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즉사기 들고 게임 속으로-133화 (133/189)

가드팔크 공성전 (3)

"······마침 딱 맞춰 왔네요, 7군주."

고치 위에서 느릿하게 몸을 일으킨 흑해 여제가 입꼬리를 올렸다.

요사스럽게 빛나는 그녀의 눈에 전장에 도착한 7군주의 모습이 비추었다.

***

나는 반파된 요새를 차가운 눈길로 내려다봤다.

설마 싶었는데, 정말로 그 설마가 맞았다.

어스힐의 국왕이 항복하지 않고 싸우길 택한 걸까?

내가 알기로 그는 그렇게 멍청한 인물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흑해 여제의 군대를 상대로 전쟁을 계속하려고 했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남은 경우는 하나였다. 항복을 했음에도 상대가 항복을 받지 않은 것.

내가 군주성에서부터 여기까지 곧바로 온 이유가 그런 전개를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늦고 말았다.

내가 도착하기 전에 전쟁은 시작되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어스힐은 필사적으로 항전한 듯 보였지만 흑해 여제의 힘을 그들이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그나마 요새가 완전히 멸망하기 전에라도 온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아셸."

"예."

검을 뽑아든 채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있던 아셸이 즉시 대답했다.

아셸이 방금 전에 날린 일격에 요새로 밀려오던 벌레들은 절반은 죽었다.

말만 하면 당장이라도 뛰어내려서 남은 벌레들을 쓸어버릴 기세였다.

그녀에게 있어서도 이런 학살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참상일 테니까.

"가서 요새를 지켜라."

고개를 끄덕인 아셸이 곧장 띠용이의 등에서 요새를 향해 뛰어내리며, 검을 휘둘렀다.

거대한 검기의 폭풍이 다시 한 번 요새의 외곽을 휩쓸며 벌레들을 몰살했다.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저멀리 보이는 흑해 여제의 군세를 향해서.

보아하니 요새를 공격하는 데는 전력의 극히 일부만 동원한 모양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요새 성벽을 통째로 무너뜨릴 수도 있을 거대한 개체들도 있는데, 그것들은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

나는 그녀의 군세를 살펴보다가 이내 깨달았다.

군대 곳곳에 솟아있는 거대한 벌레들의 탑.

저것은 '모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저 모탑이 바로 흑해 여제가 다스리는 거대한 군세의 핵심이었다.

모탑의 뿌리에는 생식핵과 융합된 여왕체가 있는데, 생식핵의 마력을 통해 에너지만 계속해서 보급된다면 여왕체는 끝없이 벌레들을 증식시킬 수 있다. 그것이 게임상에서의 설정이었다.

'31개.'

현재 보이는 모탑의 개수는 31개였다.

많아봐야 그녀가 가지고 있는 여왕체의 개수는 40개가 넘지 않을 테니, 저 정도면 그녀가 가진 전력을 거의 총동원한 거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그녀도 지금 이 자리에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의 의미를 이해했다.

고작 어스힐의 요새 하나를 치는 데에 저만한 수의 여왕체를 전장에 끌고 왔다고?

과시를 넘어서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이다. 애초에 여왕체 자체를 끌고 올 이유가 없다.

'내가 오는 걸 대비했군.'

그녀는 내가 이곳에 시간 맞춰 도착하는 경우를 상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지 않았거나 더 늦었다면 그대로 어스힐을 쓰어버렸겠지.

나는 흑해 여제의 의도가 둘 중에 무엇인지 헷갈렸다.

이건 내가 오더라도 끝까지 요새를 치겠다는 의도인가? 아니면 애초부터 목표가 날 끌어들이는 거였나.

전자라면 그녀가 나와의 충돌까지 감수하며 어스힐을 치려는 이유가 이해되지 않았다.

이 전쟁에 대체 그녀가 그렇게까지 해서 얻을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후자의 경우 역시 이해가 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날 끌어들일 생각이었다면, 그래서 지금부터 뭘 어쩌겠단 거지?

그녀가 나한테 좋지 않은 감정이 있다는 건 저번 긴급 소집에서부터 대충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이렇게 전력을 총동원하여 싸움을 걸 이유라고 한다면······ 정말 맞나?

어차피 그녀는 날 죽일 수 없다. 반대 또한 마찬가지다.

애초에 전투도 대군주의 허락 없이는 금지지만, 전투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나를 죽일 생각이면 그녀도 뒷감당이 불가능하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그때였다.

흑해 여제의 모탑들에서 거대한 마력이 유동하는 게 느껴졌다.

우우우우웅······.

나는 인상을 굳힌 채 모든 모탑들에서 쏟아져나오기 시작한 거대한 덩어리를 바라봤다.

