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 (6)
수도원 뒷편의 숲은 내가 쓰러져있던 곳과는 다른 방향에 위치한 숲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하기 그지없는 숲이었는데, 뜬금없이 괴물이라니.
"뭐······ 흉포한 몬스터가 산다는 거냐?"
"그건 모르죠. 실제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어째서 괴물이 존재한다고 하는 거지?"
"방금 말했잖아요. 수도원 사람들이 실종된 적이 여러 번 있었다고. 그러니 다들 정체불명의 괴물의 소행이라고 하는 거죠."
그냥 소문이라는 건가.
하기야, 사람이 여럿이나 실종됐으면 그런 식으로 여겨질 법도 했다.
"그래서 한 번은 대대적인 수색을 한 적도 있었는데, 결국 작은 흔적 하나 찾지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숲에 들어간 사람마다 전부 실종된 건가?"
"아뇨, 몇몇 사람만요. 그 전에는 별 문제없이 잘 지나다녔대요. 일이 몇 번 터지고 난 후에야 거의 들어가지 않게 된 거고."
엘리카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제가 수도원에 들어오기도 전의 예전 일이라 자세히는 몰라요. 솔직히 저도 괴물 같은 건 안 믿지만요."
"그래도 그런 일이 일어난 걸 보면 숲에 무언가가 있긴 있나 보군."
"그럴지도 모르죠. 아무튼 들어가서 좋을 게 없으니까, 나중에 떠날 때 굳이 그쪽으로는 가지 말라고 말씀드린 거예요."
그녀가 몸을 돌렸다.
"그럼 전 나가볼게요. 수고하세요."
나는 그녀가 바깥으로 나가고 닫힌 방문을 바라보다가, 책상에 놓인 식사로 시선을 돌렸다.
식사부터 하기 위해 종이와 책들을 한쪽에 밀어놓고 수저를 집어들었다.
'그나저나······.'
방금 전에 엘리카가 했던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그녀에게도 무언가 사정이 있는 듯했다.
이 수도원의 아이들 대부분은 갈 곳이 없어 이곳에서 지내고 있는 것이니 당연한 것이긴 했지만.
'마족한테 가족을 잃기라도 했나.'
전쟁이 끝난 후에도 마족들은 대놓고 날뛰지 않는다 뿐이지, 알게 모르게 대륙 곳곳에서 해악을 끼치고 있었다.
직접 학살을 자행하기도 하고, 계약으로 많은 이들을 타락시키기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은······.
'마의 씨앗.'
마족들은 마왕의 부활을 꿈꾼다.
다시 그 괴물을 부활시켜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씨를 말리고, 오직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기를 갈망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놈들이 은밀하게 행하고 있는 일.
그것이 바로 '마의 씨앗'을 품은 이들을 찾는 것이었다.
용사와의 마지막 결전, 성검에 의해 존재가 완전히 소멸당한 위기에 처한 마왕은 권능을 사용해 자신의 영혼을 조각내어 온 대륙으로 퍼뜨렸다.
그 영혼 조각, 마의 씨앗을 품게 된 이들이 바로 마왕의 부활을 앞당길 수 있는 열쇠이자 제물이었다.
현재 마족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넘어와 대륙 곳곳을 은밀히 떠돌며 그런 씨앗을 품은 이들을 찾고 있었다.
때문에 일단 계승자를 찾는 게 우선이긴 하지만, 그 다음에는 그 사람들도 어떻게든 찾아서 확보해둘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상념을 마치고 수프를 떠먹었다.
누가 요리를 하는 건지는 몰라도 식사는 매번 맛있었다.
***
날이 밝고, 마당으로 나온 엘리카와 헤런은 이른 아침부터 먼저 나와있는 톰을 발견했다.
"왔냐?"
톰이 휘두르고 있던 목검을 멈추고서 두 사람을 반겼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훈련하기라도 한 건지 벌써 몸에 땀과 열기가 한가득이었다.
"아침부터 기운도 좋다. 언제 일어났냐?"
"한 2시간 전쯤에? 어우, 이제 좀 쉬어야겠다."
톰이 목검을 내던지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가 왜 이렇게 열심인지는 두 사람도 이유를 알고 있었다.
헤런이 타이르듯 말했다.
"무작정 수련만 한다고 능사가 아니다. 이제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컨디션 관리도 해야지."
