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시험 (3)
함께 힘을 합치자는 제안.
레아는 생각했다. 저번의 일이 있었는데도 리곤이 용케도 자신을 스스럼없이 대한다고.
'······내 능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뿐이겠지. 교수의 팔찌를 얻으려면.'
물론 다른 것들은 제쳐두고, 힘을 합치자는 건 그녀에게도 기꺼운 이야기긴 했다.
방금 교수를 혼자 상대하면서 역시 쉽지 않겠다고 다시 한 번 깨달은 참이었고.
"좋아."
레아는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좋은 말이 스스로 찾아왔다면 계속 혼자를 고집할 이유는 없다.
그저 시험을 위한 협력.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면 될 뿐이었다.
그녀가 바로 협력 제안을 받아들이자 리곤은 조금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 진짜? 바로 받아들일 줄은 몰랐네."
"잡담은 됐어. 뭐라도 생각한 전략이 있는지부터 말해."
리곤이 어깨를 으쓱였다.
"딱히 없는데. 왠지 잔머리 안 굴리고 정직하게 부딪히는 게 최선일 것 같기도 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냥 감? 나 그래도 감은 제법 좋은 편이야."
무성의한 말에 레아의 눈빛이 불만스럽게 변했다. 그녀 역시 같은 결론을 도출하긴 했지만.
"너야말로 너네 반 담임 교수님이잖아. 뭐라도 약점 아는 건 없어?"
"알 리가 있겠어?"
"농담이야. 아무튼 일단 해보자. 한번 교수님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면서 대처해보자고."
레아가 마력을 가다듬고서 말했다.
"당장은 충격파 마법만 날아들 거야. 그 점 생각하고 움직여. 뒤에서 마법으로 지원할게."
고개를 끄덕인 리곤이 로켈 교수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자세를 잡았다.
콰앙!
발을 떼기 무섭게 날아든 교수의 충격파 마법.
곧장 옆쪽으로 회피한 리곤은 머뭇거리지 않고 돌진했다.
충격파가 연달아 날아들었다. 리곤은 점점 속도를 붙이며 그것들을 모조리 피했다.
충격파 마법은 검으로 막기도 베어내기도 애매한 축에 속하는 마법이다. 때문에 몸으로 받아내서 버틸 게 아닌 이상에야 최선의 선택지는 회피였다.
그리고, 레아 역시 그에 맞춰서 리곤을 지원할 방법을 선택했다.
움직이는 대상에게 사방을 뒤덮는 방식으로 방어 마법을 펼쳐줄 수는 없었고, 마주 공격 마법을 날려서 충격파를 막는 것도 각도상 애매했다.
'그렇다면······.'
그녀의 주위에 떠오른 면 형태의 역장 마법들이 리곤의 주위를 향해서 날아들었다.
쾅! 콰과과광!
연달은 폭음이 공동에 몰아쳤다.
레아가 생성한 역장들은 리곤의 움직임을 쫓아 주위에 떠다니며 충격파 마법을 최대한 방어했다.
위력을 완전히 상쇄하지는 못하고 약화시키는 정도가 전부였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리곤도 레아의 역장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향으로 기민하게 움직였다.
'호오······.'
그 광경을 보며 로켈 교수는 속으로 작게 감탄했다.
보통 두 사람이 힘을 합친다고 해서 그 결과과 온전히 일 더하기 일이 되지는 않는 법이다.
더군다나 저런 방식은 서로 합을 맞춰본 적도 없는 두 사람이 행하기엔 부적합한 전략.
그야 역장의 거리가 너무 멀면 방어의 의미가 없어지고, 너무 가까우면 움직임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생각을 읽고 있는 것처럼 거의 완벽하게 합을 맞추고 있었다.
"······."
그걸 느끼고 있는 건 레아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리곤이 움직이는 경로에 충격파가 날아들었다. 그가 자세를 낮춰 측면으로 피했다.
이어서 날아든 큰 충격파를 레아의 역장이 막아서며 산산히 박살났다.
리곤은 당연하다는 듯 일말의 머뭇거림도 없이 남은 여파를 몸으로 받아내며 앞으로 전진했다.
'어떻게?'
레아는 이해할 수 없었다.
