에서 지원해야 하는데 달러를 해외로 송금할 핑계로 뭐가 적당하겠니?”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시간만 약간 벌어 주시면 됩니다. 어차피 금감원과 조율을 해야 하니까요. 괜히 중간에 끼어들면 자기 방식대로 하라고 윽박지를 겁니다.”

이 총재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IMF 관계자를 만나겠네.”

“정 실장님은 동진은행과 장운증권을 만나주십시오. 전 금감원 윤 원장을 만나겠습니다.”

“네가 왜 굳이 윤 원장을? 그건 너무 위험한데.”

“그냥 자료만 전해 주고 오겠습니다.”

“그럴 것 같지 않은데…….”

임병달과 정 실장은 그럴 리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아직 재준을 실제로 경험하지 못한 이 총재는 어리둥절하게 쳐다봤다.

***

경제정책연구실.

굳게 닫힌 회의실에선 재준과 천 실장이 대화 중이었다.

“꽤 꼼꼼하시군요.”

재준은 테이블에 놓은 자료를 훑어보며 천 실장에게 말했다.

금감원에 소속된 사람들의 뒷조사를 정말 적나라하게도 해 왔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겉과 속이 모두 담겨있었다.

가족 관계, 만나는 사람, 은행 거래, 세금, 차명 계좌까지

탈탈 털면 먼지가 나오는 건 당연한 이치다.

먼지를 무턱대고 털어대면 안 되지만, 그게 동진은행과 장운증권의 먼지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누구부터 칠까요?”

재준이 고개를 들자, 천 실장의 입술에서 평소라면 조심해야 할 말들이 흘러나왔다.

천 실장님 왜 이렇게 신났어요?

이거 무서워서 일을 시킬 수 있겠나.

“동진은행 담당인 이 사람부터 하죠.”

“네.”

거참, 웃으면서 일하는 거 아니라니까.

***

동진은행 행장실.

“허 부장, 지금 당장 내 방으로 와. 재무제표, 세금, 고객명단 가지고 빨리. 오 과장도 데리고.”

수화기를 내려놓은 동진은행장 황정규는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현재증권의 정 실장이 말한 위기.

자신은 지금 그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금감원 천성일 국장의 방문.

올 것이 왔다.

그 두려움의 크기와 깊이가 다르다.

동진은행이 부실 은행이라고 통보해왔다.

서류 준비하고 있으라며, 특별히 기회를 준다는 듯 능글맞게 들려온 천성일의 목소리는 쫙 가라앉아 있었다.

개새끼!

동진은행은 살아남을 줄 알았다.

하다은행에 이어 은행 자산 건전성 2위 은행이었다.

자신은 자신 있다고 말했지만, 정 실장이 이번만큼은 다르다고 경고했다.

그의 경고를 웃어넘겼다.

그러나 천성일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깨달았다.

천성일이 동진은행을 부실 은행으로 만들려 한다.

똑똑.

“행장님.”

노크 소리와 함께 허 부장과 오 과장이 들어왔다.

“전 부서에 알려. 오늘부터 대출금 전부 회수해. 허 부장 자네는 현금 끌어모아 국책은행 채권 매입해. 닥치는 대로. 그리고 오 과장.”

“네.”

“국책은행 채권을 팔면 재무제표에 예수부채 올려서 다시 작성할 준비하고.”

예수부채는 간단히 빌려줄 수 있는 능력, 즉 ‘내가 돈 좀 있다’를 알려주는 것이다.

보험회사의 책임준비금과 비슷한 개념이다.

“누가 국책은행 채권을 삽니까?”

“투마로우뱅크가 살 거야.”

“네? 어디요?”

“그냥 그렇게 알고 있어. 지금 설명할 시간 없어.”

“아, 네, 행장님.”

“아무튼, 대출 회수 서둘러.”

“하지만 손실이 크고, 회수가 잘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최대한 하란 말이야. 최대한.”

“네.”

허 부장은 대답을 하면서도, 행장이 왜 이러는지 정도가 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허둥지둥.

안절부절.

혼이 쏙 빠진 사람처럼 굴었다.

