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즉사기 들고 게임 속으로-148화 (148/189)

학기 시험 (1)

시간이 흘러 학기 시험의 날이 다가왔다.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데 주위 학생들의 분위기가 평소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학기 시험은 엄청 중요해서 그래. 한 학기에 세 과목 이상 낙제는 무조건 퇴학이라고 알고 있어. 신입생도 예외는 없이."

"그래? 거 되게 빡빡하네."

에스카의 설명에 카앤은 그렇게 대꾸하고는 다시 밥을 먹기 바빴다.

카앤이든 리곤이든 시험날이라고 해서 별 생각은 없어 보였다. 바이온도 마찬가지고.

반면 에스카만 한눈에 봐도 긴장한 기색이 가득했는데, 식욕도 별로 없는지 식사도 반 이상을 남겼다.

"그만 먹게? 든든하게 먹어야 되는 거 아니야, 에스카?"

"아냐. 괜히 속만 안 좋아질 것 같아서."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곧바로 교실로 이동했다.

학기 시험은 총 사흘에 걸쳐서 진행되며, 시험 방식은 과목마다 천차만별 다르다고 들었다.

그리고 오늘의 첫 시험 과목인 마법 이론은 기존 교실에서 그대로 진행될 거라고 공지됐었다.

"간격을 두고 자리를 띄어서 앉도록 하세요."

시간이 되고, 조교수가 반으로 들어오자마자 학생들에게 말했다.

시험 감독관은 교수가 아니라 조교수가 맡아서 진행하는 모양이었다.

마법 이론은 기본적으로 완전한 필기 과목이었기에 시험도 필기였다.

그보다 그동안 수업을 조별로 진행해서 시험 방식도 그럴 줄 알았는데, 개별 시험이었다.

'잘하면 얹혀갈 수 있겠거니 했는데.'

아쉽게도 마법 이론 시험은 완전히 내 개인 역량에 달리게 됐다.

뭐, 낙제점만 피하면 상관은 없지만······ 설마 진짜 낙제되진 않겠지? 나름 열심히 했는데.

아까 에스카가 말했던 대로 엘폰의 규정은 상당히 빡셌다. 3과목 이상 아웃이면 얄짤없이 바로 퇴학.

그래도 나는 크게 염려는 안 했다.

마법 이론은 내가 가장 약한 과목일 뿐이었고, 다른 과목들은 적어도 평균은 했으니까.

설마 진짜 낙제점을 받아도 퇴학까지는 안 가겠지. 아마도.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조교수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학생들이 일제히 시험지를 펼치는 소리가 울렸다.

이어진 정적 속에서 나도 차분히 시험지를 펼쳤다.

시험은 의외로 순조로운 편이었다.

조금이라도 막히는 문제들은 바로 지나치고, 풀 만한 문제들부터 전부 풀고 나니 3분의 1은 풀었다.

시간이 끝날 때까지 나는 몇 문제를 더 푸는 데에 성공하고 시험을 마쳤다.

아예 손도 못 대겠는 문제들도 많았지만 이 정도면 기대 이상으로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확실히 저번의 모임이 큰 도움이 되기는 했다. 아니면 반의 반타작도 못했을지도.

"아, 완전 망했네."

"뭐가 이렇게 어려워? 수업에 나온 것만 낸다더니."

"그러게. 마지막 문제는 진짜 풀라고 낸 건가."

시험이 끝나고 학생들의 투정과 탄식 소리가 교실을 채웠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마침 옆을 지나가는 레아를 보고서 말을 건넸다.

"야, 레아."

"······?"

"네가 저번에 집어서 가르쳐줬던 부분들이 많이 나왔네."

"그래서 뭐?"

"고맙다고. 덕분에 괜찮게 봤어."

감사 인사에도 그녀는 쯧 혀만 차고서 가던 길을 가버렸다. 하여간 성격 참.

나는 카앤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어때. 좀 잘 봤어?"

"그럭저럭? 세 문제인가 빼고 일단 다 풀기는 했어."

카앤도 나에 비해선 이론 공부는 잘하는 편이긴 했다.

나는 에스카에게도 물어볼까 했다가, 얼굴 표정을 보고 관두었다.

"에스카, 넌 어때?"

"으응, 그냥 뭐······."

근데 나 대신 카앤이 툭 물었다.

카앤은 이런 부분에서 평소에 눈치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나는 슬쩍 대화 주제를 돌리고 두 사람과 함께 교실을 나섰다.

좀 쉰 다음에는 곧바로 다음 시험이었다.

***

가장 염려했던 마법 이론은 무사히 넘겼고, 다른 과목들 역시 그럭저럭 괜찮게 봤다.