그것들은 날벌레 떼였다.

요새를 공격하던 벌레들의 수백 배는 되어 보이는 어마무시한 물량.

끝없이 쏟아져나오며 한곳에 뭉쳐 곧 하늘 저편을 시커멓게 뒤덮은 그것들은, 그야말로 '재앙'이라는 문자가 눈에 보이는 형체를 갖춘 것과 같았다.

거대한 날벌레 군단이 서서히 이쪽을 향해 가까워지더니, 전장에 흑해 여제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 어디 막을 수 있다면 막아봐요, 7군주. 요새의 사람들을 지켜야죠?

즐겁다는 듯 비웃음이 섞인 목소리.

······나는 그제야 8군주의 의도가 어느 쪽이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 미친년은 정말로 나를 도발하기 위해서 이 짓을 벌인 모양이었다.

"하."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하늘에서 밀려오는 시커먼 파도를 바라봤다.

막지 않는다면 요새는 눈 깜짝할 사이에 쓸려나갈 것이다.

가능하면 흑해 여제와 부딪히기는 싫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충돌을 피할 수 있다면 최대한 피할 생각이었다.

이미 6군주를 죽인 내가 계속해서 다른 군주들과 충돌하면 대군주의 눈치가 보이니까.

하지만 놈이 이딴 식으로 나온다면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아니, 어쩔 수 없다기보다도 성질을 제대로 건드렸다.

"한번 해보자고."

나는 좀 더 아래로 내려간 채 곧바로 혈술을 활성화했다.

정면에서 몰려오는 흑해 여제의 군단은 그야말로 압도적.

이전에 마경 할루멘타에서 상대했던 몬스터 떼와는 경우가 완전히 다르다. 그때처럼 고작 핏방울을 흩뿌려서 뒤덮을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그런 식으로 대응해서야 10분의 1도 못 죽이고 놈들이 요새에 도달할 것이었다.

하지만 이쪽에도 생각이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가진 능력들을 어떻게, 어떤 상황에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시간이 날 때마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연구해왔다.

그중에 가장 신경을 쓴 건 당연히도 즉사 능력과 혈술의 시너지.

아직까지 실전에 활용해본 적은 없지만, 이런 규격 외 규모의 적을 상대하는 방법 역시 마련해뒀다.

피를 뭉쳐 터뜨려서 핏방울을 흩뿌리는 것보다 훨씬 적은 피로, 훨씬 광범위한 범위를 타격할 방법을.

내 몸에서 뿜여저나온 핏물이 안개처럼 일렁거렸다.

액체 상태가 아닌, 기체와 다름없는 상태로의 성질 변형.

이것을 가능케 하기 위해 그동안 무던히도 혈술을 훈련하며 피의 컨트롤 능력을 높였다.

시뻘건 혈무는 이내 나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하지만 저 군세를 상대하려면 이 정도로도 부족하다.

나는 초재생 능력을 오로지 내 혈액의 재생에만 집중시켜 계속해서 혈무를 퍼뜨렸다.

이 또한 능력을 연구하고 훈련하며 얻은 성과 중 하나였다. 초재생은 신체의 특정 부분에만 재생력을 집중시키는 것도 가능했다.

화아아아악.

이내 수백 미터 반경은 가볍게 넘을 정도의 거대한 피안개가 완성되었다.

나는 지옥을 향해 스스로 날아들어오는 벌레 군단을 잠자코 응시했다.

***

"이건······."

마스토 사령관은 말을 잇지 못했다.

전장 이곳저곳을 빛살처럼 누비며 홀로 벌레들을 몰살하고 있는 여인.

그녀가 한 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수백의 벌레들이 쓸려나갔고, 함락 직전이었던 요새의 전황은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롱포드도 숨을 고르며 하늘에 떠있는 와이번을 멍하니 바라봤다.

"······칼데릭의 7군주다. 7군주께서 우리를 도우러 오셨다."

그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고 있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기회가 왔을 때 어서 적들을 몰아붙여서 절멸시켜야 했으니까. 물론 이미 7군주 측의 초인이 대부분을 쓸어버린 마당이긴 했다.

"폐, 폐하! 저기······!"

그때 저멀리 흑해 여제의 군세에서 무언가 변화가 일어났다.

벌레로 이루어진 탑들에서 무시무시한 수의 날벌레 괴물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순식간에 하늘 저편을 모조리 뒤덮은 그것들이 요새를 향해서 점차 가까워졌다.

지금까지의 공격은 장난조차도 아니었다는 듯한 압도적인 군세.

잠시 희망에 빠져있던 군사들은 다시금 절망에 질린 채 그 광경을 바라봤다.

