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50화 (50/477)

제50화 네~~에? 국가적 파장이요?(1)

“투기 자본은 약점이 있는 곳으로 옮겨 다니는데, 우리가 약점을 보인 거야. 그놈들 한 번 물면 꽤 아파. 이기든 지든 회복하려면 상당히 오래 걸려.”

아니, 그런 죽을 것 같은 표정은 짓지 말고.

우린 괜찮아, 내가 있잖아. 내가.

“재준아, 그러니까 네 말은 투기 자본이 몰려오는 게 지금이라고?”

“그래. 지금부터 환율을 주의 깊게 지켜봐. 정부가 개입해도 분명 상승으로 마감할 거야. 헤지펀드는 정부의 의지를 조롱하듯 달러를 끌어 올리고, 이건 아직 망설이는 헤지펀드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될지 몰라. 자, 늦으면 먹을 게 없을 거라고.”

“한화가 무너지면 시장은 어떻게 되지?”

뭐, 어쩌겠어.

그냥 올라가는 달러 구경하는 거지.

현재증권이 시장을 지킬 만큼 달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니, 있다고 해도 시장의 흐름에 역행하는 건 자살 행위인데.

달러가 올라가는 건 시장이 급격하게 무너진단 얘기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불난 집에 부채질하고 있다.

아니, 부채질이 아니라 아예 기름을 붓고 있는 거지.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현재 주가지수가 900. 일 년 후면 반 토막 날 거야.”

“일 년 만에 반 토막? 그건 국가 부도 사태에 해당하는 일이잖아.”

국가 부도 맞아, 그리고 사실 주가도 더 떨어져.

1998년에 코스피 지수가 277까지 추락하는데.

그때 주식투자자는 죽고 싶을 거다.

“잘 들어. 그때가 되면 현재증권이 보유한 주식의 가치는 절반 이하가 될 거야. 경기방어주와 우량주 빼고 다 팔아야 해. 휴지가 된 주식 들고 있어 봐야 불쏘시개로도 못 써.”

“주식은 펀드 매니저들이 들고 있는 거잖아. 어떻게 우리 맘대로 팔아?”

“그건 걱정 마. 서형길 실장님이 알아서 조율할 거야. 우린 앞으로 일어난 일을 예측해서 정 실장님에게 보고하면 돼.”

“재준아, 현재증권이 보유한 주식이 시장에 쏟아지면 주가는 폭락할 텐데.”

그걸 무식하게 시장에 뿌리는 놈이 어딨니?

재준이 방금 말한 최진기를 위로하듯 어깨를 다독였다.

“진기야, 우리 증권회사야. 좀 세련된 방법으로 처분하면 안 되겠니? 시장이 아니라 해당 기업이나 증권사를 알아봐야지.”

재준이 내뱉은 말을 눈치채고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역시 김혜림이 나섰다.

“알아본다고? 그럼 일거리가 또 늘어나는 거야?”

재준은 무시하고 말을 이어갔다.

“자금 여유가 있는 기업들은 자사주 매입을 마다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여유가 없는 기업의 주식은 다른 증권사에 분산해서 넘기고.”

“그런 건 펀드 매니저가 하면 안 될까? 여긴 경제정책연구실인데 우린 연구만 하기에도 벅차.”

그럼, 그럼.

동기들 모두 김혜림의 말에 적극 동조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재준은 되물었다.

“펀드 매니저? 누구?”

“다. 펀드 매니저를 다 동원해야지.”

“그렇구나. 다른 분들이 이 일을 처리해야 하는 거구나.”

그럼, 그럼.

다시 재준이 고개를 끄덕이는 동기들을 바라봤다.

“얘들아, 근데 회사는 말이야. 일정한 목표를 설정해 주잖아. 그리고 그 목표를 넘기면 성과급이란 걸 주는데. 알고 있지?”

성과급?

동기들은 ‘설마’ 하는 눈빛을 재준에게 보냈다.

“우리 회사 성과급 최대치가 1억이야. 그래서 우리 예측이 맞아떨어진다면 정 실장님에게 이 일에 대한 성과급으로 우리 각자 1억씩을 요청할 계획인데. 어떻게 성과급을 다른 펀드 매니저와 다 같이 나눌까?”

이 마음 착한 놈들아.

다정하게 말하는 재준.

벙어리가 된 동기들.

1억!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동기들을 대표해서 김혜림이 또 나섰다.

“아, 그렇구나. 생각해 보니 펀드 매니저들은 다 선배들이고 엄청나게 바쁜 것 같더라고. 그렇지 않니, 얘들아?”

“그……. 그런 것 같아. 맞아. 선배들 바빠. 아주 많이.”

