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과 적응 (2)
다음날 2교시 수업은 대인 전투 수업이었다.
어제 들었던 대로 수업을 맡은 담당 교수는 담임인 로켈 교수였다.
학생들은 교실이 아니라 넓은 훈련장 같은 장소로 이동해서 둥그렇게 둘러섰다.
"대인 전투 수업은 이름 그대로 사람을 상대로 하는 전투를 훈련하는 수업이다."
교수가 한가운데에 서서 수업에 대해 설명했다.
"너희들은 우선 같은 마법사를 상대로 싸우는 마법전부터 배우게 될 것이다. 마법전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나?"
여지없이 어제의 수업처럼 질문이 던져졌다.
그러나 이번엔 대답을 듣기 위한 질문이 아니었는지 로켈 교수가 곧바로 말을 이었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 따윈 없다. 상대보다 우월한 마력량, 우월한 마법 전개 속도, 익힌 마법의 다양성과 조합의 효율성, 상대의 마법을 읽고 파훼하는 통찰력, 환경 활용, 심리전, 전부 다 빠짐없이 중요하지. 압도적인 기량 차이가 있는 게 아니고서야, 몇 가지 요소 따위로 절대적인 우위를 판가름할 수 없는 변수 덩어리가 바로 마법전이다."
그가 난데없이 두 학생을 집어서 가리켰다.
"말했다시피 이 수업은 말로만 떠드는 수업이 아니다. 거기 두 사람, 이름이 뭐지?"
지목을 받은 학생들이 대답했다.
"세바스 마디르입니다."
"한트 아센입니다."
"세바스 마디르, 한트 아센. 가운데로 나와서 마주 서라."
그들은 얼떨떨한 기색으로 나와 훈련장 한가운데에 마주 섰다.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교수가 상대해주며 가르치는 게 아니라 첫 수업부터 학생들끼리 싸우게 하는 건가?
"규칙이나 제한은 따로 없다. 대련이지만 실전이라 생각하고, 지금부터 서로 최선을 다해 겨루도록."
로켈 교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두 사람에게서 떨어져 팔짱을 끼고 섰다.
갑자기 싸우라는 말에 그들은 당혹스러워하며 교수를 바라보기만 했다.
"승리 기준은 내 판단 하에 대련을 중단시킬 때까지다. 대련의 내용과 결과는 모두 성적에 포함된다."
성적에 포함된다는 말에 그제야 두 학생은 진지해진 기색이었다.
"셋을 세면 시작이다. 하나, 둘······."
전투가 시작하고 선공으로 세바스가 먼저 화염구를 피어올렸다.
상대도 거의 동시에 방어 마법을 전개했는데, 방어막에 충돌한 화염구가 확 터지며 불길을 퍼뜨렸다.
진짜 실전과 다름없이 시작된 전투에 몇몇 학생들은 익숙하지 않은지 긴장한 기색이었다.
콰앙! 쾅!
연달아 굉음이 울리며 마력이 충돌했다.
전투의 양상은 한동안 세바스가 계속 공격 마법을 펼치며 몰아붙이는 식으로 흘러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트에게 갑자기 흐름을 뺏겨 역으로 몰아붙여지기 시작했다.
세바스가 상대의 충격파 마법을 완전히 막아내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그제야 교수가 나섰다.
"그만. 대련 종료다."
한트는 긴장이 풀린 기색으로 숨을 내뱉었고, 세바스는 분한 기색으로 살짝 인상을 구겼다.
로켈 교수가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세바스 마디르, 대련은 자네의 패배다. 패배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지?"
그가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제 마력량과 출력이 상대보다 조금 더 부족했습니다."
"그것뿐인가?"
"그것뿐인 것 같습니다. 적어도 동등했다면 제가 먼저 승기를 잡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상대가 자신보다 마력의 총량이 우위에 있다는 사실도 모르면서, 자진해서 전투를 화력전으로 끌고 갔다는 게 되는군. 방어막에 대고 공격만 쏟아부으며 말이지."
"······."
