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33화 (33/477)

제33화 나 누구랑 대결한 거니?(3)

동기들과 오랜만에 담소를 나눈 후 재준은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그리고 두 개의 모니터에 집중했다.

모니터에는 거래량과 가격 그래프가 떠 있었다.

한 개는 환율.

한 개는 코스피 200 선물.

3주 동안 스캘핑 훈련을 했다.

재준은 계속 스캘핑에 적당한 주식 종목을 찾았지만 100% 만족할 만한 종목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코스피 200 선물 시장 오픈>

1996년 5월에 오픈한 선물이 눈에 들어왔다.

공포와 탐욕의 지수라 불리는 코스피 200 선물이라면 거래량, 가격 모두 스캘핑에 적합했다.

온종일 끊임없이 널뛰는 시세야말로 스캘핑에 최적이었다.

그뿐인가? 또 있다.

선물은 레버리지가 매우 높은 투기적 상품.

증거금 15%만 있으면 거래가 가능했다.

재준에게 주어진 자금은 천만 원.

선물을 거래한다면 천만 원을 증거금으로 대략 육천육백만 원의 자금을 굴릴 수 있었다.

다른 신입 사원들이 주식으로 10% 수익을 낸다면, 선물을 거래한 재준은 66% 수익을 단번에 올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 당시, 외국인들은 위험 해지 용도로만 선물을 사고팔았다. 기관은 외국인과 반대로 움직였다.

떨어지면 올라가고 올라가면 떨어지게.

그런 식으로 온종일 그래프를 만들어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증권사에 처음 보는 진풍경이었다.

재준은 그래프를 보며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바로 이거지.

투자대회에서 주식만 거래하라는 문구는 없었잖아.

증권법에 저촉되지만 않으면 모든 거래가 가능했다.

특히, 사내투자대회에는 수수료가 없었다.

이거야말로 초단타 매매하기 딱 좋은 조건이지.

수수료가 없다면 0.01%만 올라도 팔아버리면 되고 그것은 고스란히 이익이 된다.

재준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손을 탁탁 풀며 준비를 했고,

장이 시작되자마자,

환율 그래프와 선물 그래프를 동시에 봤다.

환율이 장 시작과 함께 하락하기 시작했다.

재준은 코스피 200를 매수했다.

1초.

2초.

3초.

4초.

5초.

매도.

***

장 마감 30분 전.

최진기는 모니터를 보며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식을 듣고 몰려온 동기들도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입을 다물었다.

1. 최진기 수익률 35.37% (보유종목 : 태얀산업 외 3종목)

2. 임재준 수익률 31.32% (보유종목 : 없음)

김혜림이 최진기를 보며 말했다.

“저……. 저기 임재준이 우리 동기 임재준 맞지요?”

“그러네요. 역시 뭔가 있었어요.”

“우리 헤어진 지 30분 지났어요. 그런데 30분 사이에 수익률이 31%?”

박승하와 이무열이 보탰다.

“30분 만에 수익률이 30%를 넘을 수 있나요?”

“도대체 말이 안 되는……. 상한가를 몇 개를 잡아야 저 수익률이 나오죠?”

“글쎄요. 그런 게 가능하긴 할까요?”

“아니면 전산 오류인가?”

박승하가 다시 나섰다.

“가능한 시나리오는 증거금으로 투자 자금을 늘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수익이 두 배로 늘어날 테고. 가능하긴 하겠지만….”

증거금은 주식에만 적용하는 대출이다.

“투자금을 2천만 원으로 만들었다 칩시다. 그래도…….”

“말이 안 되죠.”

김혜림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현물을 매입한 게 아닐까요?”

“현물?”

“금이라든가, 석유라든가.”

“그건 너무 나간 것 같은데요. 현물이라면 팔아야 이익 실현이 되는 건데. 재준 씨가 하루 만에 현물을 사고팔았다는 건 좀…….”

모두가 궁금한 나머지 얼굴을 맞대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상황을 설명하지 못했다.

김혜림이 두 손을 불끈 쥐고 말했다.

“우리 재준 씨 보러 가요.”

“그렇지만, 재준 씨 허락 없이 매매현장을 덮치는 건 좀 그런데…….”

