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승자 (4)
사람이라고는 전혀 살 것 같지 않은 숲속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오두막.
조잡한 나무 울타리를 지나쳐 오두막 안으로 들어간 카앤은 탁자에 놓여있는 주전자를 집어들고 물부터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선 그대로 성큼성큼 위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벌컥.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곳엔 한 중년의 남성이 있었다.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던 남자는 방으로 들어온 카앤의 모습을 보고서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보였다.
정확히는 그녀가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낯선 이를 보고서.
"그게 누구냐?"
당혹스러움이 여실 묻어나오는 목소리에 카앤은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하게 대답했다.
"나도 몰라."
"······."
"동쪽으로 나갔는데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었어. 근데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어서."
카앤이 쓰러진 이를 침대에 내려놓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남자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문지르고서 몸을 일으켰다. 일단 상태를 살펴보기 위해.
뭘 보기는 한 건가 싶을 정도로 외부인의 상태를 슥 훑어본 그가 곧바로 진단을 내렸다.
"아무래도 마력 탈진인 것 같구나."
"아, 그러면 괜히 데려왔나?"
단순한 마력 탈진이라면 시간만 지나면 알아서 회복될 일이었다.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다. 마력을 굉장히 무리하게 끌어올린 모양이군. 상태가 심각해서 그대로 뒀으면 목숨을 잃었을 거다."
그가 소매를 걷고서 손가락을 까닥였다.
"창고에 가서 만드린 뿌리하고 페퍼리아 잎 좀 가져오너라. 물도 한 컵 끓여오고."
카앤은 군말 없이 바깥으로 나가서 남자가 시킨 것들을 가져왔다.
남자는 자리에서 바로 간단한 치료약을 조합하기 시작했고, 카앤은 익숙한 듯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물었다.
"이 사람 어디서 온 사람일까? 아버지."
라몬 산맥은 사람이 사는 도시나 마을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곳에 위치한 산맥이었다.
길목으로서 통행하는 이는 당연히 없었고, 때문에 카앤에게 있어 산맥 외부의 인간이란 낯설디 낯선 존재였다.
남자 또한 그녀가 이 외부인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있다는 걸 잘 알았다.
"글쎄다."
남자는 짤막하게 대꾸하고는 치료에 집중했다.
카앤도 더 묻지 않고서 팔짱을 낀 채 벽면에 등을 기대었다.
심각한 마력 탈진으로 쓰러진 외부인. 정체가 무엇인지야 정신을 차리면 본인에게 직접 대답을 들을 수 있으리라.
***
제국의 아카데미, 엘폰의 정교수 로디븐.
그가 장기간 휴가까지 내며 이런 제국 변경의 외진 산맥까지 오게 된 경위는 단순히 연구의 재료 수집을 위함이었다.
그의 전공 중 하나인 테이밍 마법은 많은 몬스터들의 표본을 필요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라몬 산맥은 완벽한 장소였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대자연은 미지의 생물들이 넘치는 보고였으니.
"정말 혼자서 가셔도 되겠습니까? 그래도 수행인 몇 명은 데려가시는 편이······."
"됐네. 뭐 거창한 일이라고 번거롭게 사람을 붙여서 가나."
로디븐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오른 이 산맥에서 설마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되리라고는.
산맥 깊은 곳에서 우연히 발견한 제단 같은 구조물에는 눈으로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몬스터들의 사체가 쌓여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전신을 피로 흠뻑 적신 채 우두커니 서있던 괴인.
대륙 최대의 아카데미 엘폰, 그곳의 정교수라는 직위를 지닌 로디븐은 말할 것도 없이 뛰어난 마법사였다.
그런 그도 평생에 이렇게나 불길한 기운을 풀풀 뿜어내는 마력은 겪어본 적이 없었다.
"인간? 마법사인가? 이런 외진 곳까지 죽을 자리를 다 찾아오고, 참으로 불운한 녀석이구나."
로디븐은 본능적으로 그가 마족이거나, 적어도 마족과 관련된 계약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 존재가 이런 장소에서 대체 무엇을 하고 있던 건지는 생각할 틈도 없었다.
다짜고짜 시작된 괴인의 습격에서 로디븐이 할 수 있는 건 필사적인 도주뿐이었다.
