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국 회담 (1)
세인테아 제국 연합.
세인테아 제국을 중심으로 뭉친 여러 인간 중심 국가들의 연합이자, 라사 세계관의 메인 스토리 줄기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세력.
칼데릭은 세인테아와 직접적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지 않다.
두 세력 사이의 중간 지대에는 여러 중립국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립이라고는 해도 말뿐이지, 마족 침공 이후로는 세인테아에 흡수되다시피 한 국가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금까지도 실질적으로 중립의 진영에 남아있다고 할 수 있는 국가는 둘뿐이었다.
어스힐 왕국과 카숄 왕국.
칼데릭과 세인테아, 두 거대 세력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중립을 표방하고 있는 두 국가.
전체 국력이 칼데릭의 군주령 하나만도 못한 두 약소국이 지금까지 중립의 진영에 남아있을 수 있던 것에는 여러 정치적인 이유들이 있었다.
어스힐에서 열리는 이번 중립국 회담은 칼데릭과 세인테아, 그리고 그런 중립국의 왕족들이 모두 모이는 자리였다.
'다 왔네.'
띠용이를 타고 빠르게 대군주령까지 날아온 나는 저멀리 보이기 시작한 대군주성을 바라봤다.
고도를 낮춰 성의 입구로 가까이 다가가자 이미 나와있는 이들의 모습이 보였는데, 대군주와 참모장이었다.
띠용이가 날개를 펄럭이며 그들의 바로 앞에 착륙했다.
내가 먼저 공간 도약으로 내려서고, 뒤따라 내려선 아셸이 대군주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왔어, 7군주?"
대군주는 언제나처럼 천진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왔다.
그녀가 묘한 눈빛으로 아셸을 한 번 쳐다보고는, 곧 띠용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눈에 이채를 띠며.
"글라이드 산맥으로 와이번을 구하러 갔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블랙 와이번이네? 7군주랑 똑같이 눈동자도 황금색이고."
대군주가 빤히 쳐다보자 띠용이는 왜인지 꺼리는 듯한 기색으로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그 반응에 그녀가 싱긋 웃고는 도로 내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7군주, 듣기로는 2군주의 와이번을 타고 함께 갔었다고 하던데 말이야. 저번 소집에서는 2군주가 아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는데, 그새 어떻게 친해지기라도 한 거야? 하하."
······그것까지 다 알고 있었나?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출발은 언제지?"
"음, 글쎄? 7군주만 상관없으면 지금 바로 출발할까."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그녀의 복장을 바라봤다.
여태껏 볼 때마다 그랬듯 검은 드레스 차림이었다. 저대로 이동하겠다는 건가?
이제부터 중립국으로 향하는 건데, 회담이 아니라 어디 마실이라도 나가는 듯한 분위기에 조금 황당해졌다.
이런 식으로 대충대충이 아니라 그래도 제대로 된 행렬을 차려서 이동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이동하는 건 넷뿐인가?"
"아니. 참모장은 남아있을 거니까 셋이 되겠네."
"행렬을 차려서 이동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군."
대군주가 픽 웃으며 말했다.
"쓸데없고 번거롭잖아. 이 내가 직접 걸음하는데 달리 뭐가 또 필요하다고?"
상당히 오만하게 들렸지만 틀린 건 없는 말이긴 했다.
어쨌든 그렇게 대군주성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중립국으로 이동하는 게 결정되었다.
대군주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와이번을 데리고 왔는데, 띠용이와 같은 블랙 와이번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녀석은 푸른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
나는 대군주에게 물었다.
"회담에 굳이 날 동행시키려는 이유가 따로 있나?"
내 물음에 그녀는 묘한 웃음만 지어 보이고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여튼 속을 알 수가 없네.
"자, 어쨌든 그럼 출발해볼까?"
대군주의 주위에 어둠이 일렁이더니 그녀의 차림이 바뀌었다.
방금 전의 드레스보다는 단촐하고 적당히 화려한 느낌의 의복으로.
복장을 바꾼 그녀가 사뿐히 떠올라 와이번의 등에 올랐다.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약간의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대군주도 와이번을 소유하고 있다는 거야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녀가 와이번을 탄다는 것 자체가 그냥 조금 묘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종족이 종족이었으니까.
크오오!
대군주의 와이번이 힘차게 포효하고는 먼저 하늘로 날아올랐다.
다시 띠용이의 등에 탄 나와 아셸도 곧 뒤를 따라서 출발했다.
중립국까지의 거리는 군주령과 군주령 사이의 거리보다 조금 더 먼 정도였기에 시간은 얼마 걸리지도 않을 것이었다.
