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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사기 들고 게임 속으로-67화 (67/189)

긴급 소집 (1)

소년, 리곤이 깨어난 건 한나절이 지나고 늦은 저녁이 되어서였다.

"으음······ 누나?"

낮에도 한참을 울었던 리프는 동생이 깨어나자 또다시 한바탕 눈물을 쏟아냈다.

그는 일어나자마자 어리둥절한 얼굴로도 그런 그녀를 안고서 달랬다.

경기장에서의 기억은 없는지 상황 파악이 전혀 되지 않은 그에게 진정한 리프가 일어난 일들을 설명해줬다.

인상을 일그러트렸다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가지각색의 표정을 지으며 설명을 모두 들은 그는 가장 먼저 나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그, 어······."

"론이다."

"아, 론 님. 누님과 저를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 정말로······."

몸을 움직여 침대에서 벗어나려던 리곤이 어지러운 듯 휘청거리다가, 도로 털썩 주저앉았다.

"움직이지 마. 빨리 다시 누워."

리프가 그런 그를 다급히 도로 뉘였다.

"몸이 정상으로 회복되려면 아직 멀었다. 비단 이번 폭주뿐 아니라 원래부터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상태였었으니."

굴피로가 혀를 차며 거들어 말했다.

"수중에 있는 것 중에 가장 효력이 좋은 포션을 사용하긴 했다만, 그래도 당분간은 움직이지 말고 안정을 취하거라."

"네······ 플레온 영감님도 정말 감사합니다."

상황이 얼추 정리되고, 이야기의 주제는 다시 앞으로의 향방에 대한 것으로 옮겨졌다.

"이 아이들의 처우는 어떻게 할 생각이시오?"

굴피로의 물음에 나는 남매를 바라봤다.

일단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야 뭐······ 생각할 것도 없이 심각했다.

군주의 사망은 칼데릭 전체가 뒤집어질 대사건, 하물며 그를 죽인 상대는 다른 진영의 인물도 아니고 같은 군주다.

게임 속 설정에서, 군주가 군주의 손에 죽은 경우는 칼데릭의 역사에 단 2번 존재했을 것이다. 기억하기로는 그랬다.

그리고 그 참사를 벌인 두 군주는 모두 숙청당했다.

한 명은 긴급 소집으로 군주들이 전부 모인 자리에서, 다른 한 명은 일을 벌이고 그대로 도주했다가 끝내 대군주에게 붙잡혀 그녀의 손에 직접.

이건 내게 제시된 갈림길이기도 했다.

'7군주령으로 돌아가거나, 튀거나.'

하지만, 사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후자는 선택할 수 없었다.

그건 정말로 칼데릭 전체를, 대륙의 4대 세력 중 하나를 완전히 적으로 돌리는 일이었으니까.

추적이야 둘째치더라도, 그래서야 앞으로 있을 수많은 난관들을 계획했던 대로 과연 잘 해결할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무책임하고.'

내가 이대로 튀어버리면 나와 관련이 있는 남겨진 사람들은 당연히 큰 곤경에 처할 것이다.

7군주령의 수도에만 하더라도 알키마스 공방이 있었다. 대군주가 그들을 어떻게 하려고 들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7군주령으로 돌아가는 것밖에 없었다.

이대로 7군주령으로 돌아간다면 아마 곧바로 긴급 소집이 걸릴 것이다.

긴급 소집이란 말 그대로의 의미였다.

바로 지금과 같은 중대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군주의 권한으로 모든 군주들을 소집하는 것.

그리고 나 역시도 반쯤 죄인 신세로 소집에 응해야만 하게 되겠지.

'그래도 가는 수밖에.'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정말 죽게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둔 것이 없진 않았다.

일단 순순히 소집에 응하고, 대군주와 대화를 한다.

이 위기는 거기서 해결을 보고 매듭을 짓는 게 적어도 내 판단으로의 최선이었다.

나는 일단 남매에게 간단히 설명부터 해주었다. 그들도 돌아가는 상황을 알아야 할 것이기에.