대부분의 실기 시험에서 압도적인 실력을 뽐낸 건 역시 레아였고, 카앤도 상당했다.

사흘에 걸친 학기 시험 마지막 날.

마지막 시험 과목은 바로 대인 전투였다.

"하, 시험도 이걸로 드디어 끝이네."

"근데 무슨 시험이길래 훈련장은 놔두고 지하에서 본다는 거야? 지하에도 훈련장이 있었나?"

"아는 선배한테 들었는데, 로켈 교수 시험이면 진짜 각오해야 될 거라고 하던데······."

시험장으로 이동하는 길에 주위 학생 무리가 떠드는 소리였다.

대인 전투 시험을 볼 시험장은 평소 수업을 진행하던 훈련장이 아니라, 엘폰의 지하였다. 몬스터 탐구 수업을 했던 지하 장소와는 다른 구역의.

대체 뭔 시험이길래 지하에서 본다는 건지는 나도 좀 궁금하긴 했다.

심지어 교류 수업 때처럼 검술학부 반과 공동 시험을 치룬다고 공지했기에 더더욱.

"평범하게 대련을 치루는 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지? 리곤."

"그러게."

공동 시험을 치루는 검술학부 반은 다름이 아니라 리곤의 헨릿 반이었기에, 다같이 이동하고 있었다.

나는 리곤과 카앤이 떠드는 소리를 흘려들으며 주위의 석벽을 둘러봤다.

'여기 지하는 얼마나 넓은 거야?'

어스름한 지하 통로를 지나 도착한 시험장은 넓은 공동 같은 장소였다.

그곳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던 조교수들이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서 정렬시켰다.

카앤과 에스카와 바이온은 모두 나와 같은 그룹이었고, 리곤만 다른 그룹이 되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생각했다. 설마 팀전 같은 건가? 대인 전투인데?

그렇게 학생들을 모두 나눈 다음에는 무언가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팔찌였다.

"팔찌를 모두 손목에 착용해주세요. 곧 교수님께서 오셔서 시험 방식을 설명하실 겁니다."

뜬금없이 웬 팔찌?

"뭐지? 마력이 느껴지는데?"

카앤이 받은 팔찌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그 말대로 팔찌는 단순한 물건은 아니고 마도구였다. 무슨 용도인지는 아직 모르겠다만.

그리고 상대 그룹과는 팔찌의 색이 달랐기에 팀을 구분하는 목적도 있는 건가 싶었다.

어쨌든 말한 대로 팔찌를 차고 기다리고 있자니, 곧 로켈 교수와 검술학부의 교수가 도착했다.

조교수가 마지막으로 인원 체크를 마친 뒤, 로켈 교수가 마법으로 목소리를 확성하여 입을 열었다.

"이곳은 어떤 목적으로 엘폰의 초기에 설계됐다가, 흐지부지되어 지금은 별 용도 없이 방치되고 있는 지하 공간이다. 이번 학기의 대인 전투 시험은 이곳에서 진행될 것이다. 지금부터 시험 방식을 설명하겠다."

교수가 조교수들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조교수 한 명이 나서서 두 교수에게 우리처럼 팔찌를 하나씩 나눠주었다.

로켈 교수는 그 팔찌를 손목에 차고서 계속 말을 이었다.

"이 공동은 지하 공간의 중심이고, 보시다시피 동서남북으로 총 네 개의 통로가 있다. 너희들이 이곳까지 지나온 길이 동쪽 통로다."

"······."

"시험 방식은 간단하다. 시험이 시작하면 나와 여기 검술학부의 가온 교수는 남쪽과 북쪽 통로 끝으로 각각 이동할 것이다. 너희들은 방금 나눠받은 팔찌의 색대로 팀을 나눠서, 나나 가온 교수 중 한 사람에게서라도 팔찌를 빼앗으면 된다."

······응?

그 말에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교수를 상대로 팔찌를 뺏으라니, 터무니없는 소리였으니까.

"물론 충분히 가능한 수준에서 조건과 제약이 걸릴 테니 안심하도록. 또한 말했다시피 너희는 개인이 아닌 팀이다.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상관없다. 그렇게 얻은 교수의 팔찌를 들고 서쪽 통로 끝에 위치한 공동까지 이동한다면, 해당 팀 전원에게는 기여도와 상관없이 적어도 B+ 이상의 성적이 보장될 것이다."

"······!"

교수의 마지막 말에 학생들이 다시 한 번 술렁였다.

"교수의 팔찌를 뺏는 것 외에 다른 상대의 팔찌를 뺏는 것도 가능하다. 상대의 팔찌를 빼앗아서 서쪽 통로로 이동하는 것 또한 낙제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 물론 시험은 상대평가이기에 빼앗은 팔찌의 수가 많을수록 높은 성적을 받게 될 것이다. 시험이 종료될 때까지 하나의 팔찌도 얻지 못하거나, 팔찌를 잃어 탈락한 이는 어떠한 예외도 없이 낙제다."

