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르 바몬 (3)
"그럼 잘 먹겠습니다!"
리안이 입맛을 다시며 눈앞의 치킨을 바라봤다.
식사 계산은 모두 내가 하겠다는 말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서 앉은 그였다.
"튀긴 닭 요리라는 게 신기해서 들어와봤다가 너무 비싸서 딴 걸 시키려던 참이었는데 말입니다, 하하. 이거 공자님 덕분에 감사하게도 얻어먹게 됐네요."
닭다리 하나를 손으로 집어 앞접시로 가져가는 모습에 아셸과 바로스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원래 손으로 들고 뜯는 거 맞는데······.'
나도 편하게 먹고 싶었지만 품위의 문제로 별 수 없이 포크를 사용했다.
내가 다리 하나를 가져가자 다른 둘도 자신들의 몫을 덜어갔다.
생긴 게 생소한지 아셸은 선뜻 입에 대지 못하고 덜어간 허벅지 부위를 가만히 보고만 있다가, 곧 나이프로 끝부분을 조금 잘라서 먹기 시작했다.
그리곤 조금 놀란 기색을 띠더니 먹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게 보였다. 입맛에 맞는 모양이었다.
'맛은 있네.'
본래 알고 있는 익숙한 맛과 다른 나름대로의 특색이 있는 치킨이었다.
고기를 튀긴 요리가 웬만해서야 맛이 없을 수가 있겠냐만.
그렇게 잠시 말없이 식사를 하고 있자니 지배인이 직접 시키지도 않은 음료들을 내왔다.
"종업원을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음식의 값은 모두 받지 않을 테니 맛있게 드셔주십시오."
그렇게 말한 그가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날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저, 공자님. 한데 아까 전에 시비가 붙으신 덴브리 영애는······."
"됐으니 일 보게."
그녀에 대해 나한테 주의를 주려는 듯 보였지만 쓸데없는 참견이었다.
지배인이 쭈뼛쭈뼛 물러가고, 어느새 앞접시에 뼈가 수북히 쌓인 리안이 내게 물었다.
"한데 공자님께선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시장이라면 이 도시의 왕이나 다름없는 사람 아닙니까."
"자네야말로 그럼 왜 나섰나?"
"그야 뭐······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그렇게 패는 걸 보고만 있을 수도 없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그 여자가 시장의 딸이었는지는 저도 몰랐습니다. 저는 이 도시 사람이 아닌지라."
"알았으면 안 나섰을 건가?"
"아뇨, 그래도 나서긴 나섰겠죠. 물론 손까지 잘릴 뻔할 줄은 몰랐지만요, 하하."
실없이 웃으며 얘기하는 게 마치 자신이 아닌 남 얘기를 하는 듯했다.
이 남자는 보시다시피 이렇게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게임에서도 끝내 최후를 맞이하기 직전까지도 이렇게 웃으면서 갔었지, 아마.
"그런데 정말 보통 성질이 아닌 것 같은 여자였는데 말입니다. 주제가 넘는 말인 건 압니다만, 공자님께서도 서둘러서 도시를 떠나시는 편이 좋지 않을지······."
나는 화제를 다른 걸로 돌렸다.
"자네는 행색을 보니 떠돌이인 듯한데."
"아, 예. 지금은 칼데릭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는 중입니다."
"어째서?"
"어째서라고 물으신다면야······ 나그네의 방랑에 어디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저 정착하고 있을 곳이 없으니 발이 닿는 대로 가는 것이죠, 하하."
입가엔 웃음이 걸려있었으나 어쩐지 조금 공허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나는 현재 그의 처지가 어떤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돌아가도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그렇다고 혈육의 연을 차마 완전히 끊어버릴 수도 없는.
물론 지금 내가 신경을 쓰고 있는 건 그의 그런 뒷배경이 아니라 따로 있었다.
굳이 지금 그를 붙잡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건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음? 아무 기척도 없었는데 어떻게 적의 매복을 알아챘냐고? 하하, 내가 감이 좀 좋은 편이라 말이지.]
