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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사기 들고 게임 속으로-78화 (78/189)

암영 프레온 (1)

상황이 마무리되고 아셸이 내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를 설명했다.

"리곤의 검술 지도를 해주는 와중에 갑작스레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

검술 지도 중에 깨달음이 찾아와?

그 자세한 사정을 들어보니 더욱 어이가 없었다.

자유 대련을 하며 리곤의 검을 받아주고 있던 중, 바로 얼마 전에 가르쳐줬던 마력 연공과 검술을 순식간에 자신의 식대로 응용해서 펼치는 리곤의 모습에 한순간 번뜩 깨달음이 찾아왔다고.

남을 가르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배움도 있다지만, 설마 그렇다고 리곤을 가르치다가 아셸이 레벨업을 할 줄은 몰랐다.

'······아니.'

그렇다고 아셸만 성장한 건 아니었다.

나는 이제야 리곤의 레벨을 확인하고서 순간 두 눈을 의심했다.

【Lv. 21】

21레벨.

11레벨도 아니고 21레벨이다.

쟤가 분명······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고작 3레벨이 아니었었나?

망가졌던 마력로만 간신히 회복해서 아무것도 쌓인 게 없는 백지 상태라고 했었는데.

그런데 고작 보름도 안되는 시간 만에 무려 20레벨에 가까운 성장을 했다는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비정상적인 성장 속도에 나는 속으로 한 박자 늦게 경악성을 내뱉었다.

'이건 진짜 뭐······.'

완전히 정신 나간 재능이지 않은가?

이 정도 천재성이니까 가르치는 아셸도 덩달아 깨달음이 찾아올 수 있었던 건가?

"그······ 성취를 축하드립니다, 아셸 경."

리프가 더듬더듬 어색하게 말했다.

뭐라도 말해야 되나 할 말을 생각하다가 겨우 내뱉은 기색이었다.

"고맙다."

아셸이 옅게 웃으며 리곤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게도 정말로 고맙다. 덕분에 오랫동안 막혀있던 벽이 조금은 허물어진 것 같아."

"아, 네. 경께 도움이 되었다니 저도 정말 기쁩니다."

리곤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저, 그런데 괜찮으시면 대련을 계속 이어서 해주실 수 있을까요?"

"응? 아······ 알겠다."

아셸이 고개를 끄덕이며 도로 검을 들어올렸다.

리곤도 순식간에 표정이 진지하게 바뀌더니 자세를 잡았다.

나는 약간 흥미로운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승부가 아닌 가르침이 목적인 대련이긴 하지만, 아셸에게 깨달음을 찾아오게 한 리곤의 검술에 궁금증이 들었기 때문이다.

파앗!

리곤이 발을 구르고, 검날이 빠르게 아셸의 목을 노렸다.

레벨 차이야 워낙 아득하니 위험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진검 대련인데 급소를 노리는 데 전혀 망설임이 없는 모습이었다.

'아셸이 그렇게 하라고 했나?'

아셸은 평온한 얼굴로 검격을 가볍게 튕겨냈다.

그리고 이어지는 공격도 이리저리 검을 휘두르며 전부 제자리에서 막았다. 굉장히 빠른 템포의 공방이 이어졌다.

상단부터 하단까지, 리곤은 모든 부위를 다양하게 노리며 검을 휘둘렀다. 가끔씩 자루를 역수로 쥐기도 하고, 몸을 유연하게 꺾어 기이한 각도에서 기습 공격을 가하기도 했다.

"······."

저걸 뭐라고 해야 할까?

내가 검에 대해 아는 건 없지만, 계속 지켜보고 있자니 리곤이 펼치는 검술에 명백히 와닿는 느낌은 있었다.

'엄청 자유롭네.'

커다란 틀은 있지만 그 안에 체계는 하나도 없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것은 조잡함 따위가 아니라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에 훨씬 가깝게 느끼졌다.

그리고 그런 느낌이 드는 건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검뿐만이 아니었다.

리곤의 몸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흐름, 그 역시도 리곤의 움직임에 따라 몸 안에서 아주 자유롭게 활개를 치고 있었다.

아셸이 전투를 할 때는 저런 식으로 마력을 운용하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허.'

【Lv. 22】

그보다 전투 중에 또 레벨이 올랐다. 이건 뭐 싸우면서 강해지고 있네.

리곤은 한껏 고양감이 치솟은 얼굴로 점점 더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카앙!

계속 공격을 받아주며 간간이 적당한 반격을 날리던 아셸이, 어느 순간 리곤의 검을 아래로 흘리고 바닥에 눌러 고정시켰다.

