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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사기 들고 게임 속으로-126화 (125/189)

계승자 (5)

"아카데미가 뭔데요?"

카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렸을 적부터 산맥에서 살아온 그녀는 산맥 바깥의 물정에 어둡다 못해 거의 무지했다.

로디븐은 조금 당황하며 생각했다.

'이 산맥에서만 살아온 아이인가?'

엘폰은 대륙 최대의 아카데미, 어디 촌구석의 시골 마을 주민들 중에서도 모르는 이를 찾아보기가 더 힘들 정도다.

로디븐은 그녀가 세상의 물정에 완전히 어두운 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음, 아카데미라는 건 말이다."

"뭔지는 잘 몰라도 아무튼 마법사라는 거죠? 어떤 마법을 쓸 줄 알아요?"

로디븐은 조금 정신이 산만해지는 걸 느꼈다. 마법에 대해서는 또 알고 있나?

'······아! 그보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로디븐은 뒤늦게 자신을 죽음의 위기로 내몰았던 괴인의 존재를 떠올렸다.

텔레포트로 간신히 따돌리긴 했지만 어쩌면 추적을 당할 수도 있었다. 뛰어난 마법사일수록 아주 미세한 마력의 잔재도 감지할 수 있었으니.

또 이 장소가 텔레포트한 지점에서 얼마나 거리가 떨어진 곳인지도 알 수 없었다.

마력으로 추적을 당하는 게 아니더라도 거리가 그리 멀지 않으면 얼마든지 다시 놈과 마주치게 될 위험이 있었다.

로디븐은 다급해져서 말했다.

"네 아버지는 어디로 가셨느냐? 해야 될 말이······."

"마법은 저도 좀 쓸 줄 알거든요. 아버지 말고 다른 사람 마법은 본 적이 없다 보니까 궁금해서요."

"아니, 지금 그러고 있을 때가······."

로디븐은 카앤의 말을 끊고 용건을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순간 흠칫하며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손에 불꽃을 피워낸 카앤이 그것을 허공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말했다.

"저는 화염 마법을 좀 할 줄 알아요. 사실 아직 배운 게 거의 원소 마법밖에 없기는 한데."

"······."

로디븐은 놀란 눈으로 허공에서 넘실거리는 불꽃을 바라봤다.

원소계 마법에 속하는 화염 마법, 마법사라면 초심자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초급 마법 중 하나.

하지만 로디븐이 놀란 이유는 카앤의 마법 전개에 있었다.

'별 집중하는 기색도 없이 자연스럽게 펼쳐냈다.'

마법이란 마력의 성질을 변환시키는 것.

그 과정에 마법사의 머릿속에서는 치열한 술식 계산이 이뤄지며, 극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아무리 간단한 마법이라도 방금처럼 숨을 쉬듯 아무렇지 않게 펼쳐내는 건 경지에 달한 마법사들에게나 가능한 일.

방금 카앤이 행한 단순한 행위는, 마법사인 로디븐의 눈에는 세살배기 어린아이가 저글링을 한 것과 다르지 않게 보였다.

'그런데······ 방금 원소 마법밖에 할 줄 모른다고 한 건가?'

로디븐은 눈앞의 소녀에게 급격히 호기심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물었다.

"마법은 아버지에게 배웠느냐?"

"그렇죠."

"배운 지가 얼마나 됐지?"

"이제 반 년 조금 안됐는데요. 그건 왜요?"

······마법을 배운 지 반 년도 안된 입문자라고?

로디븐은 카앤이 거짓말을 하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태연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눈을 깜박이는 모습은 거짓이라거나 허세를 부리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애초에 거짓이라고 해도, 그녀가 방금 보여준 마법 전개는 고작 열몇의 어린 마법사가 보일 수 있는 숙련도가 결코 아니었다.

'천재.'

그런 상식을 아무렇지 않게 비트는 이들을 부르는 말이 있다.

