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즉사기 들고 게임 속으로-145화 (145/189)

수업과 적응 (5)

몬스터 탐구는 이름 그대로 몬스터에 대해서 배우는 수업이었다.

몬스터들의 특성, 습성, 약점 등을 배우고, 쓰러뜨리는 방법에 대해서 배우는 거라 할 수 있었다.

이전 수업들까지는 교실에서 이론으로만 배웠지만 오늘은 실습이라고 담당 교수가 예고했다.

조교수의 안내에 따라 이동한 곳은 본관 건물의 지하에 위치한 넓은 공동 같은 장소였다.

"뭔가 으스스하네. 갑자기 어디서 몬스터라도 튀어나오는 거 아니야?"

"으, 설마."

카앤이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리자 에스카가 불안한 듯 몸을 움츠렸다.

확실히 수업 장소치고는 음산한 분위기였기에 다른 학생들도 긴장한 기색이었다.

엘폰의 지하 공간에 대해선 이미 알고 있는 바가 있었다.

이곳은 지상의 탁 트인 공간에서 하기에 위험하거나 난감한 연구들을 하는 장소라고 들었다.

예를 들어서 몬스터들을 상대로 한 생체 실험, 혹은 테이밍 마법 같은 것들 말이다.

오늘 몬스터 탐구 수업이 바로 이런 곳에서 진행되는 이유였다.

몬스터를 가둔 거대한 짐마차들이 아카데미 안으로 들어오는 걸 몇 번 본 적은 했었는데, 전부 이곳 지하에 가둬놓고 사육하는 모양이었다.

곧 담당 교수가 도착했다.

"그럼 이동해볼까요? 첫 실습이고, 오늘은 어디까지나 견학 같은 느낌이니 너무 긴장들하지 마세요."

교수의 안내에 따라서 길게 펼쳐진 지하 복도를 걸었다.

마법 결계가 펼쳐진 관문을 통과하자 곧 죄수들을 가둬놓는 지하 감옥 같은 공간이 나타났다.

철창 너머에 갇혀있는 몬스터를 본 학생들이 작게 탄성을 터뜨렸다.

'고블린인가.'

처음으로 보게 된 몬스터는 고블린이었다. 가장 흔하고 약한 몬스터 중 하나.

교수는 경비에게 양해를 구하고 학생들이 몬스터를 가까이서 구경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견학이라는 게 이런 말이었나. 동물원 구경이라도 하는 느낌이다.

"와, 진짜 엄청 못생겼네."

"저기 저 녀석 봐봐. 구석에 혼자서 머리 박고 있는데?"

캬아악!

그때 몇몇 고블린들이 괴성과 함께 철창으로 달려들어 몸을 부딪혀왔다.

킥킥대며 구경하던 몇몇 학생들이 깜짝 놀라 철창에서 물러났다.

달려든 고블린이 놀란 학생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놀리듯 킬킬 웃었다.

얼굴이 시뻘개진 학생들을 보며 교수가 말했다.

"고블린은 약하지만 영악해서 사람을 도발하고 농락할 줄도 알죠. 말했었죠? 아무리 약한 몬스터라도 방심은 금물이라고. 야생에서 고블린을 만난다면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항상 냉정을 유지해야 할 겁니다."

빠직!

철창 주위에 일어난 스파크에 고블린들이 화들짝 놀라서 다시 구석으로 도망쳤다.

손을 거둔 교수가 다음 구역으로 학생들을 이동시켰다.

구경하게 된 몬스터들 중에는 이론 수업에서 배운 몬스터들도 있었고, 아닌 몬스터들도 있었다.

나는 근처에서 걷고 있는 카앤을 슬쩍 쳐다봤다.

다른 학생들과 달리 그녀는 의외로 몬스터 구경이 지루한 기색이었다.

원래 살던 산맥에서 몬스터라면 질리도록 마주쳐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슬슬 수업의 막바지에 다다른 장소는 지금까지 지나왔던 관문들과는 거대한 관문이었다.

"여기서 마지막 몬스터를 보고 수업을 마치도록 할 겁니다."