이번의 중립국 회담은 어스힐 왕국에서 열리는 회담이었다.
서로의 연대와 협력을 위하자는 취지로 시작된, 3년을 주기로 중립국들에서 돌아가며 열리는 대회담.
칼데릭과 세인테아, 그리고 중립국의 왕족들까지 모두 모여 대륙의 미래에 대해서 평화롭게 논의하는 자리.
······물론 그런 것들이야 당연히 듣기 좋게 내건 이유일 뿐이고, 결국은 세력 다툼이었다.
특히나 돌아가는 정세를 보면 이번 회담은 단순한 신경전 정도로 끝나리라 생각되지는 않았다.
아마 카숄 왕국에서 본격적으로 어스힐 왕국과의 전쟁 명분을 바로 이번 회담에서 선포하려는 생각인 듯했으니까.
그것이 내가 이번 회담에 별 고민 없이 순순히 대군주를 따라서 참여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어스힐 왕국······.'
나는 이전에 5군주령에서 만났던 한 남자에 대해 떠올렸다.
테이르 바몬, 어스힐 왕가의 핏줄을 이은 둘째 왕자.
만약 그가 내 말대로 왕성으로 돌아왔다면 아마 이번 회담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
"한심하기 짝이 없는 놈. 이제야 왕성으로 기어들어와서 그 얼빠진 낯짝을 뻔뻔하게 들이밀고······."
"······."
"보기도 싫으니 썩 물러가라."
어스힐의 국왕, 롱포드는 애증이 담긴 눈으로 남자를 노려보다가 곧 시선을 거두었다.
남자, 테이르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서 방 밖으로 나섰다.
어스힐 왕국, 수도 셀라프의 왕성.
오랜 시간만에 돌아온 왕성은 조금도 달라진 게 없었으나, 곧 있을 회담으로 평소보다 훨씬 삼엄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어쩌다 궁전 바깥의 정원까지 걸음이 닿은 테이르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벌써 후회가 되는군······.'
역시 괜히 돌아온 건가 싶었다.
오랫동안 왕성을 떠나있다가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돌아온 그가 이런 상황에 딱히 할 일이 있지는 않았다.
그저 붕 뜬 처지로 지금처럼 궁전 안팎이나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을 뿐.
테이르는 수풀의 잎사귀를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원래라면 회담이 다가왔다고 왕성에 돌아올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자신의 존재가 도움 될 일이 있지도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길었던 방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이유는 하나였다.
이전에 5군주령에서 만났던 남자.
자신이 7군주라고 했던 그의 별것도 아닌 말이, 어째서인지 괜히 계속해서 맴돌았기 때문이다.
'······내가 있을 곳으로 돌아가라고.'
대체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한 것일까?
심지어 그는 심상치 않은 중립국의 정세와 관련하여, 언젠가 어스힐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말까지 입에 담았었다.
테이르는 무엇 하나 알 수 없었다.
그 남자가 정말 칼데릭의 7군주였던 건지, 정말이라면 왜 그런 대단한 존재가 고작 자신 따위에게 관심을 가진 것인지.
"야."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테이르는 퍼뜩 고개를 돌렸다.
정갈한 드레스 복장을 하고 있는 한 여인이 어느새 정원 한쪽에 서있었다.
테이르는 잠시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가 흐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라버니한테 야가 뭐냐, 세리."
그에 루디라 불린 여인이 인상을 슬쩍 찌푸리며 대꾸했다.
"2년 가까이 바깥을 싸돌아다니다가 이제야 돌아온 멍청이한테 오라비 대접을 해줘야 되나?"
"······."
"그래서 여기서 팔자 좋게 뭐 하고 있는 건데, 오라버니."
말은 그렇게 하지만 곧장 오라버니 호칭으로 돌아간 그녀였다.
테이르는 만지고 있던 잎사귀를 계속 만지작거리며 슬며시 대답을 넘겼다.
여전히 거리를 두는 듯한 그 모습을 보는 세리의 표정에는 한심함과 서운함, 그리고 미안함 등의 감정이 뒤섞여있었다.
그녀가 다시 입을 열고 물었다.
"갑자기 돌아올 마음은 왜 든 거야? 다시는 안 돌아올 것처럼 말하고서 떠났으면서."
"그러게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런 때에 괜히 더 어수선하게 해서 미안하다."
"아이씨, 그런 말이 아니잖아! 지금 누가 오라버니가 돌아와서 싫댔냐고!"
울컥해서 소리친 그녀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잠시 어색한 공기가 감돌고,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애초에 왜 떠났던 거야? 분명히 말했었잖아. 나는, 아니, 나뿐만 아니라 루커스 오라버니도 정말로······."
