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 핵융합과 여의도
야코프가 개발한 소형원자로 발전기가 세상 곳곳에 공급되면서 모든 것이 변해가고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사람들의 생활 습관이었다.
그동안 가동 중이던 석탄, 석유, 가스 발전기가 소형원자로 발전기로 대치되었지만, 조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소형원자로 발전기가 없던 시절에도 전기가 부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식 발전기를 사용하던 우방국들은 다른 세상이라고 말할 정도로 완전히 달라졌다.
조선에선 아직도 태양광과 풍력을 이용한 발전기를 나름대로 개선하여 도시와 멀리 떨어진 농장과 목장에서 사용하고 있다.
거기에 인산철 배터리가 아닌 전고체 배터리가 공급되자 어둡고 추운 밤이라도 더는 전기를 아낄 필요가 없었다.
해가 뜨지 않아도 바람이 불지 않아도 전고체 배터리에 저장해 놓은 풍부한 전기를 사용할 수 있으니 그런 거였다.
하지만 우방국들은 그렇지 못했다.
조선에서 싼 가격에 공급해주는 것은 오로지 소형원자로 발전기를 이용한 전기뿐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여기에 숟가락을 얻은 나라가 있었다.
바로 아파치 왕국이었다.
조선이 우방국에 소형원자로 발전소를 세우고 전력을 공급하자, 아파치 왕국의 전기 기술자들이 대거 진출하기 시작했다.
아파치 왕국의 기술자들은 자국에서 생산해 가져온 전기선으로 우방국들의 도시를 꾸미기 시작했다.
아파치 왕국의 수도인 서울에 거대한 수력 발전소를 조선이 지어주면서 전수한 전기 관련 기술을 습득했기에 가능한 거였다.
그로 인해 조선의 우방국들의 밤은 화려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더는 조용한 밤을 기대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은동리에서는 오래전부터 사용하고 있던 무선전화기가 세상에 공개되자.
"알았어! 알았다니까. 지금 가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어머, 김 여사님. 오랜만이어요. 그런데 어쩐 일이세요?"
"조 사장, 낼 축구 경기 있는 거 알지. 내가 데리러 갈 테니 기다리고 있어."
"어머니, 소자 동무들하고 야영 준비 중입니다. 네, 네. 이곳은 위험하지 않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젠 길거리는 물론 달리는 차와 도시 외곽에 있는 야영장에서도 '손전화'를 이용한 통화가 가능했다.
통신 전문가인 연이 나섰기에 그리된 거였다.
연은 21세기 초 대한민국에서 처음 상용화된 와이브로(WiBro) CDMA 기반의 무선 통신부터 공개했다.
공식이가 근무했던 전자통신연구소에서 개발한 기술이기에 통신규약(Protocol)부터 프로그램 코드까지 모두 잘 알고 있었기에 시행착오 따위는 없었다.
조선전력공사 '무선통신규약1'로 명명된 이 기술은 기지국과 통화 가능한 최대 거리가 3km나 되고,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로 주행 중에도 통화는 물론 데이터 전송까지 사용할 수 있었다.
연이 원래 규약에 추가로 집어넣은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던 거다.
그런데 이 통신기술을 이용한 장비가 우방국에도 보급되자 전기로 화려하게 변해버린 우방국의 밤은 조선의 밤처럼 활기차졌다.
"그건 조선에서 수입한 손전화기 아닌가요?"
"어, 알아보시네요. 어제 막 넘어온 걸 웃돈을 얹어주고 산 겁니다."
"사진으로만 봤는데 정말 이쁘네요. 제가 한 번 봐도 될까요?"
"그럽시다. 하지만 조심하세요. 차 한 대 값입니다."
"예?! 이게 그렇게나 비쌉니까? 조선에서는 아이들도 가지고 다닌다고 하던데."
"그거야 조선에서는 싸게 팔기에 그런 것이고요. 우리 왕국은 그러지 못하잖아요."
조선전력공사는 우방국에 발전소를 짓고 전력을 공급하고 있지만, 그 대가로 우방국 정부에서 받는 돈은 발전소를 유지할 정도였다.
가난한 우방국들의 재정에 보탬이 되라고 전력을 싼값에 공급해주고 있는 거였다.
이처럼 통신 시설과 장비 또한 저렴하게 공급해주고 있었다.
