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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사기 들고 게임 속으로-143화 (143/189)

수업과 적응 (3)

엘폰에 입학하고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계승자, 카앤과 부쩍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식사도 리곤과 에스카를 포함해 항상 넷이 함께 했고, 의도적으로 계속 마주치며 가능한 어울리려고 했기에 친해지는 건 계승자의 성격상 시간문제였다.

처음에 리곤을 조금 불편해했던 에스카도 리곤에 대해 알게 되면서 금세 편견을 지운 것처럼 보였다.

"······."

잠에서 깨어난 나는 버릇적으로 카앤이 있는 방의 기척부터 확인했다.

아직 자고 있는지 두 사람의 고른 숨소리만 울려퍼졌다.

시간을 확인한 뒤,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씻을 준비를 했다.

엘폰은 일주일을 주기로 6일은 수업일과 하루의 휴일이 존재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휴일이었다.

그렇기에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일 필요는 없었지만,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난 항상 카앤보다 늦게 잠들고 일찍 일어나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신경 써야 했으니까.

설마 아카데미 안에서 무슨 위험한 일이 생기기야 하겠냐만은, 그렇다고 방심은 금물이었다.

내 기척에 리곤도 곧 깨어나서 기지개를 켰다.

"······랜, 오늘 휴일인데 뭐 할 거야?"

"글쎄."

물론 그건 카앤이 뭘 할지에 달려있었다.

그리고 난 이미 그녀가 오늘 뭘 할지 알고 있었다.

어젯밤에 에스카와 나눈 이야기를 전부 귀담아들었으니까.

'밖으로 외출을 할 거라고 했지.'

휴일에 학생들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었다. 놀아도 되고, 자율적으로 학습을 해도 됐다.

그리고 아카데미 밖으로 외출하는 것 역시도 가능했다.

카앤은 아무래도 오늘 에스카와 함께 밖으로 나가서 도시를 둘러볼 모양이었다.

내게 있어서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조금은 기대감도 있었다.

내 궁극적인 목표는 어디까지나 카앤이 성검 조건을 충족시키도록 하는 거였고, 밖으로 나가면 뭐라도 사건이 생길지 모르는 거였으니까.

식사할 시간이 되고, 나와 리곤은 기숙사를 나섰다.

식당에서 카앤하고 에스카와 만나서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그래서 에스카하고 훈련장에서 마법 연습 좀 하다가 밖으로 나가려고. 너희들은 어때?"

입안에 음식을 한가득 넣고 들뜬 기색으로 말하는 카앤이었다.

내가 대답하기 전에 리곤이 먼저 동조했다.

"나도 안 그래도 한번 나가볼 참이었어. 바로 아카데미로 들어와서 도시 구경도 제대로 못 했었거든."

"그래? 잘 됐네. 오늘 같이 실컷 구경하면 되겠네."

"오전 10시부터가 외출 허가라고 했었나. 너도 갈 거지, 랜?"

"물론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식사를 마치고서 예정대로 우리는 훈련장에서 함께 훈련을 했다.

리곤은 검술 훈련을 했고,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은 마법 연습을 했다.

나는 땀까지 흘리며 마법 전개에 집중하는 에스카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머릿속의 술식을 마력에 녹이는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아, 말로 설명하기 어럽네."

카앤은 그 옆에 서서 자신의 요령을 설명하느라 애쓰고 있었다.

물론 술식이라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었기에 별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내가 보기에 에스카는 나보다도 마법에 대한 재능이 없었다.

딱 마법을 펼칠 수는 있는 정도, 마법사로서는 간신히 턱걸이 수준.

오늘 카앤이 에스카와 함께 훈련을 하려고 한 이유는 아마 저번의 대인 전투 수업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성장보다도 에스카를 도와주기 위해서.

하지만 로켈 교수의 말이 좀 심하긴 했어도 틀린 부분은 없어 보였다.

"흐아······."

금세 마력을 전부 소진한 에스카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가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역시 어렵네. 난 마법에 별로 재능이 없나봐."

"에이, 그런 게 어딨어? 더 연습하면 분명 잘하게 될 거야."

한편, 한쪽에서 혼자 검을 휘두르고 있던 리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좀 쉬었다가 이제 슬슬 갈까?"

"그러자."

리곤이 카앤을 슬쩍 바라보고는 갑자기 물었다.

