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격 (3)
······다행이다.
아셸과 카앤, 리곤이 무사하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떠올린 생각이었다.
안도감 다음으로 느낀 감정은 분노였다.
눈이 4개 달린 마족. 원마들 중 저런 외관을 가진 건 한 놈뿐이었다.
놈은 아마 서열 8위의 원마인 옥시토데스일 것이다.
나는 아셸의 곁으로 순간이동했다. 그녀는 카앤을 감싸안은 채 쓰러져있었다.
카앤은 정신을 잃은 상태였는데 별달리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반면 아셸은 꽤 심각한 부상을 입은 듯했지만 다행히 목숨이 위태롭지는 않아 보였다.
"······론 님!"
아셸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다가 소리쳤다.
나는 옥시토데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부동 장막을 펼쳤다.
하지만 놈의 기습 공격이 장막에 막히기 전에, 뇌후가 먼저 뇌기를 쏘아내 막아주었다.
"어디 놀아보실까!"
이어서 광랑이 뛰어들었다. 옥시토데스는 굳은 표정으로 두 군주의 합공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미안하다, 아셸. 정말 고생 많았다."
"아닙······ 니다.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목에 피가 꼈는지 아셸은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쿨럭거렸다. 핏물이 바닥을 적셨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서 아셸과 카앤을 함께 안아들었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전투를 지켜보고 있는 참모장에게 다가가서 두 사람을 내렸다.
"싸울 동안 수하의 안전을 부탁한다, 참모장."
"예, 7군주님."
그리고 리곤. 리곤은 여전히 넋이 나간 사람처럼 주저앉아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녀석이 이쪽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7군주님."
"리곤. 다친 곳은 없느냐?"
"예. 하지만······ 저 때문에 친구가······."
친구?
뒤늦게 리곤의 앞에 흩어진 잿더미를 발견했다. 이건 옥시토데스의 능력의 흔적이다.
잠깐, 그러면 설마 레아가······?
"······일단 저쪽으로 물러서있거라. 나와 군주들이 놈을 처리할 거다."
리곤까지 전장에서 내보내고, 나는 옥시토데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전투 양상은 치열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옥시토데스는 광랑과 뇌후와 같은 95레벨의 원마였지만, 같은 레벨에서도 격차는 존재한다.
놈은 95레벨 중에도 상당히 상위권의 전투력을 지녔던 걸로 기억했다.
'그래봤자 3대1은 안 되겠지만.'
거대한 뇌기의 창들이 옥시토데스의 머리 위로 빗발쳤다.
놈이 회색빛의 기운을 넓게 퍼뜨려 뇌기를 모두 소멸시켰다.
동시에 광랑이 측면에서 놈의 몸을 반으로 쪼갤 듯 대검을 휘둘러왔다.
옥시토데스가 맨손으로 대검을 막아냈다. 하지만 한눈에 봐도 힘이 달리는 듯했다.
다시금 회색빛의 기운이 몰아쳐서 광랑을 뒤덮었지만, 광랑은 피하지도 않았다.
그녀의 전신에 휘둘린 핏빛의 마력이 기운의 침투를 차단했다.
"······하등한 벌레 놈들이!"
"벌레에? 더 지껄여봐라! 죽이기 전에 그 혀부터 뽑아버려야겠네!"
우위를 점하는 건 이쪽이긴 했지만 옥시토데스는 제법 잘 버티고 있었다.
전투를 길게 끌 필요는 없었다. 놈은 딱히 방어막을 펼치고 있지도 않았다.
나는 광랑과 뇌후과 몰아붙이는 동안 놈이 큰 빈틈을 드러내길 기다렸다.
그리고 눈에 띄는 틈이 드러난 순간, 혈술로 피안개를 두른 채 공간 도약을 펼쳤다. 놈의 바로 곁으로.
"······!"
옥시토데스가 흠칫하며 갑자기 나타난 나를 향해 능력을 쏘아냈다.
나는 부동 장막을 펼쳐 회색빛의 기운을 막은 다음, 곧장 다시 순간이동해서 거리를 벌렸다.
내 행동에 뇌후와 광랑도 잠시 공격을 멈추었다.
"옥시토데스. 무슨 목적으로 이 도시를 공격했나?"
이유아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나는 놈에게 물었다.
놈이 입꼬리를 올렸다.
"칼데릭의 7군주, 너는 벌레를 밟아죽이는 데에 일일이 이유를 붙이느냐?"
"······."
"아쉽게 됐구나. 꽤 쓸만한 종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을 끌다가 쓸데없는 놈들만 꼬였어."
제대로 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자아, 그럼 어디 끝까지 가보자. 일이 이렇게 됐으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너희를 전부 죽인 다음 귀환해야겠······."
"이제 됐다."
나는 몸을 돌렸다.