그들은 잠시 주춤거렸다.

남의 투자 방식을 몰래 보는 건 별로 좋은 행동이 아니었다. 재준이 매매에 열중하고 있을 텐데 방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혜림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아, 몰라. 난 궁금한 건 못 참아요. 당장 가서 재준 씨한테 물어볼 거예요.”

김혜림은 앞장서서 걸어갔다.

동기들은 회사 측의 배려로 2층 객장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지만, 재준은 강호석 옆자리를 고집하며 투자대회에 임했다.

마지막 날은 강호석이 자리를 피해 서형길 실장에게 갔다.

4층에 도착한 네 명의 동기들은 조심스럽게 재준을 찾았다.

높은 칸막이들 위로 ‘펀드 5’라는 팻말이 보였고, 서로 속삭였다.

-저기가 재준 씨 자리 맞죠?

-네. 맞아요. 펀드 5. 강호석 팀장 자리예요.

그들은 조심조심 비밀스럽게 펀드 5에 다가갔다.

저기 앞에 임재준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재준의 매매 모습을 직접 본 동기들은 신선처럼 앉아 주식을 가지고 노는 재준의 모습에 넋이 나갔다.

헙.

모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들은 재준의 스캘핑을 처음 보았다.

매수와 매도를 이어가는 신의 경지.

손이 너무 빨랐다.

그들의 눈으로 목격한 재준의 수익률은,

현재 50%.

단 1시간 만에 최진기의 수익률을 따라잡아 버렸다.

최진기의 수익률은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나 누구랑 대결 한 거니?

***

[현재증권 투자대회 우승 임재준]

사내 잡지의 표지를 장식한 임재준의 스마트한 모습을 보며 임병달 회장의 입에는 미소가 걸리는가 싶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허, 그것참.

허허허허.

음, 이걸 어쩐다.

허허허허.

“진짜 1등을 해버렸네. 허, 거참.”

“그것도 끝나기 1시간 만에 해치웠습니다.”

정 실장이 임병달의 말에 코멘트를 달았다.

“그러게, 남들은 한 달 동안 머리 싸매고 한 일을 고작 1시간 만에 끝냈어, 허, 거참.”

“이제 도련님이 뭘 하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게…… 허, 거참.”

임병달은 말끝마다 ‘허, 거참.’이 저절로 붙어서 나왔다.

믿기 힘들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결과 앞에서 나오는 탄식.

이때,

벌컥.

꾸벅.

재준이 회장실로 대뜸 들어와 고개를 숙였다.

“문 앞에 비서 없나?”

“기다리고 계신다고 그냥 통과시켜주던데요.”

“그래, 내가 그리 말했던가?”

“네. 회장님이 말씀하신 걸 제가 비서에게 전달했습니다.”

“그래! 내 정신머리 보게나. 허, 거참.”

재준은 짐짓 거만한 자세로 임병달을 향해 섰다.

“할아버지.”

“무슨 말인지 안다. 정 실장.”

“네. 6층에 연구실은 준비가 끝났습니다. 도련님과 팀원만 들어가면 바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는구나.”

“할아버지.”

“기다려라. 정 실장.”

“네. 연구실 운영비로 9,000억 배당 끝났습니다.”

“그렇다는구나.”

“그럼, 저는 이만.”

“재준아. 그냥 가면 어떡하냐? 앞으로 무얼 할 건지 말해야지. 아무리 네가 투자대회에서 1등을 했다고 해도 넌 아직 사회생활 1년도 안 된 신입 사원이야.”

재준은 의외라는 듯 임병달을 빤히 쳐다봤다.

“할아버지.”

“그래, 말해 보거라.”

“이미 프레젠테이션 시간에 말씀드렸는데요.”

“그 대한 그룹 인수 말하는 거냐?”

“네.”

“…….”

이번엔 임병달이 재준을 빤히 쳐다봤다.

“너 혼자서?”

“네.”

“재계 34위 대한 그룹을 너 혼자서 인수하겠다고?”

“네.”

“제정신인 거지?”

“그리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아요. 제가 싸움을 붙이는 거면 할 일이 많겠지만, 이미 둘이 신나게 치고받고 싸우고 있을 텐데요. 그것도 한 명이 죽을 때까지. 전 뒤에서 두 그룹의 약점을 찾아내서 마지막에 칼만 한 번 휘두르면 끝나요.”

