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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사기 들고 게임 속으로-168화 (168/189)

아데사 대수림 (7)

광랑을 뒤쫓아간 나는 전방에 보이기 시작한 거대한 나무를 응시했다. 

나무는 조금 과장해서 구름에 닿아있을 정도로 높고, 거대했으며, 신성한 힘을 두르고 있었다. 

'저게 세계수인가.' 

약간의 경이로움마저 느끼며 지면으로 내려섰다. 

띠용이는 바깥에 놔두고, 세계수의 입구를 찾아서 혼자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와 통로에는 경비병처럼 보이는 수인과 엘프들이 쓰러져있었는데, 광랑의 짓일 것이었다. 

'대체 뭔 속셈이야?' 

광랑의 형제인 이그렐의 영혼이 세계수의 핵 안에 흡수되어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렇기에 광랑이 여기에 온 목적이 세계수의 핵인 건 분명해 보였지만······.

나는 초감각을 끌어올리고 광랑의 기척을 쫓았다. 

경비병들이 쓰러진 통로를 따라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가니, 그 끝에는 거대한 공간이 존재했다. 

"······!" 

그리고 그 장소에서 나는 광랑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한눈에 봐도 세계수의 핵으로 보이는 주황빛 보석에 손을 뻗고 있었는데, 어째 금방이라도 깨뜨려버릴 기세였다. 

쩌적.

핵에 금이 가는 것을 보고 나는 다급히 입을 열었다. 

"멈춰라, 광랑." 

광랑이 하던 행동을 멈추고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광랑은 아무 말도 없이 눈으로 내가 왜 이곳에 쫓아왔는지 묻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 

"그건, 세계수의 핵인가?" 

광랑이 순순히 대답했다. 

"맞아. 세계수의 핵이다." 

"······어째서 그걸 파괴하려고 하는 거냐? 그랬다간 포그위그를 막을 가능성은 아예 사라진다." 

광랑이 웃음을 흘렸다.

"뭔 상관이야? 어차피 지금도 막지 못해서 대수림이 끝장나기 직전인데." 

"그렇다고 그걸 지금 파괴할 이유는 없어." 

"아니, 있지. 이대로 그 괴물 새끼가 세계수를 삼켜서 힘을 흡수하느니, 그냥 내가 먼저 파괴해버리려는 거다." 

"그래봐야 별 차이는 없다. 놈은 세계수의 핵뿐만 아니라 대수림 전체의 생명력을 흡수할 테니까." 

내가 계속 반박하자 광랑이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설마 그런 거였나? 

생각해보니, 광랑이 핵을 부수려는 진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형제인 이그렐 때문이다. 

그의 영혼이 핵째로 포그위그에게 삼켜지는 게 싫기에, 그 전에 자신의 손으로 직접 소멸시키려는 게 아닐까. 

"방금 말한 이유들은 핑계였군. 이그렐 때문인가?" 

그 말에 광랑의 눈가가 꿈틀했다.

"7군주, 나에 대해 아는 게 많네. 나는 너처럼 음험한 새끼가 정말 싫은데 말이야." 

"네 뒷조사를 한 적은 없다. 어쩌다 보니 알게 되었을 뿐이지." 

"할 말은 다 끝났나? 더 상관 말고 꺼져라." 

광랑이 어금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나는 그런 그녀를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지. 아데사의 명운은 아데사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을 텐데." 

쐐애액! 

정확히 내 머리를 노리고 날아든 대검이 부동 장막에 막혔다가 튕겨나갔다.

아무래도 광랑은 더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럼 우선 너부터 처죽여주마. 그러고 보니 예전에 한 번 싸우려다가 싱겁게 끝난 적이 있었지?" 

나는 고민에 잠겼다.

말로 해결을 보기는 그른 듯했다. 

하지만 이대로 광랑을 내버려두면 세계수의 핵은 파괴된다. 

그렇다고 내게 그녀를 제압할 능력이 있지도 않았다. 

광랑은 순수한 육체파이기에 죽이려면 죽일 수는 있었지만, 그것도 곤란한 건 마찬가지였다. 

콰아앙! 

나는 공간 도약을 펼쳐 광랑의 주먹을 피했다. 

광랑은 곧장 방향을 틀어 다시 달려들었다. 

나는 그녀의 공격을 막고 피하며 좀처럼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어떻게 하지.' 

광랑은 예전에 죽였던 폭왕보다도 강한 전사였다. 

적당히 시간을 끌기만 하는 식으로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그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잠깐만.' 

그러고 보니 그게 있었지. 근데 그게 과연 가능할까? 

염려가 들었지만, 달리 마땅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망설임은 짧았다. 

나는 이어진 광랑의 공격을 피해 세계수의 핵 앞으로 순간이동했다. 

그러자 광랑도 잠시 날뛰는 걸 멈추었다. 

"······야, 뭐 하자는 거냐?" 

