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즉사기 들고 게임 속으로-162화 (162/189)

아데사 대수림 (1)

······참모장이 대군주의 말을 전하러 왔다고?

확실히 그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대군주가 무슨 일이지? 순간 머릿속에 많은 생각들이 스쳤다.

흑해 여제 건인가? 아니면 마탑주를 처리했을 때처럼 또 다른 부탁을 하려는 건가?

- 보고 있으니 계속해라, 아셸.

답장을 보내자 잠시 뒤에 다시 답이 돌아왔다.

- 예. 참모장의 말에 따르면 대군주께서 첩보를 통해 파악하시길, 현재 세인테아 황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아셸이 꺼낸 이야기는 내가 떠올린 것들 중 어느 것도 아니었다.

황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무슨 소리지?

- 황제가 남쪽 국경을 넘어 은밀하게 아데사 대수림으로 향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습니다.

이어진 말에, 나는 순간 가슴이 싸하게 얼어붙은 기분을 느꼈다.

아데사. 세계의 4대 세력 중 마지막 하나.

대륙 남쪽의 거대한 대수림을 지배하는 엘프와 수인족들의 연합.

잠깐······ 황제가 어째서 지금 아데사에?

황제는 이 세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메인 빌런들 중 하나다.

인간우월주의 사상을 가진 놈은 언젠가 큰 재앙을 일으킬 놈이었고, 난 물론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너무 빨랐다.

황제가 '그것'을 불러내기 위해 아데사 대수림으로 향하는 건 원래대로라면 훨씬 뒤의 미래다.

용사와 협력하게 된 뒤부터는 황제에 대해선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는데······.

'미래가······ 변했나?'

아니면 단순히 일을 치르기 전의 사전 답사?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미래가 변했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용사가 나와서 분명 황제에게 경고를 했을 터인데, 놈이 그를 무시하고 오히려 시간을 앞당겼을 리가.

"······."

하지만 만약 어떤 나비효과가 정말로 미래를 바꿨다면.

정말 황제가 시간을 앞당겨 지금 당장 그 끔찍한 재앙을 일으키려고 하는 거라면?

아데사 대수림은 아마 멸망한다.

세인테아도 아데사도 아수라장이 돼서 세력 간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져내릴 것이다.

마왕의 부활도 머지 않은 상황에, 그때부터는 무엇도 걷잡을 수가 없어진다.

"젠장."

하필 용사까지 성동으로 돌아간 때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최악의 타이밍이었다.

- 그래서 대군주가 내게 그 정보를 전달한 이유가 뭐지?

- 가능하면 론 님께서 대수림으로 향해서, 직접 황제의 추적을 도와달라는 제안입니다.

······추적이라고?

나는 일단 대군주의 저의부터 의심했다.

- 굳이 내게 그런 제안을 한 이유는 말하지 않았나?

- 연락이 닿는 모든 군주들에게도 같은 말을 전했다고 합니다. 하여 이미 5군주는 홀로 대수림으로 향했고, 2군주도 참모장과 함께 이동할 거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를 콕 집어서 부탁한 일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나저나 2군주나 5군주는 바로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건가?

나는 그 이유를 알 거 같았다. 왜냐면 2군주와 5군주는 모두 아데사 출신이었으니까.

2군주 뇌후의 가문은 오래 전 아데사의 엘프들이 수림을 나와 칼데릭에 정착한 것이고, 5군주 광랑은 동족들과의 대립으로 홀로 나온 거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아데사와 관련된 일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있었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 우선은 론 님께서 성으로 귀환하시면 소식을 전하겠다고 답해두었습니다.

나는 미간을 좁힌 채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할까.'

문제는 내가 어떻게 해야 되냐는 것이었다. 고민은 짧았다.

아데사 숲으로 이동해서 황제의 움직임을 확인해야 한다.

다른 군주들이나 참모장에게 신경을 쓸 때가 아니었다.

정말 황제가 행동에 나선 거면, 그것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카앤이 문제군.'

하지만 내가 당장 아데사로 향하면 카앤을 혼자 내버려두게 되는 건데······.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계승자의 안위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자리를 비우는 동안 카앤의 호위는 그녀에게 맡겨두는 수밖에.

나는 결정을 마치고 답장했다.

- 아셸, 지금 당장 띠용이를 데리고 내가 있는 곳으로 와줘야겠다.

***

며칠 뒤, 아셸의 도착 수신을 받은 나는 카앤과 리곤, 레아에게 말을 전해두었다.