격의 차이는 명백했으나,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던 건 언젠가 아카데미의 교장에게 선물로 받았던 마도구 덕분이었다.
간발의 차로 마도구에 각인된 무작위 텔레포트 마법으로 겨우 괴인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으음."
정신을 차린 로디븐은 화들짝 놀라서 몸을 일으켰다.
주위를 둘러보니 낯선 공간이었다.
'여기는······?'
로디븐은 몽롱한 정신을 깨우고 쓰러지기 전의 기억을 더듬었다.
괴인에게 습격을 당했고, 겨우 도주한 다음 마력을 다 탈진해서 정신을 잃었었는데······ 이곳은 어디지?
로디븐은 몸 상태부터 확인했다.
쓰러지기 전에 완전히 탈진됐었던 마력은 어느 정도 회복되어 있었다.
경계가 섞인 눈으로 방 내부를 둘러보고 있자니 방문이 열렸다.
"깨어나셨군."
로디븐은 방으로 들어온 낯선 사내를 바라보고 있다가, 이내 더듬더듬 물었다.
"누구······ 시오?"
자신을 구해준 사람인가?
로디븐의 물음에 남자가 간단히 대꾸했다.
"이 오두막의 주인이오."
······오두막? 산맥 한가운데에?
이 험한 산맥에서 거주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단 말인가?
로디븐의 혼란스러운 표정에 남자는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을 덧붙였다.
"딸아이가 숲에 쓰러진 당신을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왔소. 그래서 간단히 치료를 마친 참이오."
"아······ 고맙소."
로디븐은 일단 감사부터 건넸다.
남자가 물었다.
"몸 상태는 어떠시오?"
"아, 덕분에 괜찮은 것 같소. 한데······."
로디븐은 머릿속에 떠다니는 의문들 중 무엇부터 물어야 할지를 정리했다.
이 남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또 분명히 심각한 수준의 마력 탈진이었을 텐데 어떻게 이리 말끔하게 상태를 안정시킨 건지.
반면에 남자는 로디븐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방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차라도 좀 가져다드리겠소. 쉬고 계시오."
방 바깥으로 나간 남자가 이내 찻잔을 들고서 도로 돌아왔다.
로디븐은 남자가 건네준 차를 빤히 바라보다가 한 모금 마시는 척만 하고서 탁자에 내려놨다.
남자가 그 모습을 보고는 툭 말을 내던졌다.
"이상한 건 넣지 않았소. 그럴 이유도 없고. 안심하고 마셔도 되건만."
"······."
로디븐은 무안함에 헛기침을 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완전히 무방비한 상황이라 조심한 것뿐이었지만, 상대의 입장에서는 확실히 실례되는 행동이었다.
애초에 불순한 의도가 있었다면 자신을 이렇게 치료해줬을 리도 없었으니까.
"미안하오. 아직 상황이 혼란스러워서 그렇소. 한데 당신은······ 이 산맥에서 생활하는 분이오?"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로디븐은 남자도 자신에게 무언가를 물을 줄 알았지만,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서 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이 회복되었다면 내킬 때 떠나시오. 더 안정이 필요하면 며칠 정도는 머무를 수 있게 해주겠소."
단지 그렇게 말하고는 더 나눌 말이 없다는 듯 다시 밖으로 나가버릴 뿐이었다.
로디븐은 묘한 사내라고 생각하며 닫힌 방문을 잠시 바라보다가, 옆의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창밖으로는 집 주위를 넓게 두른 목책과 앞마당이 보였다.
그리고 앞마당에서는 한 소녀가 나무 위에 올라가서 눈을 감은 채 누워있었다.
'저 소녀가 딸인가?'
로디븐은 일단 바깥으로 나가기로 했다.
남자는 그새 어디로 사라진 건지 집 안에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오두막의 앞마당으로 나온 그는 소녀가 올라가있는 나무 밑으로 걸음을 옮겼다.
소녀는 어느새 눈을 뜨고서 이쪽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깼네요."
훌쩍 나무 밑으로 뛰어내린 카앤이 로디븐을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물었다.
"산맥 바깥에서 온 사람이죠? 어디서 온 사람이에요? 여기에는 왜 들어왔어요?"
자신에게 아무것도 궁금한 게 없는 것 같은 남자와 정반대로 그녀는 궁금한 게 아주 많아 보였다.