나는 세계수의 핵을 한번 쳐다보고서 말했다. 

"포그위그에게 형제의 영혼이 먹히느니, 차라리 그 전에 먼저 소멸시킬 생각이었겠지. 그렇지 않나, 5군주?" 

"어이, 7군주······." 

"그렇다면 내가 잠깐 그의 힘을 빌려도 상관없겠지." 

나는 나무 줄기에 얽힌 세계수의 핵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

"힘을 빌려? 뭔 개소리냐?" 

광랑의 말은 무시한 채 세계수에 핵과 접촉했다. 

진혼 강림. 

이전에 아카데미의 공용 도서관에서 얻었던 새로운 신비. 

이 신비의 능력은 대상 영혼을 받아들임으로써, 짧은 시간 동안 그 생전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내가 세계수의 핵 안에 있는 이그렐의 영혼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대수림 최강의 전사였다는 그의 능력을 고스란히 빌려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진혼 강림.' 

곧장 신비를 사용하자, 세계수의 핵 안에 있던 한 영혼의 존재감이 거대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스으으.

이내 핵에서 흘러나온 아지렁이가 반투명한 형상을 이루었다. 

광랑과 무척 닮은 얼굴을 한 수인이 날 평온한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순간 할 말을 잃고 가만히 서있었다. 

"7군주! 뭘 하려는 거냐!" 

아무래도 광랑에게는 지금 내 눈앞의 이그렐의 영혼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저건 현실적인 형체가 아니라, 내 심상에서 나에게만 보이는 모습일 뿐이었으니. 

그럼에도 무언가를 느끼긴 했는지, 광랑이 다시금 내게 달려들었다. 

내가 세계수 핵으로 뭔 짓을 하려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는 광랑의 검을 부동 장막으로 막은 채, 이그렐의 영혼과 대화에 나섰다. 

진혼 강림을 사용하려면 대상 영혼의 허락이 필요했다. 

'이그렐. 당신이 한 번 지켰던 숲이 다시 멸망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부활한 포그위그가 세계수를 집어삼키고, 대수림의 생명력도 모조리 흡수할 겁니다.'

그는 여전히 날 물끄러미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시간이 없습니다. 내게 힘을 빌려주십시오. 놈은 대전쟁 때보다는 약해진 포그위그입니다. 당신의 힘까지 합친다면 어쩌면 놈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그때 이그렐의 영혼이 시선을 돌려, 장막을 검으로 두드리고 있는 광랑을 바라봤다. 

순간 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지어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사아아아! 

이그렐의 영혼이 더욱 선명해지며, 이내 내 몸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거대한 폭풍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육체가 뒤틀리고, 의식이 격동한다. 

힘이 넘쳐나다 못해 폭발할 것만 같은 가운데, 몸이 무언가로 변화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 순간, 이그렐과 동화하고 있었다.

쿠우웅! 

이윽고 동화가 끝나고, 나는 내 손을 내려다봤다. 

평소의 내 손이 아닌 근육질로 뒤덮인 단단한 손이었다. 

몸도 마찬가지였다. 

길쭉이 흘러내리는 앞머리 또한 붉게 변해있었다. 

나는 호흡을 한 번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뱉고, 고개를 앞으로 들었다. 

평소보다 조금 높아진 시야에 멍하니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광랑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그렐?" 

그녀가 넋을 놓고서 중얼거렸다. 

거울이 없기에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나는 현재 내 모습이 이그렐의 생전의 모습과 비슷해졌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런 식의 능력이었나.' 

뭐가 됐든 이그렐의 힘을 빌리는 데에 성공했다. 

이제 유지 시간이 끝나기 전에 어서 포그위그를 쓰러뜨려아 한다.

콰아앙! 

나는 온몸에 넘치는 힘을 억누르지 않고 발을 굴렀다. 

광랑은 내버려두고 통로를 내달려 세계수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놈이 있는 방향으로 질주했다. 

'빠르다.' 

전력을 낸 이그렐의 속도는 띠용이를 탄 것보다도 훨씬 빨랐다. 

이 정도로 극적인 육체 변화라면 본래 적응을 못해야 정상이겠지만, 내게는 별 문제가 없었다. 

지금의 나는 단순히 이그렐의 육체의 힘만을 얻은 게 아니라, 그의 의식에도 동화됐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거대한 힘을 어떻게 다루고 제어해야 할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순식간에 포그위그가 있는 곳까지 다다른 나는 멈추지 않고 놈을 향해서 돌진했다. 

수인과 엘프들의 공격에도 끈질기게 움직이려 하는 놈의 정면에 뛰어들어,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콰아아아앙! 

단순한 일격에 폭음이 터지며 포그위그의 몸체가 크게 울렁였다. 

놈이 다시 움직임을 멈췄다. 

지면에 착지하자 수인과 엘프들이 경악한 기색으로 내게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소리쳤다. 

