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26화 (26/477)

제26화 천억이면 수조는 벌 수 있습니다(3)

“아쉽습니다.”

“뭐가요?”

“제가 투자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돈을 좀 벌었을 것 같은데.”

“투자하면 되잖아요.”

내가 말하는 건 1,000억 이상을 말하는 거야.

살 수가 없어서 아쉽다고 말한 거고.

매물이 없거든.

생각과 달리 재준은 에둘러 뻔한 대답을 했다.

“기업끼리 피 터지게 싸울 텐데. 증권사 신입이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누가 알아요. 다윗과 골리앗처럼 재준 씨가 골리앗을 무찌를지.”

이건 또 뭔 뜬금없는 소리니?

천진난만한 혜림의 발상에 재준은 속으로 풋 하고 웃었다.

김혜림.

진지한 분위기를 단숨에 부드럽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본인은 잘 알지 못하겠지만.

착석해 있던 직원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고개를 숙이자, 재준과 혜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맨 뒤쪽에 착석하는 임병달 회장.

그리고, 뚜벅뚜벅. 강호석 팀장이 단상으로 걸어 나왔다.

“시작하려나 봐요.”

혜림의 말에 재준은 강호석을 바라봤다.

강단에 올라선 강호석의 눈빛은 평소의 그것이 아니었다.

오늘 그 잔소리 아저씨가 아니네.

강호석의 행동 하나하나에 절제된 자신감이 있었다.

탁, 탁.

강호석은 단상에서 서류를 탁탁 치며 주의를 환기했고, 장내의 분위기는 일순 고요해졌다.

직원들의 시선은 강호석에게 쏠렸다.

강호석은 임병달 회장을 향해 공손하게 인사했고 임병달 회장이 답으로 손을 들어 보였다.

강호석은 마이크를 툭툭 쳤다.

마이크 테스트.

하나,

둘,

셋.

오, 달라, 달라, 목소리 완전 달라.

강 선배,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보여 주시죠.

“오늘 보고드릴 내용은 앞에 나누어 드린 적대적 M&A에 대한 내용입니다. 어제 미레도홀딩스 기업을 미국계 회사인 그랜드월증권이 국내 세력과 연합하여 경영권을 빼앗겠다고 선전 포고를 했습니다. 이에 우리 현재증권도 적대적 M&A에 대한 투자 방향을 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음, 음.

여기저기서 불편한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강호석은 개의치 않고 딱딱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오늘은 일방적인 발표보다 서로 토론하는 자리가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저희도 적대적 M&A는 처음이라 향후 미래는 안갯속이니까요. 기탄없이 의견을 내주십시오.”

강호석의 토론 제의에 임병달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무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상황.

침묵.

흠. 흠.

임병달 회장이 불편한 듯 기침을 했다.

서로 눈치를 주고받더니 한 애널리스트가 마이크를 잡았다.

“미레도홀딩스는 대한 그룹 계열사 대부분을 지배하는 지주회사입니다. 미레도홀딩스 하나 인수해서 재계 34위인 대한 그룹을 통째로 먹을 수 있습니다. 그랜드월의 의도는 이게 핵심인데요. 대한 그룹이 현재 지배구조를 바꾸면 간단하게 해결되는 거 아닙니까?”

강호석은 즉시 대답했다.

“불가능합니다. 오늘부터 그랜드월이 공개매수에 들어갔습니다. 지금 와서 지분구조 이야기를 논의하기엔 시간이 없습니다, 그리고 대한 그룹의 지분은 2세들에게 전부 나누어진 상태입니다. 지금에 와서 지분구조를 바꾸는 것에 동의할 2세는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강호석이 단호한 어조에 참가자들은 웅성웅성했다.

방금 발표한 애널리스트가 임병달 회장을 힐끔 보고는 임병달 회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펀드 매니저 하나가 그 모습에 용기를 내서 질문했다.

“그렇다면 자사주 매입 싸움인데, 그랜드월과 대한 그룹 둘 다 엄청난 자금이 투입될 것으로 보입니다. 최소한 천억 이상이 예상됩니다.”

펀드 매니저의 말에 강호석이 말을 보탰다.

“맞습니다. 그러나 다른 그룹이나 은행, 증권사들도 끼어들 가능성도 큽니다. 그러면 투입되는 자금은 더 늘어나고 주가는 폭등할 겁니다. 저는 저희가 여기에 뛰어들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여러분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너무 뻔한 이야기를 너무 심각하게 하네.

그건 일반 투자자도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잖아.