"물론 반대로 자네의 마력 총량이 더 월등했다면 먼저 주도권을 잡아 승리할 확률이 높았겠지만, 결과는 마력을 먼저 전부 소진해버린 것이 패인이 되었다. 목숨을 건 전투에서도 그런 도박을 할 수 있겠나?"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는지 세바스는 아차 싶은 기색이었다.
"다시 물어보겠다. 패배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지?"
"······마력의 총량도 부족했지만, 시작부터 상대의 기량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상대의 역량을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는 앞으로 어떻게 전투를 끌어갈 것이지?"
"최대한 마력 소모를 아끼면서 상대를 탐색하는 걸 최우선으로 할 것 같습니다."
로켈 교수가 피식 웃었다.
"그래, 탐색. 기본 중의 기본이지. 말하면서도 스스로 이 당연한 걸 왜 잊고 있었나 생각할 것이다. 말과 글로는 배웠지만, 그런 쉬운 것 하나도 실전에서 상기하고 적용하는 건 이토록 차이가 큰 일이다."
그가 한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한트, 자네는 대련에서 승리했지만 스스로에게 지적할 점이 있다고 생각하나?"
"처음에 방심해서 너무 쉽게 상대에게 주도권을 준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러지 않았다면 승기를 더 쉽게 잡을 수 있었겠지. 마력 총량 외에는 얼추 수준이 비슷했으니."
로켈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 외에도 부족한 것들은 산더미지만 첫날이니 이 정도로 마치지. 당장은 방금 말한 요소들이 중점이었다. 충분한 공부가 되었길 바란다. 이만 들어가도록."
짧고 명확한 피드백이었다. 이런 식으로 하는 수업인 거군.
두 사람은 희비가 엇갈려서 제자리로 돌아갔다.
로켈 교수는 곧바로 다음 대련자들을 찾는 듯 학생들을 훑다가 시선을 멈추었다. 바로 내게서.
그리고 그 다음으로 시선이 닿은 사람은 다름이 아닌 레아였다.
"거기 두 사람, 이름이 뭐지?"
······하필 또 쟤인가?
어제 이론 수업부터 참 우연찮게 잘 엮인다 싶었다.
"랜입니다."
레아도 내가 있는 쪽을 힐끗 쳐다보고는 대답했다.
"레아 헤리윈입니다."
"가운데로 나오도록. 지금부터 계속 이런 식으로 모든 학생들이 한 번씩 대련을 할 것이다."
나와 레아는 훈련장 한가운데로 나와서 마주 보고 섰다.
몇몇 학생들이 내게 불쌍하다는 시선을 보내는 게 느껴졌는데, 아무래도 상대가 상대여서리라.
물론 내가 마법만으로 대련에서 이길 방도는 없었다.
그녀의 레벨은 36, 반면 내 마법 실력은 레벨 수치로 따지면 아마 20도 안되지 않을까 싶었다.
'몇 초 만에 끝나는 거 아니야?'
딱히 제한은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마법전 수업인데 몸을 강화해서 싸우는 것도 그렇겠지. 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련이 시작하고 나는 곧바로 공격에 대비해 방어 마법을 펼칠 준비를 했다.
그런데 레아는 어째서인지 공격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이쪽을 바라보기만 했다.
마치 기회를 줄 테니 얼마든지 공격해보라는 태도였다.
'뭐, 그렇다면야.'
나는 피식 웃으며 공격 마법을 펼쳤다.
어차피 내 공격이 그녀의 방어를 뚫을 일은 없을 테니, 마음 놓고 전력으로.
쩌엉!
좁은 범위에 집중시켜 날린 충격파 마법이 방어막에 막혀 소멸했다.
의외의 위력이라 생각했는지 레아의 눈이 살짝 커지는 게 보였다.
나는 곧바로 이어서 화염구들을 만들어 그녀의 주위로 퍼뜨렸다.
그녀는 방어막을 전신을 덮는 구형이 아니라 면 형태로 만들어서 방어하고 있었는데, 저러면 마력 소모는 적지만 까딱 상대의 공격을 놓치면 골로 갈 수 있다는 단점이 존재했다.
