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 삼태성과 여의도 성지
진성, 정훈, 이반.
시간 여행자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은 이들은 각자의 생활을 정리한 후 한양에서 다시 만났다.
"역시 한양이구나."
"직접 와서 보니 환상적인데."
"그러게, 서울도 대단한데 한양은 차원이 다르네."
"그래도 사대문 안쪽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은데. 아니, 더 퇴보한 것처럼 보이는데."
"경복궁 때문이겠지."
남산에 있는 한양탑에서 만난 세 사람은 실물처럼 구현된 가상 공간에서 한양을 본 적 있었다.
그런데도 감탄사를 연발했다.
직접 본 한양의 웅장함이 또 다른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강남이라 부르는 경강 남쪽을 보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대칭으로 구성된 강북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고, 그에 걸맞은 운치가 있었기에 그런 거였다.
조선전력공사가 독점하고 있는 핵융합 발전으로 무한한 에너지를 확보한 인류.
연이 떠난 후 30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엄청난 발전을 지속해왔다.
그 결과 더는 지구에서 로켓을 쏘아 올릴 필요가 없었다.
연이 남기고 간 과제를 토대로 은동리에서 개발한 탄소복합물질 때문이었다.
'용심줄'이라 부르는 카르빈(carbyne) 합성에 성공한 인류는 '우주궤도승강기'를 만들 수 있었고, 시간만 허락한다면 '다이슨 스피어'도 구현(具現)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게 다 용심줄로 지어진 거란 말이지?"
"아니, 용심줄은 합성하기가 쉽지 않아서 탄소나노통으로 만들었다고 들었어."
"그래도 대단한 거 아냐?"
"대단한 거지."
세계인들이 신천지라 부르는 한양.
건물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들이 놀란 이유가 있었다.
경복궁을 빼면 달랑 99개만 지어진 건물은 하나같이 압도적이었다.
밑면 지름이 1km나 되는 건물은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졌지만, 그 거대함과 웅장함은 피라미드가 장난감처럼 보일 정도였다.
"한 건물에 10만에서 50만 명이 거주한다고?"
"응, 평균 30만 명이 한 건물에 산다고 그랬어."
"엄청나네. 우리 아파치 왕국도 저렇게 지었어야 했는데···, 아쉽네."
건물과 건물 사이는 최소 2km 이상 떨어져 있었고, 그 사이는 다양한 공원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답답해 보이기는커녕 광활하고 장엄해 보였다.
"아직도 우리 아파치 왕국이라 부르네."
"입에 익어서 그런 거지. 그래도 내가 만든 아파치 왕국이 있어서 세상이 평화로운 것 아냐?"
"그게 아파치 왕국 때문이냐? 유교 탈레반 때문이지."
"그게 그거 아냐? 유교 탈레반이 가장 활성화된 곳이 아파치 왕국이고, 유교 탈레반 성지가 있는 곳도 아파치 왕국이잖아?"
"뭐, 그렇게 말한다면 맞겠지. 하지만 조선의 기술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잖아?"
세상 사람들은 조선 제국을 '아버지의 나라'라 부르고, 아파치 왕국을 '어머니의 나라'라 불렀다.
따지고 들면 전혀 맞지 않은 말이었다.
조선은 전 세계 사람들을 물질적으로 먹여 살리고 있고. 도덕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가 번성한 아파치 왕국은 유교 탈레반들의 성지가 있는 곳이라 정신적 지주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조선이 세상의 중심이자 모든 것이었기에 그런 거였다.
그런데 며칠 동안 한양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세 사람을 주시하는 곳이 있었다.
* * *
거대한 투명구로 감싸진 한양 사대문 안.
그 중심에 경복궁이 있었다.
"그분께서 이곳에 오셨다고 했소?"
"네, 폐하. 그런데 다른 이도 두 명 더 있었습니다."
"아마 삼태성(三台星)일 거요. 그분들이 모두 돌아오셨군요."
연, 제로니모, 야코프.
사람들은 이들을 삼태성이라 불렀다.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 아래 큰곰자리 발바닥에 나란히 자리 잡은 쌍으로 이루어진 3개의 별 이름이 바로 그들이었기에 그런 거였다.
천문학자들은 연을 인류 발전의 시조(始祖)라 생각했고, 그와 함께 다녔던 제로니모와 야코프를 기리기 위해 삼태성에 그들의 이름을 붙였다.
"어떻게 할까요? 모셔 올까요?"
"아니요. 지금까지 기다렸는데 더 기다려 봅시다. 대신 성지를 찾아올지 모르니 단단히 채비하시오."
"네, 폐하."
검수대의 수장이 떠나자 황제는 태자에게 말했다.
"너도 준비하고 있거라. 잘하면 그분을 뵐 수 있을 것 같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제 평생의 소원인데 놓칠 수는 없습니다."
황제는 이제 약관(弱冠)이 된 태자를 보고 웃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조선인의 평균 수명이 150세를 넘어 200세를 바라보고 있는데, 이제 20살이 된 태자가 평생을 운운하니 우스울 수밖에.
