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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65화 (65/477)

제65화 어찌 도와주지 않으리(2)

“왜요?”

“지금 말한 것이 얼마나 공상과학 같은 이야긴 줄 아니?”

왜 그러실까?

이미 다 되었다니까.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그어 놓은 선을 없애면 간단하게 이해되는 겁니다.”

“틀 안에 나를 가두지 말아라? 넌 죽어도 날개를 접지 않을 것이다? 이거지?”

“뭐 비슷하네요.”

으하하하하하

임병달 회장은 갑자기 큰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미친 손자를 뒀구나. 그래 어쩌면 내가 너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아니, 이제 포기하련다. 네 맘대로 해라. 내가 힘껏 지원은 하마.”

이놈, 내 손자지만 이해 불가야.

상대가 강하면 굴복하고 약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오히려 죽일 테면 죽여 보라는 식으로 싸우는 재준의 태도가 마음에 쏙 들었다.

암, 그래야지.

나이답지 않은 깊이.

그 깊이를 측정하지 못해 자꾸 의심이 들었다.

모든 것을 틀어쥐고만 있었던 자신에게 경고하는 손자라니.

임병달 회장은 크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무엇을 해주랴?”

“국책은행 총재셨던, 이시형 총재님을 정 실장님의 뒷배로 세워 주십시오.”

“이 총재를?”

“네.”

“음. 그것도 방법이긴 하겠다. 감히 이 총재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놈들은 없을 테니까.”

재준은 임병달을 향해 빙글빙글 웃었다.

자, 금감원의 공격을 막아줄 방패는 준비됐다.

***

충무로의 한식집.

“어서 오게.”

“좀 늦었네.”

임병달 회장은 따뜻한 웃음으로 노신사를 반겼다.

사심이 깃들지 않은 순수한 호의.

그 노신사는 임병달 회장이 속마음을 드러내는 유일한 친우, 이시형이였다.

단 한 발자국도 양보하지 않는 불꽃 튀는 돈의 전쟁에서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술 한잔을 털 수 있는 사이였다.

남자가 한 번 칼을 뽑았으면 끝을 봐야 하지 않겠냐며, 서로 격려하고 이번만 기회는 아니라고 위로했었다.

그 힘으로 그들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임병달 자신은 현재증권의 주인이 되었고,

이시형, 그는 국책은행 총재가 되었다.

임병달 회장이 이시형 총재의 잔에 술을 채웠다.

“그동안 수고했어.”

“내가 뭘. 전부 직원들이 애쓴 거지.”

“국책은행 총재가 할 소리는 아니지.”

이시형 총재가 잔을 들고 술을 마셨다.

“섭섭하겠어.”

“아니야. 사표 던져서 후련해.”

이시형 총재는 이번엔 술은 마시진 않고 술잔만 빙빙 돌렸다.

“후련하긴. 임기 끝나면 장관 된다고 좋아했으면서.”

이때는 국책은행 임기를 마치면 장관으로 추대되는 게 수순이었다.

이 총재는 술잔을 입에 가져가 단번에 꿀꺽 들이켰다.

“교편 알아보고 있네.”

“왜? 교수하려고?”

“그편이 속 편하지 싶어.”

“잘 생각했어. 자네는 귀인지상이라 교수도 제법 어울려.”

“그런가?”

“젊은 애들만 보면서 이제 나랑은 놀아주지도 않는 거 아냐?”

“예끼, 이 사람아.”

이 총재가 임 회장의 잔에 술을 따른다.

콜콜콜.

서로의 잔이 채워지면 두 사람은 잔을 들어 동시에 술을 마셨다.

“고마워.”

“뭐가?”

“자네 말 듣고 부도 그룹 관련주 처리하지 않았으면…….”

이 총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 처리하지 않았으면 이만저만 손해가 아니었을 텐데 말이야.”

“자네라도 구덩이에 빠지지 않아서 다행이지.”

“자네가 관련주 정리하라고 했을 땐, 자네 미친 줄 알았어. 자네와 인연이 깊지 않았으면 지나가는 개가 짖는다고 했을 거야.”

“그럼 오늘 술값은 자네가 내시게.”

이 총재는 입에서 술잔을 내려놓으며, 갑자기 버럭 화를 냈다.

“정태수! 이 점쟁이 기둥서방 같은 놈.”

