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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사기 들고 게임 속으로-77화 (77/189)

와이번 (3)

내가 동굴 밖으로 걸음을 옮기자 띠용이는 아주 자연스럽게도 뒤를 따라왔다.

그러면서도 기분이 좋은지 연신 날갯짓으로 통로 벽면을 긁어대며 내게 치대려고 했기에, 좀 부담스러웠다.

만난 지 이제 10분도 안됐는데 누가 보면 10년은 된 줄 알겠네.

"······별종이로군요."

이해하기 힘들다는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던 뇌후가 말했다.

"혹시 그것도 7군주 당신의 능력입니까? 몬스터의 정신을 지배해서 조종한다거나."

나는 어이가 없어서 대꾸했다.

"그걸 말이라고 하나?"

"와이번이 처음부터 이리 사람을 잘 따르는 게 정상적인 경우는 아니지 않습니까."

뭐······ 그건 그렇지만.

나도 녀석이 나를 이렇게나 잘 따르는 이유가 뭔지는 몰랐다.

설마 정말 게임에서도 함께했던 것 때문에 날 주인으로 인정하기라도 한 걸까.

좋은 게 좋은 거긴 하지만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혹시 당신뿐 아니라 그냥 아무나 잘 따르는 와이번인 건 아닌지······."

뇌후가 그렇게 말하며 띠용이에게 슬며시 다가왔다.

그러자 그르렁거리고 있던 녀석이 순식간에 험악한 기세로 돌변하더니 포효를 터뜨렸다.

키아악!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며 도로 물러섰다.

바로 옆에 있던 나도 고막에 타격을 입었기에 녀석의 목을 툭 쳤다. 이 자식이 안 그래도 동굴이라 울리는데.

【Lv. 70】

띠용이의 레벨은 무려 70으로, 뇌후와 호위기사의 와이번이나 여기까지 오며 마주했던 모든 와이번들보다도 높았다.

게임에서는 시스템 제약상 타고 날아다니는 용도로밖에 사용하지 못했지만 여기서는 전투에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70레벨이면 아주 막강한 전력까지는 아니더라도, 웬만큼 강한 전투 부대도 혼자서 신나게 날뛰며 학살할 수 있는 수준이니까.

'와이번 비늘이 특히나 마력에 대한 저항력도 높은 설정이었던가.'

이내 동굴 밖으로 빠져나왔다.

절벽에 서서 제 주인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던 뇌후와 호위기사의 와이번들이 띠용이를 보고 경계하듯 낮은 울음소리를 흘렸다.

몸집은 녀석들보다 블랙 와이번인 띠용이가 눈에 띄게 더 컸다.

녀석들의 적대에도 띠용이는 짧게 숨을 내뱉고는 무시하듯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얘 지금 설마 코웃음 친 거냐?

"아무튼 이걸로 볼일은 끝이겠죠?"

뇌후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목표였던 와이번을 바로 얻었으니 이 산맥에 더 남아있을 이유는 없었다. 이 둘과 계속 함께할 이유도 없었고.

"여기서 바로 헤어지지."

"듣던 중 정말 반가운 소리네요."

그때 호위기사가 입을 열었다.

"안장이 필요하시면 일단 제 안장을 드리겠습니다."

그에 나는 속으로 반색했다.

그렇지 않아도 안장도 없이 불편해서 저걸 어떻게 타고 돌아가나 싶었는데, 그녀가 먼저 말을 꺼낸 것이다.

"그래도 되겠나?"

"예."

좀 미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 사람이야 숙련자니까 나보다야 덜 불편할 것 아닌가.

굳이 거절하지 않고 기꺼이 그녀의 친절함을 받기로 했다.

물론 대화를 듣고 있는 뇌후는 못마땅한 기색으로 그녀와 날 쳐다봤지만.

크르릉!

그때 와이번들이 거친 울음소리를 뱉었다.

뭔가 싶어 시선을 돌리니 슬금슬금 뇌후의 와이번에게로 다가간 띠용이가 녀석에게 시비를 건 것이었다.

"저 미물이······."

뇌후가 황당함과 분노가 섞인 얼굴로 뇌기를 뿜어냈다.

그에 화들짝 놀란 띠용이가 다급히 내 뒤에 달려와서 숨었다.

