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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사기 들고 게임 속으로-156화 (156/189)

마족 숭배자들 (2)

한눈에 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무리의 등장에 마차 안도 긴장 가득한 분위기였다.

나는 괴한들의 레벨을 슥 훑었다.

모두가 40, 50레벨대의 상당한 실력자들이었는데, 그중에 가장 높은 놈은 60레벨도 넘었다.

"뭐 하는 놈들이야? 도적단인가?"

카앤의 중얼거림에 리곤이 대꾸했다.

"느낌이 이상한데. 단순한 도적들이 아닌 것 같아."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우리도 도와야 하는 거 아니야?"

레아가 나지막이 말했다.

"나서지 말고 얌전히 있어."

"아니, 저놈들 숫자 좀 봐. 서른도 훌쩍 넘잖아."

"서른이든 마흔이든 유즈가 다 알아서 처리할 거야. 네가 끼어들어봤자 방해야."

"유즈 씨는 그냥 집사님 아니었어?"

그때 유즈가 괴한들을 향해서 외쳤다.

"웬 주제 모르는 놈들이냐? 헤리윈 가문의 행차다. 목숨이 아까우면 썩 꺼져라."

레아의 말대로 괴한들이 전부 덤벼들어도 유즈의 레벨이면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걸림돌은 이쪽이였다. 그에겐 레아와 우리의 안전이 최우선일 테니 전투는 되도록 피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헤리윈? 아하, 헤리윈 후작가."

리더로 보이는 가장 레벨이 높은 놈이 쯧 하고 혀를 차더니 말했다.

"낭비할 시간 없다. 전부 죽이고 계속 이동한다."

괴한들이 일제히 마법을 전개했다. 사방에서 마법진들이 떠올랐다.

"감히!"

그와 동시에 유즈가 검을 휘둘러 거대한 검기들을 쏘아냈다.

콰아아앙!

"너희는 마차 호위에만 집중해라! 나 혼자 상대한다!"

유즈는 기사들에게 명령하고서 마력을 본격적으로 끌어올리더니, 가장 가까운 적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전투는 레벨의 차이만큼 일방적이었다.

유즈의 무자비한 검무에 괴한들은 제대로 된 저항도 못하고 빠르게 쓸려나갔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마차 안에서 그 광경을 지켜봤다.

사람이 두세 토막씩 나서 툭툭 죽어나가는 게 이들에게 익숙한 광경은 아닐 것이었다. 리곤 빼고.

"······집사님 되게 무서우신 분이었네. 더 공손하게 대해야겠다."

카앤이 억지로 농을 던졌다.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괴한들이 3분의 1쯤 죽어나갔을 때였다.

유즈를 상대로 고전하며 리더 놈에게서 갑작스러운 변화가 생겼다.

'······!'

나는 그 기운을 즉시 느끼고서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저 놈, 마족의 계약자다.

괴한의 리더의 몸에서 일렁이던 검붉은 기운이 줄기처럼 쭉쭉 뻗어나왔다.

그리곤 그 끄트머리가 철퇴와 같은 형태로 빚어지더니, 유즈를 향해 휘둘러졌다.

쿵! 쿠웅!

주위의 지면과 수풀들이 공격에 휩쓸려 우수수 박살나고 뒤집혔다.

유즈도 괴한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는지 일단 거리를 두며 물러섰다. 그때였다.

"······헛!"

유즈가 황급히 마차로 시선을 돌렸다.

어딘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시커멓고 거대한 구체가 마차를 노리고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체의 속도가 워낙 빠른 데다가 기운도 보통의 마력과 달리 이질적이라 늦게 인지한 모양이었다.

마차를 호위하던 기사들이 다급히 검기를 쏘아냈지만 구체에는 흠집도 나지 않았다.

'성가시게.'

나는 별 수 없이 능력을 사용했다. 마차를 둘러싸고 부동 장막을 펼쳤다.

장막 안의 고요 속에 한순간 사방이 검게 물들었다가, 이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뭐, 뭐야? 방금? 공격이 날아든 거야?"

카앤이나 다른 애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인지도 하지 못했다.

나는 당황하고 있는 레아에게 말했다.

"밖으로 나가야 돼."

"어?"

"방금 하마터면 공격당할 뻔했던 것 같은데, 또 공격이 날아드면 마차 안에선 피하기 힘들어."

그렇게 말하고서 내가 먼저 마차 문을 열고 나가자, 다들 바로 뒤따라나왔다.