부도 그룹 정태수는 점술가 말을 맹신하기로 유명했다.

개명해야 떼돈을 번다고 해서 개명했고, 흙과 관련된 사업을 하면 큰 부자가 된다고 해서 광산업과 건설업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쇳물을 만져야 큰돈을 번다 해서 부도철강을 만들었다.

그 땅은 돈이 모이는 땅이라고 하니 강남 허름한 상가에 본사를 두었다.

사업을 제대로 한다는 건 시작부터 불가능한 사람이었다.

정태수는 정치 로비로 은행마다 수천억씩 대출을 받았고 빚은 빚으로 돌려막으며 얼렁뚱땅 위기를 모면했다.

자본금 없이 빚으로만 사업하면 빚 때문에 추락하는 것은 당연하건만, 그 이치를 거스른 장태수는 부도철강을 세우며 국책은행에 3,000억의 추가 대출을 요구했다.

이미 수천억의 대출로 한계점에 처했음에도 막무가내로 떼를 썼다.

정태수의 무리한 요구에 이 총장은 추가 대출을 거절했고, 급기야 경제 부총리는 그에게 사표를 종용했다.

이시형 총재가 은행을 그만둔 건 정태수의 로비 때문이었다.

“이보게 병달이, 자그마치 3,000억이야. 국가 돈을 자기 금고로 여기는 놈이라니까.”

“그래도 나중을 생각해서 못 이기는 척 들어주지 그랬나.”

“그럴 생각도 있어서 직접 가서 보지 않았겠나. 그런데… 포항에 있는 제철소를 본 후에 부도철강을 보니, 어찌나 한심하던지…….”

“내가 헬기를 괜히 빌려줬나 보네.”

“그 엉터리 같은 부도철강을 보고 덜컹 내려앉은 심장이 아직도 뻐근해.”

속에서 열이 올라오는지 이 총재는 단숨에 술을 털어 넣었다.

“버텼어야지. 그렇다고 사표를…….”

꿀꺽.

이 총장은 임 회장이 비워진 잔을 채워주자, 금세 술을 또 털어 넣었다.

“내 운이 여기까지가 인가 보네.”

이시형은 부인도 없고, 자식도 없었다.

평생 홀로 살아온 데다가 잔소리도 많고 성격도 꼬장꼬장했다.

고개를 숙일 땐 숙여야 하는데, 순종적이지 못한 탓에 경제 부총재와 매번 부딪치기 일쑤였다.

사표를 던지는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 싶어 임병달 회장은 마음이 아려왔다.

“교수도 좋지만 내 부탁 하나 들어줘.”

“말해 보게. 가뜩이나 할 일 없어서 놀고 있는데. 은행 일 아니라면 뭐든 해주겠네.”

“거참, 벌써 선을 긋고 그래?”

“설마 은행 일인가?”

“직접 나서는 건 아니고 고문 좀 해주게.”

“고문? 불로 지지고 몽둥이로 때리는 고문?”

“이 사람 농담은.”

“하하하. 말해 보게.”

임병달은 이 총재의 잔에 술을 정성껏 따라주었다.

“은행 하나 살까 하는데.”

음.

이 총재는 임병달의 말에 잠시 고민했다.

“은행이니까 계열사는 아닐 거고.”

1999년 공정거래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금융지주회사는 존재할 수 없었다.

“왜 은행을 사려는 것인가?”

“정 실장 분가 시키려고.”

“아, 정 실장. 그래, 그 사람도 자기 사업할 때가 되었지. 석훈이 때문에 자네 곁에 붙어있었으니까 나가도 벌써 나갔어야 할 사람이야.”

“그렇지.”

“근데 내가 왜 필요한가?”

“지금 정국으로 볼 때 정 실장 혼자는 힘들지 않겠나.”

“허허, 나보고 장승이 되어라?”

“그게, 그냥 은행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서 말이야.”

“또 다른 계획이라도 있나?”

후.

임병달은 자신의 술잔에 술을 따르려 하자 이 총재가 술병을 빼앗아 따라주었다.

“자네, 머리가 복잡하구만. 이거 자네 생각 아니지? 정 실장 생각인가?”

후.

“아니, 재준이 생각이야.”

“재준이…….”

푸하하하.

“왜 웃나?”

“이번에 뉴스에서 본 그 재준이 말하는 거지?”

“맞아.”