아셸도 잠시 전투를 멈추고 굳은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잠시 뒤, 와이번 위에 타고 있는 7군주에게서 자욱한 혈무가 퍼져나왔다.

그것은 이내 몰려오는 흑해 여제의 군세에 못지 않을 정도로 거대해져서 요새 주위를 뒤덮었다.

"······뭘 하려는 걸까요?"

벌레들의 시야로 여유롭게 상황을 지켜보던 흑해 여제는 눈매를 좁혔다. 피안개?

7군주가 피를 다룬다는 건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 자세한 능력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그가 살해한 6군주의 능력인 광혈처럼 보이기도 했다.

설마 독이나 정신 지배인가? 그녀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짐작했다.

"고작 그런 것들이라면 실망인데 말이죠."

흑해 여제의 벌레들은 기본적으로 독충이었다.

마경에서도 가장 독하고 끔찍했던 그녀의 마력에서 태어난 그들에게 독은 통하지 않았다.

정신 지배 역시 마찬가지였다. 벌레들은 그녀의 일부나 다름없으며, 태어날 때부터 그녀의 지배에 완벽하게 묶여있다.

이 지배권을 빼앗는 건 7군주가 어떤 술수를 부린다고 해도 불가능했다.

"자, 어디 발악해봐요. 당신이 뭔 짓을 하든, 내 아가들이 요새를 멸망시키는 게 훨씬 빠를 테니."

흑해 여제는 조소를 지으며 상황을 지켜봤다.

그리고 벌레 군단이 7군주의 피안개 영역으로 완전히 진입한 순간이었다.

"······!"

흑해 여제는 경악하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한순간에 모든 벌레들의 생명 신호가 끊겼다.

피안개 속의 벌레들이 지상을 향해 우수수 떨어졌다.

***

나는 잿더미가 흩뿌리듯 땅으로 떨어지는 벌레들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됐다.'

즉살은 어떻게든 상대에게 닿기만 하면 발동 조건이 충족하는 능력.

즉, 피 한 방울이든, 한 방울의 1000분의 1밖에 안 되는 적은 양이든 어떻게든 닿기만 하면 되는 것.

그렇기에 이런 것도 가능하다.

별 경계도 없이 벌레들을 피안개 속으로 들인 순간, 내 승리는 확정된 것이었다.

"내려가자, 띠용아."

나는 요새의 상황을 확인하고 지상으로 내려섰다.

공격은 막았지만 나는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흑해 여제는 선을 넘었다.

그에 대한 대가는 제대로 치루게 해줘야지.

"론 님."

어느새 근처로 다가온 아셸이 내 몸을 빠르게 훑었다.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의 눈에는 벌레 군단과 완전히 정면에서 충돌한 것처럼 보였을 테니 그럴 만도 했다.

"난 괜찮다."

피를 좀 과하게 많이 쓰긴 했지만 초재생 덕분에 괜찮았다. 아직 여력도 남아있었다.

나는 요새를 돌아보며 아셸에게 명령했다.

"너는 계속 요새를 지키고 있어라."

"예? 그럼 론 님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나는 아셸과 띠용이를 남겨두고, 지평선 너머에 보이는 흑해 여제의 군세를 향해 다가갔다.

공간 도약을 연속해서 쓰며 다가가자 거리는 빠르게 가까워졌다.

흑해 여제는 어디에 있을까. 뭐, 아마 가장 큰 모탑 안에 있겠지.

초감각으로 그곳에 감각을 집중하니 거대한 기척이 느껴지는 걸 보니 확실했다.

그녀를 상대해줄 생각은 전혀 없다.

어느새 군세에 지척까지 다다른 나는 서서히 혈술을 활성화했다.

스으으으.

내 몸에서 다시금 뿜어져나오기 시작한 피안개가 서서히 벌레들을 뒤덮었다.

사람만 한 크기의 작은 놈들도, 성채만큼 거대한 벌레들도 피에 닿자마자 픽픽 죽어서 쓰러졌다.

이것들은 목표가 아니다.

나는 가장 가까이 있는 모탑을 향해서 다가가며 계속 피안개를 흩뿌렸다. 주위의 벌레들은 접근하지도 못하고 계속 죽어나갔다.

- ······멈춰요!

다시금 흑해 여제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유쾌하게만 들렸던 아까와 정반대로 당혹스러움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흑해 여제에게 있어 여왕체는 그녀의 거대한 군세를 유지할 수 있는 핵심이다.

그런데 왜 고작 수십 개밖에 가지고 있지 않냐고 한다면, 그 이유는 당연히 간단했다.

그만큼 여왕체를 만드는 일이 힘드니까.

그래서 나는 이곳에 있는 여왕체를 모두 죽일 생각이었다.

쩌저적······.

