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42화 (42/477)

제42화 한 푼도 못 건지고 떠나게 하겠습니다(3)

대한 그룹 박영일 회장과 전경련 손병수 회장은 서로 손을 맞잡았다.

“요즘 속이 말이 아니시죠. 이럴 때일수록 건강을 챙기셔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손 회장님. 일부러 여기까지 오시구요.”

“제 속이 더 답답해서 왔습니다.”

“이리로 앉으시죠.”

손 회장이 자리에 앉자 박 회장도 앉았다.

재준은 손 회장 뒤에 단정하게 서서 박 회장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저놈이.’

박 회장이 재준을 의식하자 손 회장이 나섰다.

“괜찮습니다. 제가 요즘 조언을 얻는 인재인데, 아주 제갈공명 같아요. 이번 사태도 정확히 예측해 이 늙은이를 놀라게 했지 뭡니까. 박 회장님을 만나자고 한 것도 여기 이 친구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손 회장의 말에 호응은 했지만, 박 회장의 표정은 떨떠름했다.

‘뒷배가 있었단 말이냐. 손 회장을 구워삶다니.’

손 회장은 박 회장의 표정이 굳는 걸 보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야 하는데 예전과 같은 차분함을 보일 수 없으니까.

“박 회장님, 말씀해 보세요.”

“네. 손 회장님. 지금…….”

“잠시만요.”

손 회장이 손을 들었다.

그리고 재준에게 고개를 돌렸다.

“임 팀장, 지금 매집 현황은 어떻게 되고 있나?”

“네, 현재 미레도홀딩스 지분은 대한 그룹이 20%, 그랜드월이 18%, 선동방 그룹이 10%입니다. 20% 대 28%입니다.”

박 회장이 서둘러 말했다.

“만선증권이 10%를 가지고 있다고 하던데…….”

“만선증권이요?”

이 능구렁이가 슬쩍 내 속을 떠보려는 건가.

그런 선수는 환영이지.

재준이 재빨리 손 회장에게 말했다.

“만선증권 10%는 현재증권이 인수했습니다.”

손 회장이 재준의 말을 듣고 다소 놀란 듯 말했다.

“현재증권이 벌써 인수했어? 역시.”

“저희가 만선증권 주식 10%를 가지고 있어서 서로 양도했습니다. 대한 그룹에 힘을 실어 드리겠습니다.”

“하여튼 임 팀장, 빨라. 굉장하다니까.”

재준의 말에 박 회장의 말에 인상을 구겼다.

손 회장이 박 회장에게 환하게 웃었다.

“그럼 대한 그룹이 30%가 되는군요. 박 회장님. 그래도 아직 안심할 때는 아닌데 또 다른 대책은 있습니까?”

“시장에서 계속 매입하려 합니다.”

“매입 자금은 있으십니까?”

“현재 은행들과 논의 중입니다. 계열사 부동산을 담보로…….”

“확실한 게 없으시군요.”

손 회장이 박 회장의 말을 또 끊었다.

박 회장은 자존심이 상해 입을 굳게 다물었다.

“박 회장님, 저는 우리나라 기업이 외국 자본에 넘어가는 걸 두고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친구가 정리한 자료를 좀 보세요. 임 팀장, 이리 줘 봐요.”

재준이 손 회장에게 서류를 넘겼다.

탁.

사락, 사락.

손 회장은 탁자에 서류를 펼쳐 자료를 넘기며 박 회장에게 보여주었다.

“이건 선동방이 등장하기 전에 임 팀장이 작성한 겁니다. 보이시죠. 지금까지 모두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 자료를 보던 박 회장의 얼굴에 의문이 늘어 갔다.

‘설마? 이렇게 전개될 것 예상하고 있었다고? 그리고…….’

박 회장이 재준을 향해 미간을 좁혔다.

‘BW,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주식 수를 늘린다. 이미 10%를 가지고 있는데.’

이놈, 도박꾼이다.

대한 그룹을 삼키려 하고 있다.

손 회장 옆에 딱딱하게 서 있는 저놈.

어떻게 손 회장을 구슬렸는지 모르겠지만, 한 번 당했다.

‘두 번 당하진 않아.’

자료 분석이 날카로운 건 사실이지만, 이건 회사를 건 도박에 지나지 않는다.

