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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사기 들고 게임 속으로-23화 (23/189)

부동 장막 (3)

콰아아앙!

아셸이 거대한 석문을 부숴버리고 우리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무너진 돌조각 잔해를 넘어 이동하자 나타난 건 거대한 공동.

'오······.'

속으로 조금 감탄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아래 바닥과 벽면에 그려진 정체를 알 수 없는 기하학적인 문양들과, 구조물들, 공간을 희미하게 밝히고 있는 천장에 박힌 발광석까지.

상당히 오래 전에 지어졌을 텐데 저 발광석은 아직까지도 힘이 다하질 않은 건가?

어쨌든 지나쳐온 복도보다 더 신비스런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풍경이었다.

나는 마치 게임을 플레이하며 던전의 끝에 도달했을 때와 같은 즐거움을 느끼며 더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 보상을 챙길 타임이었다.

'어디 보자.'

공동 한쪽에는 방금 부수고 들어온 석상보다 좀 더 작은 문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저쪽인 모양이었다.

플레이 영상에서 봤던 유저는 유물 같은 아이템 하나 없는 던전에 실망하다가, 분명 저 문으로 들어가서 신비를 발견하고 바로 장비를 다 벗은 다음에 기쁨의 빤스춤을 췄었던가.

생각해보면 이 던전에 왜 신비가 숨겨져있는 건지도 참 신기한 일이었다.

신비라는 건 마력이나 마법 따위와 일절 관계없는, 출몰 장소도 완전히 무작위인 미지의 힘이라는 설정이었으니까.

그저 기가 막힌 우연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을 수도 있는 거고.

물론 그딴 거야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지금 나한테 중요한 건 저 문 너머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부동 장막 신비의 존재였으니까.

'근데 설마······ 그런 건 아니겠지?'

문득 하나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현재 세계의 시간대는 게임으로 플레이했던 세계에서 5년 전 과거의 시점.

······어쩌면 신비가 아직 생성되지 않아 저 안에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겠지?

"아셸, 이 문을 부숴라."

상상하기도 싫은 불길한 가정을 머릿속에서 털어내며 아셸에게 명령했다.

뒤에 서서 공동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던 그녀가 다가와서 문을 부숴버렸다.

그나저나 호위로 쓰려고 데려온 아셸인데 뭘 부수는 데에 더 알차게 써먹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그녀에게 그렇게 말한 뒤 혼자서 안쪽으로 입장했다.

복도보다 좁게 이어진 길을 따라서 쭉쭉 안쪽으로 들어가자 또다시 공동이 나왔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여기엔 사람이 생활했던 흔적 같은 것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

나는 다른 것들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고개를 들어 천장만을 빤히 응시했다.

정확히는 천장에 그려져서 백색으로 밝게 빛나고 있는 하나의 문양을.

내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안도감과 함께 희열이 솟아올랐다.

"부동 장막······."

신비는 보편적으로 문양의 크기가 클수록 더욱 강력한 신비다.

부동 장막의 문양은 초재생보다도 훨씬 거대해서 넓은 공동의 천장을 완전히 채우다 못해 아래 벽면에까지 이어져있었다.

나는 잠시 신비를 찾았다는 기쁨에 실실 웃고만 있다가, 곧 상황을 깨닫고 작게 탄식을 뱉었다.

"아."

그러고 보니 플레이 영상에서도 저게 천장에 그려져있었던가?

다른 것들에 집중하느라 생각을 못했다.

공동의 천장은 내 키의 몇 배는 가볍게 넘을 정도로 높았다. 대충 봐도 10미터는 되어 보였다.

······손에 닿아야 흡수가 될 텐데, 저걸 어떻게 흡수해야 되는 거지?

나는 닭 쫓던 개마냥 천장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슬쩍 뒤를 돌아봤다.

다시 돌아가서 아셸을 불러와야 되나?

하지만 아무리 아셸이라도 신비의 존재를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면 달리 방법이······.

"······."

공동의 벽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울퉁불퉁 튀어나온 부분이 많아서 어떻게 잘만 하면 오를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어휴, 썅······.'

하여간 뭐 하나 쉽게 얻는 법이 없네.

나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서 벽면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평생에 한 번 해본 적 없던 암벽 등반을 이런 식으로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차피 초재생이 있으니 떨어져도 다칠 염려는 없고 체력이 달릴 일도 없긴 했다.

터업.

어설프게 튀어나온 부분을 꽉 붙잡고서 더듬거리며 조금씩 발을 디디기 시작했다.

원래의 내 육체 능력이었으면 몇 미터 올라가서 팔이 부들거렸을 것 같은데, 초재생 덕분에 부족한 힘이 바로바로 채워졌다.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조금씩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천장 바로 밑이었다.

