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즉사기 들고 게임 속으로-167화 (167/189)

아데사 대수림 (6)

대포알처럼 포그위그의 파편이 쏟아졌다. 수인들과 파편들이 허공에서 뒤섞였다. 

그때 대족장이 무기를 휘둘렀다. 

그의 무기는 언월도처럼 생긴 것이었는데, 거대한 검기가 수인들을 덮치는 파편들을 절반 이상 베어버렸다. 

나머지 파편들에 휩쓸린 수인들은 각자의 무기를 휘둘러 방어했다. 

'이런.'

나는 공간 도약을 펼쳤다. 

재수없게 거대한 파편 덩어리에 직격당할 위기에 처한 수인에게 접근해서 부동 장막으로 막아주었다. 

"······고맙소!"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온 수인은 살았다는 얼굴로 그렇게 외치면서 지면으로 떨어졌다. 

곧장 다시 띠용이의 등 위로 돌아온 나는 포그위그에게서 멀찍이 거리를 두고 물러섰다. 

잠시 소강 상태가 되고, 지면에 내려선 수인들이 부상자가 없는지부터 확인했다. 

크게 다친 이는 없는 듯했다. 

'또 재생했군.' 

나는 포그위그의 약점으로 시선을 돌렸다. 합공으로 타격을 입힌 부위는 예상대로 순식간에 복구되었다. 

"칫. 저 괴물 새끼, 예전에도 이런 능력이 있었었나?"

광랑이 팔에 옮겨붙은 검은 불꽃을 털어내는 모습이 보였다. 

포그위그의 몸체에는 처음 봤을 때처럼 어느새 다시 검은 아지랑이가 일렁이고 있었는데, 느껴지는 기운으로 봐서는 닿았다간 군주급이 아닌 이상 데미지가 클 듯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수인들은 모두가 80레벨 이상의 최정예들이었으나, 이 정도로도 역시 부족한 건가? 

저렇게 아지랑이를 두른 상태가 되서야 이제 올라타거나 가까이 접근하기도 쉽지 않았다. 

콰아아앙! 

그때 광랑이 투기를 폭발시키며, 다시 한 번 혼자서 포그위그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녀는 아지랑이가 몸에 옮겨붙든 말든 개의치 않고 그야말로 미치광이처럼 검을 휘둘렀다. 

포그위그의 검은 기운과 광랑의 붉은 기운이 섞여, 검붉은 빛이 요란하게 번쩍였다. 

도중에 포그위그가 다시금 표면을 터뜨려서 파편을 날렸지만, 그것들도 전부 검으로 베거나 박치기로 터뜨려버리고는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광랑은 포그위그의 반격에 쉽게 당해주진 않았지만, 그건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산 하나는 능히 허물었을 만한 공격을 퍼부었음에도 포그위그는 끄떡도 없었다. 

'쓸데없이 힘낭비만 하는군.' 

어차피 혼자서는 절대로 저걸 뚫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광랑도 이내 공격을 멈추었다. 

지면에 내려선 광랑이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검을 꽂고서 주저앉아 호흡을 골랐다. 

대족장이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수인들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이 전력만으로는 어려울 듯하다. 힘을 비축했다가 엘프들이 도착하면 다시 합공해보도록 한다." 

아무래도 지금 상황에서는 그게 제일 현명한 선택인 듯했다. 

순수한 파괴력 면에서는 아마 엘프들이 다루는 정령의 힘이 더 강할 것이다.

그러니 엘프 대족장과 뇌후까지 전부 모였을 때, 다시 한 번에 공격을 쏟아부으면 된다. 

'······마침 제 말하니 왔군.' 

나는 일련의 기척들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이내 하늘 저편에서 나타난 점들이 심상치 않은 속도로 가까워졌다. 

뇌후와 엘프 부족이 도착한 것이었다. 

'바람의 정령의 힘인가.' 

후우웅! 

강풍을 일으키며 호크디를 탄 엘프들이 지면으로 내려섰다. 

레벨로 그중 엘프 대족장이 누구인지는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아데사의 엘프 대족장, 샨드라. 

주위에 몰아치는 정령의 기운을 거둔 그녀가 수인 대족장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이야기는 칼데릭의 2군주에게 모두 들었습니다. 당장 움직일 수 있는 정예들을 이끌고 왔습니다." 

"고맙소." 

"저게 그 포그위그입니까?" 

엘프 대족장이 심각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포그위그를 바라봤다. 

다른 엘프들도 하나같이 질린 기색이었다. 

엘프 대족장의 근처에 서있던 뇌후가 내게 다가와서 물었다. 

"이쪽이 더 늦었군요. 상황은 좀 어떻습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한 차례 공격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엘프들의 힘까지 합쳐야 한다." 

떠들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수인 대족장과 짧게 정보 공유를 마친 엘프 대족장은 곧바로 엘프들과 함께 전투를 준비했다.

"타격을 받아도 순식간에 회복하기에 여력을 남겨두는 건 의미가 없소. 한 번의 공격에 전력을 다해야 할 거요." 