BW를 푼 후에 선동방은 물러가겠지만, 두 번째 시련이 올 것이다.

‘저놈에게 손 회장도 속고 있는 거야.’

재준은 박 회장을 보며 설명을 덧붙었다.

“전경련이 기업으로부터 자금을 끌어모아서 대한 그룹을 도와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냥 대출은 기업들을 설득하기 힘들므로 미레도홀딩스가 BW(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하면 됩니다.”

신주인수권부사채.

박 회장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끙.

재준의 설명은 이어졌다.

“미레도홀딩스 자체적으로 BW를 발행하면 아무도 인수하지 않겠지만 전경련이 나서면 1,000억 정도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박 회장의 턱이 미세하게 떨린다.

“1,000억이면 지분이 얼마나 되나?”

“20% 정도 됩니다.”

“발행 단가는?”

“2만 원입니다.”

박 회장이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그럼 그렇지. 저가에 발행을 하겠다?’

자신의 예상대로 사짜다.

박 회장이 나서서 재준의 말에 반박했다.

“누가 2만 원짜리 BW를 인수하겠나? 현실을 너무 모르는 소리야. 참 내.”

어이가 없다는 박 회장.

손 회장이 나섰다.

“박 회장님. 박 회장님이 믿지 못할 것 같아서 내가 직접 찾아온 겁니다. 임 팀장, 왜 2만 원에 가능하지?”

“네. 미레도홀딩스 주가는 M&A 이전엔 1만 원 정도였습니다. 주가가 오른 건 M&A라는 거품이 있기 때문이니까 적정 주가는 2만 원이 맞습니다.”

재준의 설명에 박 회장이 툭 내던지듯이 말했다.

“2만 원이 왜 적정하단 말인가?”

“대한 그룹 매출 1조 3천억 원, 하지만 대출은 2조가 넘습니다. 지금은 순이익 2,000억으로 주식 수를 나누면 산출되는 가격입니다.”

“그렇다 치고, 대출 때문에 어느 기업이 BW를 사겠는가? 기업을 설득할 명분이 있는가?”

손 회장은 머릿속으로 답을 떠올리며 재준을 봤다.

“네, BW를 발행하면 미레도홀딩스에 1,000억이란 자금이 수혈됩니다. 그리고 자금에 대한 대가로 대한 그룹의 구조조정을 내거시면 됩니다.”

박 회장은 구조조정이란 말에 버럭 고함을 쳤다.

“구조조정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재준은 동요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대한 그룹이 M&A 방어에 성공하면 주력 부분인 식품과 유통을 제외한 다른 계열사는 BW 발행에 도움을 준 대기업에 매각하십시오. 대기업도 자신에 맞는 분야를 인수하고, 대한 그룹은 매각 대금으로 내실을 다질 기회가 될 것입니다.”

박 회장이 재준을 노려본다.

“자네, 꼭 부도난 회사를 대하는 채권단처럼 말하는데…….”

“기분이 언짢으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대로 M&A 방어에 실패하면 회장님의 자리도 사라질 것입니다.”

“뭐? 이 사람이 말이면 다 하는 줄 아나?”

쩌렁쩌렁하면서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회장실 안에 울려 퍼졌다.

박 회장의 얼굴은 시뻘게지자, 손 회장이 얼른 나섰다.

“박 회장님. 이건 제안일 뿐입니다. 결정은 박 회장님 본인이 하면 될 것 아닙니까. 그리고 제가 보기엔 이 정도는 돼야 다른 기업들이 BW를 사주지 않겠습니까?”

“손 회장님,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다른 기업들이 BW를 이용해 주식을 취득하고 시장에 팔 수도 있습니다.”

“임 팀장, 자네 생각은 어떤가?”

손 회장은 나름 일리 있는 말이라 생각해 재준에게 물었다.

“BW는 채권일 뿐이지 지금 당장 주식이 되는 건 아닙니다. 박 회장이 우려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BW를 발행해야 하는 이유는, 대한 그룹이 BW를 발행했다는 소식만 들어도 그랜드월과 선동방은 M&A를 포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추가로 지분을 확보해 봐야 우호지분을 넘기기는 어렵다고 판단할 테니까요. 또한 BW가 발행되는 순간 주가는 하락하기 시작합니다.”