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런 녀석을 바라봤다.

'뭐 하냐, 너?'

이놈이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

여러모로 보통 와이번과는 거리가 참 먼 듯했다.

어쨌든 호위기사에게 안장을 받은 나는 녀석에게 착용시켰다.

물론 내가 하는 법은 몰랐기에 그녀가 대신 해주었다.

"가만히 있어라, 띠용아."

안장이 불편한 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손길이 싫은 건지 녀석이 몸부림치려고 했지만, 내가 쓰다듬으며 말하자 이내 얌전해졌다.

영리해서 그런지 의사소통도 어느 정도는 수월하게 되는 듯했다.

"······띠용? 벌써 이름을 붙이기라도 한 건가요? 특이한 어감이군요."

갑작스러운 뇌후의 말에 나는 순간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릴 뻔했다.

대륙공용어가 아닌 한국어라 무슨 의미인지 모를 뿐이지만, 너무 태연하게 저 이름을 남이 입에 담으니까 왠지 모르게 웃겼던 것이다.

'아이씨, 훅 들어오네.'

어쨌든 안장의 착용이 전부 끝나고 나는 녀석의 등에 올라탔다.

녀석이 날개를 파닥거리며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준비를 했다.

마지막으로 뇌후를 돌아보며 말했다.

"다음 회의에서 보지, 2군주."

"······그러죠. 다시는 이런 쓸데없는 일에 날 이용할 생각 말아요."

호위기사에게도 말했다.

"안장은 고맙다. 성에 보관하고 있다가 나중에 돌려주도록 하지."

"예. 그럼 살펴가십시오, 7군주님."

펄럭!

두 사람이 먼저 날아오르고, 나는 빠르게 하늘 저편으로 멀어지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다가 녀석의 목을 툭 두드렸다.

"우리도 가자. 저쪽으로."

힘차게 포효한 녀석이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올랐다.

***

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가서 7군주령으로 향했다.

앞으로 계속해서 함께할 녀석이니, 이동하는 동안에도 나는 녀석에 대해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세심히 관찰했다.

크르릉!

그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있다면 어마무시한 식성.

나는 어디선가 거대한 늑대 몇 마리를 잡아와 뼈째로 거칠게 뜯어먹고 있는 띠용이의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녀석은 뇌후와 호위기사의 와이번이 그랬던 것처럼 내가 식사를 하는 동안 알아서 사냥을 해다가 자신의 식사를 마련했다.

근데 무슨 한끼로 먹는 고기의 양이 제 몸집의 3분의 1은 될 정도로 엄청났다.

뇌후와 호위기사의 와이번은 이 정도까진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말이다.

아무튼 그런 식습관 같은 것 외에 다른 행동들을 분석하는 건 별 의미가 없었다.

왜냐면 녀석은 내가 뭘 하든 싫어하는 기색 하나 없이 너무도 잘 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는 와중에 한 가지 더 알게 된 사실이 있었는데······.

'얘 설마 그냥 내 말을 알아듣나?'

굳이 제스처를 취하지 않아도 녀석과의 의사소통이 너무나 잘 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냥 내 말을 알아듣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아니면 훈련도 하나 안 시킨 녀석과 이렇게까지 소통이 수월하게 될 리가 없으니까.

식사도 하고 잠시 쉬고 있던 중, 나는 웅크려있던 녀석과 눈을 마주치고 말했다.

"일어서라."

그러자 녀석이 벌떡 일어섰다.

"앉아라."

도로 풀썩 주저앉았다.

"굴러라."

크릉?

이번엔 좀 당황하는가 싶더니 날개를 움츠리고 바닥을 한 바퀴 굴렀다.

나는 속으로 감탄하며 녀석을 쓰다듬어주었다.

'진짜 다 알아듣네.'

어떻게 이게 가능한가 싶었지만, 애초에 판타지 세계니까 새삼 이런 거에 신기해할 것도 없긴 했다.

나는 녀석을 쓰다듬어주었다.

어쨌든 내 말을 잘 들어도 너무 잘 들었기에 앞으로도 별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듯했다.

시간이 흘러 군주성에 도착했다.

성벽을 넘은 나는 아래로 몰려드는 기사들을 보며 착지할 장소를 찾았다.