마법 결계의 마력이 유별나게 센 걸로 보아 제법 강한 몬스터들이 갇혀있는 건가 싶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았다.

【Lv. 46】

그르르르.

철창 너머, 어둠 속에서 섬뜩하게 빛나는 붉은 안광.

마치 거인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인간형 몬스터.

'쾨이트인가.'

나는 놈의 특징인 회색 피부를 보고 곧바로 정체를 알아챘다.

놈이 뿜어내는 살기에 몇몇 학생들이 몸을 떠는 게 보였다.

몬스터의 야성은 보통 짐승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학생들이 이런 살기에 익숙할 리가 없으니, 아무리 감옥에 갇혀있는 무력한 몬스터라고 해도 움츠러들 만했다.

"저번 수업에서 잠깐 이야기했던 몬스터인 '쾨이트'입니다. 이명으로 마법사 사냥꾼이라고도 불리죠."

쾨이트, 마법사 사냥꾼.

놈이 마법사 사냥꾼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유별나게 높은 마력 저항력 때문이었다.

웬만한 수준의 마법사들은 놈에게 자그마한 생채기조차 낼 수 없다고 했던가.

'그래봤자 40레벨대 몬스터지만.'

그나저나 엘폰은 이렇게 큰 놈까지 포획해와서 실험체로 쓰는 건가. 어지간하다 싶었다.

그때 교수가 묘한 미소를 짓더니 갑작스러운 이야기를 했다.

"이대로 실습을 끝내기엔 모두들 아쉽지 않나요? 마지막으로 하나 재밌는 게임을 해볼까요?"

······게임?

"설명했다시피 쾨이트는 마법사 사냥꾼이라 불리는 몬스터인 만큼 마력에 굉장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혹시 이 쾨이트에게 상처를 입힐 자신이 있는 학생 없나요? 만약 아주 조금이라도 상처를 입히는 데에 성공한다면 내 수업에 바로 A+ 성적을 주도록 하죠. 학기 시험과 앞으로 남아있는 수업들과는 무관하게요."

그 파격적인 말에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몬스터 탐구 수업은 이제 고작 3번째 수업일 뿐이었다. 그런데 바로 최고 등급의 성적을 주겠다니?

철컹.

교수가 시원스레 철창의 문을 개봉하며 말했다.

"도전해볼 학생 있나요? 기회는 한 번을 줄게요. 도전할 학생은 철창 안으로 들어가서 쾨이트에게 자유롭게 마법을 펼쳐보도록 하세요."

하지만 선뜻 나서는 이는 없었다.

아무리 구속되어있는 몬스터라고 해도, 또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교수가 나서겠지만, 저런 괴물을 상대로 정면에서 공격 마법을 펼칠 엄두가 쉽게 날 리 없었으니까.

"한번 해볼까?"

물론 카앤은 예외였다.

턱을 긁적이며 중얼거리는 모습에서는 긴장감이나 두려움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지원자가 안 나오면 그녀가 나서지 않을까 싶었는데······.

"제, 제가 할게요."

의외의 인물이 그보다 먼저 손을 들어올렸다.

카앤도 놀란 기색으로 에스카를 돌아봤다. 손을 들어올린 사람은 바로 에스카였다.

에스카가 이런 일에 능동적으로 나서는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A+ 성적이 그만큼 탐이 났나?

"야, 에스카. 무리하는 건 아니야?"

"괜찮아. 한번 해볼게."

크게 심호흡을 한 에스카가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철창 안쪽으로 걸어들어갔다.

쾨이트와 가까이 마주하고 선 그녀의 모습은 마치 사자 앞의 생쥐나 다름이 없었다.

"어때? 성공할 것 같아?"

"그럴 리가 있나. 쟤 마법 실력은 반에서 최하위잖아."

주위에서 비웃으며 떠드는 학생들을 카앤이 매섭게 노려봤다. 녀석들이 움찔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에스카의 수준으로 저만한 레벨의 몬스터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을 리는 없었으니.

"하아, 하아······."

막상 가까이 마주하고 서자 느껴지는 압력이 장난 아닌지, 에스카의 호흡이 다시 거칠어졌다.

그녀는 간신히 마력을 끌어올려 마법을 펼쳤다.