한마디로 저건 굳이 마력으로 찍어누르지 않아도 조작 능력만으로 내 마법을 모두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나는 화염구를 어지럽게 빙빙 회전시키다가 온갖 각도에서 엇박으로 쏘아냈다.
그에 레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면 형태의 방어막 몇 개를 더 형성하더니, 몰아치는 화염구들을 모조리 막아냈다.
생각한 것보다도 너무 간단히 막혀버렸다.
그나마의 내 강점인 마력 제어 능력도 나보다 훨씬 위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분야가 없었다.
이제 더 떠오르는 공격 패턴도 없었기에, 나는 그냥 던지고 보는 심정으로 섬광 마법을 펼쳤다.
번쩍!
강렬한 빛이 터지며 시야를 가렸다.
그 사이에 나는 다시 화염구를 만들어서 쏘아냈다. 그러나 역시 헛수고였다.
저 정도 수준의 실력자가 고작 시야가 제한됐다고 공격에 대처를 못할 리가 없었으니까.
시야가 다시 돌아오고,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상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가 방어막을 거두고서 입을 열었다.
"더 보여줄 거 없지?"
그리고선 손을 뻗더니 충격파 마법을 펼쳤다.
나는 곧바로 방어 마법을 펼쳤지만 방어막은 충격파와 충돌하자마자 산산히 박살났다.
나는 휘청이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딱 방어막만 깔끔하게 파괴할 정도의 위력이었다.
"대련 종료다."
명백히 가름난 승부였기에 로켈 교수가 나섰다.
그래도 할 건 다 해보고 졌기에 별 아쉬움도 없었다.
"랜, 패배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고민할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기에 나는 바로 대답했다.
"모든 면에서 역량 차이가 너무 났습니다."
"그럼 앞으로는 그런 상대와의 전투를 어떻게 이끌어갈 생각이지?"
나는 질문의 의도를 알 수가 없어서 잠시 고민했다.
이끌긴 뭘 이끌어? 모든 면에서 다 압도적이었다니까. 그냥 묻는 건가.
"그냥 최선을 다해서 싸우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뿐인가?"
"운에 맡겨서 도박수도 던져보고,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도주도 시도해보겠지요. 애초에 그런 적과 싸워야 할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가장 좋겠지만요."
나름 진지한 대답이었는데 몇몇 학생들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로켈 교수도 실소를 흘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마력 제어 능력으로 승부를 걸은 건 네게 최선이었지만, 그 이전에 역량 차가 너무 컸다. 마력량과 제어 능력은 뛰어나지만 나머지는 전부 수준 미달이더군. 앞으로는 마력적인 부분보다도 술식의 진전에 집중해야 할 거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술식에 약한 나는 아직까지 익힌 마법도 적고, 마법을 펼치는 속도도 상당히 느린 편이었다.
마지막 일격도 상대가 대놓고 막으라고 여유를 줬기에 방어할 시간이 있던 거였다. 그렇지 않았으면 방어막을 펼칠 새도 없었겠지.
"레아 헤리윈, 자네는······ 흠 잡을 곳 없이 훌륭했다. 한데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지?"
교수의 물음에 그녀가 감흥 없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제가 최선을 다했으면 시작하자마자 끝났을 테니까요. 그런 건 대련으로서 의미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상대를 배려했다는 건가?"
"수업의 의미를 흐리고 싶지 않았던 것뿐입니다."
그건 내가 듣기에 조금 뼈가 있게 들리는 말이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학생끼리 대련을 시켜봤자 자신에게는 하등 도움이 안 된다는 뜻처럼.
그리고 정말 그런 의미로 한 말이라고 해도 오만함이라 할 수는 없었다. 사실이었으니까. 그녀의 레벨은 신입생 수준을 한참 벗어났다.
로켈 교수가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두 사람은 이만 자리로 돌아가도록."
몇몇 학생들 차례가 지난 다음에는 에스카의 차례였다.
긴장한 기색의 그녀에게 계승자가 웃으며 등을 툭 두드려주는 모습이 보였다.
"후우······."
대련이 시작하고, 의외로 에스카 쪽이 먼저 공격적으로 마법을 펼쳤다.
충격파 마법이 날아갔지만 기민하게 대응을 준비하고 있던 상대의 방어 마법에 쉽게 막혔다.
