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18화 (18/477)

제18화 작전은 작전으로 받아쳐야지(5)

으악!

“이게 뭐야? 회장님 계좌잖아. 왜 이게 여기 있는 거야?”

그렇다고 이렇게 놀랄 것까지야.

“선배 오시기 전 정 실장님이…… 선배가 보면 알 거라 했는데요.”

“뭐? 정 실장님이?”

빤히 자신을 쳐다보는 강호석을 향해 어깨만 들썩였다.

근데 이 양반은 왜 이리 안 와.

“야, 강호석.”

서형길 실장이 멋들어진 양복을 입고 느릿하게 걸어 들어왔다.

마치 양복에 뭐라도 묻으면 큰일 날 것 같은 모양새였다.

강호석이 모니터를 가리키며 서형길 실장을 봤다.

“실장님 작품입니까?”

“아, 그거, 나도 방금 정 실장님 지시받고 왔어.”

“이게 뭡니까?”

“회장님 지시야. 오늘 큰 건이 있는데 우리 회사에서 손이 제일 빠른 게 강호석이냐고 물으시길래, 그렇다고 대답했지.”

“그러니까, 왜 제가 필요한지 설명을 좀 해 주시라고요.”

“몰라, 나도. 암튼, 오늘 재경기계 하한가에 잡아 놓으면서 최대한 물량 확보하라고 하셨어.”

“재경기계?”

강호석은 재경기계의 그래프를 띄웠다.

길게 늘어진 매집의 흔적.

일 순간에 치솟은 주가.

“누군지 그림은 잘 그렸네요.”

“그렇지. 음. 나도 그렇다고 생각해.”

“아니, 제 말은 이거 작전 걸린 거라고요.”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알고 있었어요? 회장님이 저를 작전에 동원하시는 겁니까?”

“뭐라고 이 새끼야? 회장님이 너를 왜 작전에 동원해?”

“아니지요?”

“당연하지. 그걸 말이라고.”

“그럴 분이 아니시죠.”

“그럼.”

그래, 그럴 리가 없다.

강호석 자신을 가장 아끼는 사람은 바로 임병달 회장이었다.

VIP 몇 명 잡아 편하게 펀드를 관리해도 되는데 굳이 험한 길을 가고 있는 자신을 옆에서 항상 북돋워 주는 분이었다.

‘그럼, 나에게 이 일을 시킨 이유가 뭘까?’

강호석은 그래프를 유심히 살펴봤다.

확실했다. 이건 전형적인 작전에 걸린 그래프였다.

근데,

‘하한가에 잡아 놓으라고?’

재경기계는 6개월 동안 주식이 거의 12배나 올랐다.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친 티가 거의 없었다.

누가 봐도 뭔가 대단한 호재가 있는 듯한 그림.

이제 사람들이 슬슬, 아니, 전폭적인 관심을 가질 때였다.

작전 세력이 매수세를 보고 쏟아낼 시기이기도 하고.

그러나,

문제는 지금 동시호가에 물량이 쌓이질 않았다.

‘이 정도 물량이면 아직은 작전 세력이 털 때가 아닌데…….’

근데 왜?

하한가에 잡아 놓으란 소린 하한가에서 매수해서 줄어드는 매수 물량을 채우라는 것이었다.

즉, 내가 사고 내가 팔라는 것이다.

손해가 발생하는 매매였다.

매수 물량이 적으면 손실 폭이 크지만, 매수 물량이 쏟아지면…….

‘1,000억이면 충분하긴 하네.’

거기다 물량을 최대한 매집하라는 주문도 있었다.

‘꽤 힘든 일이야. 손목에 파스 붙여야겠는데.’

그래도 여전히 의문이네.

힘들거나 말거나, 그 전에 물량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없다.

의아해하는 강호석은 모니터를 보았고,

9시.

장이 막 시작되자, 기겁했다.

20만 주의 재경기계 주식이 쏟아지면서 하한가로 바로 직행했다.

강호석의 손이 저절로 마우스와 키보드로 향했다.

‘회장님이 이걸 말씀하신 거구나.’

강호석은 추이를 지켜보며 하한가에 매수하며 추가로 빠져나가는 물량을 체크했다.

‘이런 제길. 갑자기 이런 날벼락이.’

재준은 강호석 뒤에서 모니터를 봤다.

순식간에 하한가로 직행했지만, 최소한 2만 주 정도 매도됐다.

2만 주면 대략 24억.

재경기계에 돈 들어가는 소리가 들리네.

기분 째지겠는데.

최재철 부사장, 며칠만 그 기분 만끽하고 있어요.

서형길은 재준을 보고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제가 잘 처리하겠습니다. 가 보십시오.’

재준도 고개를 끄덕이고 방을 나와 경영정책연구실로 향했다.

***

노경범은 이글거리는 분노로 모니터를 바라봤다.

누군가 개장하자마자 20만 주를 쏟아부었다.

당연히 주가는 순식간에 하한가로 추락했다.

거래 기관을 살펴보니 ‘현재증권 울산지점’이었다.

‘X발놈들. 9월 1일을 외치더니 바로 던져 버리네. 이래서 초짜랑은 하는 게 아니라니까.’