로벨지오 수도원은 세인테아 남동부 변경에서는 제법 규모가 큰 편에 속하는 수도원이었다.
애초에 웬만한 규모의 수도원이 아니고서야 성기사 정도의 전력들이 상주하는 일은 없었다.
때문에 관리하고 있는 아이들도 많은 만큼 그들 중 재능이 뛰어난 인재들을 뽑아서 제대로 육성하기도 했는데, 그 선별 시험이 이제 앞으로 일주일도 남지 않은 것이었다.
그리고 톰은 견습 성기사가 되기 위해 이번 선별 시험에 도전할 생각이었다.
"야,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컨디션 관리씩이나."
팔짱을 끼고 있던 엘리카가 코웃음을 쳤다.
기분이 나쁠 법도 했지만 진심으로 비웃는 게 아니라 그냥 놀릴 뿐이라는 건 톰도 알고 있었기에, 피식 웃고 말았다.
"대련이라도 할까?"
"좋지. 근데 이제 시간 거의 다 됐으니까 예배 드리고 아침부터 먹고 하자."
성직자들의 공간인 만큼 매일 아침마다 모여서 올리는 예배는 가장 기본적인 생활 규율이었다.
엘리카가 귀찮다는 표정을 한 번 짓고는 톰이 내던진 목검을 집어들었다.
허공에 대고 검을 휘휘 젓는 그녀를 보다가 톰이 물었다.
"그런데 넌 진짜로 안 할 거냐?"
"뭘?"
"뭐기는, 성기사 말이야. 네 실력이면 분명히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말에 엘리카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 진짜. 안 한다고."
"아니······ 난 진짜로 이해가 안 되는 게 그러면서 검술 수련은 왜 하는 건데? 야, 헤런. 너는 얘가 이해되냐? 응?"
헤런은 어깨만 으쓱이고 말았다.
이렇게 까불거리다가 또 얻어터지는 게 뻔한 패턴이고, 자신은 거기에 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예상대로 결국 목검의 면으로 등짝 한 대를 얻어맞고 마는 톰이었다.
"아, 아파!"
"작작 좀 해. 검이야 그냥 심심하니까 휘두르는 거고, 난 그냥 사제가 될 거라고 몇 번을 말해야 되냐?"
"웃기고 있네, 툭하면 폭력만 휘두르는 게 사제는 무슨! 말 안 듣는 애 있을 때마다 쥐어패서 계도라도 하게?"
얼얼한 등을 싹싹 비비면서도 깝죽대던 톰은 다시 한 번 엘리카가 험악한 얼굴로 검을 들어올리자, 재빨리 헤런 뒤로 숨었다.
헤런이 작게 혀를 찼다.
"엘리카, 적당히 해라. 그래도 시험 볼 녀석인데 어디 잘못 얻어맞았다가 망치기라도 하면 안 되잖아."
"그래, 지당한 말이지. 너 때문에 망치면 평생 저주할 거다."
"너도 좀 조용히 다물고."
엘리카는 한숨을 내쉬고서 목검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예배당으로 가기나 하자. 넌 진짜 한 번만 더 깝죽거리면 머리를 깨버린다."
"······어이구, 무서워라."
"그만하라고. 쟨 진짜로 한다니까."
투닥거리던 세 사람이 건물로 다시 들어가려는 때였다.
"어, 에단 씨다."
어느새 건물에서 나와 마당 한편에 놓인 벤치에 앉아있는 남자.
톰이 저멀리 보이는 에단을 발견하고 휘휘 손을 흔들었다.
그 역시 세 사람을 돌아보고는 손을 한 번 들어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요새 마당으로 자주 나오시네. 몸이 많이 회복된 건가?"
"그런가봐."
톰이 엘리카에게 물었다.
"야, 엘리카. 너는 아직도 의심 중이냐? 저 사람이 뭔가 숨기고 있다고?"
"어."
"흐음, 내가 보기엔 그냥 무뚝뚝해도 친절한 아저씨인데. 저번에도 보니까 수녀님들 사이에 섞여서 청소를 돕고 계시더라고."
엘리카가 잠시 침묵했다가 대답했다.
"나도 나쁜 사람 같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거든. 그냥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있을 것 같다는 거지."
"아, 그런 거야?"
그가 이곳 수도원에서 지낸 지도 제법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세 사람 모두 대화를 나눈 적은 별로 없었기에 그에 대해 제대로 아는 건 여전히 없었다.
