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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사기 들고 게임 속으로-149화 (149/189)

학기 시험 (2)

"야, 어떻게 될 것 같냐?"

내 앞에서 나란히 걸어가는 같은 팀 학생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그 로켈 교수님이라도 이렇게 몰려가면 당황할 것 같지 않아?"

"그보다 교수님 팔찌를 얻은 다음이 문제야. 완전히 난장판이 될 것 같은데······."

분위기를 보면, 이미 교수에게서 팔찌를 얻는 건 기정 사실인 듯한 분위기였다.

이만한 수가 몰려가면 교수라도 당연히 감당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거겠지.

그런데 정말 교수가 학생들이 합심하는 전개 하나 예상하지 못했을까.

'그렇게 쉽게 풀릴 것 같진 않은데 말이야.'

모두가 우르르 몰려가서 다다른 통로 끝에는, 로켈 교수가 우두커니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흐음."

공동 입구로 모여든 학생들을 둘러본 로켈 교수가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그런가. 나름 합리적인 판단을 했군."

나는 그의 표정을 보고 확신했다. 로켈 교수는 이런 경우 역시 상정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팀끼리 협력하면 안 된다는 룰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문제는 없지 않습니까, 교수님?"

주도자인 학생이 나서서 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교수의 입가에 옅은 웃음을 띄워졌다.

"물론 문제 없다."

그리고는 그가 갑자기 허공에 손을 그었다.

그러자 바닥에 선 하나가 교수와 학생들 사이를 경계로 주욱 그어졌다.

학생들의 의문 어린 시선이 모인 가운데, 교수가 말했다.

"규칙은 간단하다. 방법을 불문하고 가장 먼저 이 선을 넘어오는 데 성공한 학생에게 팔찌를 주겠다."

선?

교수가 제시한 팔찌를 얻는 방법은 너무도 간단했다.

너무 간단해서 당황한 학생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는 가운데, 한 학생이 먼저 뛰어나갔다.

콰앙!

그리고 몇 걸음 나아가지도 못하고서 공중에 붕 뜨더니 거하게 바닥을 굴렀다.

충격파 마법으로 간단히 학생들 튕겨낸 교수가 마저 말을 이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나는 세 종류의 마법만을 펼칠 것이다. 최선을 다해보도록."

그 말이 끝나자마자 다음으로 행동에 나선 이는 레아였다.

머리카락이 솟구칠 정도로 전력으로 마력을 끌어올린 그녀가 교수를 향해 전격 마법을 쏘아냈다.

빠지지직!

기세 좋게 뻗어나간 벼락은 교수가 방어막에 간단히 막혔다.

나는 그녀의 생각을 짐작했다.

'세 종류의 마법 제한 카운트부터 빨리 소모시키려는 건가.'

어떤 마법을 펼칠지 알면 그에 맞춰서 대응할 수 있을 테니까.

충격파 마법과 역장 마법을 펼쳤으니, 이제 남은 마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퍼어엉!

그때 학생들이 한 번에 선을 향해서 뛰어들었지만, 다시금 교수가 날린 충격파에 모조리 튕겨나갔다.

위력을 조절했기에 그래도 튕겨나간 학생들은 금방 일어났지만, 선 근처에도 다가간 이는 없었다.

몇 번의 시도가 간단히 수포로 돌아가자 누군가가 외쳤다.

"마법사들이 뒤에서 마법으로 엄호해줘! 방어하는 사이에 넓게 퍼져서 한 번에 뛰어들면 돼!"

그래. 그게 최선이긴 하겠지.

나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고 적당히 공격 마법을 날렸다.

그러는 사이 타이밍을 보던 검술학부 학생들이 다시 한 번 돌진했다. 그러나······.

펑! 퍼엉!

교수는 날아드는 마법들을 전부 방어하면서도 달려드는 학생들을 하나하나 튕겨냈다.

학생들의 합공은 교수의 정신을 조금도 분산시키지 못했다.

"여전히 머릿수로만 밀어붙이고 있을 뿐이다. 전략을 짜도록."

그 압도적인 격의 차이에 학생들이 질린 표정으로 교수를 바라봤다.

난 조금 어이가 없었다. 설마 얘들 진심으로 숫자로 밀어붙이면 교수라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나?

물론 교수는 지금도 봐줄 만큼 봐주고 있었다.

정말 제대로 막아낼 생각이면 아예 역장을 넓게 펼쳐서 접근 자체를 차단할 수도 있었으니까.

"뭐야, 이거. 그냥 불가능한 거잖아······."

하지만 학생들은 의지가 꺾였는지, 더는 누구도 선에 다가가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그 다음으로 찾아온 것은 묘한 정적이었다.

양팀 간의 협력은 우선 교수를 쓰러뜨린다는 목표 하에 이뤄진 것이다. 근데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면······.

"······."

학생들은 도로 팀대로 갈라져서 서로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한심한 눈길로 바라보던 로켈 교수가 마법을 펼쳤다.

콰과과과광!

무차별적인 충격파 폭격에 학생들이 비명을 지르며 하나둘씩 공동 밖으로 빠져나갔다.