"나는 7군주다! 세계수 핵에 잠들어있던 이그렐의 힘을 잠시 빌렸다! 이 힘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으니, 다들 마지막 합공을 준비해라!" 

이제 대충 5분 정도 남았나? 진혼 강림의 유지 시간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하고 있을 시간도 아까웠다. 

내 외침에 수인과 엘프들이 곧바로 공격을 준비했다. 

"놈이 멈춘 지금이다! 다들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내라!" 

그렇게 포그위그를 향한 최후의 합공이 시작되었다.

이게 실패하면 정말 끝이었지만, 나는 전혀 실패할 것 같지 않은 기분을 느꼈다. 

쿠우우우우! 

정령들이 포그위그의 약점을 일점사했다. 

이어서 수인들이 검기를 쏟아부었다. 

"7군주!" 

엘프 대족장이 소리쳤다. 

바람의 대정령이 내 몸을 감쌌다. 

다시금 놈의 약점이 움푹 파인 가운데, 마지막으로 내가 뛰어들었다. 

'한 번.' 

기회는 단 한 번. 일격에 끝내야 한다. 

나는 본능에 따라서, 이그렐의 영혼이 가르쳐주는 감각에 따라서 주먹을 뻗었다. 

이것은 이그렐의 기술이었다. 전신의 힘을 단 일점에 모아서 압축시키는 필살의 일격.

······콰아아아아앙! 

주먹이 내리꽂히고, 핏빛 기운이 폭발하며 포그위그의 몸체가 바다가 갈라지듯 쩍 갈라졌다. 

그리고 드디어 놈의 모습이 드러났다. 

덩어리 안쪽에 파묻혀있던 황제의 본체가. 몸에 힘이 쭉 빠져나갔지만, 나는 남은 힘을 쥐어짜내서 놈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런데······. 

그오오오오! 

최후의 발악인지, 사방으로 터진 포그위그의 덩어리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쏘아졌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파괴력으로. 그에 힘이 남은 엘프와 수인들이 날 보조하려고 했지만 그들로는 역부족이었다. 

안돼. 방어를 하면서 틈을 주면 놈이 순식간에 재생할 거다. 

목숨을 걸고라도 황제의 본체로 파고들어야 하나 망설임의 순간, 누군가 날아들어서 남은 덩어리들을 모조리 베어버렸다. 

광랑. 어느새 뒤따라온 그녀가 공격을 대신 막아준 것이었다.

'······됐다!' 

그렇게 나는 아무런 방해도 없이 황제의 본체로 파고들 수 있었다. 

그때 다시 한 번 주위의 덩어리가 뭉치며 또다시 나를 덮쳤다. 

나는 덩어리에 파묻힌 형세가 되었지만, 부동 장막으로 버티며 시간을 벌었다. 

'그만 발악해라, 황제.' 

어차피 네 본체도 코앞이다. 

나는 부동 장막 안에서 마지막 일격을 날릴 힘을 회복할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쿠드드득! 

앞을 가로막은 덩어리들을 통째로 뜯어내고, 

황제의 본체와 마주할 수 있었다. 

황제는 끔찍한 모습이었다.

피부는 시커멓고, 눈은 흰자로만 뒤덮여있었으며, 전신에는 마력석 같은 것이 박혀서 몸에 마법진을 그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유독 눈에 띄는 순백색의 보석이 있었는데, 나는 그걸 보고 눈매를 좁혔다. 이건 설마? 

"······인간." 

그때 황제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모습은 괴물처럼 변했어도, 아직 인간이었을 적의 이지는 남아있는 듯했다.

"나는 인간을······ 위해서······." 

"네 꿈은 정신 나간 꿈이었다. 그만 죽어라." 

나는 그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즉살을 발동했다. 

그리고 황제의 숨이 끊어짐과 동시에 주위의 덩어리가 요동치며 균열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이내 덩어리가 모두 사라지고, 황제의 시체와 함께 나는 지면으로 떨어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엘프와 수인들이 모두 멍하니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와아아아아······! 

그리고 함성이 울려퍼졌다. 

끝내 포그위그를 막아내고 대수림을 지킨 것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뱉고 옆에 있는 황제의 시체를 쳐다봤다. 

아까 봐두었던 순백색 보석을 찾고, 그것을 챙겨들었다. 

어쨌든, 이걸로 전부 끝난 건가? 

유지 시간이 거의 끝나서 이그렐의 힘도 점점 빠져나가고 있었다. 

뻐근한 몸을 힘겹게 일으키려는데, 누군가가 달려들었다. 

콰앙! 

얼굴로 날아든 주먹을 막은 나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뭐 하는 거냐, 광랑?"

날 갑자기 공격한 인물은 광랑이었다. 

어딘가 한껏 흥분한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가, 다시금 달려들었다. 

"놀아보자고! 이그레에에에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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