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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사기 들고 게임 속으로-159화 (159/189)

마족 숭배자들 (5)

강대한 마력의 파장에 사람들의 창백하게 질렸다. 카앤과 리곤, 레아도 마찬가지였다.

"뒤로 물러서십시오!"

유즈가 다급히 외치며 검을 치켜들었다.

남자의 전신을 두른 시커먼 마력 덩어리가 꾸물거리다가, 창과 같은 형체를 갖추었다.

쩌어엉!

날아든 거대한 창을 유즈가 검을 휘둘러 쳐냈다.

검을 두르고 있던 검기가 반쯤 박살났고, 유즈는 충격에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감히이이이! 그분을 위한 신성한 의식을 방해하느냐아아아!"

남자는 광인처럼 발광하며 이번엔 더 많은 창들을 만들어냈다.

남자의 레벨은 75레벨, 유즈보다도 4레벨이 더 높았다.

이 계약자 집단의 수장 놈인가?

솔직히 유즈 이상의 강자가 있지는 않겠지 싶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한 놈이 튀어나왔다.

'어떻게 할까.'

콰과과광!

레벨 차이를 감안하고 유즈는 꽤 잘 싸우고 있었지만 당장일 뿐일 것이다.

이대로면 그 혼자서 놈을 감당하는 건 힘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대놓고 놈을 상대하는 건 당연히 난감한 일이었다.

그러니 최선은 누구의 눈에도 안 띄게 몰래 놈의 목숨을 끊어버리는 건데······.

현재 놈은 온몸에 높은 밀도의 마력을 두르고 있었다.

핏방울을 몰래 날리는 정도로는 닿기도 전에 타버릴 것이었기에 불가능했다.

유즈에겐 미안했지만, 완전히 전면에 나서는 건 진짜 위험할 때다.

나는 일단 좀 더 상황을 지켜보며 틈을 찾아보기로 했다.

***

마력 창들이 빗발치며 유즈를 뒤덮었다. 유즈가 간신히 몸을 던져 회피했다.

전투는 명백히 사제 남자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듯 보였다.

카앤, 리곤, 그리고 레아는 그 광경을 지켜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과 구석까지 물러선 채.

"끼어들 틈이 없어. 유즈 씨를 도와야 되는데······."

리곤이 중얼거렸다.

카앤은 말없이 전투를 노려봤고, 레아는 무력함에 인상을 구겼다.

'유즈가 저렇게까지 고전하다니······.'

세 사람 모두 실감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수준으로는 끼어들어봐야 개죽음밖에 안 된다는 걸.

"밖으로 빠져나가야 돼."

레아가 입을 열자 리곤과 카앤이 그녀를 쳐다봤다.

"입구가 빈 틈을 타서 사람들을 데리고 빠져나가자. 한 번은 기회가 올 거야."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러면 유즈 씨는?"

"저 전투에 끼어들어봐야 우리는 아무런 도움도 안 돼. 지금 아카데미 시험이라도 보고 있는 줄 알아? 최대한 살아남으려면 할 수 있는 걸 하는 수밖에 없다고."

랜도 끼어들어서 거들었다.

"레아의 말이 맞아. 일단 사람들부터 데리고 빠져나가자."

"하지만······!"

"이런 때까지 고집 부리지 마, 카앤. 그럴 시간 없어. 우리가 여기에 남아봐야 유즈가 전력을 내는 데에만 방해라는 걸 모르겠어?"

카앤은 참담한 표정으로 더 반박하지 못했다.

"······미안해, 레아."

"시끄러. 사람들을 챙기기나 해."

그때 거친 공세를 파고든 유즈가 남자의 목을 노리고 검을 내질렀다.

남자는 마력 창을 줄기처럼 늘려 몸을 감싸더니 그대로 휘둘러 자신을 던져서 피해버렸다.

필살의 일격에 실패한 유즈의 얼굴에 낭패감이 차올랐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남자에 의해 막혀있던 입구에는 길이 뚫렸다.

"달려!"

랜이 입구를 가리키며 먼저 달렸다. 사람들도 반사적으로 그를 따라서 달렸다.

카앤과 리곤도 달리다가, 갑자기 입구에서 멈춰서는 레아를 보고 고개를 돌렸다.

"레아! 뭐 해!"

"빨리 사람들 데리고 빠져나가!"

"아가씨!"

레아가 밖으로 나오지 않자 기사들도 그녀를 따라서 몸을 돌렸다.

카앤과 리곤은 깨달았다. 처음부터 레아가 자신은 빠져나갈 생각이 없었다는 걸.

"아가씨! 전 괜찮으니 가십시오!"

