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앤 (3)
한참을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 투성이었다.
정말 카앤의 아버지가, 벤이 그놈이라고? 빙의의 신비를 가지고, 미래에 세인테아 수도를 테러할 빌런이라고?
하지만 정황은 명백해 보였다.
아제타 마을을 지나치고, 라몬 대산맥에서 종적을 감췄다는 놈의 행적, 카앤의 성별과 나이, 그 모든 정황들이.
어째서 빙의체로 카앤을 선택했는지도 짐작하기는 쉬웠다.
벤은 몸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어 스스로 마력을 쌓지 못한다.
만약 그런 그가 우연히 카앤을 발견했고, 녀석의 천재적인 재능을 알아챘다면.
그러면 빙의체로서 카앤을 탐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무언가 오해가 있는 게 아닌가? 조사에 착오가 있었나? 아니면 그저 전부 단순한 우연이라거나?
그런 것들로 치부해버리고 넘기기에는 너무도 공교롭고 찝찝했다. 애써 혼란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정리했다.
'만약······.'
그가 정말 빙의체로서 카앤을 키운 거라면 상황은 무척이나 위험했다.
비록 피가 섞이지 않았더라도, 카앤에게 있어 벤은 진짜 아버지와 다름이 없다.
녀석에게 있어선 누구보다도 소중한 사람이다.
신비를 사용하기 위한 조건은 분명히 만족되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의 벤은 언제라도 카앤의 몸을 빼앗을 수 있는 상태인 게 아닌가?
물론, 벤이 정말로 놈이 맞다면 말이다.
'······확인해야 돼.'
결국 직접 확인하지 않는 이상 확실한 답이 나올 리는 없었다.
카앤을 벤에게서 떨어뜨리고 그의 진짜 정체를 확인해야만 했다.
낭비할 시간 없이 지금 당장. 나는 빙의의 신비의 능력이 정확히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지는지 전혀 모른다.
까딱 잘못했다간 카앤의, 계승자의 몸을 빼앗기고 만다. 여유를 부릴 수가 없는 일이다.
나는 마저 생각을 정리하고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마당으로 나가서 아직도 눈을 가지고 놀고 있는 카앤에게 말했다.
"카앤."
"응?"
"나가서 그거 좀 사다줄 수 있어? 롤피네 디저트 가게 초코 머핀 말이야."
"뭐? 거기 기다리는 줄 엄청 길잖아. 그리고 네가 나가지 왜 나한테 시켜?"
"미안. 나 갑자기 해야 할 일이 생겨서. 대신 오늘 저녁밥도 내가 하고 내일 장작도 다 팰게."
카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평소 내가 이런 심부름을 부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의욕 있는 기색으로 순순히 부탁을 들어주었다.
"흠, 그렇다면야 뭐. 초코 머핀이 그렇게 먹고 싶었냐? 하하. 기다리고 있어."
카앤이 내가 건네준 돈을 받고 곧장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벤은 그의 방에 있었다. 그가 있는 방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는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랜."
이쪽을 힐끗 쳐다본 벤이 태연하게 물었다.
덜컥.
방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 분위기가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는지, 벤이 책에서 눈을 떼고 다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할루멘타에서 당신이 얻었던 빙의의 신비."
그 말에 벤의 눈가가 미세하게 꿈틀한 걸 확실히 보었다. 눈빛에 담긴 감정은 당혹감과 놀라움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벤이 놈이 맞았다는 걸.
"역시 맞았나 보군."
이내 벤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벤이 책을 덮고서 테이블에 내려놨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알았지?"
일단 부정할 줄 알았으나, 의외로 순순히 사실을 인정해버리는 그였다.
"혹시 상대가 가진 신비를 꿰뚫어보는 능력이라도 있나, 7군주?"
"······!"
"아니, 그렇다 해도 마경에서 얻었다는 사실까지는 어떻게 안 건지. 그보다 이제 가면 놀이는 끝내기로 한 건가? 여러모로 당혹스럽군."
벤의 말들에 나도 당혹스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내 정체를 알고 있었다고? 언제부터?
벤이 내 얼굴을 보고 피식 웃었다.
"네가 7군주라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어떻게?"
