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266화 (266/275)

266. 떠날 준비(1)

그날 이후 연은 윤과 함께 자주 산책에 나섰다.

후세에 괴물 같은 놈이 나타나도 자신이 이룩한 조선을 망가트릴 수 없게 체제(體制, System)를 갖춰 놓았다.

그래서 걱정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모를 일이다.

"윤아, 내가 왜 화성에 가고 싶어 하는지 알고 싶지 않으냐?"

"소손도 가고 싶습니다."

"그랬구나. 그랬어."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연이 화성을 최종 목표로 삼은 게 아니었다.

단지 꿈을 크게 가졌을 뿐이다.

꿈이 클수록 이루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할 테니까.

하지만 문식이에게는 그렇게 말할 수가 없었다.

함께 지구 온난화로 인한 재앙을 겪었기에 인류의 멸종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으니.

연은 걸음을 멈추고 근처에 있는 편상(平牀)에 앉았다.

넓은 연못 한쪽, 수양버들 아래 자리 잡은 편상에는 조그만 자개상이 놓여 있었고, 자개상 위에는 이슬이 맺혀 시원해 보이는 옥으로 만든 물병과 잔이 놓여 있었다.

"여기 좀 앉거라."

"네, 할아버지."

윤은 자리에 앉자마자 물병을 들고 시원한 물을 잔에 따랐다.

그 물을 단숨에 들이켠 연은 정신이 맑아져 옴을 느꼈다.

"참으로 시원하구나."

"더위가 싹 가시는 것 같습니다."

청량한 새 울음소리와 함께 상쾌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윤은 손수건을 꺼내 연의 얼굴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그런 윤을 보고 연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윤아, 너도 알다시피 이제 전기 걱정이 없는 세상이 됐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할아버지, 소손 궁금한 게 있습니다."

"그래 말해 보거라."

"아무리 생산하기 쉬운 전기라 하지만, 너무 싸게 파는 것이 아닌지요? 그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태자에 이어 황실 위원이 된 윤은 조선전력공사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살펴봤다.

알아낸 사실은 뜻밖이었다.

원자재 수급과 관리 비용을 시중에 비교해 보면 심한 괴리가 느껴질 정도로 계산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물어봤는데.

"적자라고 생각하는구나. 하지만 진짜 적자인지 따져 봐야 한다."

"그래도 너무 싸게 파는 건 이해되지 않습니다."

연은 쌍식이도 물어본 적이 있었기에 윤이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우방국들 때문에 그러느냐?"

"네, 할아버지. 전에는 우방국들이 너무 낙후하여 그랬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방국들도 잘살고 있지 않습니까?"

연의 명에 따라 아직도 조선전력공사는 조선과 우방국에 싼값으로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

조선이야 당연하지만, 우방국에도 그러는 이유가 윤은 궁금했다.

"전기는 우리 인류가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에너지 자원이다. 쌀과 같은 것이지."

"아···, 그래서···."

"맞다. 덕분에 세상이 평화롭지 않으냐. 난 그거면 됐다고 생각한다."

"단지 그것뿐이옵니까?"

윤은 아버지 순으로부터 할아버지가 하는 일은 단순하지 않다고 들었기에 의문을 표했다.

아직도 아역 일부에서는 문명을 받아들이길 거부하고 단독으로 살거나 부족 간에 치열한 전쟁을 하는 곳들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조선의 우방국이 되어 문명을 꽃피우고 있었다.

조선전력공사에서 쌀 또는 밀 그리고 전기를 싸게 공급해 준 덕분이다.

"우방국들이 백성들을 착취하지 않고도 왕실과 정부 살림을 꾸려 나갈 수 있는 이유가 먹을 것과 전기가 부족하지 않기 때문이지. 그런데 그 가격을 올리면 어찌 되겠느냐?"

"혼란이 올 겁니다."

"그 혼란은 우리 조선의 부담이 된다."

"왜 그렇습니까?"

"혼자서는 세상을 살 수 없기에 그런 것이다. 생각해 보렴. 우리만 잘 먹고 잘살면 어찌 되는지.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사람은 배가 불러야 과격해지지 않는단다. 또한 여유가 있어야 창조적인 생각을 떠올릴 수 있지."

"그거야 은동리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세상의 모든 기술은 은동리에서부터 퍼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연산기'라 부르는 컴퓨터가 보급된 후 '누리넷'이라는 인터넷까지 연결되자 세상의 정보는 홍수가 난 것처럼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로 인해 조선 전역은 물론 우방국들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윤은 그걸 걱정하는 것 같았다.

