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도약 (2)
무호흡 마법.
당연히도 물속에서는 숨을 쉴 수 없기에 호수 탐사를 위해서 필요한 마법이다.
그리고 그 효과를 마법의 '마'자도 모르는 내게 걸어줄 수 있는 게 인챈트 마법이었다.
"얼마든지 물어보십시오."
나는 남자에게 이 두 마법에 대해 궁금한 점들을 물어봤다. 가장 중요한 것부터.
"일단 무호흡 마법을 다른 사람에게 인챈트하는 게 가능한가?"
인챈트 마법은 효과가 효과인 만큼 대상에게 걸 수 있는 종류의 마법이 굉장히 제한적이다.
게임에서는 무호흡도 인챈트가 가능한 마법인 걸로 알고 있었지만 재차 확인하기 위해 물었다.
남자가 안주를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가능합니다."
"한 번에 인챈트를 걸 수 있는 인원은 얼마나 되지?"
"인원은 제 실력이 미숙해서 1명이 최대입니다."
"인챈트의 지속 시간은?"
"지속 시간이야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만······ 마력을 아예 쌓지 않은 평범한 사람을 기준으로는 그래도 대략 2시간 정도 지속할 수 있을 겁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제 마력과 성질이 잘 맞지 않거나 마력에 친화도가 떨어지면 그보다 지속 시간이 더 짧아지겠죠. 그래도 몸을 격하게만 안 움직이면 마력을 많이 잡아먹는 마법은 아니라서 말입니다.
1명이 한계면 아셸은 두고 혼자 들어가야 한다는 거고······ 2시간이라.
그 거대한 호수를 탐사하며 신비를 찾아내는 데는 턱도 없을 시간이었지만, 당연히 첫 시도에 무조건 찾아내야만 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럭저럭 넉넉하다 싶었다.
설령 그보다 지속 시간이 짧더라도 어쨌든 이런 인재를 당장 어디서 또 구할 수도 없었기에 놓칠 수는 없었다.
"마력을 전부 소진하고 다시 완전히 회복하는 데는 얼마나 걸리지?"
"집중해서 명상을 해도 최소한 반나절은 걸립니다."
잠시 머릿속으로 어림해봤다.
1시간 탐사, 3시간 충전, 그리고 휴식까지 생각하면 하루에 대충 2, 3번씩 잠수해서 탐사할 수 있으려나?
뭐, 효율이야 어찌 됐든 이런 인재를 당장 어디서 또 구할 수도 없었기에 어차피 고용은 확정이었다.
이 남자도 딱히 의뢰를 거절할 생각은 없어 보였기에 바로 제안을 건넸다.
"자네를 고용하고 싶은데."
내 말에 그가 손가락을 말았다.
"의뢰금만 두둑히 챙겨주신다면 저야 물론 좋습니다, 나으리. 그런데 호수는 언제, 얼마나 탐사하실 생각이십니까?"
"출발은 내일 당장. 그리고 기간은 정해진 건 없다. 며칠이 될 수도 있고 몇 주가 될 수도 있지."
"······예? 잠깐, 그건 좀······?"
"자네 말대로 의뢰금은 두둑히 챙겨주지. 착수금과 하루 수당으로 2골드씩, 그리고 의뢰를 끝내는 날에는 5골드를 주겠네."
잠시 주춤한 기색을 보인 그가 이어진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돈지랄, 효과는 말할 것도 없이 뛰어났다.
나는 술자리를 슥 둘러보고서 말했다.
"여기 술값도 전부 내가 계산하지."
"······이것 참 화끈하신 공자님이셨군요."
이내 그가 씩 유쾌한 미소를 지었다.
"소개가 늦었습니다만, 저는 특급 모험가인 헤이블이라고 합니다. 실례지만 공자님께서는?"
"먼 도시에서 와서 가문을 말해봐야 잘 모를 거다."
"아, 그렇습니까. 아무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지불하실 의뢰금이 아까울 일이 없도록 제가 최선을 다해서 탐사를 보조하겠습니다! 하하핫!"
그리고 그는 곧바로 술을 몇 잔이나 더 시켰다.
나는 미리 넉넉하게 돈을 계산해주고 도로 주점을 나왔다.
내일부터 많이 굴려야 되는데 오늘 하루 즐겨야지.
***
날이 밝고, 약속한 장소에서 헤이블과 만났다.
"아, 오셨습니까."
그는 어젯밤과는 사뭇 다르게 말투가 침착했다.
아무래도 어제는 만났을 때부터 취기가 좀 올라있던 모양이다.
우리는 곧바로 가이탄 호로 마차를 타고 이동했다.
이동하면서 헤이블은 자신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냥 과거에 대한 이야기나 그런 것들이었다.
"······그래서 그때 처음으로 무호흡 마법을 익히게 됐던 겁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뭐, 나름 유용하게 써먹고는 있죠."
"그렇군."
나는 영혼 없이 대꾸하며 그에게 물었다.
"가이탄 호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나?"
"더럽게 큰 호수라는 거 말고는 솔직히 별로 아는 건 없습니다.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무시무시한 괴어들이 나타난다는 소문 정도? 근데 뭐 끽해봐야 호수에 사는 물고기가 커봤자 얼마나 크겠습니까."