"산맥에서 한 번 봤으니까. 폴리모프로는 내 눈을 속일 수 없거든. 물론 델이 용사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 능력은 마법은 아닌 것 같고, 아마도 성검의 능력이겠지?"
연달아 충격적인 말을 뱉어낸 벤이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용사와 칼데릭의 군주라니, 하하. 도대체 무슨 괴상한 조합인지. 하지만 너희들이 어떤 목적으로 카앤에게 접근한 건지까지는 나도 모른다. 가르쳐줄 수 있겠나?"
나는 금세 침착함을 되찾고 말했다.
"카앤으로 네 망가진 몸을 대체해서 복수를 이루고 싶었나? 세인테아에?"
"······내 뒤를 대체 어디까지 캐낸 거지? 참 무서운 정보력이로군."
벤이 혀를 내두르며 걸음을 옮겼다. 방 벽면에 걸려있는 검을 향해서였다.
스르릉.
벤이 검을 뽑아들고 나를 향해 겨누었다.
"그래서, 이제부터 어쩔 셈이냐. 날 죽일 건가?"
"그렇다면?"
"하나만 알려다오. 너와 용사의 목적이 무엇인지, 카앤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 건지."
나는 벤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대답해주었다.
"카앤은 이 세상을 구할 거다. 네 개인적인 원한 따위에 희생되어선 안 되는 아이다."
"······그런가? 과연."
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클클 웃음을 흘렸다.
"딸이 거창한 짐을 짊어졌군. 별로 달갑지는 않구나."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가 검을 치켜들었다.
***
가장 오래된 기억은, 마을사람들의 시체더미 속에 파묻혀 덜덜 떨고 있던 자신이다.
마을을 갑작스레 습격한 거대한 몬스터는 그 살의와 흉포함을 주민들에게 모조리 퍼붓고서 떠나버렸다.
'여기 생존자가 있습니다.'
'너, 이름은 뭐냐?'
'······시엘.'
시엘.
그것은 벤이 가졌던 본래 이름이다.
목숨을 건진 시엘은 정체도 모르는 이들에게 반강제로 끌려갔다.
'허, 타고난 재능이군. 남의 마력을 다룰 수 있다니.'
그들은 시엘에게 혹독한 훈련을 강요했다. 가축만도 못하게 구르며 시엔은 많은 것들을 배웠다.
검을 휘두르는 법, 마법을 펼치는 법, 그리고 그것들로 사람을 효과적으로 죽이는 법을.
세인테아 황실 소속의 암대, 황실의 가장 어두운 이면 중 하나.
황실의 사냥개가 된 시엘은 배워온 것들로 수많은 이들을 죽이고, 또한 수많은 죽을 위기를 넘겼다.
'절대로 발톱을 드러내지 마라, 시엘. 스스로 생각하기를 그만두지만 않으면 돼. 언젠간 우리에게도 인간으로 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올지 모르는 거니까.'
암대의 대장 유피아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암대의 누구보다도 충실한 사냥개였지만, 누구보다 대원들을 아끼는 리더이기도 했다.
버리는 말로 대원들을 사용하지 않고 항상 스스로가 가장 큰 위험을 감수했다.
시엘 또한 임무 중 유피아에게 몇 번이고 목숨의 빚을 졌다.
그렇기에 마음이 메말라가는 중에도 그녀에 대한 동경심 비슷한 감정만큼은 잃지 않았다.
'너희는 지금까지 잘해주었다. 하지만 목줄이 헐거워진 개들은 처리해야지.'
어느 날, 임무를 끝내고 복귀하던 중 나타난 창성이 암대를 급습했다.
힘의 격차는 거대했기에 대원들은 모두 몰살당했다.
유피아와, 평소 친하게 지냈던 대원들이 목숨을 던져가며 만들어준 틈으로 시엘만이 간신히 탈출할 수 있었다.
시엘이 살아온 세상에서 그들은 유일한 동료였다.
한데 전부 황실의 손에 가축만도 못하게 도살당했다.
'전부 죽여버리겠습니다, 대장. 내가 전부 다······.'
하지만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망가진 몸으로는 복수를 꿈꿀 수도 없다.
시엘은 도망자의 몸으로 대륙을 떠돌며 몸을 고칠 방법을 찾았다.
수소문 끝에 마경 할루멘타에 망가진 마력로를 고칠 수 있는 약초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근거 따윈 없는 허황된 소문이었으나, 시엘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목숨을 걸고 할루멘타로 향했다.