"알겠습니다." 

작전은 간단했다. 

이번엔 엘프들이 먼저 공격을 쏟아붓고, 그 다음에 수인들이 연계 공격한다. 

이 정도 전력이라면,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아케네." 

대족장이 바람의 대정령을 소환했다. 눈을 감고 있는 여신과 같은 형상이 그녀의 머리 위로 떠올랐다. 

그러자 주위에 돌풍이 일며 엘프들과 수인들이 하늘로 떠올랐다. 

포그위그를 둘러싼 채. 그 다음은 엘프들이 일제히 정령을 소환했다. 

불의 정령, 물의 정령, 천둥의 정령, 바람의 정령 등 갖가지 정령들이 포그위그 위의 허공에서 온갖 형상을 수놓았다.

엘프 대족장은 랜스의 형태를 띈 거대한 회오리를, 뇌후는 이전처럼 뇌기를 극한까지 압축시킨 뇌구를 만들었다. 

이번 한 번에 승부를 볼 생각인 듯, 수인 대족장이 말한 대로 힘을 아끼지 않고 전력을 끌어올린 모습이었다. 

······콰아아아아앙! 

그리고 일점으로 폭격이 쏟아졌다. 

일순간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눈이 멀 만한 섬광이 숲을 뒤덮었다. 폭

염이 터지고, 폭풍이 몰아치고, 뇌기가 번쩍인다. 

나는 집중해서 그 광경을 지켜봤다. 

이전 공격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포그위그의 약점이 움푹 파인 것이 보였다. 

"크아아아아!" 

귀가 얼얼한 폭음 사이로 수인들의 포효가 울려퍼졌다. 

그들은 엘프들의 공격이 끝나자마자 움푹 파인 부위로 낙하했다. 

약해질 대로 약해진 몸체를 다시 한 번 타격한 순간······.

드드드드! 

포그위그가 좀 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상처를 수복하기 시작했다. 

그에 파인 약점 부위 안에서 균열을 넓혀가던 수인들은, 사방에서 뒤덮어오는 덩어리에 파묻힐 위기에 처했다. 

"아······!" 

절반 이상의 수인들은 간발의 차로 빠져나왔지만, 일부는 빠져나오지 못했다. 

엘프 대족장이 바람 대정령의 힘으로 탈출하지 못한 이들을 구덩이에서 끌어냈다. 

하지만 몇몇은 끝내 빠져나오지 못하고 포그위그에게 먹혔다. 

대족장을 포함해서. 빠져나온 수인들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꿈틀거리는 포그위그를 쳐다봤다. 

"족장님!" 

푸확! 

그 순간 포그위그의 몸체 한 부분이 터지며, 수인 대족장이 빠져나왔다.

그의 손에는 탈출 못한 다른 수인이 들려있었다. 

"후우······." 

수인 대족장이 참담한 눈으로 포그위그를 돌아봤다. 

모두가 힘을 합친 합공도 놈은 끝내 버텼다. 

잠시나마 냈던 거대한 상처는 다른 덩어리로 매꿔져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 

그 순간, 포그위그가 또 다른 반응을 보였다. 

땅이 울릴 정도로 격하게 진동하더니, 다시금 거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놈이 이동하는 경로에 있던 수인과 엘프들은 피하지도 못하고 쓸려나갔다. 

"이런······!" 

엘프 대족장과 뇌후가 동시에 공격을 쏘아냈다. 

뇌기와 칼바람이 포그위그의 몸체를 넓게 타격했지만, 그걸로는 속도를 조금 늦춘 정도밖에 효과를 내지 못했다.

"놓쳐선 안 된다! 놈이 세계수로 향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모두가 제대로 회복할 틈도 없이 다급히 움직였다. 

그런 와중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던 나는, 띠용이를 타고 가장 먼저 포그위그를 앞질러갔다. 

"띠용아. 피해라." 

나는 녀석의 등에서 그대로 뛰어내려, 포그위그의 앞의 허공에서 부동 장막을 최대한 넓게 펼쳤다. 

설마 그대로 삼켜지진 않을까 불안이 없진 않았지만, 다행히 포그위그는 장막에 막혀서 그대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하지만 밀어붙이려는 물리력이 얼마나 강한지, 장막에 전해지는 충격은 심상치 않았다. 

'오래 못 버텨.' 

박살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계속 이러고 있으면 내가 숨이 막혀 죽을 것이다.

다행히 뒤따라온 엘프와 수인들이 공격을 쏟아붓자, 놈은 다시금 움직임을 멈추었다. 

"······몰골들이 말이 아니군." 

모두가 질린 얼굴로 포그위그를 응시했다. 

일단은 막았지만, 놈이 또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계속해서 막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력을 다한 합공도 통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제대로 먹고 쉬고 잘 틈도 없이, 사흘 밤낮은 처절한 전투가 이어졌다. 

포그위그는 계속해서 나아가려고 하고, 우리는 그걸 간신히 막는 것의 반복이었다. 