"선황들께는 알리지 말 거라."
"네?! 어째서···?"
"그분이 번거로워할 수 있으니 당분간 우리 둘만 알고 있자."
"아···, 네. 알겠습니다."
효종과 연이 만든 관례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었다.
조선의 황제들은 60세가 넘으면 황제의 위(位)를 후손에게 넘겨주고 자신의 인생을 살았다.
연이 말한 노욕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또한 인생을 즐기라는 연이 남긴 마지막 문구가 무얼 뜻하는지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런 관례를 지켜왔기에 조선은 끊임없이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보수화되어 가는 세상.
젊은 황제들이 나서지 않았다면 망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풍요롭고 안정된 세상은 변화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는 퇴보만 있을 뿐이니.
* * *
조선인이라면 죽기 전에 한번은 찾는다는 여의도 성지.
그곳에 세 사람이 나타났다.
먼저 입을 연 이는 정훈이었다.
"이야, 이곳은 옛날 그대로인데."
"그러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화강암으로 지어서 그런 건 아닐까?"
경복궁조차 시대에 맞게 변화되었지만, 여의도 성지만큼은 달라진 게 없었다.
"아마 내가 남긴 명 때문일 거야."
정훈이와 이반의 대화에 진성이가 끼어들더니 이어 말했다.
"우리가 돌아왔는데 생각대로 세상이 흘러가지 않았다면, 뭐라도 해야 할 거 아냐. 그래서 이곳은 건들지 말라고 했어."
"오호! 이게 바로 네가 말한 안배구나."
"그렇지."
짧게 정훈이의 말에 응 한 진성이는 앞장서서 걸었다.
"뭐야? 이곳은 매점이잖아. 설마···?"
"맞아. 이 매점 안에 성지로 들어가는 비밀 통로가 있어. 그냥 두면 외관이야 멀쩡하겠지만, 내부는 아니잖아?"
"그럼 관리하는 사람도 있겠네."
"응, 바로 저들이야."
세 사람이 매점을 통과하여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넓은 공간이 나왔고, 그곳에는 최첨단 갑옷으로 무장한 검수 대원들이 있었다.
"이곳은 외부인 출입 금지다. 당장 돌아가라!"
검수 대원 중 한 명이 허리에 차고 있는 광선검 손잡이에 손을 올리며 무섭게 외쳤다.
하지만 진성이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넓고 넓은 세상. 내 발길을 막을 자는 없다."
삼족오의 모습이 가슴에 새겨진 갑옷을 입고 있는 검수 대원.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는데도 무엇에 놀랐는지 움찔했다.
그러더니 당장 꺼낼 것처럼 광선검 손잡이를 꽉 움켜잡았다.
다이아몬드보다 3배 이상 강하고,
그래핀이나 탄소나노튜브보다 2배 이상 높은 인장력.
DNA 나서 구조처럼 유연성까지 갖춘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질긴 물질인 용심줄.
바로 그 용심줄로 만든 검수 대원들의 갑옷은 화약을 이용한 총알 따위는 튕겨 냈다.
그런 갑옷을 입고 있는 대원이 광선검을 꺼내 들더니 활성화하더니 무섭게 다시 외쳤다.
"하늘의 뜻을 거역하면 죽음뿐이다!"
"그 뜻 또한 내가 정한 것인데 누가 감히 나의 앞길을 막는다는 말이냐?"
순간.
검수 대원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예를 올렸다.
"""돌아오신 폐하를 뵙습니다."""
화약을 이용한 총 따위는 무력화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들이라는 검수 대원들의 경건한 모습에 정훈이와 이반은 각기 다른 표정을 지었다.
'뭐야? 중이병의 재현이잖아'라고 생각하는 정훈이.
'와, 멋진데'라고 감탄하는 이반.
진성이는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걸음을 멈추며 입을 열었다.
"고생이 많구나."
"아닙니다. 폐하.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래, 고맙다. 안내를 부탁하마."
"네, 폐하."
세상을 떠나긴 전 연은 고민이 많았다.
야코프의 말대로 같은 시공간에서 다시 태어났을 때 대비하기 위해 만든 여의도 성지.
화강암으로 지어진 외부는 그렇다 쳐도, 최첨단 장비가 가득한 내부는 노후로 인해 망가질 수밖에 없기에 관리가 필수였다.
그래서 준비한 검수대.
연이 만든 조선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었다.
다시 찾아온 여의도 성지 안은 떠날 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진성이는 안까지 따라온 검수 대원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관리를 잘했구나."
"폐하의 명을 받들었을 따름입니다."
"고맙구나. 그런데 누가 대장이지?"
"죄송합니다. 폐하. 지금 오는 중입니다."
"그래? 우리는 여기서 할 일이 있으니 쉬도록 해라."
"명을 받듭니다."
대원이 떠난 후.
진성이와 이반이 시설을 점검하고, 정훈이가 내부를 구경하고 있을 때.