모탑에 자욱히 퍼져나간 피안개가 닿자, 거대한 마력 반응이 사라지며 썩은 고목처럼 말라비틀어졌다.

하나를 처리한 나는 곧장 다음 목표를 향해서 방향을 틀었다.

주위의 벌레들이 아까보다 더 많이, 격렬하게 몰려들었다.

어떤 놈들은 멀리서 거미줄 같은 거나 마력포를 쏘아댔지만 전부 소용없는 짓이었다.

가까이 온 놈들은 피안개에 죽었고, 원거리 공격은 내게 통하지 않았다.

나는 부동 장막으로 막거나 피할 공격은 공간 도약으로 피하며 계속 이동했다.

흑해 여제의 군세 한복판을 누비며 여왕체를 6개째 죽였을 때였다.

"7군주우우우우!"

저멀리 보이던 거대한 모탑에서 흑해 여제가 살기를 풀풀 풍기며 날아들었다.

나는 부동 장막을 펼쳐 그녀의 공격을 막은 뒤, 다시 멀리로 공간도약했다.

그녀가 곧장 쫓아왔지만 나는 무시하며 계속해서 할 일을 했다.

그녀의 공격을 막고 피하며 여왕체를 하나씩 죽여나갔다.

그녀는 몰랐겠지만, 따지고 보면 군주들 중 나와 가장 상성이 나쁜 건 바로 흑해 여제였다.

그녀가 자랑하는 물량 공세는 즉살에 무용지물.

그렇다고 간단한 보호막조차 두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망자왕처럼 마법사가 아니었으니까.

그녀의 마력을 먹고 자란 벌레들은 웬만한 공격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내구성이 높겠지만, 내 즉살 능력은 닿는 것 자체를 방지하지 않는 이상 방어력 따윈 아무런 의미도 없다.

또한 군세를 제외하면 흑해 여제의 개인의 능력은 군주들 중에 최하위다.

그녀가 군주인 이유는 이 거대한 벌레 군세를 한몸과 다름없이 지배하고 있기에 그런 것.

개인의 능력으로만 따지면, 그녀는 군주들 중 레벨이 가장 낮았던 폭왕보다도 육체 능력이 낮다.

그렇다고 그녀가 전사들처럼 전문적으로 육체를 다루는 법을 익힌 것도 아닐 터다.

지금 그녀가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있음에도 나는 별로 어렵지 않게 막을 수 있었다.

"멈춰, 7군주! 멈추라고! 멈춰!"

어느날, 그저 우연히 지성과 분에 넘치는 힘을 가지게 된 마경의 괴물.

그것이 바로 흑해 여제의 본질이다.

그녀가 자랑하는 능력들은 아무것도 내게 통하지 않는다.

흑해 여제는 악에 받쳐서 소리치며 나를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절반에 가까운 여왕체가 죽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는지 갑자기 방향을 바꾼 그녀가 요새가 있는 쪽으로 돌진했다.

"멈추지 않으면 요새의 인간들을 학살하겠어! 이 빌어먹을 인간아!"

······그렇게 나오는 건 나도 좀 곤란한데?

어쩔 수 없었기에 관심을 옮겨주려는데, 그때 요새로 달려드는 그녀를 누군가가 막아섰다.

'아셸.'

흑해 여제를 막아선 건 아셸이었다.

고유 특질까지 사용해서 전신을 새하얗게 물들인 그녀가 전력으로 흑해 여제와 맞섰다.

"건방진 년이, 감히!"

눈 깜짝할 사이 수십 번의 공방이 오고간 가운데, 흑해 여제의 주먹을 검으로 막은 아셸이 튕겨나갔다.

아무리 흑해 여제의 육체 능력이 약하더라도 아직 90레벨인 아셸이 맞설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

하지만 아셸은 금방 일어서서 다시 흑해 여제의 앞을 막아섰다.

비록 상대는 안 되더라도 잠깐 시간을 끄는 정도는 가능해 보였다.

나는 비웃음 섞인 투로 흑해 여제에게 말했다.

"잠시 그러고 있어라. 금방 나머지도 다 처리하고 돌아올 테니."

내가 그렇게 말하며 순간이동하자 흑해 여제도 다시 다급히 날 쫓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이내 나머지 여왕체들까지 전부 그녀가 지켜보는 가운데 몰살시켰다.

"아, 아아······."

벌레들의 사체들이 수북히 쌓인 한가운데서, 흑해 여제는 반쯤 정신이 나간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는 그 앞에 서서 그녀를 내려다봤다.

그녀가 절망과 분노가 섞인 얼굴로 나를 죽일 듯 노려봤다.

"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잖아. 고작 저깟 인간들 때문에······ 네, 네가······."

"8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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