그리고 도착한 그 죽음의 땅에서 역시 약초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대신 한 동굴에서 우연히 다른 것을 찾았다.
'이건······.'
신비. 근원을 알 수 없는 이 세상의 가장 신비로운 힘.
시엘 또한 어렸을 적부터 가지고 있던 신비가 있었기에, 경계 없이 홀린 듯 문양에 손을 뻗었다.
그렇게 얻게 된 신비의 능력은 빙의였다.
종족이 같고, 자신에게 높은 친밀감을 품은 대상에게 영혼을 옮겨 육체를 차지할 수 있다.
이 능력이라면 망가진 몸을 고칠 수는 없어도, 새로운 몸을 얻는 건 가능했다.
시엘은 다시 대륙을 떠돌며 이번엔 빙의체를 찾기 시작했다.
복수를 가능케 할 새로운 몸을, 마력에 아주 높은 재능을 가진 어린아이를.
우연히 발길이 닿은 세인테아의 한 작은 마을에서 끔찍한 참상이 일어나있었다.
웬 미친 마법사가 주민들을 모조리 학살하고 시체들 한가운데서 웃고 있었다.
실력은 별 것 없었다. 시엘은 어렵지 않게 놈을 처리하고 생존자가 있나 폐허가 된 마을을 둘러봤다.
그리고 한 여자아이를 발견했다.
아이는 심각하게 다쳤으나 늦지 않게 발견되어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이름이 뭐냐.'
'이름······ 카앤.'
카앤은 충격으로 기억 상실에 걸린 듯했다.
자신의 이름 말고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어릴 적의 자신이 생각나 미약한 동질감을 느낀 시엘은 그녀를 당분간 보살펴주었다.
그러다 보니 곧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카앤이 가지고 있는 터무니없는 재능을.
'이 육체라면······!'
이 정도로 괴물 같은 재능이라면, 오성조차 뛰어넘는 경지에도 필시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시엘은 카앤을 빙의체로 정하고, 더 친밀한 관계가 되기 위해서 계속 돌봐주기로 했다.
그리고 모든 기억을 잃은 카앤은 아기새처럼 그를 곧잘 따랐다.
'아버지.'
'······네가 왜 네 아버지냐. 그렇게 부르지 마라.'
시엘이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았기에, 카앤은 언제인가부터 그를 아버지로 여겼다.
시엘은 그때마다 영문 모를 짜증과 죄악감을 느끼며 부정했지만, 그것도 곧 그만두었다.
그냥 내버려두면 되지, 왜 부정한단 말인가?
자신을 아버지로 여기고 따른다면 이대로 금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터인데.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시엘은 혹시 모를 황실의 추척을 완전히 차단하기 위해 산속 깊은 곳에서 생활을 이어갔다.
카앤은 처음 봤을 때보다 꽤 많이 자라서 소녀가 되었다.
마당에서 혼자 뛰어노는 카앤의 모습을 보며 시엘은 슬쩍 웃다가, 인상을 굳혔다.
그는 슬슬 조건이 완전히 충족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만 더.'
하지만 신비를 사용하지 않았다.
아직은 조금만 더 기다리자. 혹시나 너무 어린 육체에 영혼을 옮겨가면, 알지 못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
다시 몇 년이 흘렀다.
카앤은 대략 열 살 정도의 나이가 되었다.
시엘은 신비의 사용을 또 조금 더 미루기로 했다.
한 해, 또 한 해, 시간은 흘렀다.
그는 계속해서 이유를 만들었다. 하지만 스스로도 모르지 않았다. 전부 핑계에 불과하다는 걸.
'아버지는 무슨 색 꽃이 좋아?'
'또 뭐냐?'
'빨리 말해봐. 무슨 색 꽃이 좋냐니까?'
'뭐······ 붉은색.'
대충 대답해버린 시엘은 씨익 웃으며 오두막 밖으로 뛰쳐나가는 카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대체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란 말인가?
죽은 대원들을 떠올렸다. 마음속 복수심에 불을 지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
신비를 사용하자.
며칠이 지난 끝에 마음을 굳힌 시엘은 카앤을 찾았다.
