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여유 (2)
리프 남매는 성에서 지내면서도 눈치를 보는 일이 많았다.
그들의 처지상 어쩔 수 없다고는 생각했지만 특히 리프는 그 정도가 심했다.
집사장의 보고로는 시중을 드는 하녀에게 잡일이든 뭐든 괜찮으니 뭐라도 자기가 할 일을 달라고 했다고.
"내가 보기에는 동생 때문에 많이 불안해하는 기색이었소."
굴피로가 혀를 차며 말했다.
"평소에도 몇 번씩은 동생의 광혈병이 완전히 치료된 게 맞냐고 내게 묻고 있소, 거의 강박에 가깝게."
"음······."
"아마 언제든 또 병이 발발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계속 7군주의 곁에 남아있고 싶어하는 게 아닌가 싶소."
그런 건가?
폭왕이 죽으며 리곤이 앓고 있던 광혈병은 완전히 사라졌다. 다시 재발될 턱이 없었다.
그건 그녀에게도 이미 충분히 설명했지만 아직도 완전히 불안감을 지우지 못한 모양이었다.
머리로는, 이성으로는 이해를 해도 굴피로의 말마따나 강박의 영역에 가까운 불안일 것이었다.
지난 몇 년을 그렇게 살아왔으니 그러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둘의 처우에 대해서는 아직 딱히 확실히 생각한 게 없다.
그야 당연했다. 나도 특별히 어떤 목적을 가지고서 그들을 구한 게 아니었으니까.
물론 리프의 걱정대로 그들을 쫓아낼 생각 같은 건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리곤이 미래의 살귀 리프리곤이라는 걸 알았으니 웬만해선 쭉 계속 곁에 두고 싶었지.
그리고 그건 그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니 잘된 일이었지만······.
'한번 제대로 키워봐야 되나?'
두 사람 모두 재능이라면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리프 쪽은 평범한 일반인에서 고작 몇 년만에 40레벨 수준까지 강해졌다고 하니까. 말할 것도 없이 천재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특히나 리곤 쪽은······.
'적어도 앞으로 5년 안에 칼데릭의 군주가 됐던 녀석이지.'
저번에 스쳐갔던 기억 속에서 대군주가 마족과 계약이니 뭐니 했던 걸로 봐서, 아마 마족의 힘이 있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는 비정상적인 성장이었다.
지금의 평범한 수준에서 고작 몇 년만에 군주급 강자가 됐다는 건데······ 진짜 뭔 불세출의 천재라도 되나?
"리곤도 이제 다 회복됐다고 했었지."
"그렇소."
몇 년이나 광혈병에 좀먹힌 탓에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있었다고 하지만, 굴피로의 활약으로 회복은 굉장히 빨리 되었다.
나야 그가 말하는 대로 포션의 재료만 조달해주면 됐으니까.
어쨌든, 그렇게 재능이 있는 원석들이라면 계속 놀려두고만 있는 것도 아깝긴 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성에서 계속 머무르는 건 자기들도 불편해하는 것 같다니 뭐.
다음날, 나는 곧바로 리프 남매와 아셸을 불렀다.
"굴피로는 이제 곧 성에서 나갈 것이다. 너희 둘은 계속 이곳에서 지내고 싶으냐?"
남매에게 묻자 리프가 우물쭈물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송구하지만 허락만 해주신다면······ 시키실 일이 있다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군주님."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아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아셸."
"예."
"한번 두 사람에게 검술을 가르쳐봐라."
그에 아셸도, 리프도 깜짝 놀랐다.
"······제가 이들을 말입니까?"
"그래. 혹시 내키지 않나?"
"아닙니다. 그런 건 아니지만······."
아셸이 두 사람을 바라봤다.
검술을 가르쳐보라는 요구가 아셸에겐 꽤 당혹스러운 모양이었다.
성에 기사들이야 넘치도록 많았지만 그중에 가장 강한 기사는 당연히도 아셸이었다.
그래서 이왕이면 그녀에게 시켜보려고 한 건데······.
"너희는 어떠냐."
나는 남매에게로 시선을 옮겨 물었다.
리곤이 의욕이 충만한 기색으로 냉큼 대답했다.
"당연히 좋습니다! 가르쳐주시기만 하면 최선을 다해 배울게요!"
리프는 침음을 흘리며 조심스레 말했다.
