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21화 (21/477)

제21화 계산은 똑바로 하셔야죠(1)

“내 말 알아들었을 텐데요.”

“그러면?”

“‘그러면’이라니요? 그리고 조용히 집에 가시면 되지요. 돈은 잃어도 건강은 잃으면 큰일 납니다. 나이도 많으신데.”

“이러고 무사할 것…….”

“그러니까, 총리랑 맞짱 뜰 수 있는 대통령 데려오라니까? 그리고 괜히 사람 사서 내 등에 칼 꽂는 그런 짓은 하지 맙시다. 뭐, 이 바닥에도 이미 소문 다 나서 나서는 놈도 없겠지만. 실패하면 진짜 영감님 목 날아가요. 알죠? 스윽.”

현슬이란 젊은 작가가 여러 군데 통화를 마치고 황선달 옆으로 와서 속삭였다.

“회장님, 명동 사무실 점거된 건 사실인 거 같습니다.”

“그리고.”

“관련 장부 다 가져갔답니다.”

“그리고.”

“저 앞에 있는 놈. 현재증권 임병달 회장의 손자 임재준이라 합니다. 증권가에서 개망나니라고 소문이 자자하답니다.”

“그리고.”

“일단 자리를 피하시는 게…….”

황선달은 현슬의 말을 다 듣지 않고 재준에게로 걸어갔다.

“어떻게 나에 대해서 이렇게 잘 알고 있는 거지?”

“잘 알면 안 되나요?”

“명동 사무실까지 안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군.”

“아, 명동 사무실. 그거, 책에 나와 있어요. 전부 다 책에.”

이건 맞는 말이다.

증권의 역사란 책에 정확한 주소는 나와 있지 않았지만, 황선달을 만나려고 증권사 직원이 명동 입구에 있는 중앙투자금융 건물로 찾아갔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중앙투자금융이란 건물을 알려주면 경찰이 황성달의 사무실을 찾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황선달은 재준의 말에 허무하게 웃으며 마지막 질문을 했다.

“이봐, 내가 죽는 날까지 알고 있나?”

안 죽는데.

당신, 2022년까지 살아있어.

“당연히 압니다.”

“그런가…… 그럼 죽기 전에 우리가 볼일이 있나?”

“그럼요. 이 좁은 대한민국에서 설마 지나가다 만날 일이 없겠습니까.”

재준을 노려보던 황선달이 현슬에게 손을 내밀었다.

현슬은 황선달의 손에 핸드폰을 쥐여 줬다.

익숙한 듯 변호사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

“주식 넘겨.”

-

“그냥 넘겨. 그쪽에서 하라는 대로 해줘.”

툭.

핸드폰을 다시 현슬에게 건넸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황선달의 눈은 재준에게서 한치도 떨어지지 않았다.

“이제 되었는가?”

“아, 다른 분들에게 소문 좀 내주시죠?”

“소문?”

“네, 현재증권 그리 만만한 곳 아니니까, 현재증권을 이용해서 뭘 하려면 빤스까지 털릴 각오 하라고.”

“그러지. 그 정도는 내가 해 줄 수 있네.”

“호탕하시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아,

재준이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이 뒤돌았다.

“까먹을 뻔했네.”

어디 있더라…….

재준이 양복의 주머니를 이곳저곳 뒤지더니 고개를 갸웃거리고 몸을 더듬으며 내려갔다.

아, 여기다 두었지.

양말에서 꼬깃꼬깃 접은 만 원짜리 열 장을 꺼내 퉤, 손에 침을 묻히며 세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그리고 현슬의 손에 탁 올려놓았다.

“이거, 개평. 택시 타고 가.”

현슬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뒤돌아서다 다시 돌아섰다.

“아, 미안. 생각해 보니, 우리도 기름값이 없네. 오만 원만 빌릴게.”

재준은 현슬의 손에 들린 십만 원을 전부 낚아채더니 오만 원을 세서 바지 주머니에 구겨 넣고 남은 오만 원을 현슬의 손에 탁 올렸다.

“미안하네. 자꾸 줬다 뺏는 것 같아서. 이제 정말. 끝.”

재준이 앞서 걸어가자 정 실장이 따랐다.

정 실장은 살짝 고개를 돌려 황선달을 돌아보았다.

황선달의 매서운 눈이 재준의 등에 꽂혔다.

현슬이 황선달에게 다가와 오만 원을 내밀었다.

“현슬아. 그 돈 금고에 보관해라.”

“네.”

“빌려준 오만 원 받는 날까지 잘 보관해 둬.”

“네.”

***

현재증권 회의실.