【Lv. 11】
나는 그 광경을 보며 대련의 결과를 쉽게 짐작했다.
왜냐면 에스카의 레벨이 상대보다 낮았으니까. 그녀의 레벨은 반에서도 거의 최하위 수준이었다.
방금의 일격으로 에스카의 전력을 대충 파악했는지 상대가 곧장 반격에 나섰다.
에스카는 그 거친 공세를 힘겹게 막아내다가 금세 한계가 왔다.
퍼엉!
에스카의 방어막이 상대의 공격에 산산히 박살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다른 방어막이 그녀의 주위로 생기며 충격을 막아냈다.
위험한 일이 생기기 전에 방어막을 둘러준 것은 로켈 교수였다. 손을 거둔 교수가 입을 열었다.
"대련 종료다."
그가 에스카를 바라보며 건조한 어투로 말했다.
"에스카 마리올즈, 자네의 패배다. 패배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숨을 거칠게 몰아쉬던 에스카가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 마법 실력이 전체적으로 상대보다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맞다. 가감없이 말해서 신입생인 걸 감안하고도 처참한 수준이었다. 자네는 전투라는 영역보다도 순수한 마법이라는 영역에서의 능력부터 일단 더 키울 필요가 있을 것 같군."
정말로 가감없는 독설에 에스카의 낯에 그늘이 드리웠다.
두 사람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계승자가 풀이 죽은 그녀에게 뭐라 말을 걸려다가 마는 게 보였다.
시선을 돌린 계승자가 째려본 것은 로켈 교수였다. 친구가 심한 말을 들어서 화난 건가.
계승자의 순서는 거의 마지막 차례가 돼서야 다가왔다.
그래봐야 대부분 학생들이 입문자 수준이었기에 몇 번 공방을 주고받으면 마력을 다 소진해서, 대련 한판 한판은 금방 끝났다.
나는 마주 선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마법 수준은 아직 초심자라 했던가.'
용사에게 듣기로, 계승자는 검술뿐 아니라 마법에도 굉장히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다 했었다.
다만 검술과 달리 제대로 배우지 않아서 나처럼 기초 마법들이나 몇 가지 쓸 줄 안는 게 전부라고.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 대련의 결과는 정해져있었다.
마법은 아직 초심자 수준이라 해도, 마력은 그게 아니었으니까.
【Lv. 32】
리곤이나 레아보다는 낮지만 그녀의 레벨 역시 30대.
마력 자체의 수준은 마찬가지로 신입생 레벨이 아니었다.
대련이 시작하자마자 계승자가 손을 들어올리더니 말했다.
"화염 마법으로 공격할 거야. 제대로 막아."
"······응?"
그러더니 곧바로 보란 듯이 화염을 피워올렸다.
상대가 황급히 방어 마법을 펼친 뒤에야 불덩이를 쏘아냈다.
퍼엉!
굉음과 함께 상대방의 방어막이 반쯤 박살난 것이 보였다.
계승자가 그걸 보고는 다시 한 번 화염을 피워냈다. 이번에는 방금 전보다 더 크게.
"한 번 더 간다."
그에 상대는 기겁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교수가 입을 열었다.
"대련 종료다."
교수를 돌아본 계승자가 코웃음을 치며 불꽃을 꺼뜨리고는, 그에게 적대적인 투로 물었다.
"전 어땠습니까? 교수님."
로켈 교수가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마력의 수준도 뛰어났고, 마법의 전개 속도도 뛰어났다. 다만 이해하기 힘든 기행을 벌였군. 실전에서도 그렇게 상대에게 공격을 예고하고서 공격할 건가?"
"아뇨. 근데 이건 대련이잖아요."
"대련이라도 실전처럼 임하라고 말했을 터다."
잠깐 말문이 막힌 계승자가 생각났다는 듯 대꾸했다.
"제가 최선을 다했으면 상대가 처음 공격도 못 막고 바로 끝났을 것 같은데요? 그건 이 수업의 의미를 흐리는 게 아니에요?"