허공에 피어오른 불덩이가 쾨이트의 머리 쪽을 향해서 날아갔다.

'눈을 노리는군.'

눈이라면 외피와 달리 연약할 테고, 거의 유일한 약점이었으니 노려볼 만하긴 했지만······.

크릉!

그러나 고개를 거세게 뒤흔든 쾨이트가 날아든 불덩이를 손쉽게 소멸시켰다.

상처 하나 없이 화만 잔뜩 난 놈이 엉거주춤 서있는 에스카를 향해서 입을 쩍 벌리고 포효했다.

"꺄악······!"

에스카가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덜덜 떠는 그녀에게 교수가 다가가서 일으켜주었다.

"도전 정신은 좋았어요. 하지만 그 정도 위력으로는 쾨이트에게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한답니다."

그렇게 완전히 혼이 빠져서 철창 밖으로 나온 에스카였다.

카앤이 그런 그녀를 다독여주었다.

"괜찮아, 에스카?"

"으응, 괜찮아······."

방금의 포효에 다른 학생들도 완전히 질린 기색이었다.

아무리 성적이 탐난다고 해도 이대로면 더 도전하려는 학생은 없지 않을까 싶었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또 손을 들었다. 레아였다.

철창으로 걸어들어간 레아가 차분한 기세로 쾨이트의 앞에 섰다.

방금 전 공격으로 놈은 더욱 흉폭해진 기세였지만 그녀는 조금도 주눅들지 않은 모습이었다.

나는 조금 흥미로운 기색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녀라면 과연 타격을 입힐 수 있을까? 에스카처럼 눈을 노리려고 할까?

그녀가 곧바로 손을 뻗더니, 쾨이트를 향해서 마법을 펼쳤다.

콰아앙!

광선처럼 쏘아져나간 마력포에 적중당한 쾨이트가 고통에 찬 괴성을 내질렀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쾨이트의 가슴팍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너무나 간단한 성공. 그것도 약점을 노린 것도 아닌 완벽한 타격이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광경을 바라봤다. 저건 그냥 단순한 마력포가 아니라······.

크오오오!

상처를 입은 쾨이트가 격하게 날뛰려고 하자 레아가 움찔 놀라서 다시 마법을 펼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전에 교수가 나섰다.

넓게 퍼져나간 교수의 마력이 쾨이트의 전신을 감싸고 억눌렀다.

쾨이트를 진정시킨 뒤, 교수가 짝짝 박수를 치며 감탄안 어조로 말했다.

"대단해요, 레아 헤리윈 학생. 이렇게 간단히 성공해버릴 줄은 몰랐는데."

다른 학생들도 경외와 부러움에 찬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런 와중에 카앤이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 내가 먼저 하려 했는데."

문득 카앤의 옆에 서있는 에스카의 표정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조금 어두워진 낯빛으로 입술을 꽉 깨문 채 레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

저녁 시간대에는 식사 뒤에 간간이 공용 훈련장에서 연습을 하기도 했다.

원래는 넷이서 했지만 최근에는 멤버가 추가되어 바이온도 종종 함께 어울렸다.

"카앤, 랜. 너희는 마법사답지 않게 몸이 제대로 단련되어 있군. 설마 체술도 익힌 건가?"

"응."

"너희는 다들 신기한 녀석들이야. 리곤도 검술뿐 아니라 마법도 익히고 있다고 들었다."

"너도 이참에 마법 좀 배워보는 게 어때? 바이온."

"쓸데없다. 내게는 육체와 검 한 자루면 충분하다."

바이온은 딱딱한 면이 있었지만 성격이 나쁜 녀석은 아니었다.

성격까지 생김새 그대로 전사답다고 해야 되나.

"먼저들 가. 난 혼자서 조금만 더 하다 가려고."

"그래? 알겠어."

훈련을 끝낸 뒤, 내 말에 애들이 먼저 훈련장에서 떠났다.

더 훈련하겠다는 건 핑계였다. 도서관에 숨겨진 신비가 생성됐는지 확인을 안 한 지도 꽤 오래되서, 그걸 확인하러 가기 위해서였다.

