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즉사기 들고 게임 속으로-14화 (14/189)

초재생 (4)

드드득.

부러진 뼈가 붙고, 찢어진 피부가 아물며 새살이 돋아난다.

너덜너덜했던 팔이 완전히 재생되기까지는 고작 몇십 초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나는 주먹을 쥐었다 피며 상태를 확인했다.

겉으로 보는 것과 다름없이 정말로 완벽하게 회복되었다. 머리의 찢어진 상처와 접지른 발목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방금까지 만신창이었던 몸이 시간이라도 거스른 듯 순식간에 멀쩡한 상태로 돌아왔다.

"개쩌네."

과연 초재생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능력이다.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이 정도 회복력이면 절단된 신체 부위도 재생이 될까?

게임에서의 초재생은 그저 생명력의 회복을 증폭시키는 패시브 스킬이었다. 잘린 신체까지도 재생되는지 아닌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걸 확인하자고 멀쩡한 몸 어디를 잘라버릴 수도 없었기에 당장은 호기심으로 그쳤다.

어쨌든 이로써 첫 번째 신비는 성공적으로 얻었다.

나는 개운한 기분으로 발광석을 주워들고 몸을 일으켰다.

"음."

그나저나 꼴이 말이 아니군.

상처는 깔끔하게 회복됐어도 핏물이 굳어 들러붙은 자국은 그대로였다.

이 상태 그대로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기에 수통의 물로 핏자국들을 씻어냈다. 옷에 스며든 것까진 별 수 없었지만.

공동 벽과 바닥에는 여기까지 지나온 통로처럼 벌레들이 가득했다.

그것들을 보고 있자니 다시금 하나의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

나는 미간을 좁힌 채 바닥에 떨어진 핏물과 벌레들을 번갈아 봤다.

즉살.

내가 지니고 있는 유일한 공격 스킬.

일단 접촉만 하면 어떤 대상이든 즉사시킬 수 있는 절대적인 즉사기라고 스킬의 설명에선 서술되어 있었다.

떠오른 의문은 이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접촉'이란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지금까지는 당연히 육체를 통한 접촉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이 '육체'의 기준이 대체 어디까지인지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었다.

예컨대 혈액도 육체의 일부다.

그러면 내 혈액에 접촉한 대상도 즉살이 작용하는 범위 내에 있는 것인가?

'······확실히 실험해볼 필요가 있겠는데.'

나는 발밑을 기어다니고 있던 벌레 한 마리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내 핏물이 떨어진 곳에 벌레를 도로 내려놓은 뒤 즉살을 발동했다.

하지만 벌레는 죽지 않고 멀쩡히 살아있었다.

기대에서 빗나간 결과에 조금 실망하며 다른 가정을 떠올려봤다.

혹시 체외로 배출된 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피라서 그런 건 아닐까, 하고.

"음······."

바닥에서 날카로운 돌조각 하나를 찾아 주워들었다.

부러진 뼈도 순식간에 회복시키는 능력을 얻었는데 베인 상처쯤은 대수도 아니었다.

투박한 날로 손바닥을 꾹 누르고 긋자 살이 찢어지며 피가 흘러내렸다. 상처는 곧바로 재생됐다.

바닥을 기고 있는 벌레에게 손바닥의 핏물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다시 즉살을 발동하자 놀랍게도······.

"허."

진짜 죽었다.

벌레는 더 이상 꿈틀거리며 움직이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봐도 마찬가지.

이번엔 정말로 즉살이 통한 것이었다.

확실한 확인을 위해 다른 벌레들로 몇 차례 더 시도해봤다. 결과는 모두 같았다.

그제야 나는 추측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피부를 통한 접촉뿐 아니라, 혈액을 통해서도 즉살을 발동할 수 있다.'

다만, 출혈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피는 아무 효과가 없던 것으로 보아 시간적인 제한이 있는 것으로 추측됐다.

그 시간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으나, 어쨌든 이건 꽤 굉장한 발견이었다.

'설마 이런 식으로 활용이 가능했을 줄이야······.'

혈액을 즉살의 매개로 삼을 수 있다면 그 활용법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해진다.

엔록에 도착하면 마저 정확한 실험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몸을 돌렸다. 이제 슬슬 나가야겠다.

지나왔던 통로를 그대로 돌아가 굴 바깥으로 나서자, 입구에 아셸과 칸이 나란히 서있는 게 보였다.

내 모습을 두 사람이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옷도 찢어지고, 핏자국에 흙먼지에, 꼴이 엉망이라는 건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기에 좀 민망한 기분이었다.

나는 애써 태연하게 말했다.

"그만 돌아가지."

***

7군주를 뒤따라 걷는 아셸은 그 뒷모습을 힐끔거리며 살폈다. 특히나 왼쪽 팔을.

찢어진 소매를 붉게 적신 핏물.

눈에 띄는 외상은 없으나 심상치 않은 흔적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전설상의 고룡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거대했던 괴물조차 격전은 커녕 일순간 싸늘한 주검으로 만들어버린 7군주였다.

그야말로 이치를 벗어났던 압도적인 강함.

한데 그 굴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또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그런 그가 저만한 여파를 입은 것일까.

쓸데없는 호기심이라 생각하면서도 신경이 쏠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7군주는 무엇 하나 종잡을 수가 없는 자였다.

이번 산행으로 그가 어떤 목적을 지니고 행동하는 건지 파악하긴 커녕 더더욱 알 수 없게 됐다.

그나마 조금 알게 된 건 성격 정도일까.

길잡이로 동행한 이와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선 그가 딱히 신분이나 격을 따지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또한 몸을 거칠게 움직이는 것도 굉장히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틈만 나면 이동을 멈추고 한가롭게 경치 구경을 했던 걸 생각하면 그랬다.

특히 절벽을 오를 때 굳이 자신의 등을 빌렸던 것도······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것만큼은 여전히 의도를 모르겠지만.

'알 수 없는 사람이야.'

아까 올라왔던 절벽에 다다르자 7군주가 다시 이쪽을 돌아봤다.

"아셸."

"예."

"업고 내려가라."

"······."

정말이지 알 수가 없다.

아셸은 그의 기행에 대해서 앞으로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

도시로 돌아가는 데는 올라올 때보다 훨씬 적은 시간이 소모됐다.

내리막이 더 빠른 건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것 말고도 내가 초재생을 얻은 효과도 있었다.

초재생은 단순히 육체의 재생력뿐 아니라 체력까지도 크게 증폭시켜줬기에 좀처럼 지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지 않게 체력 문제까지도 해결된 것이었다.

도시로 귀환한 뒤 칸은 약속한 대로 큰 보수를 받았고, 시장에게 괴물에 대한 것도 전했다.

"북쪽 산맥에 출몰했다는 거대한 뱀 말이야."

"아, 예. 그런 소문이 있어서 조사단을 파견할 예정입니다만..."

"죽었으니 사체는 알아서 처리해라."

"······예?"

그 뒤로는 더 볼일도 없었기에 곧장 제닉스 시를 떠났다.

머지 않아 7군주령 엔록의 영역으로 진입한 마차는 다시 여러 도시들을 경유하며 빠르게 수도로 향했다. 그리고······.

'도착이군.'

나는 저멀리 보이기 시작한 거대한 도시 성벽을 응시했다.

대군주성을 제외하고 이제껏 지나왔던 어떤 도시들보다도 높고 거대한 성벽이었다.

7군주령 엔록의 수도, 버크혼.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