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과 적응 (6)
대인 전투는 마법학부 수업들 중 자유롭게 마법을 펼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업이었다.
학생들끼리 대련을 하거나 교수가 직접 학생들을 상대하며 지도하는 게 대인 전투 수업의 방식이었다.
엘폰에 입학하고 어느새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훌쩍 흘렀다.
오늘 있을 대인 전투 수업은 평소와 달랐다.
바로 검술학부 학생들과 함께 교류 수업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 저기 리곤하고 바이온 있다."
카앤이 맞은편에 서있는 검술학부 학생들 중 두 사람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그에 리곤도 웃으면서 이쪽에 눈인사를 건넸다.
우연찮게도 우리와 처음으로 교류수업을 하게 된 검술학부 반은 바로 리곤이 속한 반이었다.
"너희들은 지금까지의 수업에서 마법사와 마법사의 전투에 대해 배웠다. 그럼 마법사와 전사의 전투는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나?"
본격적으로 수업을 시작하기 전, 로켈 교수가 여느 때처럼 설명을 시작했다.
"마법사와 마법사의 전투는 대체로 고정된 자리에서의 전투다. 체술도 익힌 마법사가 아니고서야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가며 상대의 마법을 피할 재주는 없지. 그렇기에 마법전은 기본적으로 회피라는 선택지 없이 공격과 방어의 패턴이 전부다. 오로지 마력과 마법의 정교함, 심리전으로 상대의 공격 마법은 막고, 자신의 공격은 상대의 방어 마법을 뚫고 적중시키는 게 마법전의 핵심이다."
굳이 따지자면 그렇긴 하겠군.
나는 교수의 설명을 적당히 흥미롭게 들었다.
"하지만 마법사와 전사 간의 전투는 다르다. 너희는 고정된 대상이 아닌, 쉬지 않고 움직이는 대상에게 거리를 좁히게 두지 않으면서 마법을 적중시켜야 한다. 그렇기에 요구되는 능력 요소의 중요도 또한 마법전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오늘 수업에서 직접 그 차이를 겪어보도록."
설명을 끝낸 로켈 교수가 검술학부 학생들이 있는 쪽을 돌아봤다.
허리춤에 손을 올린 채 기다리고 있던 검술학부의 교수가 씩 웃으며 말했다.
"끝나셨습니까? 그럼 바로 시작할까요?"
긴 말은 필요 없이 대련은 곧바로 시작되었다.
처음 순서로 나선 학생들이 훈련장 한가운데에 마주 보고 섰다. 양쪽 다 긴장한 기색이었다.
"대련 시작."
교수의 시작 선언과 함께, 마법사 학생이 먼저 신속하게 마법을 펼쳤다.
상대는 좀 방심하고 있었는지 날아든 충격파 마법을 못 피하고 그대로 적중당해서 바닥을 굴렀다.
하지만 곧장 벌떡 일어나서 발빠르게 측면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평소라면 마법이 적중한 순간 끝이었겠지만, 이건 마법사끼리의 전투가 아니었기에 교수들은 대련을 중단시키지 않았다. 체술을 익힌 이의 몸은 가벼운 마법 한 대 맞았다고 리타이어될 만큼 무르지 않았으니.
검술학부 학생은 작은 마법 정도는 맞아도 상관없다는 듯 과감한 스탠스로 간격을 파고들 기회를 노렸는데, 우리반 학생은 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좀처럼 감을 잡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함부로 마법을 날리면 상대가 버티거나 피한 다음 순식간에 파고들 테니까.
결국 그 대치 상황에서 조바심을 못 견딘 우리반 학생이 다시금 마법을 전개했다.
검술학부 학생은 옆으로 몸을 굴러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한 다음 빠르게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검격이 방어막과 충돌하며 굉음이 울려퍼졌다. 거기서부터 우리반 학생은 패닉에 빠진 기색이었다.
"왜 저리 답답하게 막고만 있어? 빨리 반격하든가 해야지."
그 광경을 보며 카앤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었다.