임병달은 재준의 말을 들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게 느껴졌다.

“정 실장. 자네 생각은 어때?”

“저는…….”

정 실장은 그동안 재준이 해 온 일을 떠올려 보았다.

노경범과 강병구, 황선달, 최재철, 그리고 투자대회.

매번 먼저 나서지 않고 뒤에서 가만히 추이를 지켜보다 단 한 번 카운터펀치를 날렸다. 그럼 상대는 찍소리도 못하고 KO 당했다.

전형적인 아웃파이터.

“도련님을 믿어 보고 싶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도련님은 상대의 약점을 정확하게 찾아내십니다.”

“그렇단 말이지.”

“들으셨죠. 할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에 투자대회에서 입상한 입사 동기들을 연구실에 배치해 주세요. 그들이 절 도와서 그랜드월과 대한 그룹의 약점을 찾을 겁니다.”

“그래, 그건 네가 말 안 해도 이미 투자대회 시작부터 공지한 상황이니 처리가 될 거다.”

“네, 그럼 저는 이만.”

재준은 임병달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임병달은 씩씩한 재준의 뒷모습을 보며 길게 숨을 내뱉었다.

‘방금 저 말투. 상당히 친숙하면서 거슬려.’

***

6층.

경제정책연구실.

연구실로 발령받은 5명의 신입 사원이 가운데 원탁에 앉아있었다.

망연자실.

모두 원탁에 쌓여있는 엄청난 양의 자료에 눈을 떼지 못했다.

깊고 두껍게 쌓인 자료.

모두 그 자료를 넘겨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 듯 얼굴이 질려 있었다.

장애물을 넘기는커녕 그 높이에 짓눌려 주저앉아 버릴 기세였다.

재준이 포문을 열었다.

“자, 이게 우리 첫 번째 임무라고 합니다.”

미션 임파서블같이 보이긴 하네.

회계학을 전공한 최진기가 서류 하나를 들어서 좌르륵 흩어 보았다.

“재무제표입니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다 증권사에 입사한 이무열은 다른 서류를 집어 들었다.

“여기 증권거래법, 저축증대에 관한 법률, 기업사채동결령, 단기금융법, 수출업자신용보증법, 경제관련법에 관한 것도 있습니다.”

부동산으로 거부가 된 집안의 장남 박승하도 눈에 띄는 서류를 집어 들었다.

“등기부등본이네요.”

외국에서 대학은 나온 김혜림도,

“해외자료도 많아요.”

재준은 헤벌쭉 웃었다.

“정 실장님이 우리에게 내려주신 자료들입니다.”

“이걸로 뭘 어쩌라는 겁니까?”

“모두 그랜드월과 대한 그룹에 관한 겁니다. 여기 있는 자료를 분석해 그랜드월과 대한 그룹의 약점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린 서로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겠죠.”

“그렇긴 하죠. 회계에서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면 그에 맞는 법조항을 대입해야 하니까요.”

“맞습니다. 이제 여러분 네 명은 한 몸같이 움직여야 합니다.”

“네 명이요? 재준 씨는요?”

“저는 대외적인 활동을 맡았습니다.”

“연구실에서 대외적인 활동이 필요한가요?”

“그럼요. 얘기 못 들으셨어요? 여기 회장님 직속인데. 회장님이 못 오시게 누군가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

전부 말문이 막혔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제가 정 실장님을 옆에서 보좌하면서 밖의 상황을 여러분에게 전달해야 일하는 방향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긴 하지만.”

“좀 억울하신 분은 저랑 자리를 바꿔도 괜찮습니다. 하루 종일 정 실장님과 같이 다니실 분?”

‘그건 아니지’란 말이 모두의 얼굴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재준 씨보다 잘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네요.”

“그렇죠?”

“맞아, 재준 씨가 잘 어울려. 말도 잘하고, 눈치도 빠르고. 난 역시 그런 건 체질이 아니야.”

“나도 그래요.”

“두말하면 잔소리지.”

“It suits the place well.”

“자, 그럼 우리 성취란 열매를 따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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