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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28화 (28/477)

제28화 혹시 같은 업종이십니까(1)

임병달은 결정은 너의 몫이라는 듯 재준을 쳐다봤다.

“일단, 말씀하지 마세요. 때가 되면 제가 말하겠습니다.”

“그래. 들었지? 입조심해.”

말을 마친 임병달이 코트를 들고 나가며 말했다.

“나, 부도철강 채권단 회의에 갔다 올 테니. 재준아, 네 얘기는 나중에 집에서 하자.”

“네.”

근데 부도철강?

증권회사가 왜 채권단 회의에 가십니까?

“잠시만요, 할아버지.”

“왜 그러느냐?”

“부도철강에 우리도 대출해줬어요?”

너 말투가 또 왜 그러냐?

“주식 담보로 2,000억 대출해줬다.”

“네? 미…….”

‘미치셨어요’란 말이 나오다 말았다.

그래도 2,000억이면 아주 적게 대출해준 건 맞다.

부도철강이 5조 7천억 원 부채를 졌으니 채권단 회의에서도 할아버지의 입김은 크지 않을 것이다.

2,000억 대출해주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같이 관망만 하다 오실 텐데.

아니지, 그게 문제가 아니지. 2,000억이 날아가게 생겼잖아.

제이은행 1조, 사업은행 7,500억, 조화은행 5,000억, 외완은행 4,500억, 그 외 3조.

부도 그룹 사태로 공중에 날아간 돈이었다.

그 외 3조 안에 현재증권의 2,000억이 들어있던 거라고?

재준의 심각한 얼굴을 본 곽형택 부사장이 걱정스레 물었다.

“왜 그러느냐? 재준아. 뭐 잘못된 거라도 있는 거냐?”

재준은 머릿속에 빠르게 부도 그룹 사태가 스쳐 가며 곽형택 부사장을 빤히 쳐다봤다.

부동산.

부도 그룹이 가지고 있던 부동산.

“아저씨. 부동산 금융팀이시죠?”

‘아저씨?’

“너 제정신이 들어온 거냐?”

내가 왜 아저씨라고 불렀을까?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2,000억이 복구할 방법이 떠올랐다.

부도 그룹 장 회장은 대치동 땅에 아파트를 지어 졸지에 40억으로 2,000억을 벌어들이며 재벌이 되었다.

그 여세를 몰아 수서를 개발한다고 난리 치다 권력형 비리로 호되게 얻어맞고 감옥 갔다.

수서를 개발한다고 앞장선 장 회장인데…….

부도 그룹이 망하면서 내놓은 부동산은 수원 장지동, 강남구 개포동, 서수문 부도빌딩과 당진의 공장부지 정도였다.

모두 7,000억 정도 규모였다.

수서 근처 수서동이나 일원동에 땅이 없다?

재준은 증권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의아한 생각이 들었던 부분이었다.

어떻게 수서를 개발하겠다고 하면서 수서 근처에 가지고 있는 땅이 하나도 없을까?

없는 게 아니라 숨긴 게 아닐까?

지금까지 어딘가에서 잠을 자고 있거나 누군가 들고 튄 게 분명했다.

땅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장 회장인데…….

그렇다면 수서 비리 사건이 터지기 전, 아니면 그전에 어딘가로 빼돌렸을 가능성이 크다.

“아저씨, 수서지구 일대 땅 중에 부도 그룹이나 그 계열사, 협력업체 중에 땅을 구매했다가 판 땅을 찾아 주세요.”

“뭐? 그건 왜?”

“시간이 없어요. 빨리, 빨리.”

“이놈아, 설명해야 조사를 하지.”

이때, 서형길 실장이 조용히 다가와 속삭였다.

“이번에 재경기계 최복기 사장이랑 최재철 부사장 가압류 부동산 금융팀이 집행하셨죠.”

“그런데?”

“그게 5,000억 대출 건이란 것도 아시죠.”

“그래? 어설프게 듣긴 했지. 내가 이 나이에 가압류 한다고 뛰어다닌 건 아니니까.”

“그게, 재경기계 주식 주당 100만 원 판 건 아세요?”

“뭐? 어느 미친놈이 만 원짜리 주식을 100만 원에 사?”

“그거 도련님이 약 치고 받아오신 겁니다.”

“재준이가?”

“도련님이 안 되는 일도 되게 하시는 분입니다.”

“이런, 설마 팬 거야?”

“아니요. 부사장님. 제가 천천히 다시 얘기해 드릴게요.”

곽형택의 시선이 재준에게 붙어서 떨어질 줄 몰랐다.