중간에 다른 부족들의 인원이 도착해서 전력이 보충되기도 했지만, 별 의미는 없었다. 

"이제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대로면 적어도 내일 중으로 놈이 세계수에 다다를 겁니다."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모두가 지칠 대로 지쳤지만, 포그위그를 막을 방법은 여전히 찾아내지 못했다. 

"······뭐라도 생각이 있소? 샨드라 대족장?" 

"없습니다. 그때처럼 세계수의 힘을 증폭시키는 것도 불가능하니······." 

사기는 꺼질 대로 꺼져서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놈의 압도적인 힘 앞에선 용맹함도, 목숨을 건 투지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며칠을 싸우며 깨달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어딘가 멍한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던 광랑이 실소를 흘렸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집중되었다. 

"왜들 그리 죽상인지. 어차피 대전쟁 때 진작 멸망했을 숲이 아니었나? 그걸 이그렐의 목숨으로 연명하고 있었던 것뿐이지." 

"이그넬······." 

"저 괴물은 무슨 수를 써도 못 막을 것 같으니, 이만 받아들이자고. 대수림의 긍지 높은 전사들이잖아? 여기서 전부 끝까지 싸우다가 죽어라."

그래, 어차피 마지막이면······. 

그렇게 중얼거린 광랑이 몸을 돌려 어딘가로 향했다. 세계수가 있는 방향이었다. 

"이그넬! 어딜 가는 거냐!" 

"족장님! 놈이 다시 움직이려고 합니다!" 

그때 포그위그가 진동했다. 

사라진 이그넬은 신경 쓸 틈도 없이 모두가 다시 놈을 막기 위해 공격을 쏟아부었다. 

'······뭘 하려는 거냐?'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든 나는 공격에 합세하지 않고, 사라진 광랑의 뒤를 쫓아갔다. 

***

"광랑! 네가 이곳에 왜······!" 

"꺼져라." 

광랑이 주먹을 휘저었다. 

세계수의 입구를 지키는 전사들은 그녀의 주먹에 가볍게 튕겨나가서 기절했다. 

전사들을 모두 때려눕히고 세계수의 안으로 들어온 광랑은, 가장 깊은 뿌리로 향했다. 

그곳에 있는 세계수의 핵을 보기 위해서. 

"······이그렐." 

광랑, 이그넬에게는 형제가 있었다. 

부족에 내려져오는 전설이나 미신 따위는 무엇도 믿지 않았던 그녀였지만, 단 하나만큼은 믿었다. 

형제인 이그렐을 두고도 투신의 혼의 존재를 믿지 않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그렐은 강했다. 대수림 최강의 전사였다.

성년식을 치룰 나이가 됐을 때는 이미 대족장인 우다크바트조차 뛰어넘었고, 차기 수인족의 대족장이 그가 될 거라는 사실엔 누구도 부정하거나 반대하지 않았다. 

어렸을 적부터 장난으로든 진심으로든, 서로 질리도록 치고받고 싸웠었다. 

하지만 이그넬은 단 한 번도 이그렐을 이겨본 적이 없었다. 

이그넬에게 있어 이그렐은 세상에 단 한 명뿐인 혈육이자, 형제이자, 우상이자, 목표였다. 

이그넬은 나무 줄기로 뒤덮인 주황색 보석 앞에서,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우두커니 서서 세계수의 핵을 바라보다가, 손을 뻗었다. 

"그만 다 끝내자. 너도, 나도, 그리고 이 숲도." 

그 괴물이 세계수를 삼키는 걸 어차피 막을 수 없다면. 

그 전에, 이 빌어먹을 돌 안에 갇혀있는 형제의 영혼만큼은 차라리 자신의 손으로 부수겠다. 

이그넬은 핵을 손에 움켜쥔 채 씩 웃었다.

"······그런 약속을 했었지. 대족장은 네가 되더라도, 대수림 최강의 전사는 언젠가 내가 될 거라는 걸." 

결국 이그렐이 죽기 전까지도 그를 뛰어넘지 못했기에,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대수림을 나와서 대륙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이들과 싸웠다. 

그중에는 시시한 녀석도 있었고, 피를 끓게 할 만한 강자도 있었으며, 심지어 이그렐보다 강한 괴물도 한 명은 만날 수 있었다. 

숲 바깥의 세계는 넓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다. 

아무리 강한 적이라도, 설령 칼데릭의 대군주라도 그 갈증을 채워줄 존재는 되지 못했다. 

희열과 흥분도 잠시, 전투가 끝나면 마음 한편에는 언제나 공허함이 남아있었다. 

"죽은 다음의 세계가 있다면 다시 만나서 싸우자, 이그렐." 

이그넬이 핵을 쥔 손에 힘을 불어넣었다.

순간 망설임이 그녀의 눈에 스쳤지만, 잠시뿐이었다. 

쩌적. 

세계수의 핵이 박살나기 직전의 순간이었다. 

"멈춰라, 광랑." 

이그넬은 고개를 돌렸다. 

뿌리의 입구로 7군주가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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