아까부터 뒷마당에 쭈그려앉아 무언가를 하고 있던 카앤을 불렀다.
'카앤, 뭐 하고 있냐?'
'응? 아하하. 이리 와봐, 아버지.'
카앤이 꺄르르 웃으며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건 엉성하게 묶인 붉은 꽃다발이었다. 시엘은 그걸 보고 멈칫했다.
'선물이야, 아버지. 내가 며칠 전부터 열심히 모았어.'
붉은색 꽃, 이 일대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색의 꽃이다. 그걸 용케도 이만큼이나 모았다 싶었다.
시엘은 굳은 듯 서있다가, 꽃다발을 받아들고 아무 말도 없이 카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시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카앤은 거의 성년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다.
오두막에 갑작스레 카앤이 쓰러진 사람을 데리고 왔다.
그는 자신이 엘폰 아카데미의 교수라고 했다.
이어서 마족 계약자까지 오두막을 습격해오더니, 갑자기 와이번을 타고 칼데릭의 군주까지 나타났다.
'······저 사람은?'
시엘은 빙의의 신비 말고도 예전부터 다른 신비를 하나 더 가지고 있었다.
그건 바로 대상의 영혼을 가시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의 신비.
어쩐지 묘하게 육체와의 괴리가 느껴지는 7군주의 영혼은 신기했다.
하지만 시엘은 그런 7군주보다도 그와 함께 있던 여인에게 더 신경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저렇게 찬란한 영혼을 가진 인간은 살면서 멀찍이서 단 한 번밖에 본 적이 없었으니까.
여인의 정체는 다름이 아닌 용사인 게 분명해 보였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은 카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카앤을 데리고 바깥세상으로 나가면 안 되겠냐고까지 물어왔다.
그 물음에 후련함을 느끼는 자신의 마음을 시엘은 알 수가 없었다.
용사라면 적어도 카앤에게 해를 끼치기 위한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카앤에게 선택을 맡겼다. 카앤은 고민 끝에 그들을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육체를 찾으면 되는 거겠지.'
복수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지나온 시간 동안 그만큼이나 카앤 역시 소중해졌을 뿐이었다. 하나뿐인 딸이니까.
하지만, 다시 대륙을 떠돌기 시작하기 전에 잠깐은 보고 싶었다.
세상으로 나간 카앤이 어떻게 지내갈지, 어떤 이들과 어울리고 어떤 인간관계를 쌓아갈지.
아카데미에 들어간 카앤은 여러 친구들을 사귀었다.
쉬는 날이면 자주 친구들을 데리고 집으로 찾아오기도 했다.
시엘은 쭉 비어있던 마음 한편이 채워지는 걸 느꼈다.
이제 때가 되어 자신이 떠나버리더라도, 카앤이 더 이상 혼자서 쓸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서걱.
살을 베는 파육음이 울렸다.
검을 들어올린 벤은 그대로 자신의 목을 베어버리고,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붉은 피가 방바닥을 적셨다. 막으려면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막지 않았다. 그야, 놈은 카앤의 몸을 빼앗으려던 위험한 인물이었으니까.
어차피 가만히 둘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남아있는 의문들은 많았다. 그가 어째서 여태까지 카앤의 몸을 빼앗지 않은 건지.
왜 중요한 빙의체인 카앤을 자신의 손에서 떠나보냈는지.
그리고, 왜 게임에서 등장했던 놈의 모습은 카앤이 아니었던 건지.
그가 죽었으니 이제 그 의문들을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나는 의자로 다가가서 풀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벤의 시체를 내려다봤다.
다른 방법이 있었을까? 그의 자살을 막았어야 됐나?
모르겠다. 머릿속이 엉망이다.
하지만 어차피 이렇게 됐다면······.
어스름한 방 안에서, 나는 카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
"래애앤! 나 왔다!"
집으로 돌아온 카앤이 현관문을 요란스럽게 열었다.
왠지 모를 기이한 고요함이 내려앉은 집 안 분위기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곧 인상을 굳혔다.
'······피 냄새?'
카앤은 저벅저벅 벤의 방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방문을 열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봉투가 툭 떨어졌다.
"어······."
붉은 피로 물든 바닥. 그 위에 벤이 쓰러져있다.
의자에 앉아있던 랜이 입을 열었다.
"왔냐, 카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