"못난 놈이 제 먹을 것만 여실(如實)뿐이다. 함께 먹고 살 생각은 안 하는 거지. 아니 못났기에 그럴 여유가 없는 것이다."

연은 고개만 숙이고 있는 윤의 안색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나는 네가 그러지 않길 바란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은 발전은커녕 퇴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탁하마. 되도록 백성들의 삶에 관여하지 말거라. 그들에게는 먹을 것과 전기만 싸게 공급해주면 알아서들 잘 살 테니. 하지만 제 욕심만 차리는 놈들은 조심하거라. 그놈들이야말로 세상을 망가트리는 주범이니."

"소손 명심하겠습니다."

연은 21세기 초에 유행했던 '나만 아니면 돼'라는 말을 싫어했다.

모두가 그런 말을 따라 하면서 생겨난 말이 '각자도생'이기 때문이다.

"고맙구나. 하지만 네가 이해하지 못하고 내 뜻에 따른다면 그것 또한 문제구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연은 수많은 사람들을 겪어 봤다.

이제는 표정만 보고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선황이신 효종께서 나에게 자리를 빨리 넘겨주고, 나 또한 너희 아버지에게 넘겨준 이유를 너는 아느냐?"

"노욕을 경계하기 위해서라 들었습니다."

"맞다. 늙었다고 욕심이 없는 게 아니지. 몸도 마음도 생각도 느리지만, 욕심만큼은 늙더라도 줄어들지 않는단다. 그걸 경계하기 위해 선황께서 용단을 내리셨고, 나도 따라 한 것이다."

"그랬습니까?"

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젊음은 사고 치기 딱 좋은 시기다. 그래서 황실 위원회를 만들고 젊음과 늙음을 섞은 것이지."

연은 연못에 뛰노는 비단잉어들을 보며 과거를 회상하듯 눈을 흐렸다.

참으로 긴 세월이었다.

미래의 지식을 가지고 다시 태어난 후.

천방지축 뛰어다니며 자신이 설계한 테크트리대로 일을 진행해 나가며 꿈을 이루고자 노력했다.

꾸었던 꿈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최종 목표인 화성까지 개척하는 것은 포기했다.

노욕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수도 없이 안전을 외쳐 놓고 무리하게 밀어붙이다 사고라도 나면,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것이 모두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연은 자신의 최종 꿈을 접었다.

"윤아, 한때 우리 조선의 영토인 예맥 대륙을 무력으로 정복한 이가 있었다."

"보르지긴 테무친을 말하는 것입니까?"

"맞다. 그가 세상을 정복하려고 했던 이유는 자기들만 잘 먹고 잘살려 했던 거다. 그런데 어찌 되었느냐?"

"흔적조차 남지 않고, 서역에서는 악마라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 조선은 그렇게 되어서는 아니 된다."

"아···!"

문식이와 공식이가 살았던 세상에서는 정복자는 칭송받았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되려 세상을 혼란에 빠트린 악마로 취급받았다.

연이 이끈 조선은 정복을 위해 타국을 침략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승자가 되었기에 그런 조선에 맞춰 역사가 기록되고 있었다.

"너 할머니가 그린 '해와 바람과 나그네'를 보았느냐?"

"아···!"

윤이 고개를 끄덕이자 연은 방끗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강한 바람은 누구나 두려움을 느끼지만, 따듯한 햇살은 사람을 안정되게 하지."

"권력을 남용하여 강압적으로 통치하면 두려워 숨지만, 지금처럼 쌀과 전기를 싸게 판다면 호의적이란 말씀입니까?"

"그렇지. 그러니 잊지 말거라. 우리 조선은 거대한 영토와 넘치는 자원이 있다. 그걸 다 쓴다 해도 저 광활한 우주는 자원의 보고이니 걱정하지 말거라."

연이 원했던 이상으로 조선의 넓은 영토를 확보했고, 그 안에는 거의 모든 유전지대가 포함되어 있다.

거기다 핵융합에 필요한 삼중수소는 바다와 달에 널려 있기에 아낄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런 대도 윤은 너무 싸게 전기를 파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연이 이렇게 설명하고 있는 거였다.

"윤아, 사람은 여유가 있어야 주변을 둘러볼 수 있단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 조선은 세상 모든 이들을 다 돌볼 수 있을 만큼 힘이 있다. 그러니 베풀 거라. 앞으로는 베풀어야만 위상이 설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다."

"참말입니까?"

"우리가 조선군을 해체하고 난 후 어찌 되었느냐?"