“그놈 이번에도 사고 크게 쳤던데. 하하하.”

후.

“사실 말이야…….”

임병달은 지금까지 있던 재준의 활약을 이 총재에게 다 털어놓았다.

이 총재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목이 마른지 입에서 잔을 떼지 않고 홀짝홀짝 마셨다.

이거 진짜 미친놈이잖아?

임재준 고 녀석 아주 물건이 되었네.

그것도 대물로 말이야.

말없이 듣기만 하는 이 총재를 보며 임병달이 물었다.

“어떤가?”

“그러니까……. 뭐, 지난 이야기 빼고 미국에 진출하는 그 얘기 진짜 추진 중인가?”

“자네 생각은 어때? 가능할 것 같은가?”

“음……. 인터넷이란 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기는 할 걸세. 지금 우리가 로이터와 텔러레이트를 사용하지 않는가? 이걸 저렴한 비용에 일반인들이 사용한다면 주식매매도 가능할 걸세.”

로이터와 텔러레이트는 은행이나 증권사가 사용하는 전용 인터넷망이다.

주로 금융정보를 주고받는 경우에 사용했다.

하지만 로이터의 경우 사용료가 월 1,000달러나 했다.

금융사 아니고서는 엄두도 못 내는 가격이었다.

“단, 그게 말이야. 과연 일반인들이 그 복잡한 매매를 스스로 할 수 있냐가 걱정이긴 하네.”

“그런가……?”

“하지만 말일세. 나라면 한번 도전하고 싶기는 하네. 지금 태신증권이 HTS이라는 걸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이를 잘 활용하면 미국 시장도 가능하지 않을까?”

“알고 있지. 우리도 준비 중이니까.”

“그 정도론 안 되지. 미국은 거래 종목이 훨씬 복잡할 테니까. 아까 은행을 산다고 했지?”

“그랬지.”

“그럼, 조화은행을 사게.”

“조화은행?”

“조화은행 계열사에 조화시스템이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 최초로 자동화 코너도 만들고 HTS도 그곳에서 시작했으니까.”

조화은행은 무려 1990년에 자동화 코너를 최초로 설치했다.

1995년에는 은행에 철도청의 지정 공통승차권을 구매할 수 있는 ATM 기기를 설치했다.

금융시스템에선 앞서가는 은행이었다.

조화은행.

재준이 이놈 이것도 알고 인수하려 한 건가?

“이봐, 병달이. 조화은행은 내가 직접 나서겠네.”

“정말 그래 주겠나?”

“재준이 그놈이 나를 다시 일하게 만들 줄은 몰랐네. 허허.”

“그럼, 재준이 좀 부를까?”

“그래, 나도 재준이 본 지 오래됐어.”

임병달은 재준이와 통화를 했다.

***

조화은행 행장실.

전 국책은행 총재 이시형.

그는 조화은행장 한성복 앞에 신문을 내밀었다.

[국내 빅5 은행, 퇴출 위기.]

1면, 헤드라인 기사를 보며 불편해하는 한성복 행장.

금감원이 합병안을 꺼내 들었을 때부터 그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은행장들과 대책 회의를 했지만 이렇다 할 소득도 없었고, 퇴출과 합병 건은 그의 머리를 내내 지끈거리게 했다.

근데 얼굴 보기도 힘든 이시형 전 국책은행 총재가 조화은행을 인수하겠다고 했다.

인수 제안에 속으로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그의 제안을 웃으며 받아들이기엔 뭔가 찜찜했다.

뭐가 가슴을 빡빡하게 막고 있는 것 같다.

진심일까? 아니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일까?

그것이 뭔지를 찾아내야 하는데, 저 깐깐하고 대쪽 같은 양반을 움직인 힘이 대체 무엇인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빤히 쳐다보는 눈을 바라보며 한 행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총재님이 조화은행에 도움을 주시려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 그것에 대한 답이 너무 뻔해서 의심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총재님을 평소에 존경했고, 성품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은행을 걱정하시는 마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지만 왜 조화은행을 외국 자본에 팔아 버리시려는 겁니까? 라는 말은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투마로우뱅크에서 2조 원을 투입한다고 했다.

그러면 조화은행은 살아날 수 있다.

직원 구조조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계열사 정리도 안 해도 된다.

그 대신.

조화은행 상호를 버리고 투마로우뱅크코리아로 바꿔 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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