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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사기 들고 게임 속으로-101화 (100/189)

디트로데미얀

'뭐야, 저건······.'

나는 당혹스러움을 느끼며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광경을 응시했다.

죽은 마탑주의 시체에서 계속해서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기운이 뿜어져나오고 있었다.

······마력? 마력이기는 하지만 미묘한 이질감이 있다.

불길하고 역겨운, 단순히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불쾌해지는 그런 기운.

마탑주의 마지막 발악인가 싶었지만 놈은 분명히 죽었다.

기운은 마치 스스로가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듯 허공에서 한가득 뭉쳐진 채 꿈틀거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마탑의 마법사들을 다시 바라봤다.

하지만 그들 역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전혀 모르는 듯 어안이 벙벙한 기색들이었다.

더 놀라운 건 다음 순간이었다.

푸욱!

거대하게 뭉쳐진 기운이 촉수처럼 뻗더니 도로 마탑주의 시체를 꿰뚫었다.

붉은빛의 기운이 시커먼 줄기를 덩굴처럼 휘감아 타고서 기운의 중심으로 흡수되었다.

그러자 마탑주의 시체가 서서히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했다. 남은 생명마저 한 톨도 남김없이 빨린 듯한 모습이었다.

"······!"

지금 설마 생명력을 흡수한 건가?

나는 그 기괴한 광경을 보며 번뜩 깨달을 수 있었다. 저 알 수 없는 기운의 정체가 무엇인지.

마족과 계약을 한 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것은 힘일 수도, 영혼일 수도, 생명력일 수도, 아니면 그 전부일 수도 있었다.

마족은 계약자의 생명이 끊어지는 순간 그에게서 가져갈 수 있는 모든 걸 탐욕스레 가져가니까.

그렇기에 지금 눈앞에 보이는 기운의 근원이 마족의 힘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마탑주는 아직 계약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동시에 등골에 미미한 소름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왜냐면 플라베로스의 마탑주와 계약을 한 마족이 누구인지 나는 잘 알고 있었으니까.

'······디트로데미얀.'

마족의 최고 수뇌부인 원마.

마족 서열 7위, 마족 세력 전체에서 7번째로 강한 마족.

놈이 바로 플라베로스의 마탑주와 계약을 한 마족의 정체였다.

쫘아아악!

기운이 이번엔 사방으로 줄기를 뻗었다. 나와 아셸이 있는 쪽으로도.

나는 부동 장막을 펼쳐 접촉을 막았고, 아셸도 곧바로 검을 뽑아들고서 베어버렸다.

하지만 반대편에 있던 마법사들은 차마 기운의 습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기운은 그들이 펼친 방어막마저 가볍게 뚫어버리고 몸체를 꿰뚫었다.

"커헉······!"

기운에 꿰인 마법사들은 방금 전의 마탑주와 같이 순식간에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져서 죽어버렸다.

그들의 생명력마저 모두 흡수해버린 기운은 본래의 칠흑색과 붉은색이 뒤섞인 채 꿀렁거렸다.

나는 그저 경계하며 그 광경을 지켜보기만 했다. 이 상황에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으니까.

'신경 끄고 그냥 빠져나가야 되나?'

목적인 마탑주는 죽였고, 놈과 계약한 마족이 뭔 지랄을 하든 알 바 아니긴 했다. 애초에 할 수 없는 것도 없었다.

곧 하늘 높이 떠오른 기운이 어느 방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순간 저 기운이 향하는 쪽으로 따라가면 디트로데미얀을 만날 수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띠용이를 타고 뒤쫓으면 충분히 가능할 테니까.

하지만 위험천만하기 그지없는 생각이었기에 바로 관두었다.

'······아직은 너무 이르지.'

마족은 그 어느 종족보다도 위험천만한 존재들이었다.

놈들의 힘의 근원은 마력이지만 그 고유 능력들은 마치 신비처럼 무질서하고 예측할 수 없었으니까.

마족, 특히 놈들의 최고 전력인 원마들은 언젠가 모두 처지해야 할 적이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디트로데미얀의 능력은 모두 알고 있긴 하지만 준비가 불완전한 상태에서 굳이 리스크를 감수하고 상대할 필요는 없었다.