잠시 주저앉아서 쉬다가 슬슬 밖으로 나가려고 일어서는데······.

'······?'

훈련장에 학생 한 명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다름이 아니라 레아였다.

늦은 시간이었고, 그녀와는 한 번도 훈련장에서 마주친 적이 없었기에 의외였다.

'왜 굳이 공용 훈련장에 왔지.'

마법학부와 검술학부는 훈련장도 따로 나뉘어서 마련되어있었다.

학부별 훈련장이 시설은 더 좋았지만 이쪽은 리곤이 있어서 공용 훈련장에 온 거였고.

공용 훈련장이 더 넓어서 그런가, 아니면 사람이 더 없어서 그런가?

눈이 마주쳤지만 레아는 이쪽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훈련장 한편에 자리를 잡고 섰다.

막 떠나려던 나는 잠시 더 남아있기로 했다.

쟤는 마법 연습을 어떻게 할까 문득 호기심이 들어서였다.

레아가 펼친 마법은 간단한 빙결 마법이었다. 허공에 새하얀 냉기가 뭉쳐졌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무언가 묘하다는 걸 느끼다가, 이내 이질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저번의 그건가?'

저번에 몬스터 탐구 실습에서 그녀가 쾨이트를 상대로 선보였던 마력포.

그것도 봤을 때 묘하다고 생각하긴 했었다. 그건 분명 평범하게 마법을 펼친 것과 달랐으니까.

잠시 그녀를 더 관찰하던 나는 이내 원리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 설마 술식을 응용한 건가?"

그렇게 중얼거렸는데, 레아가 갑자기 마법을 거두고 이쪽을 홱 돌아봤다. 왜인지 놀란 기색으로.

갑자기 나는 왜 쳐다보나 싶은데 이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온 그녀가 대뜸 말을 걸어왔다.

"방금 뭐라고 했어?"

"······뭐?"

"방금 뭐라고 했냐고."

그 거리에서 혼잣말이 들렸나? 귀도 좋네.

'근데 왜 이러는 거야.'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대답했다.

"네 방금 마법, 술식을 응용해서 위력을 증폭시킨 게 아닌가 싶어서. 저번 몬스터 탐구 실습 때처럼."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았는데?"

"어떻겠냐니······ 그냥 보이니까 안 건데."

나는 그렇게 말하고서 그녀가 이렇게 반응하는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가. 보통은 그냥 봐서는 눈치채지 못하려나?

초감각을 가진 나는 마력의 흐름을 세세하게 하나하나 파악할 수도 있다.

또 최근에는 마법을 공부하며 마법적 지식도 나름 많이 늘어난 상태였다.

그래서 그녀의 마법이 전개 도중 어느 순간 갑자기 위력이 증폭한 게 마력 조작의 결과만은 아닌 것 같아서, 자연스레 술식과 연관지어 원리를 짐작한 것이고.

레아는 잠시 날 노려보듯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눈썰미는 제법 좋네. 맞아. 술식에서 마법의 위력을 담당하는 요소만 정확히 파악해서 변형한 거야."

"그렇구나."

그런 식으로도 마법의 위력을 늘리는 게 가능하군.

학생 수준에서 사용할 만한 기술은 아니다 싶었다.

"······."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아는 어째서인지 계속 내 앞에 서있었다. 더 할말이 있나?

내가 빤히 쳐다보자 그녀는 그제서야 몸을 돌려 제자리로 돌아갔다.

'술식의 변형이라.'

나는 한번 화염 마법을 펼쳐봤다.

물론 변형의 원리를 적용하는 건 감도 전혀 못 잡고 실패했다.

어떤 식으로 변형해야 하는지는 고사하고, 나는 아직 내 술식의 정확한 구성조차 모른다.

레아야 자신의 술식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기에 가능한 거고 내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마법을 거두고 시선을 돌렸다.

이쪽을 계속 힐끔거리던 레아가 새삼 실망한 표정을 짓고서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뭔데, 쟤는.'

이상한 녀석이다 생각하며 나는 그만 훈련장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곧장 공용 도서관으로 향해서 신비를 확인했다. 여전히 신비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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