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37화 (37/477)

제37화 주거니 받거니 해야 하는데(4)

“그냥 진행해도 되나요?”

“염려 마십시오. 임재준 팀장님께 손해가 생길 일은 전혀 없습니다.”

“진짜?”

“네. 걱정 마십시오.”

박민수는 품 안에서 녹음기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았다.

“임 팀장님 심정은 제가 잘 압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저도 살길은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이것도 준비했습니다.”

재준에게 내미는 서류.

만선증권 주식 매집 현황이었다.

재준은 보는 순간 놀랬다.

역시 J.스탠리라는 건가.

일주일 만에 소문도 안 나게 7% 이상을 매집했다.

이 사람에게 금 좀 처분해 달라 할까?

“맘에 드십니까?”

헉, 무서워라.

서류에서 눈을 떼자, ‘칭찬해 주세요’라는 얼굴이 보였다.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막내 같은 눈빛을 담고 있었다.

이 사람 이런 면도 있네.

“맘에 듭니다.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매집을 했군요.”

“J.스탠리 펀드 매니저들 도움을 좀 봤습니다.”

“친화력이 좋으신가 봅니다.”

재준의 말에 또 헤헤거리는 박민수.

날카로운 모습과 반푼이의 모습이 반반 섞여 있었다.

“다음 주면 대략 10% 선은 매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맞나요?”

“내일이면 충분합니다. 지금 시장은 그랜드월과 미레도홀딩스의 싸움으로 관심이 전부 쏠려 있습니다. 시장이 과열되다 보니 증권주들도 활발하게 움직이는 편입니다. 저가에 매집하기 좋을 때입니다.”

“그건 알아서 하시죠. 그쪽이 전문가니까.”

“네, 그 점은 염려 놓으십시오.”

***

이틀 후.

현재증권 6층.

경제정책연구실.

재준이 들어서자 눈앞에 서류 하나가 휙 날아왔다.

“재준 씨 홍콩투자사 찾았어요.”

선동방의 돈줄, 홍콩에 있는 투자사라…….

“혜림 씨, 이게 그러니까…….”

헉!

김혜림, 몰골이 왜 그래?

무덤에서 시체를 꺼내도 너보다 멀쩡하겠어!

“왜요? 왜 그렇게 저를 쳐다보시는 건가요?”

“아니, 아닙니다. 아름다워서. 맞아. 아름다워서.”

“저도 거울 볼 줄 알아요. 하지만 일주일째 사무실에 틀어박혀 홍콩에 있는 모든 투자사를 찾다 보니.”

“아, 그럼, 다른 동기들도…….”

헉!

전부 팬더가 되었네.

퀭한 눈두덩이가 마치 검은 반점이 양쪽으로 나 있는 것 같았다.

팬더도 양쪽 눈에 다 반점이 있지는 않은데.

재준은 모른 척 서류를 들여다봤다.

보지 말자.

꿈에 나올까 무섭다.

뉴월드투자사.

홍콩에 있는 투자사로, 그랜드월과 선동방 그룹의 지분으로 설립되었다.

그랜드월이 51%, 선동방 그룹이 49%.

음. 만약 자금이 모자란다면 홍콩 자본을 뉴월드를 통해 공급받는다.

그랜드월 이름이면 채권 발행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다.

그렇게까지 해서 본사에 짐을 지울 일은 없겠지만.

“혜림 씨 생각은 어때요?”

“선동방과 그랜드월이 지분을 나누어 투자사를 설립했다는 건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말해 봐요.”

“처음부터 선동방과 그랜드월은 같은 편이었다.”

“두 번째는?”

“홍콩에 선동방의 비자금이 숨어 있다.”

“증거 있습니까?”

“아니요. 재준 씨 생각은요?”

“선동방과 그랜드월은 M&A 후 대한 그룹 계열사를 팔아 치울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막대한 이윤을 국내에 가지고 있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랜드월이라는 좋은 카드가 있잖아요. 이익 배분을 그랜드월에 유리하게 하고 그랜드월은 뉴월드에 돈을 남겨 놓으면 끝이니까요.”

홍콩에 법인이 있다면 달러 반출이 얼마나 쉬운가.

반출된 달러는 해외에서 투자라는 핑계로 여기저기 돌리면 추적이 불가능해진다.

나중에 투자 손실로 처리하면 반출된 달러는 그대로 비자금으로 남는 것이다.

“그 싸움에 비자금까지 생각했을까요?”

“당연합니다. 그런 거 하면서 비싼 밥 먹는 놈들이 한둘이 아니니까요.”