40명의 펀드 매니저와 30명의 애널리스트 모두 소집되었다.

전부 어리둥절하게 서로를 쳐다볼 뿐 무슨 일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이때, 서형길 실장이 손에 커다란 파일을 들고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쾅,

단상에 파일을 집어 던진 서형길 실장이 모두를 쳐다보았다.

“자, 다 모였지? 이게 뭐냐면, 우리 회사 매매 내역이야. 2년치 매매 내역.”

모두가 단상에 던져진 파일을 바라보았다.

매매 내역은 왜?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하루 전, 재준이 서형길에게 내린 지시였다.

-서형길 실장님, 여기, 이대로. 노경범과 강병구가 처리되는 순간 맘껏 칼춤 한번 추십시오. 작전 치는 직원은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우리 회사에는 필요 없습니다.

애널리스트보다 펀드 매니저를 내쫓는 것은 증권사에서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펀드 매니저를 보고 투자한 투자자들이 펀드 매니저가 이동하면 같이 이동할 수도 있었다.

심지어 VIP도 같이 움직일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서형길은 재준의 말이 곧 회장님의 말임을 직감했다.

‘이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 난 그 선봉에 선 선각자가 될 것이다.’

서형길 실장은 회사에 손실을 입히든 말든 단호하게 일을 처리하기로 맘을 먹었다.

“지금부터 내가 호명하는 회사, 매매에 참여했다면 뒤로 빠져. 기간은 오늘을 기점으로 2년 과거까지 역추적하고.”

서형길 실장은 입을 삐죽이 내밀고 주변을 한 바퀴 죽 돌아보았다.

전부 ‘왜 저럴까’하는 표정이기에 비장하게 입을 열었다.

“대정포장, 수서전기, 로버트전기, 재경기계. 우종타이어, 제풍, 칠산제작소, 보광약품. 이거 건드린 사람 뒤로.”

매매 내역을 어떻게 다 뒤지느냐고 펄쩍 뛰는 서형길에게 재준은 콕 찍어서 여덟 개 종목을 말해주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지금 자신의 앞에 놓인 2년치 매매 내역을 다 뒤졌다고 했다.

‘이걸 다 하나하나 살펴보셨다. 기획실 직원이 다 달려들어도 한 달은 넘게 걸릴 일을 단 하루 만에 해치우시다니.’

역시 도련님은 힘을 숨겨왔던 거였다.

직원들은 발표된 종목을 듣고 웅성거렸다.

-뭐야? 저거 작전주 아냐?

-보광약품은 44일 상한가였는데 건들지 않은 사람이 어딨어?

서로 수군거리는 중에 아무도 선뜻 뒤로 물러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 아무도 없다는 거지? 너희들, 내 말 잘 들어. 지금 노경범이랑 강병구 검찰에 넘길 거야. 이건 엄연한 회삿돈 횡령이거든. 뭐,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야. 꼭 돈을 훔쳐야만 횡령이 아니라 회삿돈으로 돈놀이한 것도 범죄야, 범죄. 어쨌든 검찰이 너희들의 매매 내역 털 거고. 그러다 발각되면, 정말 빼도 박도 못해. 미리 자수하면 내가 카바 쳐준다. 진짜, 어느 정도 쳐줄게. 빨리 자수해서 광명 찾자.”

직원들의 동공이 커졌다.

검찰? 증권감독원도 아니고 검찰?

-저기 들어가면 병신 돼서 나오는 곳 아냐?

-거긴 안기부고. 근데 검찰도 들어가면 병신은 안 되도 맞는 건 맞아.

-맞는 게 문제가 아니라 없던 죄도 씌운다고. 감방 가야 해.

서형길 실장은 움직이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직원들을 향해 소리 질렀다.

“야, 정말 이럴 거야? 나도 알아. 설마 자신이 매매한 게 작전을 도왔을 리가 없다. 뭐, 이런 거잖아. 나는 모르고 매매했다. 그지? 좋아. 그럼…… 매매한 적이 전혀 없다. 여기서 나가.”

애널리스트 중 절반이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애널리스트 일에 충실했다면 회사에서 매매할 일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투자했으면 모를까. 그건 잘못도 아니고.

펀드 매니저 중엔 한 사람도 없었다.

‘햐, 이거 봐라.’

“다음, 작전인 줄 몰랐다. 아니, 작전인 걸 알긴 했는데 천만 원 미만으로만 사 봤다. 나가.”

천만 원 정도는 지나가다 궁금해서 매매할 수도 있으니 검찰에서도 이 정도의 꼬투리는 잡지 않을 것이다.