시험은 총 두 시간 동안 진행. 한쪽 팀의 인원이 모두 탈락하더라도 시험은 그 즉시 종료.

그리고 교수의 팔찌를 얻어 점수 보장을 받을 수 있는 팀은 한 팀뿐이다.

두 팔찌를 얻더라도 먼저 서쪽 통로로 이동한 팀만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시험이 뭐 이리 과격해?'

서로의 팔찌 뺏기라니. 이런 식의 시험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 안 했는데.

어쨌든 로켈 교수가 설명한 시험의 룰은 대충 그 정도였다.

"설명한 것 외의 제한된 규칙은 아무것도 없다. 그럼 최선을 다해보도록."

로켈 교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설명을 마치고서 예고했던 대로 가온 교수와 자리를 떴다.

"5분 뒤에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때까지 전투는 금지며, 이동은 지금부터 가능합니다."

엉거주춤 서있는 학생들에게 한 조교수가 말했다.

그리고 조교수들은 통로 곳곳에 공처럼 생긴 마도구들을 띄워서 흩어 보내기 시작했다. 아마 시험 진행 상황을 놓치지 않고 보기 위한 옵저버 마법일 것이다.

한편 당황한 학생들은 상대 팀의 눈치를 보며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허.'

나는 좀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렸다.

이 대인 전투 시험은 지금까지 봤던 실기 과목들과는 완전히 방식이 달랐다.

실전이나 다름없는 팀 전투라니, 진짜 갓 입한한 신입생들한테 이런 시험도 보게 하는 건가?

"재미는 있겠는데, 리곤하고 팀이 갈라져서 아쉽네. 다같이 같은 팀이면 좋았을 텐데."

카앤이 반대 팀에 서있는 리곤하고 에스카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어색한 정적 가운데 같은 팀 누군가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미친 거 아니야? 왜 저쪽 팀에 저 둘이 다 껴있는데?"

두 사람이 누굴 의미하는지야 명확했다. 리곤하고 레아.

각 학부 수석인 두 사람이 같은 팀으로 묶인 건 내가 생각하기에도 의아한 밸런스이기는 했다.

그 대신에 다른 상위권 학생들은 이쪽 팀이 더 많은 것 같기는 한데······.

"······다들 내 얘기를 들어볼래?!"

그때 누군가가 크게 소리쳤다.

나와 같은 팀의 학생이었는데, 자연스럽게 그에게로 시선이 몰렸다.

"당장 우리끼리 싸워봐야 좋을 건 하나도 없어. 그게 바로 교수님들이 원하는 걸 거야. 다들 들었잖아? 팔찌를 빼앗기면 그 즉시 탈락이야. 만약 팀이 이긴다고 해도 낙제점을 받는 사람들이 수두룩 나올 수 있는 거라고. 모두 여기에 동의해?"

"······."

"하지만 교수님의 팔찌를 얻으면 적어도 한 팀은 모두 낙제점을 피할 수 있어. 그리고 두 팀이 힘을 합쳐서 교수님을 상대하면 안 된다는 룰은 없었어. 그렇죠, 조교수님?"

"네, 맞습니다."

근처에 서있던 조교수 한 명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들었지? 그러니까 일단 힘을 합쳐서 교수님들 팔찌부터 뺏자. 모두가 힘을 합치면 쉽게 해낼 수 있을 거야. 양팀 전원이 한 번에 몰려가는 건 아마 교수님들도 예상하지 못할걸? 그렇게 교수님 팔찌부터 쉽게 확보하고, 싸움은 그 다음에 하든지 하는 거야. 어때?"

제법 깔끔한 상황 정리였다.

그의 말대로 학생들끼리 싸워봐야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교수의 팔찌를 뺏는 것보다 적다.

그렇다면 힘을 합쳐 교수의 팔찌부터 얻고, 싸움은 그 다음으로 미루자는 의견.

학생들은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일단 싸움은 가급적 피하고 싶다는 심리도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학생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두 사람에게로 향했는데, 레아와 리곤이었다.

레아는 자신에게 몰린 시선에 인상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왜 날 봐? 난 어차피 교수님 팔찌를 뺏을 생각이었으니까 멋대로들 해."

그녀가 먼저 북쪽의 통로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로켈 교수가 이동한 쪽이었다.

리곤이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럼 일단 그렇게 해볼까? 다들 가자."

그렇게 결정이 났다.

양팀의 학생들은 다함께 로켈 교수가 있는 북쪽 통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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