“그리고 건방지게 후배가 선배에게 일을 돌리면 안 되지. 우리가 해야지.”

“그럼, 그럼. 우리는 연구도 열심히 하고 이번 일도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어. 우리 둘은 자사주 매입 가능한 기업을 알아볼게. 너희 둘은 증권사 디텍 좀 해 봐.”

“그래, 움직여. 무브, 무브.”

역시 돈 앞에선 힘이 부쩍부쩍 솟아나는구나.

최진기가 뭔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재준에게 물었다.

“그런데, 주식을 처리해서 쌓아두기만 하면 현금 흐름이 정체되어 버릴 텐데?”

“그렇지. 말하기 전에 내가 전에 알려준 그룹 중에 채권 매입 대상 정했어?”

“아, 그거. 뭐, 뽑긴 했는데. 그게 좀 그래.”

최진기가 서류 하나를 재준에게 내밀었다.

이슬 그룹.

K모터스 그룹.

재우 그룹.

잘 뽑았네.

흐뭇해하는 재준에게 최진기가 물었다.

“우린 주식을 팔아서 우선 이슬 그룹의 부실 채권에 집중하자.”

현재 워크아웃 신청한 이슬 그룹.

동기들의 표정은 또 굳었다.

“그게, 이슬 그룹……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인데……. 재준아, 네 감에 의하면 이슬 그룹이 부도가 난다는 거잖아. 과연 정부가 이슬 그룹이 부도나는 걸 지켜만 볼까? 대마불사잖아.”

걱정 마. 지금 정부가 그럴 정신이 있겠니?

전 국민이 참여한 노동계 총파업에 김대준이 탈당하게 생겼는데.

“대마불사는 무슨? 재우 그룹 정도 돼야 대마불사라고 부르는 거지. 이슬 그룹은 대마까진 아니야. 소주 말고 없잖아.”

“그 소주가 대단한 거지.”

“대단하지 않아. 이슬 그룹 정도는 연습 경기니까. 가볍게 몸이나 푼다 생각해.”

“연습 경기? 그럼 본경기는?”

“당연히 K모터스 그룹과 재우 그룹이지. 너희들이 뽑았잖아.”

뜨아.

동기들은 재준을 ‘이놈이 제정신일 리가 없다’라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아니, 뭘 그렇게 봐?

“재준아, 진심이냐?”

“그럼, 나한테 다 계획이 있으니까. 너희들은 따라만 오면 돼.”

“정 실장님께 말씀은 드렸니?”

“이제 회장님께 해야지.”

정 실장이 아니라 회장님에게?

재준의 말에 모두 의심스럽다는 듯 째려봤다.

김혜림이 총대를 메고 재준에게 물었다.

“재준아, 혹시 아버지가 이 회사 다니는 건 아니지?”

“무슨 말이야?”

“회장님을 너무 거침없이 만나는 것 같아서.”

“내가?”

“그래, 네가.”

호프집에서 있었던 일로 눈치챈 건가?

“재준아, 우리가 연말에 호프집에서 부사장님 둘을 만났잖아. 그때 느낀 건데.”

“느낀 건데?”

“혹시, 아버지가 서형길 실장 아니냐?”

으이그, 추리를 해도 꼭,

“나랑 닮았냐? 서형길 실장이 나랑 닮았냐고?”

이무열이 김혜림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아니라고 했잖아. 부사장님이라니까.”

부사장? 이것들이.

“말해 두는데 두 부사장님도 정 실장도 서 실장도 모두 나랑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이야. 엮으려 하지 마.”

“그럼?”

뭐? 뭐?

“회장님 늦둥이?”

아!

모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아니지. 회장님 연세가 얼만데.”

“왜, 60에 아들을 얻을 수도 있지.”

“그럼 와이프는?”

“연예인 중 누구겠지. 재준인 좀 생겼잖아.”

와! 이 사람들 소설을 쓰네.

어디 작가로 데뷔시켜 드려?

“모두 쓸데없는 소리를. 내 부모님은.”

재준은 잠시 생각했다.

“미국에 계셔.”

엥?

“진짜? 미국 어디?”

“텍사스. 휴가 나오면 갈 건데. 혹시 같이 갈 사람 있어? 내가 다 확인시켜 줄게.”

“그건 좀.”

비행기 값이 너무 비싸서.

“일 좀 합시다.”

그래야지.

“자, 모여 봐.”

흩어졌던 동기들이 다시 모였다.

“승하야, 여기 이슬 그룹부터 부실 채권 사 모아. 어떻게 하는지 알지?”

“알아. 발행은행을 중심으로 알아서 끌어모을게.”

의외로 똑똑하단 말야.