묘하게 접근해서 말을 걸기가 힘든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까닭도 있었다.
"그냥 여기 수도원에서 계속 지내도 좋을 텐데 말이야."
그때 양동이를 들고 가던 한 소녀가 세 사람의 곁을 지나치며 한마디 거들었다. 그들의 또래 친구인 카라였다.
톰이 그녀를 돌아보며 물었다.
"계속 지내면 좋겠다니, 뭔 소리야?"
"아니, 그냥. 엄청 잘 생기셨으니까 눈이 호강하잖아. 그렇지 않아, 엘리카?"
"몰라."
그녀의 짖궂은 물음에 엘리카가 짧게 대꾸했다.
톰이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쯧쯧, 하여튼 얼굴만 잘생기면 좋다고."
"니가 할 말이냐? 톰 너야말로 매번 라야 수녀님 볼 때마다 헤벌쭉거리지 말고 침이나 닦아."
"뭐? 뭔 소리야, 그게!"
소녀가 혀를 내밀고는 마저 가던 길을 가버렸다.
톰이 힐끗 엘리카를 바라보고는 다급하게 변명했다.
"쟤, 쟤가 뭔 이상한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난 그런 적 없어, 엘리카."
"······뭐 어쩌라고?"
엘리카는 그런 톰에게 신경을 끄고 다시 에단을 돌아봤다.
톰이 헛기침을 하고서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에단 씨는 언제쯤 떠나시려나. 몸도 엄청 허약하신 것 같은데 혼자서 가다가 또 쓰러지는 건 아닌가 몰라."
"설마."
"······아, 그건 어때? 만약에 떠나면 당연히 근처 도시는 지나쳐 들를 것 아냐? 그럼 우리가 위험할 일 없도록 거기까지만 데려다드린다고 하는 거야!"
"그거 핑계로 도시까지 외출하자고? 너 바보냐? 사제님들이 허락해줄 리가 있나."
세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예배당으로 향했다.
***
'다 들린다, 이것들아.'
나는 건물 안으로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그만 방으로 돌아가서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근처를 지나쳐가는 한 사제의 모습이 보였다. 테인 사제였다.
"아, 에단 씨."
그도 나를 발견하고서 이쪽으로 다가와서 반갑게 인사를 건네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아침부터 이곳에 나와서 계셨군요."
"예, 그냥 산책을 좀 하고 있었습니다. 사제님께서는?"
"이제 곳 아침 예배 시간이라 예배당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테인의 손에는 경전 한 권이 들려있었다.
그가 경전을 내려다보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보다 경전 정리를 맡아주신 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몸도 편찮으신데 제가 괜한 수고를 끼친 건 아닌지······."
"펜만 움직이면 되는 일인데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리고 이제 거의 다 끝났습니다."
"······예? 어제 시작하셨는데 벌써 거의 다 끝났다는 말씀입니까?"
그가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 아마 오늘 오후 중으로 전부 끝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허······ 정말 빠르시군요."
"남은 게 있다면 더 도와드리겠습니다."
"아, 그럼······ 아니, 아닙니다."
홀린 듯이 뭔가를 말하려다가 재빨리 고개를 젓는 그였다.
뭔가 또 시키고 싶은 일이 있지만 참는 모양이었다.
딱히 크게 고생하는 것도 아니고 더 해도 상관은 없는데 말이다.
"이제 나머지는 제가 전부 마무리하겠습니다. 해주신 것만 해도 충분히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감사를 건네며 미소를 짓는 그였다.
그만 인사를 하고 지나치려는 때였다.
"······?"
나는 저멀리 걸어가고 있는 한 중년 남성을 발견하고서, 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테인도 내 시선을 따라서 고개를 돌렸다.
"아, 원장님이시군요."
······원장님? 수도원장?
테인을 바라보자 그가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에단 씨께서는 아직 원장님을 보신 적이 없으십니까?"
"······예, 대부분 방에서만 있었으니."
"저분이 이곳 수도원의 원장이신 디호드 님입니다. 모든 사제들의 모범일 정도로 굉장히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원장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가 내 눈에 띈 것은 다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Lv. 64】
왜냐면, 그의 머리 위에 떠있는 레벨이 일개 수도원의 원장이 가질 만한 레벨이 전혀 아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