계속해서 공격을 허용하면 방어막이 무너질 테고, 그렇다고 방어를 유지하는 데만 신경을 기울이면 반격할 틈이 없는 상황.
물론 상대보다 역량이 뛰어나다면 얼마든지 반격할 여유가 있겠지만, 레벨로 보아 두 사람의 실력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검사를 상대로 지척까지 거리를 준 시점에서 마법사에게는 이미 크게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만. 대련 종료다."
결국 방어막이 박살나기 직전까지 가서야 교수가 대련을 중단시켰다.
그렇게 첫 대련은 검술학부 학생 쪽의 승리였다.
나는 내 차례가 되면 어떻게 대련을 끌어갈까 생각해봤다.
'결국에는 간격을 유지하면서 마법을 적중시키면 되는 건데.'
어차피 서로가 경험은 부족하다.
빠르게 움직이는 대상을 맞히는 것에는 마법학부 학생들도 익숙하지 않겠지만, 검술학부 학생들 또한 마법의 변칙성에 익숙할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최대한 다양한 마법을 펼치면서 집중력을 흐뜨러뜨리면 되지 않을까.
몇몇 학생들이 더 대련을 펼치고 내 차례는 금방 다가왔다.
5번의 대련 중 한 번을 제외하고 모두 검술학부 학생들이 승리했다.
카앤이 옆에서 내 어깨를 툭 두드렸다.
"랜, 이겨야 돼. 계속 지기만 하면 리곤한테 자존심 상한다고."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카앤을 보며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이런 걸 보면 애는 애군.
내 상대로 나온 학생은 20레벨 초반 대의 제법 실력 있는 학생이었다.
앞에 자기반 학생들도 대부분 이겨서 그런지 상당히 자신만만한 기색이었다.
대련이 시작함과 동시에 기세 좋게 돌진해오는 상대를 향해, 나는 마법을 펼쳤다.
번쩍!
섬광 마법이 터지며 시야를 환하게 가렸다. 상대는 순간 멈칫했지만 그 정도가 전부였다.
물론 큰 효과를 기대하고 펼친 마법도 아니었다.
이어 곧바로 다음 마법을 전개했다. 상대의 발치를 노리고 자잘한 빙결 마법들을 분산시켜 날렸다.
나는 일부러 큰 마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빠르게 자잘한 마법들만 날리며 거리를 좁히게 두지 않았다.
좀처럼 생각대로 되지 않는지 상대는 약이 오른 기색이었지만 침착함을 잃지는 않았다.
이대로 내 마력이 바닥나기를 기다리는지 굳이 무리하지 않고 회피에만 집중했는데, 물론 저렇게 나올 것까지도 생각은 했다.
약한 마법만 날린 이유는 상대를 무의식 중에 방심시키기 위함이기도 했다.
내 마력 출력의 최대치를 모르는 상대에게 강력한 기습 한 방을 날리기 위해서.
내 마법 실력은 잘 쳐줘도 평균이지만, 마력의 총량만큼은 학년에서도 최상위권이었으니까.
쩌저적!
살짝 빗나간 냉기 마법이 바닥 일대를 얼리며 상대의 다리까지 얼려버렸다.
마법이 이렇게 넓은 범위까지 퍼질 줄은 몰랐는지 순간적으로 발이 묶인 상대는 당황했다.
나는 이어서 허공에 화염구를 보란 듯이 피어올렸다. 상대가 얼빠진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멈추지 않고 공격했다면 결과는 뻔한 것이었기에, 교수가 곧바로 대련을 중단시켰다.
"대련 종료."
물론 승리는 내 차지였다.
"훌륭했다. 전사를 상대하는 마법사의 정석을 보여준 대련이었다."
로켈 교수가 드물게 칭찬을 건넸다.
반대로 상대는 검술학부 교수에게 독설을 듣다가 터덜터덜 제자리로 돌아갔다.
"잘했어, 랜! 역시 해줄 줄 알았어!"
자리로 돌아온 나는 신나서 들러붙어오는 카앤을 떼냈다.