세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조선의 황제와 태자 그리고 검수대 수장이었다.
진성이는 세 사람을 번갈아 보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황제를 보고 먼저 입을 열었다.
"그대가 조선의 황제요?"
"그렇습니다. 혹시···?"
"맞소. 내가 한때 그대의 선조였소."
진성이의 말에 황제는 엎드려 예를 올렸다.
"제35대 이목(穆), 선황을 뵙습니다."
그러자 태자와 검수대 수장도 따라 예를 올렸다.
"태자 이현(泫), 선황을 뵙습니다."
"제17대 검수대 대장 황진봉, 조사(祖師)를 뵙습니다."
검수를 기리기 위해 검수대를 세운 이가 연이었기에 검수대 수장은 진성이를 조사라 불렀다.
"반갑소. 일어들 나시오."
"말씀 낮추십시오. 폐하."
"그건 아니 될 말이오. 과거에 연이 있다고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이니."
"폐하!"
다시 고개를 숙이는 황제를 진성이가 일으켜 세웠다.
"고맙소. 이리 멋진 세상을 보여준 그대에게 부탁이 있어서 왔소."
"무엇입니까? 말씀만 하십시오."
존경심이 가득 담긴 황제의 눈길이 부담스러웠는지 진성이는 고개를 돌려 이반에게 물었다.
"뭐가 필요하지?"
"아직 점검이 덜 끝났어."
"그래?"
"응."
그 순간 태자가 끼어들었다.
"폐하, 소손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그래요?"
"네, 폐하. 소손 평생 이날만을 기다렸습니다."
"흠···, 아직 점검이 끝나지 않았으니. 기다리면서 들어 봅시다."
"고맙습니다. 폐하."
눈물까지 글썽거리는 태자의 모습에 진성이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지 않아도 과거 자신의 모습과 닮은 태자에게 관심이 있었다.
그런 태자가 궁금한 것이 있다고 하자 진성이는 말해 주고 싶었다.
어차피 이번에 떠나면 다시 볼 수 없으니.
점검하느라 바쁜 이반을 빼고 탁자에 앉은 다섯 사람.
묻고 답하기 바빴다.
"그럼 모두 저분이 만든 시공간 이동 장치 때문에 벌어진 일이란 말씀입니까?"
"그렇소. 나와 여기 문식, 아니 제로니모는 얼떨결에 휩쓸려 왔던 거요."
"아···."
계속된 태자의 질문에 역사를 잘 모르는 진성이 대신 정훈이가 대신 응대했다.
태자와 황제 그리고 검수대 수장은 끝내 눈물을 글썽거렸다.
"참말이옵니까? 우리 조선이 망하다니."
"같은 동족끼리 총을 겨누다니요. 이런···."
"역시 우리 민족은 저력이 있었군요."
황제와 태자 그리고 검수대 수장은 그동안 궁금했던 모든 일이 왜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왜놈과 청나라 놈들을 그냥 두었던 이유는 복수는 복수를 낳기 때문이오."
"하지만, 우리 조선을 처참하게 짓밟은 놈들 아닙니까?"
"더는 우리 조선에 대항하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한 놈들인데 굳이 모두 죽일 필요까진 없지 않소. 더구나 이 세상일도 아니잖소?"
"아···! 그러셨군요."
황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지만, 태자는 아니었다.
"폐하께서는 참으로 너그러우십니다. 저는 세상이 절 비난하더라도 다 죽여버렸을 겁니다."
진성이는 눈물투성이인 태자의 손을 꼭 움켜잡았다.
너무나 닮았기에 친자식처럼 보였던 거다.
"현아, 너는 한때 나를 무척이나 많이 닮았구나."
"그런 말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그냥 듣거라."
"말씀하십시오. 제가 가장 존경하는 폐하의 말씀이라면 뭐든 따르겠습니다."
진성이는 또래인 태자의 눈물을 닦아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 하나로 인해 세상이 이렇게 변했듯이 권력을 가진 한 사람으로 인해 세상이 멸망할 수도 있다. 그것만 잊지 말 거라."
"명심하겠습니다. 폐하!"
끝내 태자는 진성이를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다.
너무나 슬펐던 거다.
다른 세상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아직 어린 태자에게는 충격이 컸던 거였다.
왜 그러지 않겠는가.
대전쟁시대 이후 조선의 역사는 평화롭기만 했다.
그와 달리, 다른 세상이라고 하지만 정반대로 흘러간 조선의 역사는 참혹하기 그지없었으니.
"소손, 소손, 꼭 명심하겠습니다."
진성이는 슬피 우는 태자의 등을 툭툭 두르려 준 후 고개를 돌렸다.
지금까지 지켜만 보고 있던 이반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우주로 나가야 할 것 같아."
"왜?"
"장비를 점검하다 떠오르는 게 있었는데, 잘못하면 이 지구가 사라질 수도 있거든."
""뭐라고?!""
이반이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진성이와 정훈이의 두 눈이 동시에 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