손 회장이 넌지시 박 회장에게 물었다.

“박 회장님, 어떠십니까.”

박 회장은 숨을 크게 들이쉴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한 그룹의 현재 상황은 최악이었다.

만선증권의 지분도 저 사기꾼 같은 놈에게 빼앗겼고.

시장에서 매입할 자금 대출도 힘들다.

언론에서 연일 떠들어 대자 은행장들은 추가 대출 요구에 난색을 표명했다.

‘언론을 부추긴 것은 임병달 회장. 전부 각본에 의해 움직이는 게 아닐까.’

사방이 막혀 있었다.

그렇다고 BW를 발행하면,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그룹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중견기업이 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결정할 시기인 건 확실하지만, 그 대가가 너무 크다.

박 회장은 머리를 굴렸다.

……잠시 후,

“손 회장님. 손 회장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일단 받아들이자. M&A 방어가 먼저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박 회장은 체념한 듯한 얼굴을 했다.

그러나 재준은 그것이 거짓임을 알고 있었다.

본래의 역사에서 대한 그룹은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고, 위기를 넘기자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언제 그랬냐는 듯 구조조정을 미뤘다.

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자의로 하지 않는다면 강제로 구조조정을 시키면 되지.

“그럼, 일주일 후에 법무팀을 보내겠습니다. 잘 마무리해 봅시다.”

“네, 감사합니다.”

손 회장과 재준은 박 회장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에 올라타며 손 회장이 물었다.

“자네, 어떤가. 박 회장이 구조조정이란 약속을 지킬 것 같은가.”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지키지 않으면 지키게 만들어야지.”

“만약 지키지 않으면 어쩌실 생각입니까?”

“하하. 난 외국 자본이 싫은 거지, 국내에서 뺏고 뺏기는 것은 상관 안 하네.”

재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마지막 총알이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 총알이라니?”

“그랜드월과 선동방은 매집한 주식을 시장에 던질 수도 있습니다.”

“대한 그룹은?”

“BW 발행 대금 1,000억으로 시장에서 또 매수할 겁니다.”

손 회장은 재준을 쳐다봤다.

그 눈빛이 사뭇 진지했다.

“자넨 어쩌면 좋겠나?”

“BW를 현재증권이 전량 사겠습니다.”

“전부.”

“네.”

현재증권 임 회장의 손자. 임재준.

무모하리만치 과격한 젊은이였다.

하지만 능력의 끝을 알 수 없어 믿고 지켜보고 싶었다.

손 회장의 입가에 선명한 미소가 걸렸다.

“현재증권에서 대한 그룹을 인수하려고?”

“저희는 그룹을 운영할 능력은 없습니다. 단지 좋은 주인을 찾아 주는 게 대한민국 경제를 더 튼튼히 만드는 길 아니겠습니까.”

“그래, 그게 맞아. 자꾸 곪은 곳이 많아지고 있어. 선동방만 신나겠구만.”

“그럴까요? 전 생각이 다릅니다.”

“선동방도 건드릴 건가?”

“아닙니다. 그럴 여력은 없습니다. 다만…….”

선동방은 과도한 대출로 유동성이 떨어져 결국 대한 그룹과 마찬가지로 찢어질 것이다.

그랜드월만 주식을 털고 나가면서 이득을 취했다.

내가 그 꼴은 또 못 보지.

“다만, 무언가. 말해 보게.”

“회장님이 인수하십시오. 선동방도 매출 대비 대출 비중이 높아 버틸 수 없을 겁니다. 지금 어려운 시기이지 않습니까.”

“인수해서 대한 그룹처럼 해체하라고.”

“해범 식용유 주인을 찾는 것도 괜찮은 재미가 있을 겁니다.”

“선동방도 해체하라.”

“네. 그럼 제가 그랜드월도 한 푼도 못 건지고 떠나게 하겠습니다.”

“그랜드월까지?”

“네.”

“그랜드월이 물먹는다면 내가 적극 힘쓰지.”

허허허.

손 회장의 웃음이 차 안에 가득 찼다.

재준은 손 회장을 보며 보이지 않게 피식 웃었다.

재우 그룹의 손병수 회장.

대한민국 사상 최고의 분식회계 그룹.

살려드릴까요.

죽여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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