내가 칼데릭의 7군주인 것, 6군주 폭왕이 죽은 것, 그리고 대충 앞으로 벌어질 일들.

스케일이 너무 크게 느껴졌는지 리곤은 이야기를 들으며 입을 헤 벌렸고, 리프는 굳은 얼굴로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니 너희도 나와 함께 7군주령으로 이동한다."

지금 내 처지가 위태롭다고 해도, 그래도 당장은 내 곁에 있는 것이 두 사람에게도 그나마 가장 안전할 것이었다.

아셸과 함께 이들을 따로 빼돌리는 것도 생각하긴 했으나······ 어차피 긴급 소집에서 일이 틀어지면 다 소용없는 짓일 테니까.

다행히 두 사람은 내 말에 반감을 드러내거나 거절하지는 않았다.

"어떻게 해도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무엇을 원하시든 말씀대로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리프가 그렇게 말했고, 리곤도 알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리곤을 빤히 응시했다.

하여튼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처음 그녀의 이름이 리프라는 걸 알았을 때 순간 리프리곤을 떠올리긴 했었지만, 그저 우연으로 치부했었다. 관련을 지을 점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녀의 동생이, 이 순진무구해 보이는 소년이 바로 그 리프리곤이었다니······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을까.

'잘 된 일인지 아닌지 모르겠군.'

결국 그 알 수 없는 기억이 떠오른 원인은 이거였나?

미래에 타락하여 리프리곤이 될 소년을 구하고 확보하는 것.

······아, 모르겠다. 이 문제는 어차피 더 고민해봐야 알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리프에게 말했다.

"일단 둘 모두 식사부터 해라."

리곤은 물론이고 아까부터 깨어있던 리프도 동생만 지켜보느라 뭐 하나 먹지 않고 있었다.

바로스에게 시켜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게 했다.

그러나 리프는 또 자신의 몫은 제쳐두고 리곤에게 먼저 수프를 떠먹여주려고 했다. 참 끔찍한 동생 사랑이었다.

결국 리곤이 수프 그릇을 뺏어들어 직접 떠먹기 시작한 다음에야, 그녀도 자신의 식사를 했다.

방 밖의 테이블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굴피로가 물었다.

"출발은 언제 할 것이오?"

"리곤의 상태가 어느 정도 회복되면."

"그럼 너무 늦어질 텐데······ 서둘러서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니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딱히 서둘러봐야 바뀔 건 없었으니 아무렴 상관없는 문제였다.

그렇게 사흘의 시간이 흘렀다.

상점에 머무르는 동안 바깥에서 간간이 시선들이 느껴졌지만 그뿐이었다.

그동안 리곤의 상태는 혼자서 거동을 할 수 있을 정도까지 빠르게 회복되었다.

여전히 몸은 수척했지만 막 깨어났을 당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혈색 역시 좋아졌다.

'슬슬 이동해야겠군.'

이제 7군주령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

7군주령 엔록의 수도 버크혼.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마차는 군주성에 도착했다.

반 년도 넘는 시간 만에 돌아온 군주성이었지만 집에 돌아왔다는 느낌은 딱히 없었다.

애초에 이곳에서 머물렀던 시간도 얼마 되지 않았었으니까.

성의 정문에서 가장 먼저 날 맞이한 건 집사장인 플로토였다.

항상 포커페이스를 잘 유지했었던 그는 어딘가 조금 긴장한 기색이었다.

비단 그뿐만 아니라 정렬하고 서있는 기사들의 분위기 역시 그러했는데, 그 이유는 뻔했다.

"성에 누가 찾아왔었나?"

"······예, 대군주성의 기사들이 바로 얼마 전에 방문했었습니다."

이미 대군주령과 이곳까지는 소식이 싹 다 닿은 모양이었다.

대응이 빠르다 여길 것도 없었다.

내가 서둘러서 움직인 것도 아니고, 대군주 측에서도 상황을 파악하기에 시간은 충분했을 테니.