[좋아, 자네에겐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특별히 자네에게만 알려주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부디 비밀로 해주게나. 사실 나는 신비를 하나 가지고 있다네.]
어스힐 왕국 에피소드에서 적국과의 전쟁이 진행되는 중 리안, 그러니까 테이르 바몬이 유저에게 했던 대사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이런 느낌의 대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이 대륙에서 극히 드문 신비 사용자였다.
한마디로 나처럼 지니고 있는 신비가 있다는 뜻이었다.
'이름은 뭔지 안 나왔었지만, 감각과 반사 신경을 아득히 증폭시켜주는 신비라고 했었지.'
그 신비의 능력 덕분에 그는 전쟁 중 한 번도 적의 기습과 매복에 당했던 적이 없었다.
또한 그리 뛰어나지 않은 육체 능력으로도 자신보다 훨씬 강한 적장들을 무찌르기도 했다.
내가 확인하고 싶은 건 하나였다.
지금의 시점이 과연 그가 그 신비를 얻기 이전인가, 이후인가?
[신비를 어떻게 얻게 된 거냐고? 그야 그냥 우연이었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륙 이곳저곳을 떠돌던 때가 있었네. 모험가 일을 하기도 했고, 인적 드문 험지를 탐험하기도 했지.]
[어쩌다 한 골동품점에서 보물 지도랍시고 다 찢어진 지도 하나를 강매당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정말로 던전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였지 뭔가? 그리고 거기서 신비를 얻게 된 거라네.]
기억하기로 분명 그는 지도에 표시된 한 던전에서 신비를 얻었다고 했었다.
그 위치가 어디인지도 대사에 대충 나왔던 것 같기는 한데 아쉽게도 거기까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만약 아직 신비를 얻기 전이라면?'
내게도 그 신비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이었다.
감각과 반사 신경을 증폭시켜주는 신비.
그건 내게 있어서 상당히 유용할 능력이었다.
예전이었다면 어차피 육체가 전혀 따라주지를 않으니 쓸모도 없었겠지만, 지금의 나는 부동 장막을 얻었다.
상대의 공격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겼으니 그걸 빠릿빠릿하게 사용할 수 있는 감각과 반사 신경도 중요해진 것이었다.
'······생각해보니까 진짜 필요한 능력이긴 하겠는데.'
이전에 오크킹에게 기습을 당했을 때를 생각해도 그랬다.
거리가 상당히 멀리 떨어져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놈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코앞까지 접근해왔다.
장막을 펼치는 게 조금만 늦었어도 나는 그 육중한 주먹에 몸이 산산조각 터져나갔을 것이다.
고작해야 70레벨이 그 정도인데 그보다 훨씬 높은 레벨의 괴물들은? 다른 군주들은?
만약 그들이 나에게 적의를 가지고 공격한다면, 웬만큼 멀리 떨어진 게 아니고서야 그에 반응해서 장막을 펼치기도 전에 죽게 될 것이다.
아니면 어디에 숨었거나 아주 멀리 있는 상대에게 기습이나 저격을 당하는 경우의 위험도 있고.
절대적인 방어기를 가졌으면 뭐 하나? 사용하기도 전에 목이 따이면 끝인데.
이 세계의 초인들의 속도와 내 인지력 사이엔 분명 그만큼의 거대한 격차가 있었다.
물론 아직은 리안이 신비를 얻은 상태인지 아닌지는 모르기에 설레발이었다.
그걸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었기에 나는 넌지시 다른 질문을 했다.
"대륙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면 던전 같은 걸 발견한 적이 있나? 아니면 유적이 숨겨진 장소라거나."
"던전이나 유적 말입니까. 찾아보려고 한 적은 있지만 아쉽게도 아직 한 번도 발견해본 적은 아직 없습니다. 아, 이야기가 나와 생각난 건데······."
그때 뭔가 생각난 듯한 표정으로 리안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돌돌 말린 낡아 보이는 양피지.