그나저나 나도 꽤 능숙해지기는 했나?
이제 마법을 펼칠 때 느껴졌던 어색함이나 이질감은 거의 없다.
마법에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연습하니 조금씩이라도 실력이 늘기는 하는 건가.
다음으로는 마침 카앤의 차레였다.
카앤은 예상대로 가볍게 상대를 압도하고 승리했다.
카앤에게 부족한 점이라 하면 익힌 마법의 다양성 정도였는데, 고작 한 달 만에 그 약점마저도 많이 사라져서 그녀의 마법실력은 이제 반에서도 상위권이었다.
대련은 계속되었다. 에스카는 예상대로 졌고 바이온은 승리했다.
그리고 거의 수업의 막바지가 되서야 리곤의 차례가 왔는데······.
"와, 설마 했는데 진짜 저 둘이 붙네."
나는 훈련장 한가운데로 나선 두 사람을 바라봤다. 리곤, 그리고 레아.
학생들 사이에는 왜인지 묘한 긴장감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럴 만도 했다. 학년에서도 가장 유명인사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이었으니까.
마법학부 신입생 1위와 검술학부 신입생 1위, 둘의 대련은 그런 매치와 다름이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레아 헤리윈이 이기겠지."
재밌는 건 리곤이 칼데릭 출신이라 그런지, 검술학부 학생들마저도 리곤이 아니라 레아가 이기길 바라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이왕이면 리곤이 이기기를 바랐다.
레벨로만 따지면 레아 쪽이 미세하게 높았기에 결과는 모르는 일이었지만.
레아는 평소와 다름없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상대가 누구든 전혀 관심 없다는 듯.
그리고 그건 리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럼······ 대련 시작."
교수의 선언과 함께 대련이 시작되었다.
선공은 레아의 몫이었다. 전격 마법이 넓은 범위로 그물처럼 퍼지며 리곤을 덮쳤다.
리곤은 자세를 낮춘 채 옆으로 피했다가 빠르게 방향을 바꿔 돌진했다.
리곤의 움직임은 굉장히 빨랐으나, 레아의 대처는 그 이상으로 신속했다.
이번엔 채찍처럼 길게 늘어진 속박 마법이 팔다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 한 차례 공방이 끝났다. 별 수 없이 뒤로 물러난 리곤은 조금 놀란 기색이었다.
제자리에서 툭툭 뛰며 레아를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입가에 옅은 웃음을 걸고 다시 몸을 움직였다.
카가가가각!
무더기로 날아드는 마력의 칼날을 리곤이 피하지 않고 전부 검으로 산산조각 쳐냈다.
어느새 리곤의 검에는 선명한 검기가 맺힌 상태였는데, 자신의 마법이 간단히 막히자 레아의 표정이 조금 찌푸려졌다.
두 사람의 대결은 상상 이상으로 치열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리곤은 굳이 마법을 피하려 하지 않고 막을 수 있는 마법은 전부 정면에서 막으며 거리를 좁혔고, 레아는 점점 마법의 강도를 올렸다.
기어코 리곤이 접근하자 레아는 과감히 지근거리에서 충격파를 떠드려 도로 거리를 벌려버렸다.
공중에서 몇 바퀴 돌다가 바닥에 착지한 리곤은 별 데미지도 없는지 다시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미 학생 수준이라고는 할 수 없는 수준 높은 공방에 학생들이 넋을 놓고 지켜봤다.
리곤을 좀처럼 떨쳐내기가 힘든지, 레아가 드물게 굳은 표정으로 입술을 깨무는 모습이 보였다.
이대로는 리곤의 체력보다도 레아의 마력이 바닥나는 게 빠를 것 같은 상황.
그때 레아의 마력이 범상치 않은 성질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오?'
구슬처럼 작은 보랏빛의 구체 3개가 그녀의 주위에 떠올랐다.
저건 학생들이 일반적으로 배우는 공용 마법 같은 게 아니다.