"싫어! 가신을 버리고 도망치는 주인은 없어!"

레아가 마법을 전개하려고 했다. 유즈가 기사들을 향해 다급히 외쳤다.

"아가씨를 데리고 빠져나가라! 어서!"

그때 통로 바깥쪽에서 다른 병력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사람들은 앞도 뒤도 막힌 채 더 이동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멈춰섰다.

"이, 이런······."

콰아아앙!

그 순간 남자와 유즈의 전투도 균형이 기울어졌다.

공격을 완전히 막지 못하고 튕겨나간 유즈가 거칠게 바닥을 뒹굴었다. 레아가 그 곁으로 달려갔다.

"유즈!"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았다.

마력을 거둔 남자가 수하들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들이 이내 통로를 완전히 막아섰다.

흐트러진 사제복을 가다듬은 남자가 유즈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래서, 너희는 대체 어디서 기어들어온 쥐새끼들일까?"

"······."

"아으, 짜증나! 짜증나! 경건한 마음으로 그분을 맞이해야만 되는데! 재료는 탈출하고! 저 병신들은 그것도 제대로 못 잡아오고! 다 박살나고! 이게 뭐야?! 자꾸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아아!"

남자가 바닥을 발로 차며 다시금 발광하기 시작했다.

카앤과 리곤이 참담한 표정으로 검을 뽑아들었다. 그때였다.

"사, 살려주십시오!"

사람들 중 한 명이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소리쳤다.

"저희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혼자 탈출한 저 뱀파이어 놈이 멋대로 사람들을 끌고온 것뿐입니다!"

"······허?"

카앤은 고개를 돌려 그렇게 비는 사람을 쳐다봤다.

이내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씩 무릎을 꿇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흐윽, 흑! 저희는 정말로 얌전히 갇혀있기만 했어요!"

"뱀파이어하고 저 사람들이 나쁜 놈들이에요!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

헤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엔마가 기가 막힌다는 듯 외쳤다.

"······지금 뭣들 하는 거예요?! 헤피는 우리를 구하려고 목숨 걸고 돌아온 거라고요!"

"시끄러! 그래서 저놈들 때문에 지금 전부 다 죽게 생겼잖아! 왜 우리까지 죽어야 되는 건데!"

리곤이 헛웃음을 흘렸다. 카앤은 멍하니 그런 사람들을 쳐다봤다.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위험을 감수하고 사람들을 구하러 왔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란 말인가?

"웃기지 마, 유즈가 대체 누구를 위해서 싸운 건데······!"

레아가 소리쳤지만 누구도 듣지 않았다.

뚱한 얼굴로 애원하는 사람들을 쳐다보던 남자가, 레아가 부들부들 떠는 것을 보고 눈썹을 까딱였다.

"이야아, 참 재밌네. 재밌어."

"······."

"거기 계집 년, 봐라. 이게 너희 인간들의 추악함이다. 힘도 없어, 긍지도 없어, 그저 제 목숨만 어떻게든 챙기려는 벌레들이지. 징그러워 죽겠어. 네년도 마찬가지다. 정의감에 차서 사람들을 구하러 오기라도 했냐? 정말이지 어리석고 불쌍하고 딱하구나. 힘도 없이 약해빠진 벌레 주제에!"

그때 랜이 입을 열었다.

"너도 마찬가지다, 늙은이."

"······엉?"

"너도 인간이잖아, 이 멍청한 놈아. 늙어서 치매가 왔나? 그리고 그 쥐꼬리만 한 힘으로 떨거지들 사이에서 대장 놀음을 하고 있으니 뭐라도 된 것 같더냐?"

"어어엉?"

리곤과 레아가 깜짝 놀라서 랜을 쳐다봤고, 빌던 사람들은 더욱 창백하게 질렸다.

카앤은 검을 쥔 채 멍하니 서있었다.

그녀는 이전에 델의 했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필요하다면 네가 가진 모든 걸 희생해서라도 책임을 수행해야만 해. 카앤, 네게 있어 소중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네가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들까지도, 모두를 위해서. 그럴 수 있겠니?'

델의 바람이기에 그녀의 검을 물려받고 싶었다.

불의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억지를 부렸던 건 그 이유도 마음 어딘가에 없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진짜 의지를, 정말 델의 검을 물려받을 자격이 되는지를 스스로 확인해보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델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지?

카앤은 더는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싸우기 싫었다. 마음 같아선 직접 때려눕혀서 더 지껄이지 못하게 곤죽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들이다.

결국 모두를 위험에 빠뜨려가면서까지, 왜 이런 인간들을 구하려 했던 걸까?