울산지점이면 100% 재경기계가 확실했다.

‘X신들.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나.’

아무리 9월 1일을 마감으로 정했다지만, 이렇게 물량을 쏟아내 버리면 사람들은 왜 하한가가 되었는지 생각할 것이다.

이를 극복하는 건 오로지 노경범의 몫이었다.

‘아, 머리 아파.’

매수세를 보면서 천천히 발동을 걸어도 시원찮을 판에 찬물을, 아니 얼음을 들이부었다.

‘이제 뉴스만 남았나. 이게 먹혀야 하는데.’

9시 30분.

“소식지입니다.”

태풍인쇄소에서 소식지 배달이 왔다.

사람들은 의무감으로 한 부씩 들고 표지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재경기계, 정부 요청으로 오폐수 처리 장비 개발.

사람들의 시선이 재경기계의 주가에 못 박혔다.

“뭐야? 오폐수 처리 장비 개발이었어?”

“재경기계 주가가 열두 배 뛴 이유가 이거였네.”

“지금이라도 물량 확보해야 하는데…….”

“주문 넣어.”

하한가에 매수세가 슬슬 몰리기 시작했지만 하한가 잔량이 줄어들 만하면 새로운 물량이 채워지면서 줄어들 기미가 없었다.

하한가에서 매수와 매도를 나타내는 숫자가 정신없이 바뀌었다.

노경범의 감이 말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 물량을 관리하고 있다. 저 정도 스캘핑이면 거의 강호석 수준인데.’

설마, 강호석?

빠르게 기관 물량을 살펴봤다.

하지만 오전에 이 정도 물량이 오고 간다고 해서 만 주 단위의 기존 기관 보유 물량이 바뀌지는 않았다.

미친,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럼 방법은 하나다.

자신도 물을 타야 한다.

노경범도 가물에 콩 나듯 드문드문 물량을 매수해 봤다.

촉을 건드려 보는 것이었다.

10주 매수. 체결.

10주 매수. 체결.

20주 매수. 체결.

매수하기가 무섭게 물량이 채워졌다.

‘조금이라도 빠지면 냉큼 채워진다?’

노경범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오늘부터 매도를 쳐야 하는데 본인이 오히려 매수하고 있으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러나 노경범이 쳐낸 작전만 십여 개가 넘었다.

나름 인내심 하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노경범이었다.

인내심을 갖고 계속 소량으로 찔끔찔끔 매수하며 잔여량을 확인했다.

그렇게 매수를 이어가던 중 노경범에게 찬물을 끼얹는 주문이 보였다.

노경범은 자세를 바로 하고 주문을 다시 보았다.

4만 주.

눈앞에서 4만 주가 체결되어 사라졌다.

대략 현금으로 따져봐도 50억에 가까운 돈이다.

누구지?

누가 4만 주나 되는 물량을 매수한 거지?

‘설마 다른 세력이 끼어든 건 아니겠지.’

눈앞의 상황에 노경범의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일순 주변의 소리가 차단되면서 자신의 두근거림만 들렸다.

가뜩이나 황선달의 전화를 받은 후 신경이 더 곤두서 있었는데, 노경범은 신경질적으로 마우스를 놨다.

재경기계가 다른 세력과 손잡을 확률을 계산해봤다.

‘희박해. 그건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짓이야. 최재철이 그렇게 멍청하진 않아.’

다른 세력과 손을 잡았다면 여기서 한차례 가격을 더 올려야 한다.

그렇다면 주가가 20만 원…… 오폐수 처리 장비가 아무리 전국에 깔린다고 해도 불가능한 금액이다.

기껏해야 1,000억도 안 되는 사업인데 주가가 1,000억을 웃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머릿속이 얽히고설킨 그는 수화기를 들어 강병구를 호출했고 강병구는 부리나케 달려왔다.

“방금 4만 주 어떻게 생각해.”

“공매인 것 같은데요.”

“공매…… 외국인? 추가 세력이 붙은 것 같진 않고?”

공매도.

강병구의 추측을 노경범이 확인해 봤다.

보유한 주식이 없어도 매도를 때릴 수 있는 게 공매도이다.

일단 매도하고 약정한 기간 안에 주식을 사서 채우면 된다.

주가가 하락하면 나중에 주식을 사서 채우는 사람은 돈을 벌지만, 주가가 오르면 손해다.

주가가 하락한다는 확신이 있다면 해볼 만하다.

공매도는 외국인이 주로 사용하는 기법이었다.

한쪽에서 공매도를 때리면 다른 한쪽에서 받아먹는 식으로, 손발이 잘 맞는 두 놈이 서로 손실을 보전해 주면 손해가 나도 소액이었다.

“애초에 시중에 풀린 물량이 30만 주도 안 됐잖아요.”

“그렇지?”

“신경 쓰지 마세요. 외국인 중에 어떤 놈이 떠보려는 걸 겁니다.”

“아이씨……. 명동 노친네 때문에 노이로제 걸리겠어. 왜 저런 놈들까지 설치는 거야.”

강병구는 담배를 하나 꺼내 노경범에게 주었다.