다시 절반의 사람이 회의실을 나가려 발걸음을 뗐다.

하지만 서형길은 의심의 눈초리로 그들의 등에 대고 소리쳤다.

“잘 생각해. 나중에 뒤져서 걸리면 따따블로 처벌될 거야!”

나가다 말고 몇 명이 다시 들어왔다.

펀드 매니저 30명과 애널리스트 5명.

남아 있는 펀드 매니저 수를 보고 서형길은 기가 찼다.

어느 정도 있을 거라곤 생각했는데, 40명의 펀드 매니저 중에 30명이 남았다.

‘그래, 각자 사정이 있을 수 있지.’

그럼,

“VIP의 부탁으로 작전을 했다. 손들어 봐.”

서로 눈치만 보기만 할 뿐,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없다?

다행이다.

하긴 대부분의 VIP는 서형길 실장이 접촉한 정계의 거물인데, 거물이 유치하게 푼돈(?) 벌려고 작전을 할 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럼, 너희들은 뭐냐? 그렇지. 친구가 있구나. 좋아. 다른 증권사와 합작해서 작전했다. 손들어 봐.”

이번엔 절반 이상이 손을 들었다.

근데,

여기서부턴 봐줄 수 없다.

이 시대 작전에 들어가는 돈은 보통 20억에서 150억.

한 증권사에서 한 종목당 매수할 수 있는 금액은 30억에서 50억 사이였다.

증권사 펀드 매니저 둘 셋만 모여서 작당하면 작전 세력은 쉽게 만들어졌다.

세력이 만들어지면 잘 버무릴 재료 하나만 있으면 끝.

제일 많은 써먹는 재료는 주식 매집 후에 자사가 앞으로 대형 호재를 위해 주식을 매집하고 있다고 찌라시를 퍼뜨리는 것이다.

더 확실한 건,

매집 후에 뭔가 그럴듯한 전문용어를 집어넣어 대단한 걸 개발했다고 떠들어 대는 것.

-무공해 포장지 개발.

-고압 프라즈마 공법에 의한 자동차 매연저감장치 개발.

-오폐수 처리 장비 개발.

-신소재 핸드폰 배터리 개발.

-냉각 캔 개발.

-아스피린 대체 신물질 거의 완성 단계.

점점 인터넷이 빨라지면서 2010년 이후라면 클릭 몇 번으로 진위를 알 수 있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소재들이 실제로 작전에 쓰였다.

“야, 여기 대단한 놈들이 있었네. 나만 몰랐던 거야? 나만? 난 혹시나 너희들 밥은 굶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밖으로 죽어라 뛰어다니며 VIP 물어다 줬는데. 와, 나를 얼마나 비웃었을 거야? 내 앞에선 고맙다고 하고 뒤에선 이런 푼돈, 했을 거 아냐?”

하지만 서형길이 날뛰어도 펀드 매니저들은 고개를 뻣뻣이 들고 ‘왜 저럴까’하는 얼굴로 서형길을 쳐다봤다.

“아, 너희들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는 거구나.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어.”

서형길이 회의실 문을 열자 밖에 모여 있던 직원들이 화들짝 놀라 물러났다.

“야, 지금, 부사수와 RA 다 들어오라 그래.”

서형길의 말에 백여 명의 직원들이 들어와서 사수와 서형길의 눈치를 보며 서로 수군거렸다.

탕! 탕!

서형길이 탁자를 두 번치고 장엄하게 말했다.

“오늘부로 30명의 펀드 매니저와 5명의 애널리스트는 우리 회사를 떠난다.”

네?

모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는지 자신들의 사수와 서형길 실장을 번갈아 봤다.

“야, 거기, 너희들 다 나가. 가서 한 시간 안으로 지금까지 해 먹은 거 일목요연하게 적어서 가져와. 만약 검찰이 대조해서 정확하다 싶으면 회사 차원에서 힘을 써 줄 거야. 하지만 조금이라도 틀리면 우리도 그냥 방치한다. 알겠어? 다 나가. 한 시간이다. 늦으면 안 받아.”

펀드 매니저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건들거리며 회의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참, 어이가 없네. 작전, 안 하는 인간도 있냐?

-그러게. 남들은 다 1억씩 버는데 우리만 2천 벌면 억울하잖아.

-야, 때려치우고 다른 증권사 가자.

-그러게, 원, 더러워서.

그러나,

“조용히 하고 걸어가 X발 새끼야.”

때마침, 노경범과 강병구가 검찰에게 뒤통수를 맞으며 수갑을 찬 채 끌려가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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