평소의 진지함은 어디로 가고 아주 딴 사람이 되었다.

“행장님, 좀 진정하시죠.”

허 부장이 조심스레 말하자 황정규 행장은 말을 멈추고 거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후.

“그래. 미안해. 근데 천성일이가 전화했다. 팔다리 하나쯤은 잘려나갈 거라고 각오하래.”

“행장님. 설마…….”

“그 양아치 새끼가 우리를 노리고 일을 꾸민 것이 분명하니까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해.”

“금감원에 간…… 그, 그… 천 부장, 맞죠?”

“그래.”

황 행장이 머리를 끄덕이자 허 부장과 오 과장의 표정이 흙색으로 변했다.

천성일.

어떤 줄을 잡았는지 모르지만, 그는 금감원으로 차출됐다.

그 소식에 행원들은 시름을 덜었지만.

놀부 심보처럼 고약한 놈이 동진은행을 적으로 선택했다.

설마, 자신이 몸담고 있던 은행을 칠 줄이야.

“그놈이 글쎄, 우리가 부실 은행이란다.”

황 행장의 말에 둘은 급격히 풀이 죽었다.

천둥 번개가 쳐도 꿈쩍하지 않던 황 행장이었지만 지금은 그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놈이 전화로 협박을 하더라니까. 내가 그놈 여행원들 괴롭히지 말라고 혼쭐낸 게 두고두고 한이 됐는지, 목소리부터 아주 이를 갈더라고.”

천성일을 옆에서 지켜본 황 행장은 치를 떨었다.

상대의 약점을 틀어쥐고 괴롭히는 악질 중의 악질.

나쁜 짓만 일삼는 그런 족속이었다.

영화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죽어도 죽어도 살아남는 기계 인간처럼 물러서는 법도 없었다.

한 번 적이 되면 꼭 피를 봤다.

허 부장과 오 과장도 천성일을 알기에 불안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

모두 한숨만 내뱉었다.

동진은행은 1989년 5월부터 부산과 경남 상공인과 주민 70%가 출자한 은행으로 열심히 달렸다고 자부했다.

드디어 1996년엔 증권거래소에 상장도 했다.

부산 사람들의 고충으로 교통카드 사업도 성공리에 진행되었다.

새마음금고와 가상 계좌 연계협약이라는 대한민국 최초의 선진화된 시스템도 도입했다.

분명 BIS비율도 8% 이상이었다.

왜!! 우리가 부실 은행이고,

왜!! 우리가 퇴출당해야 하는지 답답했다.

그렇다면 현재증권 정 실장이 내민 손을 잡고 외국계 은행이 되는 방법밖에 없었다.

***

경제정책연구실.

연구실과 달리 별도로 마련된 실장실에서 정 실장이 통화 중이었고 재준은 옆에서 그 내용을 듣고 있었다.

“행장님, 우선 국책은행 채권 매입부터 끝내야 합니다.”

정 실장은 한숨을 쉬며 전화를 끊었다.

은행을 살리고 인수하고 덩치를 키우는 게 쉽지 않았다.

어깨에 바윗덩어리를 지고 있는 듯.

그 모습을 보며 재준은 의미심장하게 미소 지었다.

“벌써 포기하고 싶죠?”

“훗, 아닙니다.”

“방금 전화는 동진은행인가요?”

“네. 하루에도 열두 번은 전화가 옵니다. 국책은행 채권 매입하는 대로 이쪽에서 매입한다고 말을 해도 계속 징징댑니다.”

이 사람들 그냥 날로 먹으려 드네.

그 정도 노력은 해야지.

내가 살려주려고 얼마나 노력 중인데.

재준은 동진은행은 살리고 싶었다.

분명 동진은행 건전성 현황은 어느 은행보다 좋았지만, 부실 은행으로 낙인찍혔다.

금감원은 부실 이유로 동진은행이 중소기업은행으로서 중소기업에 80%를 대출하지 않은 것을 들었다.

뭔 개소리야?

언제부터 동진은행이 중소기업은행이었어?

그에 맞는 대우는 해줬고?