김혜림은 ‘설마’라는 생각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아직은 순수한 시대구나.

지금부터 비자금이 줄줄이 터진 걸 목격한 나로서는 비자금이 없는 기업을 찾는 것에 ‘설마’를 사용할 텐데.

“현재 미레도홀딩스 주가는 얼마입니까?”

“23,500.”

최진기였다.

자신의 일에 집중하면서도 주가란 말에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별로 안 올랐네요.”

이제 슬슬 시장에 풀린 물량이 바닥을 칠 때가 됐다.

미레도홀딩스 주가는 한 달 안에 47,000까지 오를 것이다.

고점에 털지는 못하니까 대략 44,000~45,000에 대부분 털겠지만.

“지금 대한 그룹은 자금이 한계치이고, 그랜드월과 선동방 그룹의 대부분 자금이 미레도홀딩스 주식에 묶인 여파로 두 회사도 슬슬 단기차입금 상환 압박을 받을 겁니다.”

좋아, 좋아.

“근데 이상한 점이 있어요. 한 일주일 전에 주가가 확 치솟았다. 가라앉았어요.”

오호, 누군가 쓸어갔구나.

뭐, 만선증권이겠지만.

“네. 며칠만 지켜봅시다.”

어부지리(漁夫之利).

지금 만선증권이 생각하고 있는 그림이다.

두 세력이 싸우는 틈에 2만 원대에 사서 대한 그룹에 4만 원대에 팔아 두 배의 차익을 낸다.

싱글벙글한 재준을 김혜림이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다.

“재준 씨는 뭐가 그리 즐거워요?”

“싸움 구경은 돈 주고 하는 거 아닙니까. 근데 우린 공짜로 하고 있잖아요.”

“지금 자금이 바닥이라는데 더 싸울까요?”

“아직 한 달은 더 싸울 겁니다.”

“주가가 계속 오르는 통에 돈을 쏟아부어도 턱없이 모자랄 텐데 더 싸운다고요?”

“네. 싸우는 모습이 지금 막 터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랜드월이 1년 이상 매집해 왔습니다. 발표만 근래에 했을 뿐. 한참 더 싸워야지요.”

“언제까지요?”

“그랜드월과 선동방이 서로 싸울 때까지요.”

“엥? 둘이 갑자기 왜 싸워요?”

“가만 생각해 봐요. 뉴월드에 51% 투자를 한 건 그랜드월이잖아요.”

“네.”

“시장에 흘러간 돈이 계속 묶여만 있으면, 1년이 다가오면 회계상 투자 손실로 처리될 금액이 상상을 초월하겠죠?”

“그런가요?”

“뉴월드 입장에서는.”

“아하.”

“그리고 그랜드월은 미국 회사입니다. 주주들이 항상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는데 거액의 투자 손실을 묵과하고 있다면 지금의 경영진들은 주주총회에서 물갈이될 것이 뻔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기 전에 싸움을 끝내든가, 주가 이익만 실현하고 시장에 던지겠지요.”

“그래서 그랜드월이 선동방 그룹을 압박할 것이다?”

“맞습니다. 지금 선동방이 불을 지르고 있잖아요. 급한 겁니다.”

“진기 씨 말로는 돈이 바닥이라면서요.”

“에이, 은행 있잖아요, 은행. 채권단을 만나 은행 대출을 받으려 할 거예요. 채권단 설득이 쉽지는 않겠지만.”

“은행에서 대출을 못 받으면요?”

“그런데 그럴 일은 없어요. 선동방 노 상무가 힘을 쓸 겁니다.”

“노 상무요? 그게 누군데요?”

“전직 대통령 아들. 아버지가 구속 수사 중이지만, 아직도 힘은 좀 있거든요.”

“그래요?”

김혜림은 도무지 자신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생각에 가뜩이나 피곤한 머리가 배로 무거워졌다.

삶이란 피해 갈 수 있으면 피해가며 이득을 취하는 것이 안전한 거 아닌가.

무엇이든지 깊게 얽히면 늘 손해인데.

재준 씨는 왜 싸움에 뛰어들려고 할까.

대기업 싸움에 뛰어들어서 자칫 잘못하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을 텐데.

임재준이란 사람은 이제 갓 6개월이 되었는데, 마치 이런 전쟁을 많이 겪은 백전노장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다.

“재준 씨. 정도를 걸을 생각은 없어요?”

“지금 정도를 걷고 있는데요.”

그럼 그 눈빛은 뭔데.