재준은 이미 임병달과 대화 중이었다.

“할아버지, 부도철강 주식 준비해 주시고요. 오늘 채권단 회의에서 빠지세요.”

“뭐라는 거냐? 네놈이 미쳤구나?”

임병달이 버럭 화를 내거나 말거나 재준은 핸드폰을 들었다.

“천 실장님.”

-네.

“지금 배운학이란 역술인 수소문하세요. 되도록 오늘 만나고 싶습니다.”

-배운학이라면 알고 있습니다. 바로 출발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지.

이 시대에 재벌이라면 배운학을 모를 리가 없었다.

부도 그룹 장 회장의 참모였으니까.

부도 그룹 장 회장은 주변에 참모를 믿지 않고 역술인들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기로 유명했다.

정신이 나간 거지.

역술인을 제일 믿다니.

임병달은 재준을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뭘 어떻게 하려는 것이냐?”

임병달이 호통을 뒤로하고 재준은 곽형택 부사장을 다그쳤다.

“갔다 와서 말씀드릴게요. 아저씨, 뭐 하세요. 빨리 수서 주변 땅 알아봐 달라고요. 당장.”

“그거야. 1시간이면 알아볼 수 있지. 가만있어 봐.”

“그럼, 알아내는 대로 저에게 문자로 알려주세요. 저 그럼 가요. 아, 아저씨. 제가 주소 하나 보내드릴 테니 법무팀 좀 보내주시고요. 아마 2,000억짜리 계약이 될 거예요.”

2,000억?

2,000억이 뉘 집 개 이름이냐?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게.

재준이 사라진 회장실에는 찬바람이 휭 부는 것 같았다.

먼저 말을 꺼낸 건 임병달 회장이었다.

“서 실장, 지금 내가 채권단 회의에 안 가도 되는 거지?”

“그게…… 저는 그렇게 들었습니다.”

“거참, 재준이가 변했어요.”

“부사장님, 빨리 김 팀장에게 전화하세요. 부동산 알아봐야지요.”

“아, 그렇지.”

곽형택은 핸드폰을 꺼내 부동산 금융팀에 통화했다.

한 시간 만에 부동산 금융팀이 총동원되어 부도 그룹 협력업체가 수서 근처 지역 땅 수십만 평을 사들였다가 같은 날 수십 명에게 되판 정황을 잡았다.

이는 바로 재준에게 전달되었다.

***

문자 내용을 숙지한 재준은 차에서 내렸다.

“여깁니다. 도련님.”

100평 남짓의 한옥이 재준의 눈에 들어왔다.

일반 역술인들보다는 살림이 나아 보였지만 장 회장의 참모 역술인치고는 비교적 검소하게 사는 것 같았다.

이 자식이 연막을 치네.

어디다 잔뜩 빼돌렸겠지.

싹 털어먹어야겠는데.

사실 이번 일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었다.

속일 필요도 없고 협박도 필요 없다.

단 하나, 자신이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고 실토하게 만드는 것.

그길로 끝이다.

실토하는 순간…….

“계십니까?”

아무런 대답이 없자, 대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안에서 문이 열렸다.

한복을 잘 차려입은 남자 두 명이 문 양옆에 서 있는데 한복을 왜 입었는지 인상이 험악했다.

그들은 굵고 거칠지만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장군님께서 일을 보시지 않습니다. 다음에 오시지요.”

어깨 인사는 왜 하니?

조폭이니?

“점 보러 온 거 아닌데.”

“그래도 오늘은 손님을 맞이하지 않습니다.”

“그래? 그럼, 손님을 맞으러 나오라 해.”

“네?”

“어디 건방지게 장군 주제에 황상을 밖에 서 있게 만드는 거야?”

“네?”

“나 황제라고. 황제. 왕. 킹. 대빵, 몰라?”

“아, 대빵이요?”

“그래.”

이놈들 조폭 맞구나.

“대빵이라도 안 되는데.”

“너, 말이 짧아졌다. 관 하나 짜줄까?”

“어린놈이…….”

“그분 몸에 손가락이라도 대면 넌 죽어!”

천 실장, 눈에서 레이저 나오겠어요.

천 실장의 살기 가득한 목소리에 험악한 인상의 두 명 고개가 아래로 떨어졌다.

이쪽 세계 나름의 보는 눈이 있는지 천 실장을 보자 덩치 큰 쥐새끼가 되었다.

천 실장이 두 손을 맞잡고 우드득 소리를 내자 둘 중 하나가 뒤로 물러나며 방문 앞에서 나직이 말을 건넸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잠시 후, 방문이 열리고 청색의 한복을 걸치고 안경을 낀 40대 남자가 입을 열었다.