은행들은 국제결제은행의 BIS비율을 맞추라는 압박에 시달려서 어떻게 해서든 부실 채권을 처리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 이슬 그룹의 부실 채권을 사겠다고 하면 얼씨구나 하고 팔아버릴 것이다.

“진기와 무열이는 재우 그룹 재무제표 분석하고.”

“진짜 재우 그룹은 너무 큰 거 아냐?”

“커도 해야 해. 내 감이 말하는데, 재우 그룹은 분식회계 크기가 엄청날 거야. 아마 우리나라 일 년 예산보다 클지도 몰라.”

“뭐라고?”

날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실제 그런 걸 나보고 어쩌라고.

재우 그룹의 부채는 89조.

우리나라 일 년 예산은 84조.

“혜림은 SS전자와 K모터스가 어떻게 싸우는지 추적해.”

“아니, 엉뚱하게 SS전자와 K모터스가 왜 싸워?”

“지금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엄청 싸우고 있어. 잘 추적해봐. 다른 신문사에 아는 경제부 기자 있어?”

“많지. 선배들이 수두룩해.”

“내가 정 실장님에게 법인카드 받아 올 테니까. 가격 좀 되는 선물 안겨서 기사에 실리지 않는 고급 정보를 취합해.”

“그렇게까지?”

당연하지.

맨입에 털어놓겠어?

“소문 절대 내지 않는다고 꼭 말하고.”

“알겠어.”

K모터스가 HD자동차에 인수되는 데 제대로 훼방 놓아서 최소한 중계 수수료는 먹어야지.

수수료만 몇 백억은 되겠네.

이때,

띠리리링.

재준의 핸드폰이 울렸다.

“네. 임재준입니다.”

-천 실장입니다.

“네. 말씀하세요.”

-그랜드월이 은행을 돌아다니며 현재증권의 부실 채권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는 정보입니다.

뭐라고? 이 새끼들이 간땡이가 부었나.

***

재준은 천 실장과 함께 조화은행 명동지점으로 가는 중이었다.

천 실장 수족들이 지금 그곳에 그랜드월이 있다고 전했다.

이놈들이 어디다 음흉한 손을 뻗는 거야?

그랜드월 한국 지사를 없애든지 해야지 바쁜데 귀찮게시리.

아니지, 그래, 이놈들도 제대로 털어줘야 임재준 무서운 줄 알지.

재준이 생각은 그렇게 했어도 그랜드월은 벌지 브래킷 중 하나이다.

벌지 브래킷은 전 세계에 고객을 두고 유가증권 인수, 자금 조달 주선, 인수합병(M&A) 자문 등 투자은행(IB) 분야의 거의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류 IB를 일컫는 말이다.

증가라는 의미의 ‘bulge’와 선반이라는 의미의 ‘bracket’을 나타내는데, 투자자들에게 발송되는 제안서의 표지 맨 윗줄에 대표 주관사들의 이름이 다른 회사들보다 큰 활자체로 쓰이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증권이 맞서 싸우기에는 상대가 크긴 커.

근데 뭐, 자산이 10배든 100배든 아니 10,000배면 어쩌라고.

난 미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데.

돈이 아무리 많으면 뭐하나. 적은 돈으로도 이기는 건 나다.

나와 그랜드월이 로또 맞추기 시합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난 로또 번호를 알기에 천 원이면 충분한데 그랜드월은 번호를 모르기에 20억을 들여도 확신을 할 수 없다.

생각해보니 아쉽네.

기억나는 로또 번호가 하나도 없다니.

광교로 가야 하는데 명동에서 막혔다.

거리는 온통 사람들로 넘쳐났다.

“도련님. 좀 돌아가야겠습니다.”

“그냥 차 세우세요. 걸어갑시다.”

“네.”

명동 전체가 시위현장이었다.

노동법 날치기 통과.

이런데 대통령이 정신이 있겠어?

그 일로 거리로 몰려나온 넥타이부대는 350만 명에 달했다.

1950년 이후 최대 규모의 거리시위였다.

당시 민주노총의 위원장 권영기는 이 사건으로 진보정당을 건설하게 되었고, 민중당의 청년들과 합치며 건설국민승리21라는 진보정당을 탄생시켰다.

대한민국에 진보정당을 탄생시킨 사건.

1987년 세대는 노동자가 역사의 주역이었다.

단지 산업의 역군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때 노동자는 철학자였다.

하루 14, 15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을 마친 이후에도 야학을 했고, 광장에서 토론을 했다.

부의 격차가 심화될수록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열정이 높았다.

넥타이부대.

그들은 당시의 시대정신을 구현하며 앞장섰다.

시간을 쪼개고 피로에 지친 몸으로 삶과 존재를 외쳤다.

재벌 입장에서 이들을 보니 기분이 묘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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