우리가 괜찮다는 걸 확인한 유즈는 안도한 얼굴로 일단 계속 전투를 이어나갔다.

"아가씨! 마차에 꼭 붙어계십시오!"

"우리 몸은 우리가 지켜! 걱정하지 마!"

달려드는 적들을 향해 레아가 기사들을 도와 마법을 전개했다. 전에 봤던 그 비전 마법이었다.

자색의 광선이 바닥에 쓰러져있다가 기사를 노리는 괴한의 머리를 꿰뚫어 확실히 숨을 끊었다.

리곤이나 카앤도 검을 뽑고서 기사들을 엄호하는 식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셋 다 실력이 있는 녀석들이니, 직접 맞서려고만 안 하면 여기 있는 놈들을 상대로 다칠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나는 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멀리 떨어진 곳에, 나무 위에서 몸을 숨기고 있는 놈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중에는 이쪽의 리더 놈보다도 레벨이 더 높은 놈도 보였다.

'저건 내가 처리해야겠군.'

또 방금의 공격이 날아들면 상황이 귀찮아질 수 있었다.

모두의 신경이 팔린 틈을 타서 나는 공간 도약으로 이동했다.

***

"뭐야, 막혔잖아? 뭐에 막힌 거야?"

얼굴이 반쯤 흉하게 녹아내린 괴인이 멀쩡한 마차를 확인하고 눈쌀을 찌푸렸다.

나눠져서 흔적을 쫓다가 뒤늦게 도착했는데, 이 무슨 성가신 상황이란 말인가?

벌써 저쪽의 인원은 절반이 넘게 죽어나간 상태였다.

쿠크스도 마족의 힘까지 개방해서 싸우고 있었지만 저 괴물 늙은이는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마차를 지키는 것 같길래 신경이라도 더 분산시키려 노려봤지만, 공격은 정체 모를 무언가에 막혀서 소멸해버렸다.

이대로면 합류해서 싸워도 피해가 클 건 자명했다.

"크,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는데······."

"너희 뭐 하는 놈들이냐?"

괴인은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한 소년이 서있었다.

기척을 느끼지도 못했는데 대체 언제?

소년이 슥 주위를 둘러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마족의 떨거지들이 떼 지어 몰려다니고 있군. 목적이 뭐냐?"

괴인과 그의 부하들은 마력을 끌어올리다가, 뒤늦게 인지했다.

주위에 어느새인가 시뻘건 안개 같은 것이 희미하게 퍼져있다는 걸.

"이미 늦었다."

부하들이 일제히 쓰러져서 나무 아래로 우수수 떨어졌다.

괴인은 그 광경에 눈을 찢어져라 크게 떴다.

"목적을 말해라. 대답하지 않으면 너도 죽는다."

"뭐냐. 네놈은 대체 뭐냐?"

"내 물음에 대답······."

콰아앙!

소년에게 기습 공격을 날린 괴인이 즉시 몸을 돌려 도주하려고 했다.

그와 동시에 그 역시도 다른 부하들처럼 실 끊어진 인형처럼 툭 무너져내렸다.

"대답할 생각 없으면 죽고."

***

나는 나무에서 내려와 괴한들의 시체를 한번 둘러봤다.

제압을 할 수 있었으면 제압이라도 해서 심문하고 싶었는데, 그건 아무래도 여건이 안 되었다.

마족의 계약자들은 노예나 다름없이 그들이 계약한 마족의 명령대로만 행동한다.

마의 씨앗을 찾거나, 아니면 자신들의 주인을 위한 다른 무언가를 하거나.

이놈들이 무슨 목적으로 이런 숲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저쪽은 몇 놈 살려뒀으려나."

슬슬 전투가 끝나는 분위기였기에 나는 다시 마차 주위로 돌아갔다.

"저기, 제 친구 어디 갔는지 못 보셨어요?! 분명 방금까지 옆에 있었는데······!"

마차 뒤로 순간이동해 슬쩍 나오니 리곤과 카앤이 기사들을 붙잡고 물어보고 있었다.

그 옆에서 나와 눈이 마주친 레아가 한숨을 쉬며 카앤의 어깨를 쿡쿡 찔렀다.

"저기 있네."

"어? 야, 랜! 갑자기 사라져서 깜짝 놀랐잖아!"

"너 어디에 있었어?"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나 마차 아래에 숨어있었는데."