리곤은 그에 별달리 반응하지 않고 계속해서 돌진했는데, 그때 자색구에서 반응이 일어났다.
번쩍!
마치 유도 미사일처럼 자색구에서 뿜어져나온 광선이 기이하게 휘어지며 리곤의 전신을 노렸다.
간발의 차로 몸을 던져 직격을 피한 리곤이었지만, 하나는 스쳤는지 팔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리곤은 상당히 놀랐는지 휘둥그레 눈을 뜬 채였다.
'저게 무슨 마법이냐.'
뭐, 헤리윈 가문의 비전 마법 같은 건가?
아무리 레아가 뛰어나다고 해도, 저만한 밀도의 마력을 그녀의 역량으로 다 제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녀가 전부 제어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면 마법의 성질 자체가 그런 거겠지. 꽤나 살벌한 마법이었다.
"인정할게. 너는 강해."
여전히 주위에 자색구들을 띄운 채 레아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대련은 내 승리야. 이 마법까지 사용하면 적당히는 안 되니까, 패배를 인정해."
확실히 저런 걸 정통으로 맞았다가는 조금 다치는 정도로는 안 끝날 것이다.
로켈 교수를 보니 그도 그만 대련을 중단시켜야 겠다고 여기는 기색이었으나······.
"너도 엄청 강하긴 하네."
리곤이 드물게 높아진 언성으로 말했다.
입가에 환한 웃음을 지은 채 피를 닦아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너무 오만한 거 아냐? 공격 한 번 스쳤다고 그렇게 말하는 건."
레아의 표정이 차갑게 일그러졌다.
로켈 교수가 조금 난감한 눈길로 검술학부 교수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나 팔짱을 끼고 서있던 그녀는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괜찮지 않겠습니까, 로켈 교수님. 사고가 나기 전에는 확실히 막아주실 수 있으시면서."
로켈 교수는 성가시다는 듯 혀를 찼지만 결국 대련을 중단시키지는 않았다.
지이잉!
세 줄기의 자색 광선이 다시금 리곤을 노리고 쏘아졌다.
리곤은 이건 막을 수 없다 생각했는지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회피하기 바빴다.
점점 가속이 붙는 리곤의 움직임을 레아가 바쁘게 눈으로 쫓았다. 광선은 어지럽게 휘어지며 끈질기게 리곤을 추적했다.
이대로면 여전히 불리한 쪽은 리곤처럼 보였지만······.
처억.
갑자기 동작을 멈춘 리곤이 우뚝 검을 위로 치켜들었다. 완전히 공격에 자신을 노출시킨 채.
그에 레아도 한순간 멈칫했다.
"뭐 하자는 거야. 포기?"
"설마. 이대로면 힘들 것 같아서 도박 좀 해보려고."
리곤이 발을 굴렀다. 그와 동시에 레아도 리곤을 향해 광선을 일제히 쏘아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리곤이 검이 유려한 경로를 그리며 광선들을 모조리 빗겨 쳐냈다.
빗겨 쳐낸 광선들은 한순간 레아의 제어에서 벗어났고, 그 틈은 거리가 좁혀지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콰앙!
리곤의 검이 광선 마법을 제어하며 약해진 레아의 방어막을 단숨에 박살냈다.
레아가 파르르 떨리는 눈으로 자신의 목에 겨누어진, 반쯤 부서진 검날을 바라봤다.
"내가 이겼네."
"······."
그렇게 말한 리곤이 숨을 돌리며 검을 거두었다.
불리했던 형세를 뒤집고 대련은 결국 리곤의 승리였다.
설마 광선을 전부 빗겨 쳐낼 줄이야.
나도 검술을 익혔기에 저게 현재 리곤의 수준에서 얼마나 터무니없는 짓인지 잘 알았다.
과연 아셸이 자신 이상의 천재라고 칭한 재능다웠다.
"······졌어? 내가?"
여전히 제자리에 우두커니 선 레아가 멍하니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기 실력에 자부심이 대단해 보였으니 전력을 다했음에도 패배한 것에 충격인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