"근데 카앤, 혹시 너도 랜처럼 마법 말고 체술도 익혔어?"

"어, 맞아. 어떻게 알았어?"

"그야 몸부터가 단련된 몸인 게 보이니까. 손에 굳은살도 그렇고."

나는 그 대화를 들으며 문득 두 사람이 검으로 대련을 펼치면 누가 이길까 호기심이 들었다.

레벨은 리곤이 좀 더 높긴 했지만, 30레벨대에서 몇 레벨 차이는 싸워보기도 전에 승패를 확정할 수 있을 정도의 큰 차이는 아니었으니까.

물론 갑자기 둘더러 싸워보라고 할 수도 없었기에 사소한 궁금증으로 그쳤다.

휴일의 외출 허용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였다.

우리는 외출 명부를 작성했다. 담당자에게 시간 내에 돌아와서 체크하지 않으면 벌점이라는 주의를 들은 뒤, 곧장 아카데미 밖으로 나섰다.

우리뿐 아니라 아침부터 외출을 하는 학생들은 많았기에, 거리에 그 모습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일주일에 한 번, 8시간뿐인 귀한 외출 시간이니까.

"가려고 생각한 곳은 있어?"

"아니? 그냥 발길 가는 대로 구경하는 거지, 뭐."

라피드 시는 대도시라서 하염없이 대로만 따라서 걸어도 꽤나 볼거리가 많았다.

우리는 광장에서 열린 연극을 구경하다가 자연스레 장터 거리로 걸음을 옮겼다.

노점에 진열된 먹거리들을 보며 카앤이 눈을 반짝였다.

"저거 되게 맛있어 보인다. 저게 뭔지 알아, 에스카?"

"음, 감자를 얇게 잘라서 기름에 튀긴 음식 같은데······?"

카앤과 에스카는 그 감자튀김 비스무레한 걸 샀고, 리곤은 어디선가 양념이 가득 발린 닭꼬치 같은 걸 사왔다.

나는 적당히 캐러맬 같은 게 한가득 담긴 병을 사서 애들에게도 나눠주었다.

그렇게 이것저것 군것질 거리를 사서 서로 나눠먹으며 수선한 거리를 걸었다.

"······?"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 저멀리 눈에 들어온 건 그때였다.

과일이 진열된 노점 앞에 서서 과일들을 둘러보고 있는 중년의 남성.

순간 내가 잘못 봤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뭐야, 저거?'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있어?

용사한테 따로 들은 말은 없었는데?

거리가 더 가까워지고, 마찬가지로 남자를 발견한 카앤이 드물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

"왜 그래?"

"아니······ 응? 잠깐만."

남자도 곧 우리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카앤을 본 그가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딸아!"

카앤은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서있다가, 성큼성큼 그에게 다가가서 얼굴을 이리저리 훑어봤다.

"······아버지 맞지?"

"그래도 애비인데 얼마나 안 봤다고 얼굴도 못 알아보냐?"

"아니, 뭔데? 아버지가 왜 여기 있는데?"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리곤과 에스카도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남자, 벤이 태연하게 물었다.

"아무튼 그동안 잘 지냈느냐?"

"아버지가 왜 여기 있냐니까?"

"뭐긴 뭐냐, 산에서 내려온 거지. 여기 도시에 자리 잡기로 했다."

"······그런 말 한 적 없었잖아?"

"꼭 너한테 말을 해야 되냐?"

카앤은 하도 어처구니가 없는지 탄식만 몇 차례 내뱉다가 중얼거렸다.

"아니, 그럴 거면 나랑 같이 내려오지 왜······."

나도 이게 지금 뭔 상황인가 싶었다.

용사에게 듣기로 카앤의 아버지까지 함께 도시로 왔다고 들은 적은 없었으니까.

말하는 걸 들어보니, 두 사람에게 언질도 없이 혼자 따로 산에서 내려온 건가?

그가 나와 리곤, 에스카를 슥 훑어보고는 말했다.

"벌써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나 보구나. 다들 반갑소. 카앤의 아비인 벤이오."

벤이 인사를 건네자, 에스카가 먼저 허둥지둥 인사를 받았다.

"아, 저는 에스카라고 해요. 카앤과 같은 기숙사를 쓰는 친구입니다."

"리곤입니다. 저도 친한 친구에요."

"랜입니다."

카앤이 머리를 긁적이며 의아한 투로 벤에게 물었다.

"웬 경어?"