그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게 전전 도시에서 들렀던 골동품점에서 산 지도입니다만, 주인장 말로는 유적이 숨겨진 곳을 가리키는 보물 지도일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
나는 놀란 기색을 숨기고서 지도를 바라봤다. 설마?
마침 딱딱 맞아떨어지는 상황에 뭐 이런 우연이 다 있나 싶을 정도였다.
"참 어이가 없죠. 괜히 살짝 펼쳐봤다가 조금 찢어먹어서 은화 몇 닢에 강매당했습니다. 그래도 이왕 산 김에 한번 지도에 있는 대로 찾아가볼까 생각해서 그리로 향하고 있는 길이었습니다."
"한번 봐도 되겠나?"
"얼마든지요. 열 번 보셔도 됩니다."
리안은 순순히 내게 양피지를 건네주고서 다시 치킨으로 관심을 돌렸다.
나는 그것을 천천히 펼쳐서 살펴봤다.
도저히 내용이 진짜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조잡하고 엉성한 지도.
지도가 표시하고 있는 위치는 5군주령과 4군주령의 사이에 있는 장소였는데, 무슨 괴상한 암호 같은 문자도 쓰여있었다.
'······이게 진짜 맞나?'
아무리 봐도 그냥 누가 낙서해놓은 쓰레기처럼 보이긴 하는데······
지도를 살펴보다가 다시 리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튼 이게 내 기억대로 진짜 신비가 숨겨진 장소로 안내할 지도라고 한다면, 그리고 그 신비를 얻는다면.
나는 미래에 그가 얻을 신비를 낼름 꿀꺽해버리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이 지도를 내가 다시 살 테니, 팔 생각이 없는가?"
"······예에?"
리안이 깜짝 놀라서 날 쳐다봤다.
그러다가 곧 손사레를 치며 말했다.
"아유, 아닙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그냥 가지십시오. 제가 은혜도 입었는데요, 뭘."
"······이게 진짜 고대의 유물이 숨겨진 지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진 않나?"
"그러면야 별 수 없죠. 혹시나 정말로 고대의 마법 유물이라도 찾으신다면 공자님께서 좋게 써주십시오, 하하."
그는 이게 정말 보물 지도라고는 생각하지도 않는 듯했다.
······그렇다고 해도 저렇게까지 사람 좋게 말하니 솔직히 좀 양심이 찔린다.
하지만 지금 내가 그런 거나 따지고 있을 처지도 아니었다.
애초에 그렇게 하나하나 따질 거면 미래의 지식을 활용하고 있는 것부터가 못할 짓이지.
그렇게 지도를 얻고 식사를 마친 뒤, 가게 앞에서 그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럼 감사했습니다, 공자님. 저는 이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나는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 만남을 그냥 이렇게 끝내도 될까?
미래에 일어날 중립국 간의 전쟁은 칼데릭과 세인테아의 세력 구도에도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었다.
내가 지금 당장 거기에 간섭해서 뭘 어쩔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애초에 내 코가 석자인데 신경 쓸 시간도 없지만······.
"······."
나는 끝내 입을 열었다.
어차피 내가 이 게임에 빙의했던 순간부터, 칼데릭의 군주가 된 순간부터 미래에 대한 무질서는 계속해서 쌓이고 있었다.
그러니 게임의 스토리에 얽매여야만 할 게 아니다. 결국 판단은 내 몫이었다.
"테이르 바몬."
내 말에 리안의 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굉장히 당황한 눈으로 날 쳐다봤다.
"언제까지고 도망만 쳐봐야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하루라도 빨리 왕국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거다."
"······잠깐만, 그걸 어떻게."
"나는 칼데릭의 7군주 론이다."
갑작스러운 정체 공개에 옆쪽에 있던 아셸과 바로스가 흠칫 놀라서 날 돌아봤다.
리안, 테이르는 내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지 표정이 다채롭게 변하다가 결국 되물었다.
"방금······ 뭐라고 하셨······."