"감사한 말씀이지만, 저희가 너무 과분한 은혜들을 받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주기만 하는 게 아니다. 이왕이면 제대로 검술을 배워 기사로서 성에 남아있는 게 좋지 않겠나?"
"······예?"
그 말에 리프가 조금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둘 모두 배울 마음이 있다면 열심히 배워보도록. 아셸은 이곳 7군주령에선 가장 강한 전사다."
내 칭찬에 아셸이 조금 민망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껏 누굴 가르치는 건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괜찮다. 일단 한번 가르쳐보도록."
정 아니다 싶으면 그때 성에 있는 다른 검술 교관들에게 시키든가 하면 되니까.
그렇게 당장 내 눈앞에서 아셸의 지도가 시작되었다. 나는 한편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봤다.
일단 아셸은 둘을 나란히 앉히고서 리프부터 등에 손을 얹었다.
초감각으로 느껴지는 마력의 흐름을 보니 내부에 마력을 흘리는 모양이었다.
마력 연공 같은 것에 대해선 1도 모르는 나는 수준 파악을 하려는 건가 그저 짐작할 뿐이었다.
이내 리프의 등에서 손을 뗀 아셸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연공을 배운 지 3년 정도 됐다고 했었지?"
"예."
"이만한 마력을 그 짧은 시간에 안정적으로 잘 쌓았구나."
역시 리프의 재능은 생각했던 대로 뛰어난 모양이다.
다음으로 아셸이 리곤의 등에 손을 얹고 마력을 흘렸다. 그리곤 곧바로 입을 열었다.
"이미 마력로가 뚫려있는데, 예전에 연공을 배운 적이 있었니?"
"아, 네. 병에 걸리기 전에 검술하고 마법을 조금씩은······."
나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미 배운 적이 있었다고?'
리곤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은 아예 없길래 아닌 줄 알았는데.
그럼 애초에 마력이 있는데 광혈병에는 왜 걸렸던 건가 싶었다. 쌓은 마력이 너무 미약해서 그랬나?
"저기, 아셸 경."
리곤이 갑자기 아셸을 불렀다.
"제 몸으로 흘리고 계신 마력, 이거 그냥 제가 움직여도 될까요?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데."
"······어?"
그리고는 눈을 감더니 집중한 얼굴로 미간을 좁혔다.
그에 아셸의 인상에 의아함이 퍼지더니 곧 경악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모른 채 멀뚱히 그 광경을 지켜봤다.
다만, 리곤의 몸 내부에 흐르고 있는 마력의 흐름이 약간 달라졌다는 것만 느낄 뿐이었다.
잠시 뒤에 리곤은 좀 전보다 훨씬 상쾌한 얼굴로 눈을 떴고, 아셸은 멍하니 등에서 손을 뗐다.
"어떠냐."
나는 그 반응의 이유가 궁금해서 슬며시 물었다.
그녀가 개운한 얼굴로 기지개를 켜는 리곤을 괴물 보듯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말도 안 되는 친화력입니다. 아무리 체내로 들어왔다고 해도, 제 것도 아닌 마력을 그리 자유롭게······."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이쪽을 쳐다보는 리곤을 바라봤다.
뭔 말인지 잘 알아듣진 못하겠어도 아셸이 이렇게 놀랄 정도면 어마무시한 재능인 듯했다.
'역시 보통 천재가 아닌가 보네.'
진짜 잘만 키워두면 나중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는데?
메인 스토리까지 시간이 많이 남지도 않았지만 그동안 폭발적인 성장을 한다면 말이다.
일단 연무장으로 이동해서 아셸에게 본격적인 지도를 계속해보라고 말하려 할 때였다.
"군주님."
모습을 비춘 집사장이 보고했다.
"2군주님께서 성에 방문하셨습니다."
"······?"
2군주? 갑자기?
***
나는 일단 세 사람을 놔두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성의 홀로 들어온 뇌후는 어딘가 상당히 초췌한 기색이었다. 며칠 잠은 못 잔 사람처럼.
"무슨 용건이지?"
그녀가 가만히 나를 노려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하죠."
"찾아온 용건부터 말해라."
"저번 결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찾아왔다고요. 됐습니까?"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에서 억눌린 분노가 느껴졌다.
역시 그것 때문에 찾아왔나 싶었다.
"따라와라."
내 방으로 이동해서 뇌후와 테이블에 마주 보고서 앉았다.
"이제 이야기해라."