끽해봐야라고 하기엔 가이탄 호는 이 대륙에서 가장 거대한 호수 중 하나로 알고 있다.
그런 만큼 그 수면 아래에 살고 있는 생물들도 어마무시한 것들이 많았다.
판타지 세계답게 평범한 상어나 고래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무시무시한 몬스터들이.
'어차피 깊게 들어갈 생각은 없으니까.'
내가 찾고 있는 신비는 호수의 외곽에 붙어있었기에 중앙 쪽까지 깊게 들어갈 일은 없었다.
그 큰 호수 한가운데 쪽 어딘가에 신비가 있었으면 애초에 찾을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마주친다고 하더라도 혈술까지 얻은 마당에 상대하는 데는 별 문제도 없겠고.
나는 공간 도약의 신비가 숨겨진 장소의 풍경을 떠올려봤다.
이 역시 내가 직접 찾았던 신비가 아니라 다른 유저의 플레이 영상을 우연히 봤던 거라서 정확한 위치는 특정할 수 없었다.
'호수 외곽의 벽면 쪽, 바위들이 성게처럼 뾰족하게 솟아있었고······ 그리고 동굴이 있었는데.'
저번에 부동 장막을 찾을 때처럼 이번에도 완전히 노가다가 될 것이었다.
그 생각은 가이탄 호에 도착하고 호수의 규묘를 직접 본 다음에는 더 강해졌다.
'······미친.'
전방으로 끝없이 광활하게 깔린 수면을 바라보며, 나는 속으로 욕을 뱉었다.
해안에서 바다를 보는 것과 다를 게 없는 압도적인 크기였다.
여기 어딘가에 숨겨져있는 신비 찾아야 한다고?
이건 진짜 몇 달은 걸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도 그냥 아예 못찾을지도.
"이곳도 오랜만에 오는군요."
헤이블이 팔자 좋게 호수를 구경하며 말했다.
그야 나한테 마법만 걸어주고 의뢰금을 받으면 그만이었으니 말이다.
호수 근처에 마차가 멈춰서고, 나와 아셸과 헤이블은 호수 바로 앞으로 다가갔다.
호수의 근처로 무성하게 깔린 숲. 이곳이 내가 희미하게 기억하는 지상의 풍경이었다.
신비는 이 일대를 뒤지다 보면 찾을 확률이 높았다.
나는 호수를 잠시 둘러보다가 헤이블에게 고개를 돌렸다.
시선을 받은 그가 물었다.
"바로 시작하시는 겁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그럼······ 몸에 이상이 온다 싶으면 바로 말씀을 해주십쇼."
헤이블이 곧바로 마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 푸른빛이 모여들더니 그 빛이 천천히 내 몸으로 흡수되었다.
나는 전신에 차오르기 시작한 마력을 느꼈다. 초감각을 얻은 뒤로는 마력과 같은 기운들도 훨씬 잘 느껴졌다.
'······오.'
마법의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지 않아도 전혀 답답한 감각이 차오르지 않게 된 것이다.
그에 신기해하고 있는데, 헤이블이 조금 놀란 얼굴로 말했다.
"공자님께서는 마력을 연마한 적이 아예 없으신 듯한데, 인챈트의 효율이 상당하시군요?"
"효율?"
"마력에 친화도가 높다는 말씀입니다. 무술이든 마법이든 제대로 마력을 연마하시면 대성하실 것 같습니다."
뭐, 마력에 재능이 있다는 건가?
립서비스인가 싶었지만 표정을 보니 그런 건 아닌 듯했다.
지금 중요한 건 아니었기에 나는 다시 호수로 신경을 돌렸다.
'그러면······.'
어디 이제 들어가볼까.
질질 끌 것도 없었다.
나는 걸치고 있던 옷가지를 하나씩 탈의하기 시작했다.
이 두꺼운 것들을 입고 물 속을 헤엄치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가장 안에 입고 있던 얇은 티셔츠와 바지만 남기고 전부 벗었다.
"좀 맡기고 있겠다."
"······아, 예."
아셸이 조금 당황스러운 얼굴로 벗은 옷가지들을 조심스레 받아들었다.
"아, 그리고 물 속에서 너무 몸을 격하게 움직이는 데에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공자님. 그럴수록 무호흡에 소모되는 마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집니다."
헤이블의 주의까지 듣고서 두 사람을 다시 마차로 돌려보냈다.
한참을 물 속에서 있을 건데 계속 여기에 세워두고 있을 필요는 없었으니까.
"흐음······."
홀로 남은 나는 가볍게 몸을 풀고서 수면 바로 앞으로 다가갔다.
잠수에 대한 부담은 별로 없었다.
평생 게임에만 빠져서 살던 내가 그나마 좀 내세울 수 있던 다른 특기 중 하나가 스쿠버다이빙이었기 때문이다.
나와는 다르게 아주 활동적인 동생이 휴일이면 나를 집밖으로 끌어내서 이곳저곳 데리고 다니는 게 일상이었다. 스키라든가, 클라이밍이라든가.