리곤이 어째서 자신의 능력을 저렇게까지 믿고 과감히 행동할 수 있는 건지.
하지만 그 덕분에 선까지의 거리는 조금씩 착실하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더 빨라지지 않는다. 이제 속도를 안 높이는 건가?'
점점 속도가 붙던 로켈 교수의 마법 공세는 어느 순간부턴 더 가속하지 않았다.
이내 속도감에 적응을 마친 리곤은 좀 더 과감하게 나섰다. 선까지의 거리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뒤쪽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며 레아는 교수의 반응에 온 신경을 기울였다.
확실히 둘이서 힘을 합치니 돌파구가 훨씬 수월하게 보였다.
이대로면 교수가 갑자기 출력을 높이지 않는 이상 선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었다. 다만······.
'아직 하나가 더 남았어.'
로켈 교수는 이 시험에서 세 종류의 마법만을 사용하겠다고 말했었다.
충격파 마법과 역장 마법은 사용했으니, 남은 마법은 하나. 그걸 아직까지 사용하지 않았다.
'하나가 더 남았지. 슬슬 올 때가 됐는데······.'
리곤 또한 그 사실을 계속해서 염두에 두고 있었다.
선까지 남은 거리는 이제 고작 열 걸음 정도. 교수가 무슨 마법을 사용할까?
살상력이 높은 위험한 마법들은 제외하고, 움직임을 제한하는 계열의 마법일 확률이 높다. 빙결 마법? 아니면 속박류 마법?
방심하지 않고 한 번의 대응만 잘 한다면 선을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
바로 옆쪽의 허공에 물결처럼 일어난 파문.
리곤은 곧바로 거리를 벌리려 했으나 늦었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인력에 리곤의 몸은 파문의 중심지로 강하게 이끌렸다.
중심을 완전히 잃은 그에게로 이어서 충격파 마법이 날아들었고, 속절없이 뒤쪽으로 튕겨나갔다.
벌떡 몸을 일으킨 리곤이 황당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뭐야, 방금 건?"
"······."
레아 역시도 눈매를 좁힌 채 파문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봤다.
주위 대상을 끌어당기는 파문? 흡인 마법의 일종인가?
세상에는 수많은 비주류 마법과 고유 마법들이 존재했다. 그녀라고 모든 마법을 아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무슨 마법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로켈 교수의 의도는 이걸로 명백해진 듯했다.
'충격파 마법과 반대 개념의 마법이야.'
즉, 로켈 교수는 밀어내고 끌어당기는 힘만을 사용해서 선까지의 접근을 막겠다는 것이었다.
"주위의 사물을 끌어당기는 마력체를 생성하는 마법 같은데. 무슨 마법인지 알아, 레아?"
"몰라. 하지만 이제 새롭게 나올 마법은 없어. 몸 상태는?"
리곤이 팔을 휘휘 돌리며 대답했다.
"아직 쌩쌩해. 너야말로 벌써 지친 건 아니지?"
"웃기는 소리."
"좋아. 그럼 다시 가볼까."
즐겁다는 듯 입꼬리를 올린 리곤이 자세를 잡았다.
"잠깐, 교수님의 마법을 모두 파악했으니까 제대로 전략을······."
레아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리곤의 몸이 튀어나갔다.
레아는 혀를 차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리곤의 간단하게 생각했다. 방금은 그저 어떤 마법이 튀어나올지 몰랐기에 대처가 늦은 것뿐이다.
끌어당기는 마법이라면, 마법이 전개되기 전에 발빠르게 범위 밖으로 벗어나면 그만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게 안일한 생각이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엇······."
또다시 파문에 끌어당겨진 리곤은 똑같은 연계에 뒤쪽으로 튕겨나갔다.
레아는 주위를 둘러보며 눈매를 좁혔다.
'······이런 식이면 피할 수가 없어.'
로켈 교수는 공동 전체에 어느새 마력을 넓게 퍼뜨린 상태였다.
이러면 마력의 흐름을 읽고 허공에 파문이 발생할 타이밍을 잡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레아는 약간 자존심이 상하는 걸 느꼈다.
마력의 출력, 제어 능력, 전개 속도, 교수는 모든 요소를 자신들의 수준에 맞춰주고 있었다.
