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즉사기 들고 게임 속으로-184화 (184/189)

결전 (3)

마족 세력에 남아있는 원마는 몇이나 될까? 

디트로데미얀, 아카슐라, 메빌로스, 카고스, 옥시토데스, 그리고 기습 침공 때 에인델이 죽인 것으로 알고 있는 하위 서열의 원마 둘. 

확실히 죽었다고 알고 있는 건 일곱뿐이다. 

에인델이 홀로 올테로어에서 죽인 원마는 몇이나 되는지 알 수 없으니까. 

게다가 기존의 원마들만이 전부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원마에 버금갈 정도로 강하지만 아즈켈에 의해 쫓겨났던 고위 마족들도 있었으니까. 

그중 다시금 마족군에 합류한 놈들도 있을지는 모를 노릇이었다.

남아있는 원마급 전력을 어림잡아 열 명 정도로 가정하면, 단순히 나눴을 때 이곳에 있는 원마는 서넛 정도다. 

그리고 한 놈은 지금 확인했다. 

서열 9위의 원마인 파크큘리. 

권속인 마족들을 자폭시킬 수 있는 권능을 가진 놈이다. 

해당 마족이 가진 모든 마력과 생명력을 폭발시키는 능력이기에, 강한 마족일수록 그 파괴력은 엄청나다. 

방금만 해도 그저 그런 잡마족들을 폭발시켜 골렘을 파괴시켰다. 

'처리한다.' 

나는 다른 원마들은 주위에 없는지 탐색하고, 혼란한 전장 속으로 천천히 하강했다. 

파크큘리는 적어도 당장 보기에는 다른 원마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다만 주위에 많은 고위 마족들이 호위하듯 붙어있었다. 

"아셸." 

"예." 

"저기 보이는 저 목이 길쭉한 마족이 원마다. 지금부터 저놈을 죽일 거다." 

아셸이 조금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나 혼자 놈의 머리 위로 뛰어내려서 기습한다. 너는 내가 일격에 놈을 죽이지 못하거나, 다른 원마가 나타났을 경우에만 곧바로 합류해라." 

"알겠습니다." 

하늘도 비행 능력이 있는 마족들, 극소수의 와이번을 부리는 고위 기사와 마법사 전력, 언데드와 벌레들, 그리고 지상과 사방에서 날아드는 마력들까지 뒤섞여 싸우며 제법 어지러웠기에 싸우고 있었기에 나는 특별히 눈에 띄지 않았다. 

파크큘리도 딱히 나를 인지하고 있는 기색은 아니다. 

기습 일격으로 한 번에 끝낼 수 있으면 최고였다. 

놈의 주위에 내려서서, 혈술과 즉살로 단번에 끝낸다. 

만약 실패하면 아셸의 엄호를 받으며 물러나서, 다른 군주들이 합류할 때까지 시간만 끌면 된다. 

굳이 나 혼자서 놈을 상대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고도를 낮추며 경로에 있는 마족들을 아셸이 모조리 베어냈다. 

어느 정도 지상이 가까워지고, 나는 파크큘리의 머리 위로 홀로 뛰어내렸다.

후우우웅. 

중간쯤 다다랐을 때, 권속들을 조종하던 파크큘리가 날 인지한 듯 고개를 들어올렸다. 

놈의 주위에 있던 마족 중 하나가 손을 휘저어 이쪽으로 공격을 쏘아냈다. 

나는 아슬아슬한 순간까지 무방비하게 낙하하다가, 직격당하기 직전에 부동 장막을 펼처서 방어했다. 

이 거리면 충분하다. 

그리고 곧장 공간 도약을 연달아 펼쳤다. 

혈무가 사방으로 흩뿌리며 파크큘리와 마족들은 그대로 핏물에 노출되었다. 

파크큘리가 눈매를 좁힌 채 손을 뻗었다. 

나는 놈의 머리 위에서 작게 속삭였다. 

"죽어." 

파크큘리는 그대로 아무런 반격도 하지 못하고 죽었다. 

그리고 수십의 마족들도. 

내 능력이 이제 와서는 완전히 베일에 싸인 것도 아니었기에 마족 쪽에서도 어느 정도 추측하고 경계할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수월하게 성공했다.

내가 7군주인지를 미처 못 인지했는지, 아니면 알고도 방심한 건지, 어쨌든 죽였으니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떨어진 곳은 적진의 한복판이었기에 금세 마족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그러나 곧장 하늘에서 우수수 쏟아진 검기 세례에 모조리 터져나갔다. 

아셸이었다. 

그동안 공간 도약의 재사용 시간을 회복한 후, 가까이 내려온 띠용이의 등에 올라타려는 순간이었다. 

"······!" 

한편에서 거대한 냉기가 밀려오며 일대를 얼려버렸다. 

나는 부동 장막으로 방어했다. 

공격은 막았지만 얼음에 뒤덮여 갇혀버린 형세가 되어버렸다. 