그중에 특히 동생과 내가 그나마 함께 즐겼던 게 바로 스쿠버다이빙이었다. 이쪽은 내 취향에도 제법 맞았었으니까.
물론 지금은 맨몸이었지만, 초재생도 있고 지칠 일 없이 움직일 수 있으니 별 걱정은 없었다.
첨벙!
물 속으로 다이빙을 하고 호흡부터 바로 다시 체크했다. 문제는 없다.
숨을 참고 있는 동안 소비되는 마력 역시 초감각으로 선명히 느껴졌기에, 이쪽도 문제는 없었다.
'······이 정도면 2시간이 아니라 3시간도 넘겠는데?'
내 몸이 인챈트의 효율이 좋다더니 그래서 그런가.
나는 팔다리를 움직이며 천천히 유영했다.
초감각은 물 속에서도 효과가 유효한지 전방의 시야를 지상과 다름없이 뚜렷하게 만들어주었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자 물고기들이 하나둘씩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적당한 지점에서 멈춰서 호수의 벽면을 살피며 옆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신비를 찾을 때까지 이런 식으로 끝없는 노가다였다.
······그리고 대충 체감상으로 2시간이 훌쩍 흘렀다.
나는 벽면에 튀어나온 돌부리를 잡고 몸을 멈춘 뒤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진짜 답이 없네.'
예상은 했지만 직접 실감하고 나니 또 느낌이 다르다.
이런 식으로 해서 대체 어느 세월에 찾고 앉았지?
마력이 슬슬 떨어져갔기에 일단 돌아가기로 했다.
위치를 표시해둔 지점으로 돌아가서 지상으로 올라갔다.
마차로 돌아가자 아셸과 바로스는 헤이블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쫄딱 젖은 내 꼴을 보고 바로스가 순간 미약하게 입꼬리를 씰룩이며 고개를 숙였다.
제딴에는 무의식적으로 그런 거겠지만 초감각 때문에 아주 잘 보였다. 저 자식이 웃참을 하고 앉았네.
헤이블이 내게 물었다.
"원하는 건 찾으셨습니까, 공자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생각보다 훨씬 오래 걸릴 것 같군."
모닥불에서 몸을 말리며 나도 함께 식사를 했다.
그리고 늦은 오후쯤에 다시 호수로 들어가서 탐사를 계속했지만, 역시 신비는 찾을 수 없었다. 그날의 탐사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런 식으로 일주일이 흘렀다.
오늘도 아침 일찍부터 호수로 들어온 나는 열심히 신비를 찾으며 물 속을 유영하고 다녔다.
하지만 여전히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신비에 이런 식으로는 안 되는 건가 슬슬 의구심이 차올랐다.
'진짜 이거 찾을 수 있는 게 맞나?'
좀 인력이라도 투입할 수 있는 일이면 당장 그렇게 할 텐데, 신비를 찾는 거니까 그럴 수도 없고.
나는 잠시 수중에 누운 채 멍하니 떠다니면서 생각에 잠겼다.
찾을 수 있다는 확신만 있으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투자할 텐데, 그럴 확신이 없는 게 문제였다.
좀만 더 찾아봐도 안 되면 공간 도약을 찾는 건 나중으로 미뤄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
멀리서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거대한 기척이 느껴졌다.
이어서 시야에 모습을 드러낸 건 거대한 상어였다. 거의 배 한 척 크기와 다름없을 정도의.
【Lv. 51】
······별로 깊이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왜 저런 놈이 튀어나와?
놈이 나를 보자마자 아가리를 쩍 벌리고는 거칠게 돌진해왔다.
'저 새끼가.'
나는 곧바로 혈술을 사용해 핏방울을 쏘아내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또 반대쪽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다른 기척이 느껴졌다.
동시에 푸른빛의 마력이 물살을 가르고 쏘아오더니 내게 돌진해오는 상어의 몸체를 강타했다.
퍼어엉!
공격에 직격당한 상어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정신을 못 차렸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다가온 물체가 허리를 낚아채는 게 느껴졌다.
'······어?'
나는 내 허리를 붙잡은 이를 쳐다봤다.
온몸이 비늘로 덮인 푸른 머리칼을 가진 여인.
아무래도 내가 위험에 처한 줄 알고 구해주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물 속이라 말을 할 수도 없고, 그렇게 나는 그녀에게 잡힌 채 영문도 모르고 지상까지 순식간에 끌려갔다. 뭐 이리 빨라?
"······후아!"
지상으로 나온 여인이 거칠게 숨을 내쉬다가 멍하니 앉아있는 나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야! 미쳤어, 인간? 죽으려고 작정해서 그렇게 깊은 곳까지 들어갔냐?!"
"······."
"어이구, 완전히 넋이 나갔네. 너 진짜 운 좋은 줄 알아라. 내가 진짜 그냥 무시하려다가 구해준 거니까."
그녀가 그렇게 툴툴거리며 몸의 물기를 털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물기를 털어낸 부분에 덮여있던 비늘이 서서히 인간의 피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조금 눈을 크게 떴다.
'······해린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