'아, 습격으로 오해했나?'

검까지 뽑아들고 있는 기사들의 모습에 나는 착지하는 속도를 늦추었다.

내 와이번을 성의 기사들은 지금 처음 보는 것이었으니까.

거리가 가까워지자 누가 등에 타고 있는 나를 알아봤는지 소리치며 동료들을 말렸다.

그제야 기사들은 당황하며 검을 황급히 거두었다.

"죄송합니다, 군주님! 잠시 적의 습격으로 착각했습니다!"

"괜찮으니 일들 보도록."

와이번에서 내린 나는 기사들을 해산하게 했다.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이내 집사장이 나왔다.

"다녀오셨습니까, 군주님."

조금 놀란 듯한 집사장의 시선이 띠용이에게 닿았다.

나는 녀석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녀석을 둘 만한 공간이 성에 있나?"

"예, 물론 있습니다. 바로 모시겠습니다."

집사장을 따라서 이동한 곳은 성 한쪽에 위치한 거대한 철제 울타리와 지붕으로 둘러싸인 우리였다.

우리라기보다도 굉장히 넓어서 그냥 공터에 가까웠지만.

내가 안으로 들어가자 띠용이도 바로 뒤따라서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둘러보는 모습이 앞으로 자기가 지낼 공간이라는 걸 눈치채기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와이번을 관리할 전속 하인들을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집사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곧장 몇 사람을 데려왔다.

낯선 사람들이 더 많아져서 주위로 다가오자 녀석이 으르렁거렸다. 하인들이 움찔 놀라며 물러섰다.

"가만히 있어라."

나는 녀석을 진정시키고서 차분하게 말했다.

"이 사람들은 앞으로 네가 이곳에 적응하는 데에 도와줄 사람들이다. 절대로 공격하거나 적의를 드러내지 마라. 알겠느냐?"

그르릉.

녀석이 알아들은 듯 곧장 도로 온순해졌다.

그렇게 녀석은 하인들에게 맡긴 뒤 나는 건물로 들어갔다.

'아셸은 어디에 있지?'

진작 나와봤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아직까지 모습을 안 비추고 있었다. 나오면 띠용이 좀 자랑하려 했더니.

의아한 마음으로 성의 홀에 들어가니 어째서인지 아래층에서 몰아치고 있는 마력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

이건 아셸의 마력인데?

평소에도 맨날 느끼던 것이니 한 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아래층의 위치한 연무장으로 곧장 내려갔다.

그리고 이내 리프 남매와 그 앞에 눈을 감은 채 서있는 아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종족 특질까지 사용해서 전신을 하얗게 물들인 채 있었는데, 은은한 순백색의 마력 아지랑이가 마치 불꽃처럼 넘실거리며 그 주위를 휘감고 있었다.

이게 뭔 상황인가 하니 리프 남매가 날 발견하고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일이냐?"

내 물음에 리프가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아셸 경께서 리곤을 상대해주시다가 갑자기 우뚝 멈추시더니, 눈을 감으시고 이렇게······."

옆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검을 쥐고 있는 리곤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나는 여전히 미동도 없이 서있는 아셸을 바라보다가 작게 탄성을 터뜨렸다.

'아, 설마······.'

무슨 깨달음이라도 온 건가?

리프의 말만 들어보면 리곤과 대련을 해주다 뭐 갑작스런 깨달음 같은 게 찾아온 게 아닌가 싶었다.

얼굴이 평온한 걸 보면 몸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 같지는 않았기에, 나는 일단 가만히 서서 지켜봤다.

스으으.

곧 몰아치던 마력이 그녀의 몸으로 순식간에 갈무리되었고, 놀라운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Lv. 82】

······다름이 아니라 머리 위에 떠있는 아셸의 레벨이 상승한 것이다.

다시 평상시 상태로 돌아와 천천히 눈을 뜬 아셸이 만족감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한쪽에 서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흠칫 놀랐다.

"론 님, 언제부터······."

딱히 해줄 말을 찾지 못한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나지막이 말했다.

"한층 더 성장했구나."

그에 당황하고 있던 아셸이 슬며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근데 진짜 갑자기 웬 뜬금없는 레벨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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