"군대를 보유하고 있던 나라들도 전부 군대를 폐지했습니다."

연은 지원자가 없어 갈수록 줄어만 가는 조선군을 아예 폐지하라 했다.

더는 유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조선군을 운영하면서 산업일꾼들을 많이 양성했다.

그런데 세상이 풍요로워지자 힘든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만 갔다.

전문 교육기관인 대학도 많이 생겼기에 이제는 조선군에 입대해 일을 배우는 것보다 대학으로 바로 진학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폐지했는데, 군대를 보유하고 있던 우방국들도 따라 하는 게 아닌가.

뭐든 조선이 하는 일이 옳다고 봤기에 그런 거지만, 그로 인해 전쟁이 일어날 수 없는 세상으로 변해버렸다.

이제 지구상에 남아있는 무력 집단은 오직 조선전력공사 경비대뿐이다.

그런 상황이기에 연이 베풀라고 말한 거였다.

더는 무력으로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기에 연은 인심을 얻는 거야말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이 또 있다. 더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겠지만, 우주를 개척하다 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러니 경비대를 지원하고 훈련하는 것을 멈추지 말거라."

"그건 염려 마십시오. 경비대에 관련된 지원은 지금도 원하는 대로 하고 있습니다."

"장하구나. 앞으로도 그리 해야 한다."

"네, 할아버지."

선선한 바람이 휘몰아치자 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걸으며 말했다.

"연아, 사람이란 우매(愚昧)하다는 것을 명심해라. 그들이 변심하는 것은 우매하기에 당연한 것이니 신경 쓰지 말고. 네가 할 도리만 하면 된다."

"그런데 놀고먹는 백성들이 너무 많습니다."

"많아 봐야 1할을 넘지 못한다. 그러니 그것도 신경 쓰지 말거라. 때가 되면 알아서 일할 것이니."

"1할이면 많은 건 아닙니까? 우리 조선의 인구가 벌써 3억 명 가까이 됩니다. 그중 7할이 일할 나이인데 아무것도 안 하면서 황실의 지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백성들이 2천만 명이 넘어섰는데 걱정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연은 가는 걸음을 멈추고 윤을 바라보았다.

멈칫 멈춰서는 윤.

그런 윤을 연은 인자한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지위를 이용한 강압적인 대화는 안 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알기에 최대한 온화한 상태로 입을 열었다.

"윤아, 세상은 온전한 3할만 있으면 망하지 않고, 넘어서면 발전할 수 있단다. 그런데 우리 조선은 9할이나 되지 않느냐? 아니, 7할 중 9할이니 6할로 봐도 높은 비율이다."

"그러긴 하지만···."

"무엇을 걱정하는 것이냐? 그것보다 일할 목적을 만들어 주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느냐?"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라는 말씀이십니까?"

"맞다. 은동리를 가봐서 알겠지만, 참으로 신기한 기물들이 넘쳐 나는 곳이다. 그런데도 세상에 공개하지 않는 기물들이 더 많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아···!"

윤은 사촌들이 좋아하는 은동리를 가끔 가보았다.

신기한 것들이 많았지만, 이해되지 않는 것도 있었다.

'언니, 이 좋은 것들을 팔면 날게 돋친 듯이 팔려나갈 건데 왜 팔지 않는 겁니까?'

'할아버지께서 명 하신 것이니 나중에 직접 물어보렴.'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이제야 왜 그랬는지 깨달았다.

"그래도 5할 아래로 떨어지면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 일하고 누군 놀고 형평성에 어긋납니다."

"그래, 옳은 생각이다. 하지만 그전에는 관여하지 말거라. 어떤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그들의 선택이니."

"네, 할아버지. 욕망을 자극하는 방법을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연은 뭔가를 깊이 생각하는 윤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연이 만든 체제 속에서 조선 정부는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황실의 눈치를 봤지만, 황실에서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간섭도 없자, 선거에 의해 당선된 이들이 독자적으로 자신의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 결과 지역 간 격차가 커지고 있지만, 평균을 따져 보면 전체가 올라가고 있었다.

모두 잘하려고 했지만, 게 중에는 무리한 행보로 실패한 정책들도 있기 때문이다.

"윤아, 이제 내가 전해 주고 싶은 이야기는 다 한 것 같구나. 그래서 마지막으로 물어보겠다."

"무엇이옵니까?"

"만약 황실 위원 중 비리를 저지르는 이가 있다면 어찌할 거냐?"

연의 물음에 윤은 걸음을 멈추고 주먹을 꽉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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