그런데 모든 조건이 같은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숙련도의 차이가 이렇게까지 난단 말인가?
'내가 무언가 해야 돼.'
이 이상 리곤의 능력에 기대해볼 수는 없다.
마법사인 자신이 어떤 식으로든 교수의 마법을 막아야만 했다.
하지만 정체도 모르는 마법을 어떻게 막아야 하지?
저 인력은 중간의 장애물까지 뚫고 리곤을 끌어당겼기에 역장의 방어도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고 파문 자체를 타격하기엔 그녀도 리곤처럼 파문이 발생하는 타이밍을 읽지 힘들 뿐더러, 까딱 잘못했다간 파문에 말려든 리곤을 맞혀버릴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레아."
리곤의 목소리에 레아는 그에게 시선을 옮겼다.
"역장 마법을 최대한 내 몸에 가까이 붙여."
"······뭐?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지금보다 더 간격을 좁혔다가는 정말 움직임에 방해만 될 것이었다.
그보다 지금은 저 끌어당기는 마법이 문제인 건데, 역장 간격을 좁혀서 어쩌자고?
"생각이 있으니까 일단 내 말대로 해줘. 네 제어 능력을 믿는다."
챙그랑.
바닥에 검까지 내던진 리곤이 다시금 몸을 날렸다.
어차피 피하기만 할 거면 검은 방해만 될 뿐, 조금이라도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함이었다.
레아는 입술을 깨물고서 역장들을 제어했다. 리곤의 요구대로 최대한 그의 몸에 가까이 붙여서.
그녀는 집중력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린 채 어지럽게 움직이는 리곤의 주위로 역장들을 제어했다.
그녀의 제어 능력이 뛰어난 것도 있었지만, 리곤은 용케도 역장에 부딪히지 않고 경이로운 움직임을 선보이며 돌진했다.
그리고 여지없이 나타난 파문이 리곤의 몸을 끌어당긴 순간이었다.
"······!"
순간, 레아는 직감적으로 리곤의 의도를 이해하고 리곤과 파문 사이의 역장을 최대한 고정시켰다.
오히려 파문 쪽으로 뛰어든 리곤이 역장을 발판 삼아서 그 반동으로 거리를 벌렸다.
그대로 파문의 간격에서 벗어난 리곤은 중심을 되찾고 곧장 선을 향해서 전력질주했다.
남은 거리는 고작 다섯 걸음 정도.
이번에 파문이 나타난 지점은 머리 바로 위였다. 리곤의 몸이 위쪽으로 이끌렸다.
이대로면 무방비하게 공중에 뜬 몸에 곧바로 충격파가 날아들 건 뻔한 일.
하지만 리곤은 저항하지 않고 몸을 빙글 돌리며 남은 여력을 다리에 모조리 집중시켰다.
믿었기 때문이다. 레아가 곧바로 역장을 자신의 위쪽으로 움직일 거라고.
슈우우!
그리고 그 기대대로, 리곤의 위로 역장이 늦지 않은 타이밍에 날아들었다.
리곤은 역장을 박차고 다시 지면으로 내려섰다.
마지막으로 날아든 충격파를 간발의 차로 피하며, 선 너머로 몸을 던졌다.
리곤은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다가 몸을 일으켰고, 레아는 거칠게 호흡을 골랐다.
요란스럽던 공동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로켈 교수에게로 모였다.
로켈 교수는 뻗은 손을 거두고서 입가에 옅은 웃음을 띄웠다.
"성공이다."
설마 두 사람이서 통과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만······.
정말 장래가 기대되는 터무니없는 학생들이었다.
손목의 팔찌를 풀러 리곤에게 건네준 그는 곧바로 공동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 모두 수고했다. 서쪽 통로 끝으로 이동하면 시험은 종료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리곤은 레아에게 시선을 옮겼다.
레아는 지칠 대로 지쳤는지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주저앉은 상태였다.
마력도 마력이지만, 리곤의 움직임에 맞춰 다수의 역장들을 일일이 제어한 건 아무리 그녀라도 상당한 정신력 소모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에게 다가가서 리곤이 손을 뻗었다.
"괜찮아?"
"······."
레아는 주저앉은 채 리곤이 뻗은 손을 물끄러미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