"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카앤이 깜짝 놀란 얼굴로 되물어왔다.

나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 원래 여기서 며칠 머물다가 적당한 시간에 가려고 했었어. 나도 집에 볼일이 있거든."

"아니······ 야, 그걸 왜 진작 말 안 했는데?"

카앤도 리곤도 황당하다는 기색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었지만 달리 둘러댈 핑계가 없었기에 별 수 없었다.

"진짜 미안. 어쨌든 그래서 난 지금 당장 떠나야 돼."

"야, 랜. 너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리곤이 걱정스럽게 물어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은 무슨 일이야. 휴학기 끝나면 다시 아카데미에서 보자."

"잠깐만, 그럼 나도 같이 가면······."

카앤이 또 곤란한 말을 하는데, 레아가 껴들었다.

"야, 카앤. 사람 난감하게 하지 마. 급한 일이 있다잖아."

"아니, 그래도 이건 너무 갑작스럽잖아. 자세히 설명해주지도 않고."

"자세히 설명하기 곤란한 사정이 있다는 거잖아. 넌 뭐든 무작정 껴들려고 하는 그 버릇 좀 고쳐."

뭐지? 그녀가 도움을 준 건 의외였다.

레아가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이동은 어떻게 할 건데? 필요하다면 마차하고 가문 사람들을 붙여줄게."

"아니, 괜찮아."

"그래, 그렇다면."

이상하게 생각할 법도 한데 레아는 그럴 거라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덕분에 나는 어영부영 애들에게 인사를 마치고 성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도시 광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셸과 만나서 외진 곳으로 이동했다.

"계승자는 지금 헤리윈 가의 성에서 머물고 있다. 성 안에서 위험한 일은 없을 테니, 너는 계속 주위에서 머물며 그녀를 호위해라."

"알겠습니다. 그러면 언제 돌아오실 예정이십니까?"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그럼 나는 바로 이동할 테니 수고해다오."

아셸과 헤어진 뒤, 도시 바깥으로 나와서 그녀가 타고 온 띠용이를 찾았다.

끼에엑!

숲에 숨어있던 띠용이를 찾자 녀석이 반가움에 울부짖으며 나를 향해 뒤뚱거리며 달려왔다.

"쉬, 쉬. 그래. 오랜만이다, 이 녀석아."

나는 목을 쓰다듬어주며 흥분한 녀석을 진정시켰다.

오랜만에 띠용이의 등에 타올라 곧장 하늘로 날아올랐다. 세인테아 남쪽, 아데사 대수림을 향해서.

***

바욘터 령에서 세인테아 남쪽 국경 너머까지, 좀 돌아가도 전속력으로 하루면 충분한 거리였다.

아데사의 북쪽 가장자리 지역에 다다른 나는 아래로 펼쳐진 광활한 수림을 내려다봤다.

'수림 끝자락에서 충돌할 일은 없겠지.'

아데사를 지배하는 건 수많은 부족들이 합쳐진 엘프와 수인들의 연합이다.

그들을 전부 합치면 세인테아와 칼데릭처럼 하나의 거대한 연합 국가 단위 규모였다.

하지만 수림 가장자리까지 전부 그들의 관리 하에 있는 건 아니었다. 너무 넓었으니까.

여기서 더 들어가면 경계를 지키는 병력을 맞닥뜨릴 수 있겠지만, 아직 이 정도는 괜찮았다.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수림 북쪽 어딘가에서 사전 준비를 하고 있을 황제를 찾아낸다.

물론 그건 어려운 일이었다.

어딜 가나 나무와 풀들밖에 없는 수림에서, 아무리 게임을 했다고 해도 내가 황제가 일을 꾸미고 있는 위치를 기억하고 특정할 수는 없었다.

한마디로 산맥을 무작정 돌아다니며 계승자를 찾았을 때와 다른 게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물론 조력자가 없는 건 아니었다.

우선 나는 참모장이 뒤늦게 합류할 군주들을 위해 말해뒀던 장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폴리모프는 어쩔까.'

그 전에 나는 폴리모프를 풀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했다.

지금의 나는 7군주가 아닌 소년의 모습이다. 이대로 그들을 만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폴리모프를 풀자니 다시 랜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폴리모프를 한 번 풀면 다시 성검의 힘을 사용해야 하는데, 용사는 지금 성동에 있었으니까.

가면을 쓸까도 고민해봤지만 그렇다고 체형이나 머리색까지 완전히 숨길 수 있는 건 아니다.

'어차피 대군주를 마주치기라도 하면 여러모로 곤란해져.'