"중립국들 사이의 정세가 심상치 않다는 건 알고 있을 거다. 더 늦기 전에 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라."
"······."
"그리고 정말 감당할 수 없는 순간이 왔다 싶으면, 7군주령으로 전령을 보내도록. 상황에 따라 어쩌면 내가 어스힐을 도울 수도 있겠지."
나는 그 말만을 남기고 멍하니 굳어서 서있는 그를 뒤로 한 채 몸을 돌렸다.
아셸과 바로스가 내 뒤를 따랐다.
'고작 이걸로 저 녀석이 바로 왕국으로 돌아갈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의 연결 고리는 만들어뒀으니 나머지는 그의 선택에 달린 것이었다.
***
여관으로 돌아와서 나는 지도를 다시 살폈다.
위치는 5군주령과 4군주령 사이에 있는 숲 지대니까 경로가 꼬이지는 않는다.
'이것도 찾는 데 오래 걸리려나······.'
얻을 수 있는 신비가 하나 늘어난 건 좋은 일이었지만, 고생도 그만큼 늘어날 걸 생각하니 벌써 피곤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만 자려고 자리를 정리하고 침대에 누우려는데 바깥쪽에 소란이 일었다.
똑똑.
곧 노크가 울렸다.
"들어와라."
조심스럽게 방문을 연 바로스가 굳은 표정으로 바깥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홀에 시장의 기사들이 찾아왔습니다."
그 말에 나는 바로 상황을 알 수 있었다.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울리더니 일련의 기사들이 뒤쪽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아셸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가장 선두에 서있던 기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아셸을 바라보더니, 내게로 시선을 옮겨 말했다.
"공자가 덴브리 아가씨를 모욕했다는 그 사람이 맞소?"
"······."
"맞는 모양이군. 시장님께서 공자를 데려오라는 명을 내리셨소. 부디 얌전히 따라주길 바라겠소."
나는 상황을 바로 파악하고서 헛웃음을 흘렸다.
안 그래도 날이 밝으면 찾아가려 했는데 이렇게 바로 나섰단 말이지.
"안내해라."
한번 어디까지 가나 보자.
나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까닥였다.
***
"지금 저택의 홀에 있다고 합니다, 시장님."
"알겠다."
딸을 모욕한 무뢰한을 데려왔다는 보고를 받은 콜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앉아있던 덴브리도 신나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 행정관 라이카는 속으로 혀를 차며 콜튼을 돌아봤다.
"나도 함께 가서 구경해도 되겠나?"
"좋을대로 하게."
저택의 홀로 이동하자 그 한가운데 서있는 세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덴브리는 중간에 서있는 남자를 발견하고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남자도 그녀를 발견하고 눈을 마주쳤다.
그녀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금방 다시 만났네?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 말했지, 내가?"
콜튼도 남자와 그 양옆에 서있는 두 사람을 둘러보며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네가 내 딸을······."
옆에서 돌연 헛숨을 들이키는 소리에 그는 고개를 돌렸다.
라이카가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그들 일행을 쳐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오한이라도 들린 듯 몸까지 부들부들 떨면서.
그러다가 곧 무릎을 바닥에 부서져라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군주님을 뵙습니다!"
······뭐?
방금 그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기에 콜튼은 순간 사고가 정지했다.
저 빌어먹을 놈에게 어떤 지옥을 보여줄까 즐거운 고민을 이어가고 있던 덴브리도 멍청한 얼굴이 되었다.
"······에?"
홀에 지독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엘프가 인상을 찌푸리며 바닥에 머리를 조아린 라이카를 바라보다가, 남자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7군주성의 행정관인 라이카입니다. 이 도시에 출장을 왔었던 모양입니다."
남자, 7군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홀에 놓여있던 의자 중 하나로 다가가서 앉았다.
"할 말이 있으니 불렀겠지."
그가 선 채로 굳은 콜튼과 다른 사람들을 주욱 훑어보고는 말했다.
"불러서 왔으니 해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