"그만 죽어라."
그리고 내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옥시토데스의 몸이 풀썩 허물어졌다.
피안개에 조금이라도 노출된 순간부터 놈은 살아있는 목숨이 아니었다.
"허, 뭐야? 죽인 거야?"
광랑이 김이 팍 빠진 표정으로 검을 거두었다.
뇌후나 참모장은 놀란 기색으로 놈의 시체를 바라봤다. 나는 발걸음을 옮겨 무너진 입구 쪽으로 다가갔다.
바깥으로 폐허가 된 도시가 보였다.
도시의 대기에 뿌연 혈무와 잿가루가 떠다니고 있었다.
마음이 착 가라앉은 것을 느끼며 그 광경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또 한 명의 원마를 처리했지만, 이 끔찍한 참변에서 건진 건 단지 그뿐이었다.
***
상황을 정리했다. 우선 아셸을 치료했다.
외상은 포션으로 완전히 치유하고, 내상도 어느 정도 회복시켰다.
몸을 회복한 그녀에게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을 들었다.
옥시토데스가 리곤에게 한 짓부터, 어떻게 레아가 죽었는지까지.
이야기를 들으니, 이번 일과 관련은 없지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리프와 리곤, 내가 그들 남매를 구하지 않았다면 리곤을 본래 살귀로 타락시켰을 마족.
그러고 보니 게임에서 살귀가 펼쳤던 능력은 옥시토데스와도 꽤 닮은 구석이 있었다.
어쩌면 게임에서 리곤에게 힘을 줬던 마족이 놈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것보다 레아가 죽었나.'
안타까운 일이었다. 조금만 더 빨랐다면 그녀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까.
후회해봐야 아무 의미는 없는 일이었다.
리곤도, 정신을 차린 카앤도 정신적인 충격이 큰 것처럼 보였다.
카앤은 아까부터 아무런 말도 없이 멍하니 허공만 보고 있었다.
"아셸, 리곤은 부탁한다. 리곤을 데리고 곧장 군주성으로 돌아가라."
일단 아셸과 리곤은 곧장 떠나보냈다.
광랑과 뇌후, 참모장도 일이 끝났으니 각자 갈 길을 떠났다.
헤리윈의 성과 도시는 대부분 파괴되어 상황 정리라는 말도 의미가 없어 보였다.
레아의 오빠인 시안은 살아있었다. 성의 위층에 있다가 간신히 목숨은 건진 모양이었다.
나는 넋이 나간 얼굴로 몇몇 기사와 가신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그에게 상황을 전했다.
"아, 아······."
레아의 죽음을 전해들은 시안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런 그 대신 가신들이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 또한 표정이 죽어있었다. 나는 곧장 떠나기로 했다.
여기서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한편에 굳은 듯 서서, 폐허가 된 도시를 바라보는 카앤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떠날 거다, 카앤. 나와 함께 이동하자."
나는 랜이 아니라 7군주로서도 그녀와는 안면이 있었다. 대답이 없는 카앤에게 다시 말했다.
"마족들이 라피드 시까지 습격했을 가능성도 있다. 어서 가자."
"······!"
게임 스토리에서의 마족들이 침공한 지역 중에는 라피드 시도 껴있었다.
내 말에 그제야 카앤에게서 반응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그녀의 아버지인 벤의 집이 있었으니까.
"어, 얼른 가요. 얼른······."
그렇게 카앤을 데리고 아카데미가 위치한 라피드 시로 이동했다. 띠용이를 가까운 숲에 내리고 도시를 향해서 이동했다.
그리고 도착한 도시는 예상했던 대로 아비규환이었다.
거리에 사람들의 시체가 널려있었고, 부상자들을 옮기는 병사들이 줄을 이루고 있었다.
······도대체 몇 명이나 죽었을까. 이번 습격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어나간 걸까.
창백하게 질린 얼굴이 된 카앤에게 나는 뭐라고 말하려다가 관두었다.
그녀의 아버지의 생사는 나도 알 수 없었다.
무슨 말을 건네든 무책임한 말이 될 것이었다.
카앤의 집을 찾아서 향하는 길에 용사를 마주쳤다.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용사의 얼굴에 안도감이 떠오르는 게 보였다.
이 도시를 습격한 마족들은 그녀가 전부 처리한 모양이었다.
"카앤!"
카앤이 다급히 그녀에게 달려갔다.
"아, 아버지는요? 델. 아버지는 어디에 있어요?"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카앤을 용사가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무사하시니 안심해라."
인파를 뚫고 이쪽으로 뒤늦게 다가오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벤이었다.
"카앤."
"······아버지!"
카앤이 벤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의 품에 안겨 결국 서러운 울음을 터뜨렸다.
나와 용사는 아무 말도 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녀석은 아직 어린애일 뿐이었다.