나는 굴피로와 리프 남매도 성 안으로 들였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며 시간을 보냈다.

기다리고 있으면 곧 저쪽에서 반응을 보일 테니 내가 뭘 할 건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에 성 주위의 멀리 떨어진 곳에선 꾸준히 이쪽을 지켜보는 눈들이 느껴졌다.

대군주성 측에서 보낸 감시자일 건 뻔했기에 신경 쓰지는 않았다. 내가 성에서 떠날 수도 있으니 지켜보는 거겠지.

그렇게 대략 보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끼이익!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봤다.

하늘 저편에서 성을 향해 날아오고 있는 3개의 거대한 비행체가 시야에 들어왔다. 와이번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 탄 사람들은······.

'이제야 왔네.'

나는 방 밖으로 나서서 문 앞에 있던 아셸에게 말했다.

"남매와 굴피로를 데리고 성에서 기다리고 있어라. 그리고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오면, 내가 말했던 대로 행동하도록."

그녀는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으나, 이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나는 그녀를 남겨두고 아래층의 중앙홀로 내려갔다.

바깥의 수선한 분위기 속에 곧 집사장이 다가와서 내게 말을 전해왔다.

"대군주님의 전령을 전하기 위해 방문하셨다고 합니다."

이내 홀에 모습을 드러낸 건 세 인물이었다.

드워프와 로브의 남자, 그리고 기사.

나는 그들과 마주 보고 서서 차례로 바라봤다.

중앙홀에 더없이 싸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Lv. 96】

【Lv. 89】

둘은 아는 얼굴이었다.

1군주 신퇴와 참모장 데이폰.

【Lv. 95】

그리고 오른쪽에 서있는 흑갑의 기사는 레벨로 보아서 아마······.

'흑린의 단장이군.'

흑린의 기사단장, 크라디엘.

참모장이 대군주의 왼팔이라면, 그는 대군주의 오른팔이자 가장 강력한 검이었다.

흑린의 기사들은 군주들과 달리 대군주에게 충성을 바치고 오로지 그녀의 명령만을 따랐으니까.

"대군주가 긴급 소집을 선언했네, 7군주."

은은한 오색빛 광채를 뿜어내는 갑옷과 검으로 무장하고 있는 신퇴가, 가장 먼저 입을 뗐다.

"이유를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사실 확인부터 하겠네. 마헤아 시에서 6군주와 전투를 벌이고, 끝내 그를 죽인 이가 7군주 그대가 맞는가?"

부정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었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어째서 6군주를 죽였지?"

"그건 굳이 지금 말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군."

"······그 말은, 소집에 순순히 응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는가?"

신퇴가 가라앉은 눈으로 물었다. 그의 갑옷 주위에 아지랑이처럼 역장이 일렁거렸다.

흑린의 단장 역시 검자루에 올리고 있던 손을 슬며시 쥐었다.

싸늘하면서도 숨 막히는 긴장감이 홀에 감돌았다.

나는 그들과 가만히 마주하고 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그래."

애초에 그럴 생각이 아니면 군주성으로 돌아왔을 리가 있나.

그리고 그것은 세 사람도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때 참모장이 나서서 말했다.

"악티폴의 경기에서 한 인간 남매를 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혹여 그들과 관련이 있는 일이라면······."

"이동하는 건 나뿐이다."

나는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그가 굳은 얼굴로 신퇴를 돌아봤고, 신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럼 바로 대군주성으로 이동하지."

다른 군주들도 지금쯤 전부 모였으려나?

그게 궁금했지만 어차피 이제 곧 알게 될 것이기에 굳이 묻지는 않았다.

나는 참모장을 바라봤다.

성으로 귀환하는 건 그의 텔레포트를 이용해서 이동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짐작대로 그가 나섰다.

"제 곁으로 와주십시오. 텔레포트로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세 사람의 곁으로 저벅저벅 다가가서 섰다.

곧 거대한 마력의 유동과 함께 주위 시야가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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