나는 어이가 없어서 살짝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아까 레아가 교수에게 했던 말을 어설프게 빌려 말하고 있는 계승자였다.
그냥 별 이유도 없이 교수가 마음에 안 들어서 꼬장을 부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
반응이 궁금해서 레아가 있는 쪽을 돌아보니 그녀가 곱지 않은 눈빛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계승자의 반항적인 태도에도 로켈 교수는 여전히 무미건조한 투로 말했다.
"네 무례함이 친구의 면을 살려주진 않을 것이다. 이만 자리로 들어가도록."
결국 한마디를 들은 계승자는 못마땅한 기색으로 몸을 돌렸다.
그래도 교수의 말에서 자신이 그닥 좋지 않은 짓을 했다는 건 알았는지 상대였던 학생에게 말했다.
"미안해. 장난치려거나 널 무시할 생각으로 그런 건 아니었어."
"어? 응······."
남은 학생들의 대련까지 모두 끝나고 나니, 타이밍 좋게 수업이 끝날 시간이었다.
첫날의 수업들보다도 훨씬 빡센 수업에 진이 빠져 보이는 학생들이었다.
로켈 교수가 작게 혀를 차며 말했다.
"이제 고작 첫 수업이다. 다들 하루라도 빨리 적응하는 편이 좋을 거다."
***
한편 비슷한 시각, 리곤의 헨릿 반 역시 대인 전투 수업을 위해 훈련장에 학생들이 모여있었다.
"그러니까, 다들 쟤가 뭐 그리 무섭다는 거야?"
홀로 멀뚱히 서있던 리곤의 귓가에 근처에서 떠드는 말소리가 들렸다.
"칼데릭이라는 이름에만 쫄아서 말이야. 여리여리하게 생긴 게 별로 셀 것 같지도 않구만."
"야, 야. 들리겠다······."
"들리면 어때? 들으라고 해."
"넌 진짜 겁도 없냐? 칼데릭 출신 학생들은 군주한테 직접 추천을 받고 오는 거란 말이 있단 말이야."
"그런 건 다 헛소문이야. 말이 되는 소리냐? 이름에 성도 없는 녀석인데 어디 적당한 출신이겠지."
리곤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알고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친 남학생이 움찔 놀랐다가 이내 보란 듯 비웃음을 짓고서 시선을 홱 돌렸다.
리곤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쉽지 않네.'
이미 반에서는 하루 만에 단단히 낙인이 찍혀있었다.
이러면 졸업할 때까지도 친구는 세 사람 말고 아무도 없게 되는 게 아닐까.
"재잘재잘 시끄러워."
그때 갑자기 끼어든 묵직한 목소리에 계속해서 떠들던 두 남학생이 흠칫하며 입을 다물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그들 바로 옆에 서있던 거구의 남학생이었다.
리곤은 그의 얼굴을 학기 시작 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입학식의 신입생 대표였던 남학생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이름이 바이온 렉시오였던가.
그는 명문 무가 출신의 유망주로, 학기 시작 전부터 검술학부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했다.
"다들 조용."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담당 교수가 훈련장으로 들어왔다. 연무복 차림을 하고 있는 여인이었다.
그녀가 주위를 슥 둘러보고는 자신을 소개했다.
"대인 전투 수업 담당 교수인 가온 세실레아다."
"······."
"뭐, 내 이름 따위야 아무래도 좋고. 다들 멀뚱히 있지 말고 저기 있는 훈련용 가검부터 집어라."
학생들이 검을 모두 챙기자 가온 교수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검술 대련을 할 거다. 가장 먼저 지원할 두 녀석은 가운데로 나와라."
"······."
"갑자기 싸우라니 당황스럽나? 대인 전투는 본래 이런 수업이다. 물론 모든 대련의 승패는 성적에 포함된다. 가장 먼저 나서는 녀석들에겐 가산점을 줄 생각인데, 계속 눈치만 보고 있을 거냐?"
그에 재빨리 한 학생이 나섰고, 곧바로 또 다른 학생이 나섰다.
리곤은 흥미로운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어제의 책상머리 수업들보다는 이렇게 직접 몸을 쓰는 수업이 리곤에게 있어서도 더 취향이었기에.