로디븐은 등골에 미약한 소름이 이는 것을 느끼며 카앤을 빤히 바라봤다.

그오오오!

육중한 기척이 가까워짐과 함께 포효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수풀을 헤치고서 오두막의 마당에 거대한 짐승이 모습을 드러냈다. 뿔이 4개 달린 사슴이었다.

갑작스러운 몬스터의 등장에 로디븐은 곧바로 마력을 끌어올리며 카앤에게 말했다.

"물러서거······."

아니, 말하려고 했다.

돌연 도약과 함께 섬전처럼 쏘아나간 카앤이 맨주먹으로 거대 사슴의 턱을 후려쳤다. 무언가 터지는 폭발음이 났다.

고개가 덜컥 꺾인 사슴은 그대로 땅바닥에 허물어졌다. 일격에 절명한 것이었다.

"종종 몬스터들이 집까지 들이닥치기도 해요. 이런 놈들은 대부분 고기도 질겨서 맛없는데."

바닥에 착지한 카앤이 주먹을 털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막 마법을 펼치려던 로디븐은 뻘쭘하게 뻗은 손을 거두며 그런 그녀를 바라봤다.

'이 아이, 체술의 수준이······?'

마법만 할 줄 아는 게 아니었나?

아니, 방금의 광경을 보면 마법이 보조고 체술의 수준이 훨씬 더 높아 보였다. 저만한 몬스터를 가볍게 처치하다니.

"음, 나와계셨군."

뒤이어 사라졌던 남자가 마당에 나타났다. 손에 들고 있는 바구니에는 풀뿌리 같은 것이 한가득 담겨있었다.

로디븐은 그의 기척을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눈치채지 못 했다는 사실에 또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는 이 두 부녀의 정체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버지, 약초 캐고 온 거야?"

남자가 쓰러진 사슴을 힐끗 바라봤다.

"또 몬스터가 들어왔나?"

"응."

"다른 몬스터가 꼬이기 전에 얼른 치우거라. 또 오두막 근처에 대충 버리지 말고 제대로 묻고."

카앤이 귀찮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사슴의 뿔을 붙잡았다.

거대한 사슴의 사체를 질질 끌고 멀어져가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남자가 로디븐에게 시선을 옮겼다.

"바로 떠나실 생각인가?"

"아, 아니. 아니오."

카앤의 재능에 잠시 정신이 팔렸다가 다시 중요한 문제를 떠올린 로디븐이었다.

"급하게 해야 할 얘기가 있소. 내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던 것과 관련된 것이오."

"······."

남자는 로디븐의 사정에 그닥 관심이 없는 기색이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오두막 안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았다.

"그래서, 왜 이런 험지에서 홀로 쓰러져 계셨소?"

로디븐은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될까 고민하다가 입을 뗐다.

"혹시 마족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오?"

"그야 모를 리가."

"······다소 갑작스러운 이야기겠지만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은 모두 진실이오."

남자가 잠자코 듣겠다는 듯 팔짱을 꼈다.

"우선 늦었지만 소개를 먼저 하겠소. 나는 엘폰 아카데미의 정교수인 로디븐 페르슈마라고 하오."

"흠······ 엘폰."

정체를 들은 남자의 반응은 묘했다. 적어도 카앤처럼 아카데미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기색은 아니었다.

로디븐은 그 반응을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가 말을 계속 이었다.

"내가 이 산맥에 온 목적은 마법 연구를 위해서 다양한 몬스터의 표본이 필요했기 때문이오."

"그러셨군."

"한데 이 산맥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인을 보았소. 그리고 느껴졌던 마력으로 보아 놈은 분명히 마족이거나 그 계약자요."

이번에도 남자의 반응은 묘하기 그지없었다.

마족은 한때 세상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존재들. 보통은 그 이름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두려워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남자의 반응은 미적지근하기만 했다. 그저 의외라는 듯 눈썹을 조금 꿈틀거린 게 전부였다.

"그렇군. 마족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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