아셸이 특질까지 사용한 채 검기를 날려 얼음을 부수려고 했다. 

하지만 균열만 일 뿐 완전히 박살나지 않았다. 

원마 서열 6위, 유케실. 

이만한 마력에 빙결계 능력이라면, 이건 놈의 능력이 분명했다.

'젠장.' 

제대로 기습에 당했다. 

존재감은 안 느껴졌는데, 언제 여기까지 접근한 거지? 

높은 서열의 원마이니만큼 이놈은 위험하다. 

아무리 좋은 장비를 갖추었어도 아셸 혼자서 절대로 감당할 수 없는 강자였다. 

물러나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나도 장막을 펼치고 있는 중이라 불가능했다. 

장막을 거두면 순식간에 냉기가 사방에서 침투할 것이다. 

위기의 순간, 다시금 날아든 아셀의 검기가 결국 얼음 감옥에 자그마한 틈을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부동 장막을 풀자마자 공간 도약을 펼쳤다. 

그리고 그 틈으로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데에 성공했다. 

"론 님!" 

간신히 띠용이의 등에 올라타서 냉기에 얼어붙은 왼팔을 내려다봤다. 

한순간 살짝만 스쳤을 뿐인데도 뼈까지 전부 얼어붙은 듯했다. 아예 감각이 없었다.

'팔 신경 쓸 때가 아니라······.' 

나는 재빨리 유케실의 위치부터 찾았다. 

거대한 마력이 다시금 유동하고 있었기에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저멀리서 냉기를 펄펄 풍기며 이쪽으로 다시금 공격을 날릴 준비를 하고 있는 놈을. 

"위로 올라가! 어서!" 

상성이 좋지 않다. 

부동 장막으로 막아도 주위가 다 얼어붙어서 갇혀버리니 성가시기 그지없는 능력이었다. 

이대로 있으면 셋이서 사이좋게 얼음 동상이 될 짝이었기에 재빨리 거리를 벌리려는데······. 

우우웅! 

돌연 어디선가 날아든 방패가 허공에 우뚝 멈춰서 오색빛의 파동을 퍼뜨렸다. 

나는 그 능력이 누구의 것인지 눈치채고, 반사적으로 검을 휘두르려는 아셸에게 소리쳤다.

"괜찮다! 놔둬라!" 

주위를 덮은 파동은 몰려드는 냉기를 완벽하게 차단했다. 

그 범위 바깥의 일대는 모조리 얼어붙었다. 

물론 거기에 휩쓸린 마족은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다. 

와이번 위에서 뛰어내린 1군주, 신퇴가 얼어붙은 대지 위에 내려서서 방패를 회수했다. 

"정비하게, 7군주." 

······기가 막힌 타이밍에 와줬군. 

나는 한숨을 돌리며 뒤따라 아셸과 함께 지면으로 내려섰다. 

오색빛 오라가 일렁거리는 갑주와 검, 방패로 무장한 신퇴가 저편에 유케실이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파크큘리는 방금 막 끝장냈다. 방금 공격은 유케실의 것이다." 

"알았네. 또 다른 원마는?"

"두 놈 외에 확인한 건 아직 없다." 

"그럼 신속하게 끝내도록 하지. 주위 엄호를 부탁하겠네." 

신퇴는 직접 유케실을 상대할 모양이었다. 

폭발적으로 도약한 신퇴가 순식간에 유케실을 향해서 날아가버렸다. 

"아셸, 주위의 마족들을 막아라." 

"알겠습니다." 

지상은 아셸에게 맡기고, 나는 띠용이를 타고 도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순간, 다른 한편에서의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하고 고개를 돌렸다.

기운의 근원지에서 마치 거대한 애벌레와 같은 형상이 주위의 마족들을 모조리 깔아뭉개고 꾸물꾸물 솟아오르고 있었다. 

무식하게 큰 크기였다. 

【Lv. 95】 

······저건 또 뭐야? 

저런 형태의 원마는 내 기억 속에 없다. 

내가 모르는 원마급 전력이다. 

애벌레는 유케실과 신퇴가 있는 방향을 향해서 머리를 틀더니, 쩍 벌어진 아가리에서 이질적인 기운의 마력을 뭉치기 시작했다. 

놈의 개입은 내가 막아야겠다 싶어 서두르는데, 그보다 지상에서 먼저 놈을 향해서 달려드는 인물이 있었다. 

"키핫! 어디 싸워볼까!" 

가로막는 마족들을 모조리 분쇄하며 적진 한가운데에 길을 만든 핏빛의 마력은, 다름이 아니라 광랑의 것이었다. 

훌쩍 솟아오른 광랑이 대검으로 애벌레의 머리를 후려쳤다. 

거한 폭발음과 함께 놈의 머리가 홱 돌아갔다. 

꽈릉! 

더해서 뇌후가 하늘에서 뇌격을 뿌려대고, 어느새 이쪽으로 온 망자왕도 마법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다른 군주들도 참전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저쪽에 셋이 붙었으면 굳이 나까지 합공할 필요는 없겠다. 