그래도 그나마 오늘은 일방적인 발표가 아니라 좀 낫다.

강호석에 의해 토론장으로 변한 것이 재미는 있었다.

지금까지 참석했던 오전 프레젠테이션은 그저 그랬다.

재준에겐 시간 낭비였을 뿐 별 소득이 없었다.

중구난방, 짜깁기, 해외자료를 간신히 해석해서 발표하는 정도로만 진행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주제부터가 재준의 흥미를 끌었고 결론이 어떻게 나올지 무척 궁금했다.

물론 이 사건을 재준은 시작부터 끝을 훤히 알고 있었다.

이 싸움의 흥미로운 점은 미레도홀딩스와 그랜드월의 싸움에 뜬금없이 만선증권이 끼어든다는 것.

만선증권은 초반엔 그랜드월을 지지하며 주식을 매집하더니, 매집이 끝난 후엔 별안간 그 주식을 대한 그룹에 팔아넘긴다.

전형적인 박쥐.

만선증권은 미레도홀딩스의 주식을 9.67%나 매집했고, 평균 단가는 22,700원.

그리고 대한 그룹에 팔아먹은 가격은 42,000원.

만성증권은 두 달 만에 무려 340억이란 차익을 챙겼다.

둘 사이에 모종의 합의가 있었겠지만.

근데, 여기서 현재증권이 끼어들면 차익실현은 당연하겠지.

내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일반 투자자의 마인드고.

그래도 명색이 증권회사가 푼돈이나 벌려고 달려든다는 게 좀 그렇지 않나.

여기저기서 소란스러운 의견이 오고 가더니 누군가 외쳤다.

“늦기 전에 우리도 뛰어들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솔직히 눈먼 돈 아닙니까. 손실 날 염려가 거의 없습니다.”

거참, 아니라니까.

강호석은 답하는 대신이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헐, 거기서 인정하면 안 되지. 강 선배.

탕. 탕.

임병달 회장이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렸고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눈먼 돈이라면, 당장 매입해야지. 뻔히 결과를 아는데 왜 망설이는 거야.”

할아버지까지, 할아버지, 그건 아니에요.

대부분 직원이 임병달 회장의 말에 멈칫거렸다.

그중에 서형길 실장의 귀도 쫑긋 섰다.

찰나의 정적 후,

벌떼처럼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마지막엔 서형길 실장의 실언도 묻혀서 들리고.

-그럽시다.

-당장 매입합시다.

-이런 기회가 그리 많은 건 아니잖아요.

-이번에 5천억…… 흠흠.

회장님의 의견에 힘을 얻은 직원들이 여기저기서 동조했다.

눈먼 돈을 벌자.

모두의 생각이 거기에만 멈춰 있었다.

왜 그랜드월이 대한 그룹을 삼키려는지 묻지 않았고,

대한 그룹의 내부적 문제가 무엇인지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토로하지 않았으며,

산업 전반에 끼치는 영향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랜드월이 미국계 회사이며 대한 그룹은 국내 회사인데도, 국부유출에 대한 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오직, 적은 돈이라도 쉽게 벌자고 떠들어 댔다.

조금만 생각하면 크게 먹을 수 있는데.

역시, 경험이 없다는 건 무서운 일이었다.

1년 후 외환위기로 IMF에게 구걸한 것도 다 경험이 없어서였다.

재준이 손을 들었다.

내가 나서야겠네.

대한 그룹의 미래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의견을 낼 수밖에 없었다.

“반대합니다.”

-뭐?

참가자들의 시선이 뒤에 앉아있는 재준에게 향했다.

찬물을 끼얹은 발언에 그들은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서형길 실장, 한 사람만 빼고.

-누구야?

-쟤, 신입 아니야?

-여기가 어딘지 알고 끼어들어?

-어허, 그럴 수도 있지. 사람들 거참.

신입임을 확인한 직원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자신들의 위치와 비교하더니 삿대질까지 해댔다.

서형길 실장은 삿대질한 놈에게 인상을 팍팍 썼다.

-뭐 해, 당장 밖으로 내보내.

-신입 나가라고.

-뭘 안다고 떠들어?

-이런 모진 사람들. 나중에 뒷감당을 어찌하려고.

재준은 자신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도록 큰 소리로 또박또박 다시 말했다.

“반대합니다.”

-그래도?

재준의 당당한 모습이 모두 숨을 죽였다.

방금 찬성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진 서형길 실장은 ‘당연히, 반대지. 무조건 반대야’라고 재준을 맘속으로만 응원했다.