"아카데미 학생이니 다들 귀족분들 아니냐? 예의를 지켜야지."

"아니, 귀족은 에스카 하나뿐인데. 그보다 나도 편하게 말하는데 아버지가 그러니까 이상하잖아."

"맞습니다. 편히 말씀해주세요."

벤이 다시 한 번 우리를 둘러보고는 껄껄 웃었다.

"그럼 그럴까? 알겠다."

나는 그의 분위기가 저번에 봤을 때와 사뭇 다르다고 느꼈다.

산맥에서 봤을 때는 좀 더 무뚝뚝한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

"아버지 집은 어디에 있어?"

"여기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 있다. 올 테냐?"

"응. 너희들도 괜찮지?"

카앤의 물음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뜬금없게도 집들이를 하게 생겼다.

***

벤의 집은 도시 외곽에 위치한 자그마한 저택이었다.

특별히 크지는 않았지만 혼자 살기에는 차고 넘치도록 넓은 집이었다.

"돈은 어디서 났어, 아버지? 집 사려면 돈이 많이 필요한 거 아닌가?"

"다 너는 모르는 재산이 있다. 짐승이나 몬스터 가죽 같은 것도 좀 챙겨와서 팔았고."

넓은 공간에 가구라고는 테이블과 의자 정도가 전부라서 내부는 휑했다.

우리는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차를 대접받았다.

어색한 분위기도 잠시고 이내 활발하게 이야기를 나누게 됐는데, 주제는 주로 카앤에 대한 것이었다.

"그래서, 산에서 살 때는 이 녀석이······."

리곤과 에스카가 카앤에 대해 아는 건 그녀가 어릴 적부터 깊은 산속에서 살았고, 우연히 연이 닿게 된 엘폰의 관계자에게 입학을 권유받고 추천 입학을 했다는 사실 정도였다.

벤은 산에서 생활할 때의 카앤이 어땠는지를 말해줬고 두 사람은 그걸 흥미롭게 들었다.

"푸핫, 그게 진짜야? 카앤?"

"아이씨······ 쓸데없는 이야기 좀 하지 마, 아버지."

낱낱이 들춰지는 흑역사에 카앤이 드물게 부끄러워하는 기색으로 벤의 입을 막으려고 들었다.

그야말로 사이가 좋은 부녀지간의 모습이다. 보는 사람도 기분 좋아질 정도로.

"······."

순간 불쑥 하고 올라온 영문 모를 감정에, 나는 묘한 기분을 느끼며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봤다.

뭐지? 기분탓인가?

아주 짧은 찰나에 불과했기에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깊게 생각하지 않고 넘겼다.

시간은 어느새 오후가 훌쩍 넘었다. 슬슬 자리를 정리하고 나서기로 했다.

벤이 마당까지 나와서 우리를 배웅해주는 가운데, 카앤이 그에게 툭 물었다.

"그래서 진짜 앞으로 계속 여기서 사는 거야?"

"그래. 나도 평생 산에서만 박혀 살 생각은 아니었다."

카앤은 대수롭지 않다는 말투와 달리 내심 기쁜 기색이었다.

아마 산에서 떠날 때 그를 혼자 두고 떠나는 걸 신경 썼던 게 아닌가 싶었다.

"뭐, 그럼 외출할 때마다 찾아와서 밥이나 같이 먹으면 되겠네."

"외출은 제한 없이 할 수 있는 거냐?"

"아니, 일주일에 한 번."

"그건 잘됐구나. 너무 자주 찾아오면 나도 피곤하다. 적당히 와라."

카앤이 콧방귀를 뀌고는 손을 휘휘 저었다.

"간다."

"오냐. 가라."

나도 세 사람의 뒤를 따라서 걸음을 옮기려는데, 문득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렸다.

"저 녀석을 잘 부탁하마."

나는 고개를 돌려 벤을 바라봤다. 그가 빤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내 그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지어졌다.

"철도 없고 아직 부족한 게 많겠지만, 그만큼 순수하고 올곧은 아이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물론이죠."

아카데미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옮기며 세 사람이 떠들었다.

"아버지가 되게 재밌는 분이시네. 부럽다."

"부럽긴 뭐가? 하여튼 우리 아버지지만 뭔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니까."

거리가 떨어졌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렸다.

그는 집 안으로 들어갔는지 마당에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왜 그래?"

카앤이 의아한 기색으로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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