“누구십니까?”

“군왕도 몰라보는 걸 보니 현세에 세 들어 사는 게 퍽이나 즐거운가 보구나. 나 대원군일세.”

“누구시라고요?”

“농담이야. 대원군은 무슨. 장 회장 때문에 왔어.”

“그러시군요.”

배운학이란 예명을 쓰고 있다면 배운학이 대원군의 관상을 본 도사라는 정도는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모르는 눈치였다.

무식한 놈. 뻘쭘하게.

배운학의 미간에 미묘한 주름이 새겨지며, 고개를 짧게 숙였다.

재준은 손을 훠이훠이 저었다.

“인사는 됐고, 들어갑시다.”

재준의 거침없는 행동에 배운학은 잠시 망설이다 재준을 따라 들어갔다.

방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밖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뻑, 뻑.

비명조차 들리지 않게 처리한 천 실장의 솜씨였다.

재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거, 살살 다루라니까.”

탁자 앞에 앉아서 배운학이 모신다는 장군을 바라보자 배운학이 재준의 시선을 막으며 자리에 앉았다.

“군왕의 상을 가지고 태어나셨군요.”

“헛소리 집어치우고 장 회장은 언제 다녀갔지?”

반말?

다시 배운학의 미간이 찌그러졌다.

재준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 왜 이렇게 추워지지.”

배운학은 재준의 행동을 유심히 살핀 후 입을 열었다.

“한참 되었습니다. 이제 안 오실 겁니다.”

“배 씨, 지금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

“지금 뉴스에 연일 떠들어 대고 있잖아. 장 회장 지금 몹시 어려워. 우리가 도울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 봐야 않겠어?”

“도무지 무슨 말씀이신지…….”

“네가 쇠와 관련된 사업을 하라고 해서 이 지경이 된 거 아니야? 흙과 관련된 사업하라고 했더니 오일 사태 터져서 돈 벌어. 쇠 사업하라 했더니 엔화 올라 돈 벌어. 그럼 한 식경 쉬라고 했어야지. 네가 계속 부추기는 바람에 너무 많이 먹었잖아. 그럼 어떻게, 이제라도 도와줘야지.”

“…….”

부도 그룹 장 회장은 세무 공무원 말단 주사보에서 그룹의 회장이 된 입지적 인물이었다.

“너무 많이 먹은 거 몰랐어? 알았잖아. 점괘에 보면 다 나오는데.”

재준은 탁자에 놓인 쌀을 한 움큼 집어 쫙 뿌렸다.

“봐, 나왔잖아. 설마 안 보여?”

보일 리가 있나.

애초에 배운학은 그리 용한 역술인이 아니었는데.

부도 그룹 장 회장이 그저 믿었을 뿐이었다.

정말 용했다면 부도 그룹은 재계 순위 14위에서 멈추지도 않았을 테고, 외환위기 역시 피해갔을 것이다.

배운학은 재준을 매섭게 노려봤다.

“저는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좋아. 내 얘기 잘 들어. 나에게 부도철강 주식 2,000억이 있어.”

“…….”

“하지만 채권단이 이번에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야. 그놈들이 부도 그룹 계열사 주식을 싹 다 팔아 버릴 거라고. 하지만 장 회장이 부도 그룹 계열사 다 뺏겨도, 부도철강만 있으면 재기하는 거야 누워서 떡 먹기지. 알고 있지? 다시 일어나는 건 식은 죽 먹기 야냐? 뿌려 놓은 새싹들이 몇 개인데. 돈을 먹은 놈들이 이제 쑥쑥 자라면 뒤 안 봐주겠어? 그리고 장 회장이 워낙 시원시원하게 먹이니 그거 받아먹으려고 또 들러붙을 텐데. 안 그래?”

“…….”

“설마, 점괘 못 보는 거 아니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자꾸 당신한테서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짜가 아냐?”

“장군님을 모독하지 마십시오.”

“그래, 그럴 리가 없지. 그럼 자꾸 발뺌하지 말고 해결책을 내놔봐.”

“기다려 보시지요.”

배운학은 탁자 위에 있는 쌀알을 확 걷어내고 자신이 직접 쌀알을 확 뿌렸다.

뿌린다고 보이니?

괜히 핑계 대려고 수작은.

배운학은 쌀알을 유심히 살펴보며 재준을 쳐다봤다.

“아무래도…….”

“자곡동 5만 평.”

“거기는…….”

“광평동 20만 평.”

“…….”

“지금 내 손에 다 있는데 더 말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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