"돌아간다."

멀어지는 기운을 보며 명령을 기다리듯 가만히 서있는 아셸에게 말했다.

그리고 띠용이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려는 순간이었다.

"······!"

돌연 느껴진 거대한 마력의 유동.

나는 황급히 부동 장막을 넓게 펼쳤다.

기운이 날아간 방향 저멀리서부터 어둠이 꿈틀거린다 싶더니, 다음 순간 시커먼 불꽃이 해일처럼 일대 전체를 뒤덮어왔다.

스으으.

불꽃이 지나간 자리는 완전히 폐허가 되어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 이게 무슨······."

아셸과 정보원이 경악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전조도 없이 갑작스럽게 날아든 공격.

좀 전에 마탑주가 펼쳤던 마법들조차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대하고 압도적인 기운이었다.

두 사람은 장막으로 보호했고, 띠용이는 내가 서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다행히 공격 범위 밖에 있었다.

키에엑!

녀석이 기겁하며 이쪽으로 날아와서 내 곁에 착지했다.

나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한쪽을 바라봤다.

'······이건 완전히 상정 밖인데.'

저번의 긴급 소집 이후로 간만에 마음속에 긴장감과 위기감이 차올랐다.

설마 놈이 바로 이 근처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대체 왜?

곧 어둠 저편에서 천천히 걸어나오는 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보통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장신에, 창백히 느껴지는 잿빛의 피부를 지닌.

【Lv. 96】

원마, 디트로데미얀.

태연하게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놈이 탁한 눈빛으로 이쪽을 쳐다봤다.

놈에게서 뿜어져나오는 강대하고도 불길하기 그지없는 기운은 군주들 그 이상이었다. 레벨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나와 가만히 눈을 마주치고 있던 놈의 시선이 죽은 마탑주의 시체로 옮겨졌다.

곧 놈의 입이 열렸다.

"네가 칼데릭의 7군주군."

"······."

"내 계약자는 어째서 죽인 건지 이유를 들어봐야겠다. 대군주의 뜻인가?"

나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놈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아니, 관찰했다.

놈의 주위에는 방금 전 일대를 휩쓴 흑색의 불꽃 같은 것이 일렁거리고 있었는데, 저 능력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멸겁의 불꽃. 닿은 것은 무엇이라도 소멸시켜버리는, 놈이 가지고 있는 고유 능력 중 하나.

"대답하지 않으면 죽이겠다."

무미건조하기 그지없는 놈의 목소리에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대답하면 그냥 가던 길이나 가겠나?"

놈이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물론 아니지. 너는 여기서 죽는다."

예상한 대답이었다.

놈에게서 느껴지는 불쾌한 기운이 살의와 뒤섞여 더욱 진해졌다.

나는 속으로 욕을 뇌까리며 전투를 준비했다.

"물러서라."

내 말에 조금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있던 아셸이 날 돌아보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뽑아들던 검을 도로 집어넣고 순순히 물러섰다. 자신이 나설 게 아니라는 걸 바로 깨달은 것이었다.

아무리 그녀가 성장했다고 한들 지금은 전력이 아니라 방해밖에 되지 않았다. 상대가 상대였으니까.

'대체 저놈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마탑주를 보러 찾아오기라도 한 건가? 그런데 하필 타이밍이 공교롭게 맞아떨어졌나?

뭐가 됐든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전투를 피할 수는 없었다. 놈은 이미 날 죽이려는 의지가 충만한 듯했으니.

나는 띠용이에게 시선을 옮겼다.

와이번 특성상 평소라면 녀석이 나 없이 다른 사람만 등에 태우는 일은 없었지만, 지금은 그럴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이 둘을 태우고서 최대한 멀리 빠져나가라."

영리한 녀석이라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했는지 녀석도 고집을 부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셸이 정보원을 데리고서 곧바로 띠용이의 등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디트로데미얀에게서 날아들 공격을 경계했지만 놈은 딱히 막을 생각이 없는 듯 우두커니 서있을 뿐이었다.

두 사람을 태운 띠용이가 힘껏 날아올라 순식간에 밤하늘 저편으로 멀어졌다.

"마음껏 발악하거라. 어차피 모두 죽게 될 것이다."