***

그렇게 교수의 팔찌 얻기는 실패로 끝나고, 공동을 빠져나온 학생들은 흐지부지 흩어져버렸다.

"휴우, 쉽지 않겠네."

카앤이 머리칼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며 물었다.

에스카는 침음을 흘렸고,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떻게 할지야 나야 아무래도 좋았다. 적당히 다른 팀 학생의 팔찌를 얻어서 시험을 끝내도 되고.

"그보다 리곤은?"

"상대 팀이잖아. 왜 찾아?"

"아니, 그래도 그냥 같이 다니면 안 되나?"

"되겠냐. 걔는 혼자 알아서 하게 둬. 그래서 이제 어쩔래?"

그때 바이온이 입을 열었다.

"다른 놈들 팔찌에는 관심 없다. 나는 교수님의 팔찌를 얻어서 시험을 통과하고 싶다."

카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긴 해. 그럼 좀 쉬다 다시 가볼까?"

"로켈 교수님이 아니라 가온 교수님의 팔찌 말이다."

"가온······ 아, 검술학부 교수님 쪽? 왜?"

"같은 검사니까. 교수님과 검대 검으로 전력으로 부딪혀보고 싶다."

평소에도 마법엔 일말의 관심도 없는 바이온다운 이유였다.

카앤이 웃음을 터뜨리고서 말했다.

"뭐, 나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그럼 이번엔 가온 교수님한테 도전하러 가볼까?"

역시 이렇게 되나?

그때 에스카가 껴들어서 말했다.

"저기, 카앤. 그냥 상대 팀 학생의 팔찌를 얻는 편이 안전하지 않겠어?"

"에이, 그러면 시시하잖아?"

"시시한 게 문제가 아니라, 이건 시험······."

"괜찮아, 괜찮아. 그깟 성적이 뭐가 중요해? 어떻게든 교수님을 이겨보자고. 다 같이 힘을 합쳐셔."

"······."

에스카가 왜인지 그늘진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으나, 카앤은 눈치채지 못하고 마냥 들뜬 기색이었다.

카앤이 힘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자, 그럼 가자!"

***

한편, 또 한 명 여전히 교수의 팔찌를 노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통로 벽면에 기대서서 생각에 잠겨있던 레아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헉."

넷이서 몰려다니던 상대 팀의 학생들이 레아를 발견하고서 걸음을 멈췄다.

레아는 귀찮은 표정으로 도로 시선을 돌렸다. 가던 길이나 가라는 듯.

하지만 그 반응을 보고서 학생들은 눈치를 보다가 저들끼리 수근거렸다.

"야, 한번 해볼까? 혼자잖아."

그녀는 누군가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질투의 대상이기도 했다.

평소 다른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가 좋지도 않았으니 그에 못마땅한 이들도 당연히 있기 마련이었다.

"저 반응 봐봐. 아까 분명 마력을 많이 써서 싸움을 피하고 싶어하는 거야."

그들은 이내 당당하게 레아에게로 다가갔다.

"너무 우릴 무시하는 거 아니야? 레아 헤리윈. 넌 지금 혼자······."

쾅!

레아가 손을 휘젓자 가장 앞에 서있던 학생이 그대로 꼴사납게 튕겨나갔다.

나머지 학생들이 다급히 마법을 펼치려고 했지만, 그조차도 그녀의 두 번째 마법보다 느렸다.

"짜증나게 굴지 마. 니들 팔찌는 필요도 없어."

사이좋게 바닥을 구르던 학생들이 창백해진 표정으로 비틀비틀 일어섰다.

레아가 그걸 한심하다는 듯 보다가 말했다.

"그보다 같은 팀의 팔찌라고 뺏으면 안 된다는 룰은 없었는데, 그렇게 몰려다녀도 돼?"

그 말에 움찔 놀란 학생들이 서로를 쳐다봤다.

레아는 코웃음을 치고서 고개를 돌렸다.

반대쪽 통로에서 이번엔 다른 학생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쟤도 참 성격 나쁘다니까.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그녀는 인상을 찌푸렸다. 카앤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우리도 딱히 너랑 싸울 생각 없어. 가온 교수님한테 도전하러 가는 길이라서."

"어쩌라고."

"그냥 그렇다고. 말하는 거 보니까 너도 교수님 팔찌 노리는 거 아니냐? 힘내라."

레아는 통로 저편으로 사라지는 카앤 무리를 바라보다가 쯧 혀를 찼다.

이내 시답잖은 것들에 신경을 끄고 그녀는 도로 상념에 잠겼다.

'불가능하지 않아. 방법이 있을 거야.'

해낼 수도 없는 시험을 교수들이 마련했을 리가 없다.

로켈 교수는 머릿수로 밀어붙일 게 아니라 전략을 짜라고 했다. 그러니 분명 무언가 방법이 있을 터.

검술학부와 합동 시험을 치루는 것도 별다른 이유가 없는 게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로켈 교수의 수업을 생각하면, 그는 언제나 합당한 근거가 있는 언행을 하는 자였으니까.

또 몸을 움직여서 선을 넘어야 한다는 방식부터가 마법사에게는 치명적으로 불리했다.