나는 애벌레 놈보다 더 위험하다고 판단한 유케실에게로 다시 신경을 돌렸다.

칼데릭 최장이자 최강의 군주로 불리는 신퇴와, 여섯 번째로 강한 원마 유케실의 전투. 

신퇴는 그 위명답게 강력했다. 

그의 전투는 공성 불가능한 철웅성과 같은 단단한 느낌이 있었다. 

영구동토와 다름없는 얼음 지옥 한복판에서, 휘몰아치는 혹한의 냉기에도 끄떡없이 반격하며 압박을 이어나간다. 

그에 유케실도 질렸다는 듯 더 공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신퇴의 접근을 막기에만 급급했다. 

'틈을 보이면 끝장낸다.' 

지금은 주위가 완전히 냉기의 결계로 뒤덮여 접근하기 힘들지만, 점점 기운이 걷히는 게 보였다. 

신퇴가 압박하고 있으니 이내 틈이 드러날 것이다. 

그때 접근해서 즉살로 끝낸다. 

쩌어엉! 

하지만 내가 개입할 것도 없이 결판은 한순간에 났다. 

신퇴가 주의를 완전히 분산시킨 틈을 타서, 푸른빛의 섬광이 유케실의 팔 한 짝을 날려버렸다. 천궁의 지원 저격이었다.

신퇴는 그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의 방패에서 뿜어져나온 파동이 유케실의 움직임을 묶고, 검날이 단숨에 머리를 날려버렸다. 

'끝났군.' 

유케실의 최후를 확인한 나는 다른 군주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애벌레는 기껏해야 중간급 원마 정도 되는 전력이었다. 

여러 군주들이 합공한 만큼 저쪽도 결판은 빠르게 났다. 

뇌기와 사이한 마력에 뒤덮여 몸을 비틀어대는 놈에게, 광랑이 마지막 일격을 날려 몸체를 세로로 갈라버렸다. 

이걸로 어느 정도 끝인가? 

원마 셋을 죽였다. 

아직까지도 잠잠한 걸 보면 마왕은 이곳에 없다고 봐도 되겠지. 

더 남아있는 원마가 없으면 전쟁은 확실히 칼데릭의 승리다. 

군주들이 전부 건재한 가운데, 이제 남은 건 피라미 정리뿐이다. 

그때였다.

"······!" 

소름 끼치는 기운과 함께, 저너머에서 거대한 녹광이 피어올랐다. 

흑해 여제가 위치한 벌레 군단 쪽이었다. 

*** 

모탑의 정상에 앉아있는 흑해 여제는 발밑의 아수라장을 바라보며 웃었다. 

"전부 쓸어버리렴, 아가들아. 이렇게 포식할 기회는 좀처럼 없으니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피에 미친 마족들이라도 물량 공세에는 답이 없었다. 

절대적인 양의 차이는 압도적인 힘의 격차가 없는 이상에야 극복할 수 없는 요소다. 

그리고 원마들은 그녀의 전장이 아니라 전부 다른 쪽에 있었다. 

흑해 여제는 굳이 그쪽으로 가세해 싸우지 않고 학살을 여유롭게 즐겼다. 

이곳에 마왕은 없다. 그렇다면 전쟁은 칼데릭의 싱거운 승리다.

흑해 여제는 그 사실에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다. 

그녀의 시선이 저멀리 7군주가 있는 방향으로 돌아갔다. 

그 눈빛에는 악의와 살의가 가득했다. 

전쟁이 훨씬 치열한 양상으로 흘러갔다면, 혼란한 틈을 타서 저 인간을 죽일 틈이 아예 없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뭐, 더 두고 보자고." 

이곳에서의 전투는 끝이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 흐름대로면 잔챙이들을 다 정리한 다음 세인테아 쪽의 상황을 파악하고 합류하겠지. 

아직 기회는 남아있었다. 

흑해 여제가 그런 즐거운 상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즐거워 보이는군." 

돌연 목소리가 들려왔다. 

흑해 여제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바로 옆에 한 마족이 서있었다. 

대체 언제? 기척을 조금도 인지하지 못했다. 마수의 본능이 온몸에 경종을 울려왔다.

모탑 아래의 전장을 내려다보던 마족이 손짓했다. 

그와 동시에 녹빛의 기운이 대지를 휩쓸며 수십만에 달하는 벌레들을 모조리 태워버렸다. 

그리고 그들이 서있는 걸 제외한 모든 모탑들까지. 

단 한순간이었다. 

굳어있던 흑해 여제는 이내 마족의 정체를 깨달았다. 

'아, 아즈켈.' 

죽는다. 

다급히 모탑에서 도약한 흑해 여제의 머리 위로 거대한 손이 나타났다. 

빠직. 

벌레 낚아채듯 잡힌 그녀의 몸이 맥없는 소리와 함께 으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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