지나가는 소가 들으면 뒤집어지면서 웃을 일이다.

실제 이유는 부실한 대형은행에 건실한 중소은행 두세 개를 합병함으로써 건전성을 높여 부활시키려는 속셈이었다.

이렇게 외환위기 중에 그 희생양으로 작지만 알찬 몇몇 은행들이 희생되었다.

그래서.

재준은 동진은행이 국책은행 채권을 사면 투마로우뱅크가 두 배의 가격으로 매입할 생각이다.

현재 국책은행 채권은 하락에 하락을 거듭해 70%까지 할인되었다.

만 원짜리 채권을 3천 원에 살 수 있었다.

“항상은행은요?”

“항상은행 채권도 즉시 매입하라고 일렀습니다.”

“현재 국책은행과 항상은행 채권이 70%할인 되고 있죠?”

“네. 그런데 국책은행은 곧 영업정지 될 것 같습니다. 괜찮을까요?”

“영업정지가 아니라 합병될 것 같은데요.”

“합병요?”

“네. 그래도 국책은행 아닙니까. 살리겠죠. 어쨌든 은행이 합병되면 채권 가격은 원래 가격으로 회복할 겁니다. 투마로우뱅크는 정부가 칼을 휘두르면 그 채권으로 칼을 도로 집어넣도록 할 겁니다.”

“독이 들어있었군요.”

“독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정부는 절대 국책은행을 부도 처리할 수 없다.

만약 부도 처리하면 그때는 정말 아무도 정부를 믿지 않을 것이고, 향후 칼을 들어도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을 것이니까.

무슨 말이냐고?

국책은행은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중소기업은행 같은 이름을 가진 은행인데 이게 부도나면 누가 국책은행을 이용할까?

차라리 외국계 은행을 이용하지.

어쨌든,

채권 만기가 도래할 때, 합병은행은 투마로우뱅크가 돈 내놓으라고 해도 채권 대금을 지불하지 못할 것이다.

돈이 있어야 지불을 하지.

겨우 살아나서 숨만 쉬고 있을 텐데.

그때, 투마로우뱅크가 제시하는 조건을 정부가 들어주지 않으면 채권 만기 연장을 거부해 버린다.

그럼 어떻게 되냐고?

이슬 그룹 때 봤잖아.

투마로우뱅크에 의해 국책은행이 부도 처리되고 법정관리에 들어가야지.

이게 가능하냐고?

여기 IMF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잖아.

지금 정부는 채무자일 뿐이다.

채권 만기일은 이제, 6개월 남았다.

“도련님.”

“네, 말씀하세요.”

“천 실장 일 처리는 확실하니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천성일 국장, 그자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원하는 만큼 주고, 살살 달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살살 달래요? 아유, 정말 싫은데요.”

“노자 사상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빼앗을 것이 있다면 반드시 우선 내주어라.’ 제가 여태 살아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전 그놈한테서 뺏고 싶은 것이 없는데요. ‘반드시 우선 내주어라.’ 제 경우엔 해당하지 않습니다.”

띠리리링.

정 실장의 핸드폰이 울렸다.

통화하는 와중에 천성일의 이름이 여러 번 언급되었다.

동진은행장님…… 아무래도 채권이 문제가 아니구나.

천성일 저대로 두면 안 되겠는데.

띠리리링.

이번엔 재준의 핸드폰이 울렸다.

-지시하신 대로 모든 준비는 마쳤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재준은 전화를 끊고 정 실장을 바라봤다.

“늪에 빠지기 전에는 그곳이 늪인지 모른다니까요. 천성일은 늪에 빠져 올라올 수 없을 겁니다. 준비가 다 됐다는군요.”

지금 필요한 건, 덫이다.

산 채로 잡아야지.

“저는 그자의 모든 것을 기록해서 한꺼번에 던질 것입니다.”

똑똑똑.

갑자기 문이 열리며 비서가 들어왔다.

“장운증권 이주환 사장님이 오셨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시라고 하세요.”

비서가 문을 닫자, 정 실장은 재준을 쳐다봤다.

“저는 현재증권에서 왔다고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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