'······아.'

생각해보니 답은 별 것 없었다.

그녀의 눈에 헤피를 감싸안고 있는 엔마의 모습이 들어왔다.

산속에서 내려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새삼 실망할 이유는 없다. 모든 사람들이 이들 같은 게 아니라는 건 이미 알고 있으니.

그러니, 이런 못난 인간들일지라도 끝까지 지키려는 사람이 한 명쯤 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다.

누군가 소중한 사람이 그 역할을 자신에게 바란다면, 카앤은 기꺼이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너무 무서워서 머리가 돌아버린 거냐? 벌레 놈이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남자가 거대한 마력을 뭉쳐내 랜에게 쏘아냈다.

순간 온몸에 차오른 고양감에, 카앤은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휘둘렀다.

검을 뒤덮은 황금빛의 기운이 마력을 반으로 가르고 남자의 몸을 베어냈다.

***

그와 같은 시각, 성동.

화아아아!

성동 전체를 뒤덮은 환한 빛에 에인델이 깜짝 놀라서 눈을 떴다.

"이건······?"

성검에서 두 줄기의 빛이 뿜어져나와 허공에 일렁이고 있었다.

***

푸화학!

황금빛의 검격에 휩싸인 남자의 몸이 피를 뿜어내며 쓰러졌다. 동시에 카앤도 쓰러졌다.

그 광경에 모두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무슨······?!'

카앤이 방금 뭘 한 거지? 그런 강대한 검격을 어떻게?

유즈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쓰러진 남자를 마무리하기 위해 검기를 쏘아냈다.

하지만 놈은 아직 의식이 있는지, 주위를 회오리처럼 둘러싼 검은 마력에 검기는 튕겨나갔다.

유즈가 검을 거두고 소리쳤다.

"아가씨, 어서! 모두 빠져나가십시오!"

완전히 끝장내진 못했어도 놈이 큰 부상을 입은 지금이 탈출할 기회였다.

기사와 유즈들이 통로를 가로막은 적들을 향해서 돌진했다.

"카앤! 정신 차려!"

쓰러진 카앤을 리곤이 챙겼다.

카앤은 완전히 탈진한 기색으로 눈을 꿈뻑거렸다.

"모, 몸에 힘이 쭉 빠졌어······."

"알겠으니까 조금만 더 힘내! 빠져나가야 돼!"

난장판 속에서 모두가 통로를 따라서 달렸다.

남은 피라미 적들은 유즈에게 모조리 쓸려나가며 길이 뚫렸다. 그런데······.

"끄아아아아! 어딜 가려고오오오오!"

남자의 괴성과 함께 통로가 뒤흔들렸다.

거대한 마력 덩어리들이 요동치며 벽면을 사정없이 부수기 시작한 것이었다.

우수수 무너져내리기 시작한 천장이 가장 뒤쳐져있던 리곤과 카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때 레아가 두 사람에게로 달려들며 팔찌를 잡아뜯었다.

레아의 팔찌에서 뿜어져나온 강대한 마력이 주위를 감싸며 떨어지는 바위들을 모조리 휩쓸었다.

"빨리 와!"

"고마워, 레아!"

쿠구구구!

그러나 통째로 붕괴한 벽면이 다시 한 번 그들을 뒤덮었다.

"아······!"

세 사람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순간, 누군가 세 사람을 강하게 밀쳐냈다.

간신히 낙석을 피해 쓰러진 그들은 바위가 떨어지는 건너편을 바라봤다.

"래, 랜······."

그들을 밀어내고 랜은 그대로 바위 더미에 깔려버린 것이었다.

레아가 입술을 꽉 짓씹으며 망연자실한 두 사람을 이끌었다.

이윽고 모두가 동굴 바깥으로 무사히 빠져나왔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

"후우."

핏물로 꿈틀거리다 원상태로 돌아오는 팔을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가스칼리드의 혈술을 사용해서 헤피의 혈술을 잠시 빌렸다.

부동 장막으로 낙석을 막고 헤피의 혈술을 사용해서 틈바구니로 빠져나온 것이었다.

앞쪽 통로는 낙석에 완전히 막혔지만 다시 몸을 혈액으로 만들면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었다.

그나저나 대체 뭔 일이 일어난 거지?

이제 별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내가 나서려고 했었다. 그런데······.

놈을 일격에 쓰러뜨린 카앤의 황금빛의 검격.

용사에 비하면 한없이 미약했지만 그건 분명히 성검의 힘이었다.

대체 어떻게? 설마 카앤이 드디어 계승의 조건을 완수하기라도 한 건가?

'일단 빠져나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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