발 한 번 삐끗했다가 떨어지면 다시 올라가야 했기에 나는 신중히 몸의 중심을 고정하고 한 손을 천천히 뗀 다음 뻗었다.

화아아악!

문양의 빛이 밝게 터지더니 내 몸에 천천히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에 한창 고양감을 느끼고 있는데, 갑자기 발을 딛고 있던 부분이 부서지더니 중력이 날 아래로 잡아끌었다.

"엇······."

그대로 내 몸은 추락하여 지면과 거하게 충돌했다.

나는 억눌린 신음을 내며 바닥을 잠시 데굴데굴 굴렀다.

그렇게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자니 뼈가 부러진 듯 등과 허리에 치밀던 격통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아으, 씨."

등을 싹싹 문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어쨌든 이걸로 부동 장막의 신비를 얻었다.

초재생을 얻었을 때도 그랬지만, 신비는 얻은 순간부터 대충 어떤 능력인지,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오는 감각이 있었다.

나는 괜히 앞으로 팔을 뻗으며 부동 장막을 발동했다.

"······!"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내 몸을 두르고 어떤 방어막이 펼쳐진 게 느껴졌다.

나는 순간 감탄했다가 곧 무언가를 깨닫고 바로 능력을 거두었다.

그리곤 조금 어이가 없어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이거 숨도 못 쉬는 거였어?"

부동 장막.

어떤 강력한 공격이라도 웬만해선 다 막아낼 수 있는 절대적인 방어 능력.

하지만 그 패널티는 시전자가 장막을 펼친 동안은 아무런 행동도 취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게임에서는 보스의 궁극기 같은 걸 씹는 무적기 정도의 용도로 사용됐었다.

근데 직접 사용해보니······ 이건 능력을 사용하는 동안 움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호흡도 할 수가 없었다.

'······크게 상관은 없으려나?'

나는 다시 한 번 능력을 사용해봤다.

몇 번 능력을 펼치고 거두며 곧 다른 사실을 깨달았다.

이건 한 번 사용하면 계속 지속되는 게 아니라 내 의지로 얼마든지 취소할 수 있고, 쿨타임이나 발동 딜레이도 없었다.

게임에서와는 조금 다르게 자유자재로 장막을 키고 끌 수 있는 온오프 형식의 능력이 된 것이었다.

현실에 맞춰서 능력의 형식이 바뀐 건진 몰라도 어쨌든 게임보다 훨씬 상향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다만 장막을 펼친 동안에는 아무런 행동도 취할 수 없으며, 호흡조차도 불가능하다는 것.

"대충 알겠네."

그럭저럭 적당한 패널티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내게 있어선 그닥 큰 패널티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왜냐면 즉살 외에 아무런 능력도 없는 내가 이 능력을 사용해봤자 어떤 식으로 사용할까.

어차피 대부분 가만히 서서 상대의 공격을 막는 데에만 사용하지 않으려나?

'숨이야 잠깐 참으면 되는 거고, 계속 펼치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면 능력을 중간중간 껐다 키면서 컨트롤할 수도 있는 거고.'

나는 이런저런 상황을 가정해보며 부동 장막의 사용법을 생각해봤다.

게다가 써보니까 장막의 형태나 크기도 조종이 가능했다.

갑옷처럼 내 몸에 딱 달라붙게 장막을 펼칠 수도 있었고, 배리어 마법처럼 구 형태로 몸 주변에 펼칠 수도 있었다.

이건 굉장히 훌륭한 방어 능력이었다.

"좋네, 좋아."

초재생에 더해서 방어 능력까지, 이제 몸을 지킬 수단이 하나 더 늘어났다는 생각에 절로 마음이 든든해졌다.

나는 몸에 묻은 먼지들을 털어내고 주위를 둘러봤다.

신비를 얻고 나니 공동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책상이나 침상 등, 사람이 생활했던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혹시나 뭐 더 얻을 만한 게 있으려나 이리저리 돌아나디며 뒤져봤지만, 별 건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공동을 둘러보고서 통로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나왔던 통로를 지나 첫 번째 공동으로 나오니 주위를 경계하고 있던 아셸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가 나를 보고서 조금 안심한 듯한 기색을 내비쳤다.

또 아까 같은 석상이 튀어나올까 긴장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결국 이 던전은 뭐였던 건지 모르겠네.'

어쩌면 털어갈 건 이미 누가 털어간 던전인데, 그 뒤에 공교로운 우연으로 신비가 자리를 잡은 걸 수도 있겠다 싶었다.

뭐가 됐든 원하는 건 얻었으니 더 이상 알 바 아니었지만.

"그만 나가지."

나는 아셸과 함께 밖으로 나가는 통로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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