"뭐? 푸핫! 너 그렇게 겁쟁이었냐! 우리는 열심히 싸우고 있었더니!"

"뭘 열심히 싸워. 기사님들이 다 쓰러뜨렸구만. 어디 안 다쳤어, 랜?"

"멀쩡해. 안 다쳤어."

카앤이 웃음을 터뜨리다가 주저앉아서 푹 한숨을 내쉬었다. 몸보다 마음이 지친 기색이었다.

유즈가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다들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그보다 이놈들은 대체 뭐야?"

"모르겠습니다. 일단 대장 놈은 목숨을 붙여놓으려고 했는데······."

유즈가 한쪽을 힐끗 쳐다봤다. 애들도 그쪽을 보고서 인상을 찌푸렸다.

마족의 힘을 쓰던 괴한들의 리더는 몸이 터져서 형체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다.

"자폭했습니다. 그래도 아직 살아있는 놈들이 있으니 심문해보겠습니다."

"철저하게 알아내줘, 유즈. 배후가 있으면 감히 헤리윈을 건드린 대가를 치뤄야 할 거야."

레아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쉬고 계십시오. 뒷정리를 하겠습니다."

몸을 돌리려던 유즈가 걸음을 멈추더니, 레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장하십니다, 아가씨.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레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의 반응을 생각하면 이들은 처음부터 헤리윈 가문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지도 않았다.

그냥 우연히 마주쳐서 입막음을 위해 공격해온 게 아닌가 싶은데······.

유즈는 괴한이 사용한 게 마족의 힘이라는 걸 아직 파악하지 못한 듯했다. 흔한 게 아니니까.

나는 유즈에게 그 사실을 알려줄까 생각하다가 그냥 관두기로 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지.

'설마 카앤을 노린 거일 리도 없고.'

놈들이 성검의 계승에 대해 알고 있을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에 하나 진짜 알고서 카앤을 노린 거였다면 당연히 원마급이 움직였겠지. 이런 피라미들이 아니라.

애초에 이놈들은 카앤을 특별히 노리는 기색도 없었다. 역시 그건 지나친 염려였다.

그러면 이놈들에 대해서 굳이 더 신경 쓸 필요는 없나?

하지만 더 잔당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아무 조치 없이 그냥 지나치기도······.

"후우······."

나는 고민에 잠겨있다가 시선을 돌렸다.

레아가 숨을 고르며 덜덜 떨리는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더니 역시 애는 애인 모양이었다.

"뭘 봐."

고개를 든 그녀가 이쪽을 째려봤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네가 아니었으면 기사가 죽거나 크게 다쳤을 거야. 네 손으로 직접 가신을 지킨 거지."

"······뭔 소리야. 누가 뭐래?"

"이놈들 죽인 걸로 죄책감 가질 필요 없다는 뜻이야."

"죄책감이라니, 웃기지 마. 그냥 조금 충격을 받은 것뿐이야."

첫 살인이라면 그럴 만도 하지.

레아가 묘한 눈길로 날 쳐다보더니 말했다.

"넌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네."

"뭐, 나는 얌전히 숨어만 있었으니까."

"······마차 아래에 숨어있었다고 했지. 근데 그거 좀 이상하지 않아?"

"뭐가?"

"마차가 공격받을 수 있다면서 제일 먼저 나간 게 너야. 그리고 마차 아래에 숨어있었다고?"

······어, 그건 그렇네?

그냥 대충 둘러댄 걸 거기까지 생각했다고?

순간 할 말을 못 찾아서 아무 대꾸도 안 하자, 레아가 더욱 의심스럽다는 눈빛을 띠었다.

"너 진짜 전투 동안 어디에 있었어? 네 공간 마법으로 어디론가 이동했던 거지?"

"음, 사실 그래. 좀 안전한 곳에 숨어있었어."

"왜 거짓말했는데?"

"나 혼자만 멀리 숨어있었다고 하면 쪽팔리잖아."

"근데 그걸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고 있고?"

"아니······."

레아가 마차 쪽에 턱짓을 했다.

"봐, 마차 주위 바닥에 거대한 흠이 파여있었어. 네 말대로 진짜 마차가 공격당했던 거야. 근데 무언가에 막힌 것처럼 마차만 멀쩡해."

"······."

"넌 마차가 공격받았을 때도 혼자만 침착하게 우릴 밖으로 이끌었지. 마치 별일도 아니라는 것처럼."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그녀가 날 빤히 쳐다보다가 말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네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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