"그만."
테이르가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그만해라, 세리.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는 걸 알잖아."
"······."
"그보다 너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데. 준비 같은 건 다 끝난 거냐? 별 문제는 없고?"
억지로 화제를 돌리는 모습에 세리도 더 하던 말을 잇지는 못했다.
그녀는 속에서 치솟는 답답함을 삼키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신경 꺼. 뭐 하나 거든 것도 없으면서 말해봐야 알기나 하겠어."
퉁명스런 대꾸에 테이르가 쓴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세인테아 쪽도 도착했고, 이제 칼데릭만 남았다고 했지."
"······그래."
각 중립국들의 왕족은 물론이고, 바로 어제 오후에 황제를 포함한 세인테아 측의 인사들까지도 전부 왕성에 도착했다.
루디는 문득 짜증나는 인물이 떠올라서 기분이 더욱 가라앉았다. 카숄 왕국의 1왕자.
그녀가 테이르에게 말했다.
"어쨌든, 괜히 바깥에서 어슬렁거리지 말고 그냥 얌전히 방에나 있어. 회담이 끝날 때까지는······."
그때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돌린 루디는 이쪽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고서 눈쌀을 찌푸렸다. 화려한 복색의 남녀와 호위기사.
"여기에 계셨군, 세리 왕녀."
가까이 다가온 남녀 중 남자 쪽이 느끼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카숄 왕국의 1왕자인 초르단과, 2왕녀 올리비카.
그들은 이번 회담에 참여하기 위해 카숄의 국왕과 동행해서 온 카숄 측의 대표 인사 중 하나였다.
"그렇지 않아도 찾고 있었소. 날이 좋아 다른 왕자와 왕녀들하고 차를 마시려는데, 함께 자리하는 게 어떻겠소?"
세리는 속에서 치솟는 짜증을 삼키며 표정을 관리했다.
아직 회담까지는 시간이 꽤 남았기에 왕성에 찾아온 중립국의 들은 서로 교류하며 친분을 다지고 있었다. 1왕자인 초르단을 중심으로.
사실 이미 편이 다 갈린 상황에 어스힐의 아군은 누구도 없었다. 그녀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모두 앞에서 망신이나 주려는 속 뻔한 목적으로 계속 찾아와 속을 긁어대고 있는 것이었다.
"죄송하지만 회담 준비로 바빠서 그럴 시간은 없을 것 같습니다."
"계속 그런 식으로 나오는 것이오? 지금도 보니 한가로워 보이는데 이것 참 사람 민망하게, 하하."
올리비카 왕녀가 끼어들었다.
"이번엔 거절하지 않는 게 좋을 텐데요, 세리 왕녀. 세인테아의 5황자님께서도 시간을 내어 자리해주시기로 하셨거든요."
"······그래서요?"
"귀하신 분과 사적으로 담화를 나눌 좋은 기회를 드리겠다는 거잖아요? 그러니 그만 거절하고 함께 어울려주시죠."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은근한 우쭐거림과 깔봄이 깔려있었다.
세인테아 제국의 황족은 왕족인 그들에게 있어서도 격이 다른 고귀한 존재.
다른 왕자녀들은 물론이고, 그런 황족과도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는 것에서 5황자와의 친분을 과시하는 것이었다.
"아, 그래. 그러고 보니 자네도 있었군. 바몬 왕가의 자랑이었던 테이르 왕자 아닌가."
초르단은 이제야 옆에 서있는 테이르를 발견했다는 듯 짐짓 놀란 투로 말했다.
대놓고 비아냥거리는 투에 세리는 인상을 찌푸렸다.
"왕성을 가출했다는 소식을 듣긴 했었는데 다시 돌아온 모양이군그래. 어때, 자네도 함께 가보겠나?"
"괜찮으니 사양하겠습니다."
테이르가 무표정한 얼굴로 즉답했다.
그에 초르단은 픽 웃었다.
"뭐, 알겠네. 설마 왕녀까지 또 거절할 생각은 아니리라 믿소."
"죄송하지만, 시간이 없어 사양하겠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초르단의 눈썹이 꿈틀거리고, 올리비카도 인상을 찌푸린 채 코웃음을 쳤다.
"세리 왕녀, 이렇게 뻣뻣하게 굴어서 좋을 게 있을 것 같나요? 지금 당신네들 처지를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됐다, 올리비카. 그만 가자."
두 사람은 몸을 돌려 도로 정원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데 말이오, 왕녀. 이번 회담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 같소?"
초르단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세리를 돌아봤다.