질문 세례에 로디븐은 잠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그에게 있어 이 나이대의 소녀는 아카데미의 학생 말고는 평소 상대할 일이 없었고, 그들은 대체로 아주 공손했기에 카앤의 천진난만한 태도가 새삼 낯선 탓이었다.
"너는, 아버지와 단둘이 이 산맥에서 살고 있는 거니?"
"제가 먼저 질문했잖아요. 먼저 대답하세요."
로디븐은 당혹스러움을 숨기며 간단히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로디븐이라고 한다. 마법사지. 엘폰 아카데미 소속의 교수이기도 하고."
카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엘폰? 아카데미?"
***
용사와 동행하여 라몬 산맥까지의 향하는 길은 굉장히 고요했다.
고요했다고 해야 할까, 공기가 삭막했다고 해야 할까.
아셸을 데리고 이곳저곳 돌아다닐 때도 딱히 대화를 많이 나누던 편은 아니었지만, 용사가 일행에 추가되니 더 오가는 말이 없게 된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웠다.
용사는 필요한 말이 아니면 전혀 하지 않는 편이었고, 아셸도 용사를 의식해서인지 평소보다 더욱 말이 없었으니까.
날이 완전히 저물고 식사와 야영을 위해서 땅에 내려섰다.
아셸이 습관적으로 주위를 경계하듯 살펴보고는 말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다녀온다는 건 띠용이의 사냥에 함께 나선다는 의미였다.
우리가 먹을 식량이야 챙겨온 게 있지만 띠용이의 몫은 따로 사냥이 필요했다. 덩치가 덩치였으니까.
와이번의 본능 탓인지, 저번에 한 번 띠용이가 몬스터를 너무 불필요하게 많이 학살한 전적이 있었다.
워낙에 영리한 녀석이라 말은 잘 듣지만, 그때부터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아셸이 따라붙어서 제어하도록 하고 있었다.
펄럭!
띠용이가 날개를 편 채 하늘로 날아오르고, 아셸이 그 뒤를 쫓아서 달리며 멀어졌다.
나는 자리에 앉아 한참이나 모닥불이 타오르는 걸 멍하니 응시했다.
맞은편에 앉은 용사가 그런 내 모습을 묘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하나 궁금한 걸 물어도 되겠나?"
"······?"
용사가 먼저 말을 꺼낸 건 출발한 뒤 지금이 처음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목적은 대륙의 평화라고 했다. 그것은 나의 목적과 합치하는 것이고, 그래서 나를 돕는 것이라 했지."
"그래."
"그러면 칼데릭의 군주가 된 것도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계획의 일부인 것인가?"
아······ 그 얘기인가?
한마디로 군주가 된 이유가 궁금하다는 말이었다.
그녀도 내가 최근에 군좌에 오른 새로운 군주라는 사실은 알고 있을 테니까.
'그건 나도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야.'
이 세계에 떨어지자마자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처지에 내몰렸던 것뿐이지.
뭐,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대답하기 애매한 질문이었기에 나는 침묵으로 넘겼다.
"이 또한 대답해주지 않겠다는 건가."
하지만 용사는 더 캐묻지 않고 순순히 넘어갔다. 침묵만으로 대답이 됐다는 듯.
아무래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인 모양이었지만 오해하든 말든 별 상관은 없었다.
"궁금한 걸 하나 더 물어도 되겠나?"
"일일이 그렇게 묻고서 질문할 필요는 없다. 답할 수 있는 거라면 답해줄 테니."
"그대의 호위, 아셸 경에 대한 이야기다."
용사의 목소리가 조금 무겁게 가라앉았다.
"7군주 그대와 아셸 경의 유대는 보통처럼 보이지 않더군. 그대가 경을 수하로 거두게 된 경위가 궁금하다."
"음······."
아셸의 정체를 알게 되서인지, 용사는 확실히 그녀에 대해 관심이 많은 듯 보였다. 미안함이나 죄책감 때문이겠지만.
이건 알려주지 못 할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적당히 대답해주었다.
군주성에서 아셸을 우연히 발견했던 것, 백월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어찌어찌 곁에 데리고 다니게 된 것.
이야기를 들은 용사는 잠시 말이 없다가 다시 질문했다.