사내놈이 눈치를 보며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저에겐 규칙이나 한계 같은 건 없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잖아요.

이때,

띠리리링.

재준은 핸드폰을 들고 혜림에게 손을 흔들며 밖으로 나갔다.

“네, 천 실장님.”

-대한 그룹과 만선증권이 만나는 것 같습니다.

“그래요? 갑시다.”

이거 뭐야.

벌써 만나는 거야?

왜 이렇게 즐거워지지.

다시 박민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임재준 씨.

“만선증권 주식 얼마나 매집되어 있습니까?”

-10% 좀 넘었습니다.

“오케이. 나중에 연락 드릴게요.”

***

“여깁니다.”

중국집이라.

꽤 고급스러운 외관을 가진 중국집이었다.

재준은 거침없이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뒤에 천 실장이 따라붙자 그 뒤로 십여 명이 나타나 주변을 경계했다.

“실장님? 누굽니까?”

“도련님. 주변에 대한 그룹에서 부른 애들이 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를 따르는 대원 몇 불렀습니다.”

“이거 완전 조폭 분위긴데요.”

“마지막으로 보스니아 전쟁을 치르고 귀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일 겁니다.”

군인이야?

우리나라가 보스니아 전쟁에 참전했던가?

아니면 용병?

뭐, 믿음직하긴 한데.

너무 살벌하네.

근데 대한 그룹은 왜 조폭을 배치한 거야?

혹시 일이 틀어지면 동원하려고?

이 시대 처음으로 무서워지네.

이러니까 자꾸 내 성질이 못되게 변하는 거야.

이건 내 책임이 아니라고.

순전히 환경 탓, 다 환경 탓이라니까.

천 실장이 손짓하자 대원들은 주변으로 흩어졌다.

재준은 쓴 입맛을 다시며 중국집 문을 열었다.

끼익.

문이 열리자 앞에 치파오를 입은 여자가 고개를 숙이고 옆으로 한 명이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예약 시간을 알려주시겠습니까?”

“여기서 제일 비싼 홀이 어딥니까?”

“거긴 이미 예약이 되어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박 회장님 보러 왔습니다.”

여자는 잠시 숨을 고르고 고개를 숙였다.

‘대한 그룹 사람이구나.’

여자는 손을 앞으로 뻗으며 안내를 시작했다.

재준과 천 실장은 여자를 따라 제일 큰 홀로 안내되었다.

역시, 홀 앞에 다다르자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뒤로 빠져 사라졌다.

홀 앞에 인상 더러운 두 놈이 보였다.

천 실장이 나서려 하자 재준이 손을 뻗어 제지하며 앞으로 나섰다.

“안에 박 회장님 계십니까?”

인상 더러운 놈 중 하나가 재준을 빤히 쳐다봤다.

“네, 어떻게 오셨습니까?”

“주식 좀 팔려고 왔다고 전해 주십시오.”

놈이 ‘주식’이란 말에 인상을 쓰더니 살짝 고개를 숙여 잠시 기다려 달라는 메시지를 주었다.

놈이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통화를 시도했다.

뒤에 있던 천 실장은 놈들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러면서 재준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웬일로 존대를 다 할까? 야, 비켜, 하면서 밀고 들어갈 줄 알았는데.’

어쨌든 힘으로 눌러버리려 했는데 재준이 의외로 예를 차려서 분위기가 험하게 변하지 않았다.

험한 놈의 얼굴이 더 험하게 일그러지더니 재준에게 입을 열었다.

“필요 없으니 꺼지라는데?”

재준이 묘하다는 표정으로 험한 놈을 바라봤다.

“누가?”

“…….”

“어떤 새끼가 나보고 꺼지래? 박 회장이야? 한 사장이야? 너 내가 누구라고 잘 전달한 거 맞아?”

“…….”

천 실장의 눈빛이 변하자 험한 놈이 고개를 약간 아래로 숙였다.

무척 곤란하게 되었다는 신호를 옆에 험한 놈에게 보냈다.

“실례지만, 누구시죠?”

“이야, 이제 물어보네. 이제 물어봐. 그래서 밥이나 먹고 살겠냐? 비켜!”

재준이 밀고 들어가려 하자, 험한 놈 둘이 막아섰다.

“안 됩니다. 안에 중요한 분이…….”

“지랄하고 있네. 누가 중요한데? 대한 그룹 박 회장이? 아니면 만선증권 한 사장이? 누가? 누가 중요한 분이냐고. 안기부보다 중요해?”

“안기부…….”

“비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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