"저번처럼 유야무야 어중간하게 마무리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오. 알고 있지 않소? 사실 명분 따위야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걸. 우리가 어스힐에 전쟁을 선포하면, 세인테아든 칼데릭이든 과연 굳이 간섭하려고 들 것 같소?"
"······."
세리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세르단을 노려봤다.
초르단은 그런 그녀에게 비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디 회담이 끝난 뒤에도 계속 이런 식으로 굴 수 있을지 한번 보겠소. 그럼······."
그오오오!
그때 왕성 전체에 거대한 포효가 울렸다.
초르단과 올리비카가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어올렸다. 세리와 테이르도 마찬가지였다.
하늘 저편에서 검고 거대한 두 물체가 왕성을 향해서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
"와이번······?"
멍하니 그 광경을 쳐다보던 초르단과 올리비카가 서둘러서 정원을 빠져나갔다.
갑작스러운 와이번의 등장, 현재 상황에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드디어 칼데릭의 대군주가 왕성에 도착한 것이었다.
"······칼데릭의 대군주야."
세리도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테이르도 머뭇거리다가 그 뒤를 따랐다.
***
어느새 왕성의 정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어스힐의 국왕 롱포드는 물론이고 각 중립국의 국왕과 왕자 왕녀들, 그리고 수많은 가신들까지.
자리에는 단지 세인테아 측의 인사들만을 제외하고 회담에 참여한 모든 중립국의 왕족들이 모여들었다.
비록 이번 회담의 주최자가 어스힐이라고 한들 다른 참여자들 역시 감히 얼굴을 비추지 않을 수는 없었으니까.
싸늘하게 얼어붙은 분위기 속, 모두가 하나같이 긴장감이 역력한 눈으로 왕성의 입구로 걸어오는 여인을 응시했다.
칼데릭의 대군주, 라샤테인.
달고 온 행렬 하나 없이 그녀의 곁에는 한 젊은 인간 남성만이 서있었다.
하나 단지 그것만으로도 두 사람의 존재감은 자리에 있는 모두를 압도하고 있었다.
롱포드가 침착하게 앞에 나서서 두 사람을 맞이했다.
"어스힐까지 먼 걸음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대군주."
대군주가 콧소리를 흘리며 주위를 한 차례 둘러봤다.
"그래요, 롱포드 국왕. 아무래도 우리가 제일 늦은 모양이네요. 안으로 들어가죠."
"예. 한데 이분은······."
롱포드가 의아한 눈으로 대군주의 옆에 선 남자를 쳐다봤다.
지금껏 그녀가 회담에 참여할 때 누군가를 동행한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대군주가 싱긋 웃으며 태연하게 말했다.
"칼데릭의 새로운 7군주랍니다."
"······!"
그에 모두가 놀란 기색으로 남자를 응시했다.
칼데릭의 새로운 7군주.
최근에 같은 군주인 폭왕까지 살해하며 현재 대륙을 가장 떠들석하게 만들고 있는 인물.
무엇 하나 알려진 것 없이 베일에 쌓여있던 그 거인이 이번 회담에 대군주와 함께 걸음한 것이었다.
"······."
한편 대군주가 말을 꺼내기도 전부터 계속 멍하니 7군주만 바라보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테이르였다.
이전에 5군주령에서 만났던,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는 외모 그대로의 남성이 대군주의 옆에 서있었다.
테이르는 그의 정체가 정말로 7군주였음을 깨닫게 됨과 동시에 생각했다. 대체 뭐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 건지.
대군주와 7군주가 양옆으로 갈라진 인파 사이를 걸어 입성했다.
회담에 처음 참여하여 칼데릭의 대군주를 살아생전 처음 마주한 젊은 왕족들은 위압감에 함부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시선을 아래에 둔 채 두 사람을 힐끔거리고 있던 세리는 문득 옆에 서있는 자신의 오라비를 돌아봤다.
그가 너무 빤히 대놓고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 하는 거야? 바보가······.'
그녀가 테이르의 옆구리를 찔러 눈치를 주려다가, 다시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7군주의 시선이 어째서인지 이쪽으로 향해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한 스침이겠거니 싶었지만 7군주는 곧 두 사람의 앞에서 걸음을 멈추기까지 했다.
"······."
모두의 시선이 걸음을 멈춘 7군주에게로 집중되었다.
대군주도 의아하다는 듯 그런 그를 돌아봤고, 곁에 서있던 롱포드의 인상은 딱딱하게 굳었다.
세리는 무언가 실수라도 한 것인지 쿵쿵대며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썼다.
짧은 정적 뒤, 7군주의 입이 열렸다.
"오랜만이군, 테이르."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네는 그의 모습에 모두가 경악한 눈으로 테이르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