나는 기습적으로 혈술을 사용하여 놈에게 핏방울을 쏘아냈다.

하지만 핏방울은 놈의 주위를 뒤덮고 있는 시커먼 불꽃에 닿자마자 타버려서 소용이 없었다.

'쯧.'

저 불꽃을 주위에 방어막처럼 두르고 있는 이상에야 즉살을 발동하는 건 무리다.

놈이 손을 휘젓더니 좀 전처럼 파도처럼 거대한 불꽃을 쏘아냈다.

나는 부동 장막을 펼쳐서 다시금 공격을 막아냈다. 그 다음 뒤쪽으로 순간이동했다.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공격이 날아오면 방어가 힘들었기에 조금 더 거리를 벌리기 위함이었다.

"마법이 아니라 신비인가?"

그렇게 중얼거린 놈이 이번에는 손을 펼쳤다가 꽉 쥐었다.

동시에 내 주위에 돌연 자색의 기운이 생겨나더니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렸다.

나는 섬짓한 기분을 느끼며 다시금 아슬아슬하게 공간 도약을 펼쳤다.

우드득!

순간이동한 바로 다음 순간, 일그러지며 압축된 자색의 기운이 곧바로 내가 서있던 자리를 집어삼켰다.

자색 기운의 범위 내에 있던 지면의 일부와 수풀은 그대로 소멸되어 경계를 따라서 매끈하게 잘린 채였다. 마치 공간 자체가 절단된 듯한 광경.

'······공간 절단.'

멸겁의 불꽃과 더불어서 디트로데미얀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능력이었다.

말 그대로 공간 자체를 도려내는 능력이기에 반응이 조금 늦어 저기에 휩쓸렸으면 그대로 소멸했을 것이다. 저건 게임에서도 즉사기에 가까운 공격이었다.

화아악!

쉴 틈을 주지 않고 바로 다음 공격이 날아들었다.

놈은 제자리에 가만히 선 채 손만 까딱거리며 공격을 날릴 뿐이었지만, 내게 있어서는 조금의 여유도 없었다.

나는 몰아치는 불꽃과 기습적으로 나타나는 자색의 기운을 정신없이 막고 피했다.

아슬아슬하게 버티는 게 고작인 지금도 놈이 전력을 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멸겁의 불꽃과 공간 절단 외에도 놈이 가지고 있는 능력은 몇 개가 더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어쩌지?'

문제는 내가 놈에게 반격할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하지가 않다는 것이었다.

한 번의 접촉이면 된다. 놈에게도 즉살은 당연히 통할 테니까.

근데 그 접촉이 불가능했다. 혈술이 불꽃에 완전히 막혀버린 이상에야 놈에게 접촉할 방도가 없었다.

생각나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혈술이 아닌 공간 도약을 사용해서 놈에게 직접 접촉하는 것뿐이었지만······.

'그것도 마땅치가 않아.'

그럴 경우에는 놈의 불꽃에 직접 전신이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내 목숨을 내던져서 시도해야 할 방법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시간만 끌다가는 결국 언젠가 당할 수밖에 없다는 건 예정된 결과였다.

놈이 다른 능력들까지 사용해서 전력을 내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승부를 봐야 하는데······.

'······어쩔 수 없나.'

초재생을 믿고서 어떻게든 한번 해보는 수밖에.

결단을 내린 나는 몰아치는 불꽃을 막아낸 바로 다음 순간 공간 도약을 펼쳤다.

놈의 바로 지척으로, 그 시커먼 불꽃이 타오르는 한가운데로 순간이동했다.

"······!"

지금껏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격통이 온몸에 치솟아올랐다.

눈앞에 펼쳐진 건 시커먼 불꽃에 순식간에 타올라 더 이상 피부가 보이지 않는 팔이었다. 심지어 하얀 뼈마저 드러나있었다.

하지만 아직 부동 장막을 펼칠 수는 없다.

시야마저 곧바로 어둠에 흐릿해졌다. 나는 아득해지는 의식을 간신히 붙잡고서 목적대로 손을 내뻗었다.

놈의 눈에 경악이 스친 바로 다음 순간 내 손이 끝내 놈의 몸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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