"자, 대련 시작이다. 목숨이 걸린 전투라고 생각하고 양방 모두 최선을 다해라."
수업의 방식은 학생들이 대련을 진행하면 교수가 끝나고 피드백을 해주는 식이었다.
그런데 가온 교수의 피드백은 기본적으로 독설이었다.
"왜 반격할 기회를 알면서도 놓치지? 겁쟁이 놈이 가검으로도 상대를 베는 게 무섭나?"
"검을 휘두를 때마다 몸의 중심이 엉망이다. 네놈 다리는 무슨 지푸라기냐?"
"기합은 왜 시도때도 없이 내지르는 거지? 그딴 버릇은 고쳐라. 쓸데없이 호흡만 낭비하고 있다."
대련은 마친 학생들은 설령 승자라도 독설을 못 피하고 시무룩한 기색으로 자리로 돌아왔다.
리곤은 교수의 말과 자신의 감상을 비교해보며 대련을 관전하고 있었다. 차이가 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대체로 핵심은 일치했다.
"다음은······."
수업 중간쯤 차례, 교수의 시선이 리곤에게 닿았다.
그녀가 묘한 눈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네가 그 칼데릭에서 왔다는 녀석이지? 실력 좀 보자. 나와라."
리곤은 주목된 시선 속에 훈련장 한가운데로 저벅저벅 걸어나왔다.
"그리고 너, 나와라."
"예? 예."
다음으로 지목을 받은 학생이 이어서 걸어나왔다.
그는 아까 전에 리곤의 험담을 했던 남학생이었다.
두 사람이 가검을 쥔 채 마주 보고 섰다.
남학생은 입가에 웃음을 건 채 당당한 기세로 검을 치켜들었다.
리곤도 검을 늘어뜨린 채 서있다가,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는 게 낫겠다 생각하고 검을 치켜들었다.
"대련 시작."
교수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남학생이 기세 좋게 리곤을 향해 돌진했다.
그는 그렇지 않아도 리곤과 붙어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다른 학생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놈을 쓰러뜨리면 반에서 자신의 위세는 급부상할 테니까.
'바닥에 꼴사납게 자빠뜨려주마!'
두 사람의 간격이 검을 부딪힐 범위 안으로 가까워진 순간이었다.
카앙!
남학생은 순간 손아귀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손에서 놓친 검이 허공을 날고 있었다.
검을 거둔 리곤은 머리를 긁적이며 당혹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남학생을 바라봤다.
'너무 셌나?'
나름 힘조절을 한 건데, 그냥 막고 목에 검을 겨눌 걸 그랬나.
뭐가 됐든 대련은 그걸로 끝이었다. 단 한 합이었다.
검사가 전투 도중 자신의 검을 놓치는 것만큼 치명적인 일도 없었다.
"끝이다. 이거 싱겁군."
학생들도 모두 놀란 가운데, 가온 교수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신을 차린 남학생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교, 교수님. 방금은 제가 너무 방심해서······."
"방심? 내가 분명 목숨을 건 전투라 생각하고 임하라 했을 텐데. 너는 지금 등신처럼 실력 발휘도 다 못하고 일 합에 목이 날아갔다고 말하고 있는 거냐?"
그녀가 한심하다는 눈길로 바라봤다.
"너무 짧게 끝나서 말할 것도 없으니 들어가기나 해라, 형편없는 놈아. 너는 마음가짐부터가 문제다."
가온 교수가 리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넌 이름이 뭐지?"
"리곤입니다."
"그래, 리곤. 넌 훌륭했다. 그 한 동작에서도 기본은 모두 빠짐없이 충실하더군. 들어가라."
처음으로 독설 대신에 나온 칭찬.
리곤은 그냥 그런 기분을 느끼며 자리로 돌아갔고, 남학생도 참담한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갔다.
"다음으로는······ 너, 나와라."
가온 교수가 다음으로 지목한 학생은 바이온 렉시오였다.
바이온이 훈련장 가운데로 걸어나왔다. 그는 검 중에서도 대검에 가까운 검을 골라서 들고 있었다.