그러니 어쩌면 검술학부 학생들과 협동하는 데에 팔찌를 얻을 수 있는 해답이 있는 게 아닐까.

"······."

협동.

순간 레아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스쳐갔으나, 이내 한숨을 쉬고서 지워버렸다.

역시 팀 따위는 필요 없었다. 언제나 그랬듯 혼자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한참 동안 생각을 이어가던 레아는 다시 로켈 교수가 있는 통로로 이동했다.

"아까는 우르르 몰려오더니, 이번엔 한 명인가?"

뒷짐을 진 채 서있던 로켈 교수가 그녀를 보고서 웃음을 흘렸다.

레아는 대꾸하지 않고 곧장 마력을 끌어올렸다. 마력구가 방어막을 강타했다.

콰앙!

물론 로켈 교수의 방어막에는 자그마한 금 하나 생기지 않았다.

레아는 그 광경을 보며 발을 할 걸음 앞으로 옮겼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돌파구라고 할 만한 방법은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뿐이었다.

교수의 신경을 분산시키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 방어막을 뚫고 교수를 직접 타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아까도 두 방식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모든 학생들이 몰려들어서도 실패한 걸 아무리 그녀라도 혼자서 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녀는 교수와 자신 사이의 수준 차이를 잘 알고 있었다.

로켈 교수가 학생들을 다치게 할 살상 마법을 펼칠 리도 없지만, 마음만 먹으면 굳이 그런 방법이 아니더라도 아예 역장 마법을 넓게 펼쳐서 선에 접근 자체를 차단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는 않았어.'

로켈 교수는 오직 날아드는 마법을 막을 때에만 방어막을 펼쳤다.

그가 선으로 달려드는 학생들을 막아낸 방식은 충격파 마법 하나뿐이었다.

그러니, 어떠한 잔재주도 없이 정면에서 교수의 마법을 막으면서 전진한다.

가장 정답 같지 않은 그것이 어쩌면 정답일 것이다. 머릿수가 아닌 개인의 역량만에 기댄 방법.

물론 아무리 교수가 봐주고 있다고 해도, 순수한 마력 대결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리는 없다.

하지만 막는다는 게 정면에서 정직하게 방어 마법을 펼치는 것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콰과곽!

레아는 역장 마법을 반구 형태로 좁게 펼쳐 드릴처럼 회전시켰다.

충격파 마법은 그 회전력에 흩어져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로켈 교수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

분산시켜도 이 정도 위력인가?

레아는 호흡을 고르고 다시 움직였다.

로켈 교수가 재차 충격파를 날렸고, 레아 역시 똑같이 방어했다.

하지만 이번엔 방금 전보다 강력한 위력이었다. 그녀의 방어막은 충격파를 완전히 못 막고 금이 갔다.

"으······."

레아는 비틀거리다가 가까스로 중심을 바로잡았다.

선까지 남은 거리는 이제 열 걸음 정도. 한 번 더 막을 수 있을까?

레아는 입술을 꽉 깨문 채 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교수의 마법이 날아들었다.

콰아앙!

방어막은 결국 충격파를 막아내지 못하고 산산히 박살났다.

상쇄시키지 못한 충격에 뒤로 튕겨나간 레아는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다가 멈췄다.

그녀가 아찔한 정신을 추스르며 몸을 일으키려던 때였다.

"······!"

공동 입구 쪽에서 기습적으로 날아든 마법이 그녀를 노렸다. 교수의 마법이 아니었다.

차마 막아낼 여력이 없던 그녀가 공격에 그대로 노출된 순간이었다.

텅!

갑작스레 뛰어든 신형이 날아들던 마력구를 튕겨냈다.

레아는 징 울리는 머리를 붙잡고서 끼어든 사람을 바라봤다. 다름이 아니라 리곤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비겁하지. 안 그래?"

리곤이 검을 붕붕 돌리며 입구 쪽에 숨어있는 학생에게 말했다.

학생은 낭패라는 표정으로 다급히 몸을 돌려 도망쳤다.

레아는 멍하니 리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몸을 돌린 리곤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괜찮아?"

"······."

그녀는 인상을 찌푸린 채, 손을 잡지 않고 혼자서 일어났다.

리곤은 딱히 무안하지도 않다는 듯 내민 손을 거두었다.

"도와줬는데 고맙다고도 안 하네."

"도와달라고 한 적 없어."

"아, 그래."

리곤이 로켈 교수를 힐끗 바라보고서 말했다.

"그건 그렇고 나도 교수님 팔찌를 노리고 있거든. 근데 다시 와보니까 네가 먼저 싸우고 있더라."

"······그래서?"

"그래서가 아니라, 내 생각에 이건 검술학부하고 마법학부가 협동해야 되는 시험인 것 같거든. 그래서 안 그래도 누구 같이 힘을 합칠 사람 없나 찾고 있기도 했어."

레아가 눈을 크게 떴다. 리곤의 생각이 자신이 했던 생각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리곤이 그녀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그러니까 어때. 혼자서 하지 말고, 한번 같이 해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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