지금 이곳에 대군주는 없이 참모장만 왔다고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폴리모프를 풀기로 했다.

우드득.

모습은 순식간에 원래의 7군주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나는 뻐끈함에 고개를 돌리며 띠용이의 목을 두드렸다.

"가자, 띠용아."

대수림의 북부를 관통하는 거대한 강줄기.

강줄기를 따라서 안쪽으로 이동하면 참모장이 언급한 호수가 나올 것이다.

참모장과 뇌후는 그곳에 근거지를 두고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이내 호수를 발견한 나는 초감각을 넓게 펼쳐 그들이 주위에 있는지부터 찾았다. 그리고 발견했다.

호수 앞에 나란히 서있는 뇌후와 참모장의 모습이 보였는데, 나는 곧바로 그곳으로 착지했다.

참모장이 놀란 기색으로 나를 맞이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7군주님. 한데 정말 빠르게 오셨군요."

옆에 서있는 뇌후는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나는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 참모장에게 물었다.

"5군주는?"

"5군주님은 계속 따로 행동하실 생각인 모양입니다. 대군주님의 제안 때문에 움직이는 게 아니니, 저희와 협력하여 조사할 생각도 없다고 언질하셨습니다."

그럼 여기에는 뭘 하려고 온 거야?

광랑이 중요한 건 아니었기에 이내 신경을 껐다.

"조사는 이미 시작했나? 진전은?"

"이제 시작할 예정입니다. 황제가 수도부터 움직였을 만한 루트를 거슬러 올라갈 생각입니다."

나는 속으로 초조함을 느꼈다.

물론 그에게 다른 방법이 있지는 않겠지만, 그런 식으로는 너무 오래 걸리지 않나?

황제가 이미 준비를 시작했다면 그렇게 팔자 좋게 시간 낭비를 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내 표정이 탐탁지 않다는 걸 느꼈는지 참모장이 물었다.

"달리 좋은 방법이 있으십니까?"

나는 뇌후를 쳐다봤다.

왜냐면 게임에서도 숨어있는 황제를 찾은 방법은, 정령들을 사용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뇌후, 생각나는 방법이 있나?"

"없어요."

"정말로 없나?"

"······방금 없다고 말했잖아요. 무슨 대답이 듣고 싶은 건가요?"

뇌후가 그 방법을 사용할 수 있을까?

내가 알 방도는 없었지만 일단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수림에 있는 정령들의 힘을 빌릴 방법이 없냐고 묻는 것이다. 강력한 정령술사라면 계약한 정령이 아니더라도, 잠깐은 정령의 힘을 빌릴 방법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에 뇌후가 어이없다는 눈길로 날 쳐다봤다.

"정령들의 미움을 살 각오를 하고 힘으로 찍어누른다면 가능하긴 하죠."

"그래, 방법이 있군."

"나더러 그런 야만적인 방법을 사용하라는 건가요? 애초에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황제를 찾으려면 터무니없이 넓은 범위의 정령들을 전부 지배해야······."

"물론 대수림 전체는 무리겠지. 하지만 수림의 북쪽 가장자리 지역 한정이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나?"

게임에서 그 방법을 사용했던 엘프도 뇌후와 얼추 비슷한 수준의 정령술사였다.

뇌후의 시선이 한층 더 곱지 않게 변했다.

나는 그녀의 생각을 짐작하고 참모장에게 말했다.

"참모장, 잠시 자리를 비켜줄 수 있나? 2군주와 나눌 이야기가 있는데."

"알겠습니다."

참모장은 순순히 자리를 떠나주었다.

뇌후가 곧장 날이 선 음성을 뱉어냈다.

"그래요. 예전의 나였다면 가능했겠죠. 누가 내 소중한 정령을 소멸시키지만 않았어도 말이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치를 알려주겠다."

"······뭐라고요?"

"이전에 말했던 네 힘을 회복할 수 있는 방도, 라크시아 못지않게 강력한 천둥 정령의 위치를 알려주겠다는 거다. 지금."

뇌후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

"멈춰라!"

수림을 지키는 수인 전사들이 창백하게 질린 채 한 명의 인물을 막아섰다.

전사장 가르가 역시도 한껏 긴장한 얼굴로 침을 삼키고 침입자를 향해 물었다.

"······광랑, 어째서 이곳에 온 거냐?"

전사들을 슥 둘러본 광랑이 피식 웃었다.

"잔챙이들은 꺼져라, 다 죽여버리기 전에. 족장에게 볼일이 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