심지어 두 주먹을 쥐어 보이기까지 하면서.

그러나,

“야, 너 나와!”

서포터 하나가 재준의 팔을 잡아당기자 재준이 눈을 부라렸다.

흠칫, 놀라긴 했지만, 분위기에 편승한 서포터가 재준의 멱살을 잡으려는 순간,

강호석이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거기 멈춰. 저희는 지금 토론을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건설적인 의견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신입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강호석이 회의실 분위기를 바꾸려 했지만,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서형길은 사정없이 옆 사람의 멱살을 잡았다.

-들어보긴 뭘 들어 봅니까?

-당장 끌어내.

-지금 회장님 의견을 무시하는 거야?

-저놈 사수 누구야? 위로 다 집합해.

-네가 뭔데 집합이야?

-서 실장, 왜 그래?

도제 시스템의 폐단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신입이 손을 들고 발표를 한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겐 하극상이었고,

신입의 기강을 제대로 잡지 못한 건, 바로 사수의 탓.

신입이 잘못하면 밑에서부터 위까지 줄줄이 굴비처럼 엮어서 혼쭐나는 시스템이었다.

햐, 가관이네.

강호석은 다시 마이크에 대고 침착하게 말했다.

“여러분, 조용히 해주세요. 회장님 앞에서 이 무슨 행동입니까?”

회장님까지 팔았지만, 소란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끼어들어.

-빨리 신입 내보내.

-이번 신입은 교육이 없었다며.

-그러니까 선배를 우습게 보지.

-네가 우습게 보이니까, 그런 거 아냐?

-아까부터 왜 그래? 서 실장. 멱살 좀 놔?

이때,

탕. 탕. 탕.

얼굴이 화로 붉어진 임병달 회장이 바닥을 내리쳤고 회의장은 금세 조용해졌다.

“이런 한심한 놈들. 엘리트라는 놈들이 뭐 하는 짓이야?”

“…….”

“토론에 참여하는 직원을 누가 막으라고 했어. 신입은 직원 아니야? 저 신입은…….”

정 실장이 임병달 회장에게 귀에 대고 속삭였다.

“회장님 보는 눈이 많습니다.”

임병달 회장은 회의장을 돌아보며 삭히지 않는 분노를 드러냈다.

“지금부터 선배 들먹이며 신입 사원 굴리는 놈 있으면 나한테 직접 보고해. 다신 회사에 발붙이지 못하게 단단히 혼내줄 테니까.”

임병달은 회장은 재준을 무시하는 직원들의 태도에 순간 열이 뻗쳤다.

가뜩이나 교육이라는 명분 아래 신입을 못살게 굴고 있다는 보고를 듣고, 몰상식한 직원들의 태도에 혼쭐을 내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눈앞에서 재준이를 회의장 밖으로 내보내려 하다니. 임병달은 폭발했다.

‘이것들이 어디서 감히. 재준이에게.’

임병달 회장은 재준이 대견하기만 했다.

전문가들이 꽉 채운 회의장에서 손을 들어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모습을 보며 뭔가 있다고 직감했다.

저놈이 늙은 늑대 황선달과 늙은 여우 최재철을 구워삶아 먹은 놈인데, 이번에도 무슨 대범한 생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걱정도 없진 않았다.

‘설마 이번에도 협박을 무기로 사용하진 않겠지.’

직원들에게 엄포를 놓은 임병달 회장은 재준을 바라보며 미소를 띠었다.

“신입 사원. 왜 반대하는지 말해 봐.”

재준은 임병달을 향해 작게 고개를 숙였다.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데 사람들은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래, 정말 평범한 이야기면, 신입 넌 죽는다.

재준은 사람들 반응을 보며 계속 말했다.

“적대적 M&A의 수익은 2배 정도 됩니다. 증권사로서는 엄청난 수익이죠. 천억을 투자하면 적어도 천억은 벌 수 있으니까요.”

정말 2배? 아니면?

직원들의 표정이 아직은 삐딱했다.

“그런데 문제는 기껏 해봐야 몇 억 매수에 그칠 겁니다. 그 이유는 시장엔 온통 미레도홀딩스 주식을 사려고 기다리는 돈들이 널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미리 천억을 준비했다가 M&A가 끝나고 난 후 미레도홀딩스를 인수하는 게 낫습니다.”

-뭔 소리야?

-인수를 한다고? 미레도홀딩스를?

좌중의 눈이 이채롭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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