"아······."

리곤이 낭패라는 표정으로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아셸도 조금 질렸다는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공방이 격화될수록 본능에 가깝게 검을 휘두르고 있다."

"아, 죄송해요. 흥분하면 자꾸 주체가 되지 않아서······."

"나쁘다는 뜻이 아니야. 그 본능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고 제어하라는 거지. 그러니까 리곤, 너는······."

아셸은 잠시 방금의 대련에 대해 이런저런 점들을 짚어주며 리곤에게 조언해주었다. 리곤도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그럼 오늘은 이쯤에서 마치자."

"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경."

리곤이 우렁차게 대답하고 리프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두 남매가 먼저 나가고 나와 아셸은 잠시 연무장에 둘이 남았다.

나는 떠나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래도 잘 가르치고 있는 것 같구나."

"아, 예······ 제가 잘 가르치는 게 아니라 두 사람 모두 뛰어나서 그렇습니다."

"특히 리곤이 말이지."

내 말에 아셸이 전적으로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타고난 무재가 정말 뛰어납니다. 빈말이 아니라 불세출의 천재란 게 있으면 아마 저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까지 고평가인가.

나는 괜히 장난기가 돌아서 물었다.

"아셸, 너와 비교하면 어떻지?"

"예? 물론 저보다도 훨씬 뛰어납니다."

아셸은 조금도 망설이는 기색 없이 잘라서 말했다.

음, 얘가 이런 거에 자존심 세울 성격은 아니긴 하지.

대화가 끊기고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가 아셸이 이제야 생각난 듯 아, 하고 탄성을 뱉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돌아오셨는데 마중을 나가지 못해서······."

"괜찮다."

"와이번은 얻으셨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보러 가보겠나?"

그렇게 잠깐 아셸에게도 띠용이를 구경시켜주었다.

***

군주성으로 돌아오고서 1주일 정도가 흘렀다.

그동안 나는 아셸의 검술 지도를 구경하기도 하고, 띠용이와 놀아도 주고, 중립국 정세에 대해 알아보기도 하며 회담 날짜가 오길 기다렸다.

"기사 시험?"

나는 읽고 있던 책에서 시선을 돌려 집사장을 쳐다봤다.

"예. 새로운 견습 기사들을 뽑고, 또 기존의 견습 기사들 중 정식 기사로 승급할 이들도 뽑는 시험입니다."

"그렇군. 그런데 왜?"

"다름이 아니라, 혹 리프 남매도 시험에 참여하기를 원하시는지 의중을 여쭙고자······."

아, 그 얘기인가.

집사장도 내가 여러모로 리프 남매에게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은 물론 알고 있었다.

나는 책을 덮고 잠시 고민에 잠겼다.

'시험이라.'

기사 작위야 언제든 내 마음대로 두 사람에게 내려주면 그만이긴 하다.

하지만 마침 시험 같은 정식 의례가 있다면 그쪽을 거치게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했다.

리프는 지금 바로 정식 기사가 되어도 충분한 수준이니까.

'그리고 좀 궁금하기도 하네.'

성에서 계속 생활하긴 했지만 기사들에게 관심을 가진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 말이다.

나는 시험이 어떤 식인지도 구경할 겸 리프를 시험에 참가시키기로 했다.

"참가하겠습니다!"

그녀를 불러 의사를 묻자 예상대로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 즉답했다.

옆에 있는 리곤은 아쉽다는 얼굴을 했다.

리곤의 레벨로는 견습 기사는 될 수 있어도 아직 정식 기사가 되기엔 조금 부족했다.

물론 지금의 성장세로는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순식간에 그만한 수준까지 도달하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고 기사 시험의 날이 다가왔다.

"시험을 관전해주셔서 영광입니다!"

철혈 기사단의 단장이 정말 감격한 듯한 얼굴로 경례했다. 얘 이름이 아킨이었던가.

거대한 야외 연무장에 질서정연하게 모여있는 엄청난 수의 기사들.

현재 나는 아셸과 함께 한쪽에 마련된 단사 위에서 의자에 앉아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리프 역시 무장을 하고 그들 사이에 섞여있는 게 보였다.

"군주님께서 경들의 결투를 지켜보시고자 직접 이곳에 걸음하셨다! 그러니 최선을 다하여······."

기사단장의 짧은 연설이 끝나고, 시험은 질질 끌 것 없이 곧바로 시작되었다.