"······."
그녀는 좀처럼 입을 떼지 못했다.
그저 사나운 눈빛으로 날 노려보며 일방적인 적의만 드러내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이나 내려앉은 침묵 속에 나는 기다리기 지쳐서 먼저 말을 꺼냈다.
"정령에 대한 문제로 온 거겠지."
"······!"
그녀가 이를 까득 깨물며 그제야 입을 열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왜 내 정령과의 연결이 완전히 끊겨버린 거죠? 아니, 존재감조차 더 이상 아예 느껴지지 않게 됐다고요!"
나는 간단히 대답했다.
"그야 소멸했으니까."
"······뭐라고?"
"네가 가진 천둥의 대정령 라크시아는 완전히 소멸했다는 거다.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질 않으니 존재감이 느껴질 리가."
숨길 것도 없었기에 면전에 대고 팩트를 말해주었다.
뇌후가 완전히 충격에 빠진 얼굴로 멍하니 날 바라봤다.
나는 그녀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려주며 생각했다.
엘프의 종족 특질인 정령술.
정령이라는 건 엘프와 완전히 별개의 자연적인 존재다.
하지만 오로지 엘프만이 정령과 계약하고 그들의 힘을 빌리는 게 가능하기에, 엘프의 종족 특질로 불리는 것이었다.
정령에 대한 친화력을 강하게 타고난 엘프는 그만큼 많고 강한 정령들과 계악할 수 있다.
한마디로 정령술이라는 건 선천적으로 타고나야만 하는 재능의 영역.
그리고 뇌후는 이 대륙에서 그 축복을 가장 강하게 받은 엘프 중 하나였다.
그래서 라크시아쯤 되는 대정령과 계약할 수 있었던 것이고, 칼데릭의 군주도 될 수 있었던 것이지.
'근데 이제 그 대정령이 없네.'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강의 전력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렸다.
나는 다시 한 번 그녀의 레벨을 바라보며 약간의 숙연함을 느꼈다.
그녀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곧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소, 소멸했다고? 라크시아가······?"
"그래."
"······왜? 어째서?"
"그야 내가 소멸시켰으니까."
그녀의 얼굴에 불신감과 깊은 절망감이 차올랐다.
"우, 웃기지 마. 웃기지 말라고요. 라크시아가 소멸했을 리가······."
현실을 부정하며 중얼거리는 그녀에게 나는 딱 끊어서 말했다.
"되살릴 방법은 없다. 미련을 버리고 깔끔하게 포기해라."
"그걸······ 지금 말이라고······."
이어진 건 분노였다.
뇌후는 붉어진 눈시울로 나를 죽일 듯 노려봤다. 나는 조금 황당해졌다.
'저거 우냐?'
그녀가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7군주 당신, 죽여버릴 거야. 진짜로 죽여버리겠어."
"······."
"반드시 이 일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할 거라고! 어떻게든지!"
그리고는 홱 몸을 돌려 성큼성큼 방문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원래부터 좋은 관계야 아니었지만 어째 이번 일로 그녀와는 완전히 척을 진 것 같았다. 뭐, 그럴 만했지만······.
'······그럼 굳이 좋게 갈 필요도 없나?'
나는 군주들과도 웬만하면 모두 완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사이가 틀어진 군주가 있다면 차라리 확실히 우위를 점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혹여 후에 걸림돌이 될 일이 없도록 말이다.
그리고 솔직히 싸움도 지가 먼저 걸어놓고 저러는 꼴이 짜증나기도 해서 나는 입을 열었다.
"대군주나 다른 군주들은 아직 이 사실을 모르겠지."
내 말에 뇌후가 멈칫했다.
"대정령을 잃고 힘이 많이 약해진 것 같은데, 그걸 대군주가 알아도 계속 군주위를 유지할 수 있겠나?"
천천히 고개를 돌린 그녀는 좀 전보다 훨씬 창백하게 질린 얼굴이었다.
"다, 당신······."
협박이라는 걸 알아듣지 못할 리가 없었다.
수치심과 분노와 온갖 감정이 뒤섞인 듯한 얼굴로, 그녀가 전신에서 뇌기를 뿜어냈다.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다른 정령들까지 전부 잃어도 상관없다면 공격해도 좋다."
"······."
그녀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서서히 뇌기를 도로 가라앉혔다.
나는 반대편 자리를 가리켰다.
"다시 와서 앉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