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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사기 들고 게임 속으로-127화 (126/189)

로디븐은 그런 그의 반응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조금 더 언성을 높였다.

"놈은 보통 마족이 아니었소. 스스로 이런 말을 하긴 그렇지만 나는 제법 뛰어난 마법사요. 황실이나 마탑의 고위 마법사들과 견주어도 실력이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다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

"놈은 그런 나를 가지고 놀듯이 농락했소. 천운이 닿지 않았다면 나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오?"

"······아니, 그야 당연하지 않소? 이곳은 이제 안전하지 않으니 한시라도 빨리 다른 곳으로 몸을 피해야 한다는 이야기요. 당신도, 당신의 딸도."

로디븐은 그에게 아무런 상황 설명도 해주지 않고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어쩌면 지금도 그 괴인이 이쪽을 추적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때문에 이들이 놈과 맞닥뜨려 위험에 처하기라도 하면 그건 전적으로 벌집을 건드린 자신의 탓이었다.

"당신 부녀의 터전에 이런 위험을 가져온 건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하오. 하지만 마족이 나를 찾기 위해 근방을 모조리 들쑤시고 있을 수도 있소. 그러니······."

"신경 쓸 것 없소."

남자가 고개를 저으며 로디븐의 말을 끊었다.

"우리의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하오. 다른 볼일이 없다면 당신은 떠나시오."

로디븐은 황당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방금 제대로 설명을 듣기는 한 건가?

만약의 참사를 피하려면 지금 당장이라도 몸을 피신해야만 했다.

그러나 남자의 태도를 보면 알아서 한다는 말은 그럴 거라는 의미 같지가 않았다.

로디븐은 남자의 정체를 그럴듯하게 짐작해봤다.

변방의 외진 산맥에서 홀로 딸을 키우고 있는 남자. 그리고 그 딸은 체술도 마법도 보통 또래의 성취를 훌쩍 뛰어넘은 듯 보인다.

은퇴한 기사나 마법사가 산골에 들어가서 남은 여생을 사는 건 아주 드문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의 선배들 중에도 그런 이가 있었으니.

물론 그런 것치고 남자의 외모가 젊어 보이기는 했지만 경지에 달한 마력은 육체의 노화를 늦추기에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까 기척을 놓쳤던 것도 그렇고, 마주 보고 있는 지금도 그의 수준을 조금도 파악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로디븐은 남자가 적어도 자신보다 높은 격에 있는 강자라고 생각했다.

'그 마족과 마주한다고 해도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렇다면 정말로 말려야 할 일이었다.

로디븐이 괴인에게서 느낀 격의 차이는 거대했다.

이 남자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놈과 맞설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지 말고 진지하게 생각해주시오. 내가 놈에게서 느낀 마력은 정말로······ 이보시오. 듣고 있소?"

대화에 집중하지 않고 시선을 오두막의 입구 쪽으로 돌리고 있는 남자를 보며 로디븐은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그때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 놈이라는 게 아무래도 벌써 온 것 같은데."

"······뭣?"

잠시 뒤, 로디븐은 등골이 쭈뼛거리며 오싹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이 불길하기 그지없는 마력의 기운. 놈이었다.

"이, 이런······."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바깥으로 걸어나가는 남자를 뒤따라 로디븐도 움직였다.

바깥으로 나간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오두막 사방을 둘러싼 채 서서히 다가오는 무언가의 무리였다.

연기처럼 넘실거리는 검붉고 거대한 그것들은 보통의 몬스터와는 격이 다른 기이함과 사이함을 지니고 있었다.

"······."

남자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무리, 그것들의 한가운데 멀찍이 떨어진 곳에 놈이 있었다. 로디븐이 말한 괴인이었다.

***

여정은 길지도 짧지도 않았다.

나는 저멀리 보이기 시작한 거대한 산봉우리들을 바라봤다.

'도착했다.'

이곳이 라몬 산맥.

현시점에서 성검의 계승자가 살고 있을 곳.

"이곳인가?"

"그래."

옆에서 비행하는 용사의 물음에 대답했다.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산맥 전체를 뒤져서라도 계승자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아셸."

"······예, 론 님."

뒤에 타고 있는 아셸이 내 부름에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얘가 왜 이러지?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정신이 조금 산만해진 느낌이었다.

용사 때문이라고 하기엔, 어째 용사와 대화를 나눴던 다음날부터 특히 이러는 느낌인데······.

'뭐가 또 있나.'

아셸에게 신경을 쓰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당장은 계승자에 집중해야지.

"내려갈 것이다. 잠시 휴식한 다음 추적을 시작하자."

"예."

나는 산맥 아래를 향해서 비행 고도를 낮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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