이어서 그의 상대로 뽑힌 남학생은 한껏 긴장한 기색으로 마주 섰다.
콰앙!
대련이 시작하자마자 덩치에 맞지 않는 속도로 돌진한 바이온이 검을 휘둘렀다.
상대 학생은 다급히 검을 들어 방어했으나, 굉음과 함께 공중에 붕 뜨더니 맥없이 바닥을 굴렀다.
리곤과 마찬가지로 단 한 합에 끝나버린 대련.
바이온의 엄청난 괴력에 학생들이 입을 쩍 벌리고 그 광경을 바라봤다.
"······."
검을 거둔 바이온이 시선을 돌려 리곤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리곤도 멀뚱히 눈을 마주쳤다. 갑자기 왜 자신을 쳐다보는 건가 생각하며.
***
복도를 걷던 로켈 교수는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여인을 보고 살짝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가온 교수가 그에게 반갑게 아는 체를 했다.
"로켈 교수님 아니십니까. 수업 끝내고 돌아가시는 길이군요?"
"그렇네."
"저도 방금 막 마치고 돌아가는 참이었습니다, 수업은 좀 어떠셨습니까?"
로켈이 대답하기 전에 그녀가 바로 말을 이었다.
"이야, 저는 깜짝 놀랐지 뭡니까. 혹시 검술학부에 칼데릭 출신의 학생이 있는 건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네."
"리곤이라고, 제가 방금 수업한 반의 학생이었습니다. 대단하더군요. 이미 정식 기사와 비교해도 손색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렇군."
로켈 교수는 약간 의외라고 생각했다.
자신보다도 더 기준이 엄격한 가온 교수가 저렇게 칭찬할 정도면, 정말 인재라는 뜻이었으니까. 그렇다고 딱히 검술학부 학생에 대해 궁금증이 일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교수님 반에도 천재로 유명한 아이가 한 명 있지 않습니까? 레아 헤리윈이었던가."
"남의 학생에겐 관심 끄게."
"하하, 그냥 후에 있을 교류 수업이 벌써 기대되서 그렇습니다. 까칠하시긴."
가온 교수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보다 학기 시험과 관련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함께 점심 식사는 어떠십니까?"
"미안하지만 바쁜 일이 있어서. 얘기는 나중에 나누지."
"에이, 그러지 마시고······."
끈질기게 들러붙는 가온 교수를 떨쳐낸 뒤, 로켈 교수는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왔다.
그는 자리에 앉아서 서류들을 정리하다가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까 전 대인 전투 수업에서 인상에 남은 학생들에 대해서.
레아 헤리윈. 헤리윈 가의 유명한 천재.
오늘 수업에서 본 모습은 과연 그 소문대로였다.
짧은 대련 속에서도 로켈 교수는 그녀의 현 수준과 터무니없는 천재성을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
고작 열다섯의 나이에 그 정도 성장세라면, 늦어도 서른이 넘기 전에 엘폰의 교수들도 뛰어넘을 실력자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교장의 직접 추천으로 입학한 것으로 짐작되는 두 학생.
카앤, 그리고 랜.
본래 학생들의 배경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는 로켈 교수였다.
하지만 그 둘에 대해서만큼은 조금은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용사의 동료, 현 교장 나인베르크는 취임 뒤로 지금껏 단 한 번도 자신의 권한으로 학생을 추천 입학시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호기심을 가진 만큼 확실히 특이한 점은 있었다.
잘 단련된 육체로 보나 분위기로 보나, 둘 모두 마법사보다는 무인 쪽에 가깝게 느껴졌다는 부분이.
다만 다른 점은 카앤이라는 아이는 마법에도 자질이 있었고, 랜은 없었다는 것이었다.
로켈의 눈으로 보기에는 카앤 역시 천재였다. 부족한 점들은 있었지만 앞으로 잘 배운다면 장래에는 레아에 못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마법사가 될 것이었다.
다만 랜이라는 아이는 왜 검술학부를 놔두고 마법학부에 입학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로켈 교수는 싱거운 잡념을 이어가다가 이내 다시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나 분명한 건, 이번 1학년은 작년보다 흥미로운 학생들이 많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