***
"수도를 포함해 총 여섯 지역이 공격받았다. 놈들의 목적은······."
"네 상태가 정확히 어떤지 가늠해보려는 게 가장 크겠지."
용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창밖을 바라봤다.
라피드 시는 용사가 일찍 도착해 타격이 적은 편이었다. 습격받은 지역들 중에는 그나마.
"황제는 죽었고, 세인테아는 개판이 되었고, 마왕의 부활은 머지 않았다."
"······."
"모든 게 미쳐돌아가고 있다, 용사.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지?"
그녀가 성동에 있는 사이, 황제가 대수림에서 어떤 일을 벌였는지는 전부 설명했다.
나는 이 세계에 떨어지고 꽤 오랜만에 암울하다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돌아가는 상황이 정말로 답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계승의 진전도는 여전히 없다.
용사는 조금 지친 표정으로 대답했다.
"7군주."
"말해라."
"성동에 있는 동안 성검에서 변화가 있었다. 계승의 조건이 두 가지가 충족되었어."
"······!"
그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계승 조건이 충족되었다고? 네 가지 중 두 가지가?
'아······!'
나는 곧바로 깨달았다. 그때, 마족 숭배자들의 본거지에서 카앤이 사용했던 성검의 힘.
그건 설마 카앤이 계승의 조건을 충족시켰기에, 순간적으로 성검의 힘과 연결됐었던 건가?
[소중한 이를 상실하는 슬픔을.]
[믿었던 이에게 배신당하는 절망을.]
[인간의 이기심에서 추악함을.]
[옳다 여겨온 정의에서 회의를 느껴야 할 것이다.]
당시의 상황을 생각하면, 카앤이 충족시킨 조건은 아마 3번째와 4번째일 것이다.
인간의 이기심에서 추악함을 느끼고, 자신의 정의에 회의를 느끼는 것. 그리고 그것들을 극복하는 것.
용사에게도 곧바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 7군주 그대의 말대로 충족된 조건은 그 두 가지다."
······결국 성검이 했던 말대로, 의미가 없지는 않았던 건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 나는 묘한 기분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그럼 이제 절반이 남은 셈인가."
"그렇군······."
용사가 말꼬리를 흐렸다. 그녀의 얼굴에 그늘이 진 것처럼 보였다.
나도 뭐라 더 말하지 않고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소중한 이를 상실하는 것. 그리고 믿었던 이에게 배신당한는 것.
이제 그 두 가지만 충족시키면 카앤은 성검을 계승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새삼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레아의 죽음으로는 부족했던 건가.'
카앤에게 있어 레아는 계승의 조건이 충족될 만큼 소중한 존재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두 사람은 고작 근래 한 달 정도 친하게 지냈던 게 전부였으니까.
우정의 깊이가 시간에만 비례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짧은 시간이니······.
'······씨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스스로가 역겹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나도 나대로 필사적이었다.
이번 마족들의 습격은 내게 다시 한 번 확실히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곧 마왕이 부활한다. 그리고 성검을 계승하지 못하면 이 세계는 끝장이다.
도대체 어쩌라는 건가? 이제부터 뭘 해야 되는 건데?
혼란스럽게 헝크러지는 머릿속이 제왕의 혼으로 금세 냉정을 되찾는다.
나는 이런 내 정신 상태에 새삼 조소를 흘리고 말았다.
그래, 어떻게든 될 대로 되겠지.
이렇게 혼자 다급해봐야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일단은 할 수 있는 것들을 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당장 다른 계획이 없다면 카앤의 신변은 계속 내가 맡고 있겠다, 용사."
"······괜찮겠나?"
"당신은 해야 할 일들이 많을 테니까."
마족의 습격으로 혼돈이 찾아온 와중에 황제까지 죽었다.
용사는 가장 먼저 개판이 될 황실부터 어떻게든 안정시켜야 할 것이었다.
"아데사 쪽과 마찰이 생기면 그건 내가 어떻게든 중재할 수 있을 거다."
"······고맙다, 7군주. 그대에겐 매번 짐만 맡기는군."
아카데미 생활도 다 끝이고, 카앤은 당분간 계속 이곳에서 아버지와 생활하겠지.
나는 생각에 잠겨있다가 용사에게 말했다.
"그리고 날 다시 랜의 모습으로 바꿔다오. 카앤 곁에는 7군주보다 랜으로서 있는 게 더 편하겠지."
***
라피드 시는 반쯤 봉쇄되어서 피해를 복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동안 카앤이 벤의 집에서 나오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용사가 떠나고 사흘 째가 되는 날, 나는 집 주위만 떠돌며 그녀를 지켜보기를 관두기로 했다.
똑똑.
현관문을 두드리자 문을 열고 카앤이 나왔다.
그녀가 내 모습을 보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랜?"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안녕, 카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