우선은 정식 기사로 승급하는 견습 기사들의 시험부터였다. 30레벨대가 대부분인 기사들.

시험의 형식은 군주성의 최정예인 철혈 기사단원과 결투를 펼쳐서 일정 시간 이상 버티면 통과하는 식이었다.

그 시간은 고작 3분에 불과했음에도 버티지 못하고 금세 떨어져나가는 기사들의 절반 이상이었다.

'음······.'

나는 조금 따분한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좀 빡세 보이긴 하네······ 그 이상의 감상은 없었다.

나도 내가 뭘 기대하고 시험을 구경하러 온 건지는 모르겠다만, 직접 보니 생각보다 썩 재미가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리프의 차례도 왔다.

그녀의 상대인 기사단원은 50레벨 중반의 엘프 기사였는데, 검이 아니라 창을 무기로 들고 있었다.

쐐액!

결투가 시작하자마자 안면을 노리고 찔러오는 창날을 리프는 고개를 틀어 피했다.

그녀는 리치 차이를 이용해 일방적으로 몰아치는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막아내며 거리를 좁히려 들었다.

악티폴의 경기 때도 봤듯 목숨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과감한 움직임. 그에 공격을 퍼붓던 단원도 조금 놀란 기색이었다.

카앙! 카카캉!

물론 두 사람의 실력 차이는 현격했기에 끝내 거리가 좁혀지는 일은 없었다.

아셸은 갈수록 더욱 거세게 몰아치는 공격에 방어만 하기 급급하다가 3분의 시간이 끝났다.

다른 기사들보다 훨씬 치열한 공방을 펼쳤음에도 검을 거두는 리프의 얼굴엔 아쉬움이 감돌았다.

"자네는 목숨이 10개라도 되는가?"

결투가 끝나고 상대를 했던 단원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까딱 방심했다간 나도 당할 것 같아서 조금 더 열을 올렸네. 그 젊은 나이에 대단한 성취야. 자부심을 가져도 좋네."

와아아!

지금껏 없었던 찬사에 주위에 서있던 기사들에게서 짧게 함성이 터졌다.

나도 슬며시 웃으며 칭찬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 그녀를 바라봤다.

그때였다.

"······?"

나는 퍼뜩 시선을 돌렸다.

연무장 한쪽, 기사들과 동떨어진 곳에 서서 시험의 결과를 기록하고 있는 행정관들.

【Lv. 67】

그 가운데 굉장히 비정상적인 레벨을 하고 있는 행정관 하나.

나는 미간을 좁힌 채 그 갈색 머리칼의 여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저게 뭐야?'

그건 명백히 이질적인 광경이었다.

그야 고작 행정관이 무려 70에 가까운 레벨을 하고 있었으니까.

"집사장."

"예, 군주님."

"저기 저 여자는 뭐지?"

옆쪽에 서있던 집사장이 내 시선이 닿아있는 곳을 보고 대답했다.

"몇 달 전에 새로 임명된 케이트라는 신입 행정관입니다."

······몇 달 전?

자연스레 사고가 흘러갔다. 첩자.

저만한 실력을 굳이 숨기고 있는 이라면 그런 경우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67이나 되는 레벨의 첩자면 대체 어느 세력에서······.

"······!"

이내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67레벨의 갈색 머리칼 여인, 첩자.

이 키워드와 일치하는 캐릭터가 정확히 퍼뜩하고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친, 설마 저거······.'

나는 경악스러움과 황당함을 느끼는 와중에도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확인하지? 따로 조용히 불러내야 되나?

하지만 저 행정관이 정말로 그녀라면 따로 불러내려 했다간 바로 눈치 빠르게 튀어버리지 않을까 싶었다.

잠깐만 있어봐, 생각을······.

'아.'

너무 빤히 쳐다봤는지, 종이에 펜을 끄적이고 있던 그녀가 시선을 느끼고 이쪽을 돌아봤다.

그녀가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런 그녀를 계속 응시했다.

그러고 있자 이내 수선했던 분위기가 가시고 기사들도 하나둘씩 내 시선이 닿아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자연스레 모든 이들의 시선이 여인에게로 집중되었다.

내 곁에 서있던 아셸이나 기사단장도 의아한 기색으로 여인을 쳐다봤다.

그제야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여인이 슬쩍 고개를 들어올렸다.

나와 그녀의 시선이 몇 초 동안 마주쳤다. 그녀의 표정이 미약하게 굳었다.

"······."

연무장에 적막이 내려앉은 가운데, 판단을 마친 나는 그녀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첩자다.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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