“담배 한 대 하세요.”

후.

그래, 괜히 신경 쓸 거 없다.

재료가 떴으니 얼빠진 어떤 놈이 혹시나 하는 맘에 매집했을 수도 있었다.

오히려 이 이상 주가가 빠지진 않을 거란 확증이 될 수 있었다.

강병구가 자리로 돌아가자 노경범은 모니터에 시선을 집중했다.

‘10억이 눈앞에 있다. 정신 차리자.’

노경범이 이번 작전을 성공하면 황선달에게 받을 성공 보수였다.

노경범은 다시 자잘한 물량을 매수하며 촉을 건드렸다.

주가가 여전히 하한가에서 멈춰 있고 물량도 변함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노경범의 눈에 밟히는 4만 주.

‘혹시 또 다른 호재가 있나?’

노경범은 자신의 머리에서 빙빙 돌고 있는 의심을 내몰기 위해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그렇게 시간은 흘러 그날 하루는 하한가로 마감했다.

117,800원.

최종 마감 주가였다.

***

서형길 실장은 하루 종일 강호석 곁에서 도시락이며 커피며 강호석이 원할 것 같은 것을 퍼다 날랐다.

장이 마감하자, 그제야 강호석이 허리를 쭉 폈다.

“재준아, 물 한잔만.”

“여기.”

재준인 줄 알고 물컵을 받아 든 강호석이 섬뜩한 얼굴의 서형길을 보자 눈살을 찌푸렸다.

“왜, 미남 후배가 아니라 놀랐어?”

“뭡니까? 재준이는 어디 갔어요?”

“내가 심부름 보냈어. 정 실장님한테.”

말을 하면서도 서형길은 강호석을 노려봤다.

‘이놈이 도련님한테 자꾸 재준이, 재준이 하네. 확, 산교육을 한번 시킬까?’

“정 실장님이 왜 재준이를 찾아요?”

“찾은 게 아니라 내가 네 상태를 보고하라고 보냈다고.”

“제 상태가 왜요?”

“잘해서, 잘해서 보낸 거야. 오늘 아주 잘했어.”

강호석은 서형길을 빤히 쳐다봤다.

“실장님. 이거 확실히 작전 아니죠.”

“아, 놔. 진짜. 회장님한테 데려가 줄까?”

“됐어요. 근데…….”

강호석은 모니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주가의 현황을 클릭하면 현재 주식을 다수 보유한 기관을 볼 수 있다.

“이거 보이세요?”

“뭐, 뭐?”

“여기. 매매 세력 보이시죠.”

서형길이 모니터 앞으로 고개를 숙였다.

“오늘 하루 매도, 매수가 현재증권밖에 없어요.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실장님 말대로 작전을 막는 거라면. 지금 작전 세력이 현재증권을 이용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회장님이 직접 나선 거 아니냐.”

“누군지 몰라요?”

“야, 그걸 어떻게 알아? 내가 시스템도 아닌데.”

재준이 서형길에게 절대 노경범을 발설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서형길도 그 정도는 이해했다.

어쨌든 강호석은 노경범과 동기이고 강호석이 노경범을 죽도록 싫어하지만 다른 한편 돈의 노예처럼 사는 걸 안쓰러워하기도 했다.

만약 작전 세력이 노경범이라고 밝히면 강호석 성격상 노경범을 찾아가 아구창을 양쪽으로 돌릴 것이다.

그러면 노경범은 작전을 중단하며 태세 전환을 할 것이고.

이건 단순한 투자였다고 우기면?

작전을 밝히지도 못하고 쫑난다.

“수고했어, 강호석.”

굵고 차분한 목소리가 강호석 방에 울렸다.

강호석과 서형길은 바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정 실장님.”

정 실장 뒤로 재준도 보였다.

“강 매니저, 궁금한 게 많은 거 알겠는데. 일단 마무리되면 다 같이 이야기하기로 하고 오늘 결과만 말해 봐.”

“네.”

누구 앞이라고 말을 거역할까.

실장이라는 직위를 달고 있지만 정 실장은 그야말로 임병달 회장과 동급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중을 기약하며 강호석이 말했다.

“오늘 매집은 3만 주에서 약간 많습니다. 하한가 방어는 지켰습니다. 그리고 일반인이 주로 매수에 뛰어들었고 기관이나 외국인도 거의 없던 것 같습니다. 다만, 중간에 4만 주가 한 번…….”

“아, 그건 신경 쓰지 마. 내가 한 거니까.”

정확히 도련님이 지시하신 상황이다.

작전을 방어하는 강호석이 매집에 소극적이라 중간에 끼어들어 4만 주를 매집하라고 지시했다.

정 실장도 그 부분이 의아했지만, 재준이 지시한 상황이라 의심 없이 수행했다.

오늘 매집한 물량만 7만 주.

80억의 자금이 소요되었다.

강호석이 매수, 매도를 혼자 해서 손해 본 금액이 1억에도 못 미치니 외로 치더라도 80억은 적은 돈이 아니었다.

특히 이제 올라갈 일 없는 재경기계 주식을 매집한다는 게 걱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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