"그대 또한 나를 경멸하는가?"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의미를 못 이해하지는 않았다.
나는 말없이 용사와 눈을 마주쳤다.
용사를 경멸하냐고? 그럴 리가 없다.
게임에서 그녀가 흘렸던 독백들이 하나둘 머릿속에 스쳤다.
그녀가 마음에 품은, 평화를 위한 맹목적인 신념을 그녀 본인을 제외하면 가장 잘 아는 인간은 아마 나일 것이다.
그렇기에 아셸은 그럴 수 없어도 적어도 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도 결국 내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니니 그런 거겠지만.'
나는 약간의 씁쓸함을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고강한 힘을 가지고 있더라도 신이 아닌 이상에야 모두를 구원할 수는 없지. 누구보다도 당신이 잘 알고 있지 않나?"
"······."
"내가 당신에게 지니고 있는 감정에 적어도 경멸은 조금도 없다."
용사의 표정이 어쩐지 지쳐 보인 탓이었을까.
나는 조금 쓸데없는 뒷말까지 덧붙이고 말았다.
"그리고 당장의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존재는 용사, 당신뿐이다."
그 말은 조금 의외였는지 용사의 눈이 조금 크게 떠졌다.
잠시 뒤 인기척이 느껴지고 아셸과 띠용이가 돌아왔다.
아셸은 자연스럽게 내 곁에 서서 마저 호위를 서기 시작했다.
사실 용사까지 있는 이상에야 뭐라도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일은 없다.
그렇기에 아셸이 보초를 설 필요는 없었지만 말려도 고집을 부릴 게 뻔했기에 굳이 그러지는 않았다. 호위로서 책무를 다하려는 그녀를 존중하려는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아셸의 얼굴을 슬쩍 바라봤다.
그녀의 분위기가 띠용이와 함께 나서기 전보다 좋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기분 탓인가?
의아함을 느끼다가 다시금 모닥불로 시선을 돌렸다.
***
"천천히 먹어라."
아셸은 게걸스레 사냥한 몬스터를 뜯어먹는 띠용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물론 녀석은 듣는 둥 마는 둥 식사 속도에 전혀 변함은 없었지만.
주위를 둘러본 아셸이 슬며시 띠용이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흠······."
그리곤 작게 헛기침을 하더니 발 부근에 손을 올리고는 슬슬 쓰다듬기 시작했다.
평소에 7군주 앞에서는 보일 수 없는, 그리고 보여서는 안 될 모습이었지만 보는 눈이 없는 지금은 괜찮았다.
와이번의 발가락 사이사이의 비늘에 조금 물렁한, 촉감이 좋은 부위가 있다는 걸 최근에야 알게 된 그녀였다.
아셸은 잠시 멍하니 비늘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용사에 관한 것이었다.
사실 아셸에게 있어 용사에 대한 감정은 스스로도 명확히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것이었다.
분노는 아니다. 원망이나 경멸 따위도 아니었다.
단순히 일족의 일과 관련된 껄끄러움의 감정뿐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대체 뭘까?
7군주에게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지만, 그저 당신의 뜻에 따를 뿐이라고 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아셸은 좀처럼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는 마음에 여전히 혼란감을 느끼고 있었다.
"다 먹었으면 이만 가자."
식사를 마친 띠용이를 데리고 아셸은 걸음을 옮겼다.
자리를 잡았던 곳에 도착할 즈음 7군주와 용사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당장의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존재는 용사, 당신뿐이다."
아셸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그 상태로 굳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순간 마음 한편이 답답할 정도로 미어지는 것을 느끼며.
······생각해보면 용사에게 껄끄러운 무언가를 느낀 건, 그녀의 정체가 용사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가 아니었다.
7군주가 여관에서 용사와 처음으로 만나게 했을 때부터.
그가 남들에게는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던 묘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는 걸 인지했을 때부터.
"······."
7군주에게 있어 용사라는 존재는 어떤 의미일까?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는 세상의 영웅이었으며, 그 누구보다도 찬란하고 위대한 여인이었다. 적어도 자신 따위는 감히 비교도 될 수 없는.
아셸은 잠시 우두커니 서있다가 마저 걸음을 옮겼다.
마음에 솟아오르는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애써 외면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