가진 것 없는 백성들을 수탈(收奪)하지 말고, 가진 자들에게 비싸게 팔아 이익을 많이 남기라는 의미였다.
처음에는 반대가 심했다.
조선의 기술이 유출될지도 모른다고 하는 이까지 있었다.
하지만 연의 생각은 달랐다.
'쌍식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제가 뭘 알겠습니까? 폐하께서 하시는 일은 항상 옳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네가 사장이지 않으냐?'
'저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매출이 늘어나고 있으니까요. 모르는 사람들은 조선의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걸 폐하께서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맞다. 반도체를 제조할 수 있는 곳은 조선전력공사뿐이니 복제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겠지.'
'그걸 아는 사람은 은동리에 있는 연구원들과 공돌이들뿐이라 어쩔 수 없죠.'
연이 전기에 이어 통신 장비까지 우방국에 공개한 이유는 격차가 너무 크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은동리에서는 지상 기지국의 끝판왕이라 부르는 5G 통신기술을 사용하고 있었고, 이제는 위성을 이용한 6G 통신기술을 개발 중이다.
이처럼 조선의 통신기술이 4G라는 중간 단계 과정을 거치지 않고 5G에 이어 6G로 넘어간 이유가 있었다.
연이 알고 있는 기술이 그것 뿐이기에 어쩔 수 없었던 거다.
연은 3.5G라 부르는 와이브로 기술을 학창 시절에 배웠다.
그리고 전자통신연구소에 입사한 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업무를 맡기 시작하면서 5G 기술을 배웠고, 6G 기술 개발에 투입됐다.
그랬기에 기가비트(Gigabit) 속도로 10km 이상 떨어진 곳과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5G 통신기술을 '무선통신규약2'로 명명하고 조선 전역에 보급했다.
6G 기술인 위성을 이용한 '무선통신규약3'이 곧 개발이 완료된다는 보고를 받았기에 그리 한 거다.
이처럼 전기와 통신기술은 은동리의 연구원들이 노력한 덕분에 엄청난 발전을 이루고 있지만, 의학 분야는 아니었다.
연에게 문식이의 소식을 전해 들은 야코프는 한숨을 내쉬었다.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지. 대신 네 덕분에 생화학기술은 발전하고 있잖아."
"그러면 뭐 해. 당장 문식이를 구할 수 없으니."
예맥 대륙 북부를 조선의 영토로 만든 대전쟁시대가 끝난 후로 더는 대규모 병력이 투입된 큰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의료 기술은 발달이 미비했고, 의료 진단 기술도 발전이 느렸다.
아무리 장비가 좋아도 실험을 통한 결괏값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첨단 장비를 이용한 생화학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전자 현미경이 개발되고 나노(Nano) 단위까지 볼 수 있게 되자, 반도체는 물론 생화학기술까지 미친 듯이 높아져 갔다.
이제는 생화학기술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DNA 분석에 들어갔고, 일부 염기서열은 해독을 완료했다.
하지만 간에 이상이 생긴 문식이를 치료할 길은 막막했다.
"그래서 내가 이곳으로 아예 자리를 옮겼잖아. 뭐부터 할까?"
"이것 좀 봐봐."
연은 야코프가 넘겨준 자료를 살피더니 눈이 점점 더 커졌다.
"이게 사실이야?"
"응. 몇 번이나 실험을 끝냈고, 이젠 본격적으로 개발할 계획이야. 하지만 문제가 있어서 너를 부른 거야."
"흠···, 나도 자신 없는데."
"이런! 네가 못하겠다면 누가 할 수 있을까?"
"강연회를 열어야겠군."
"그거라도 준비해줘. 나도 오래가지 못할 것 같아."
문식이와 나이가 비슷한 야코프 또한 지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야코프는 포기하지 않았다.
70세가 넘는 나이에도 야코프는 매일 늦게까지 연구에 매달렸다.
이제 온통 흰머리투성인 양순이가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미래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생각한 이론이 맞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기에 그런 거였다.
"그런데 완성 했다며?"
"응, 지금 가동 중이야. 가볼래?"
"당연하지."
연은 야코프가 완성했다는 핵융합 발전기가 보고 싶었기에 야코프를 따라 이동했다.
그곳은 옹진반도 서쪽 끝에 있는 현동이었다.
전에는 화력발전소가 즐비했던 곳이지만, 이제는 소형원자로 발전기로 대치되어서 그런지 가는 길은 소들만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야코프는 현동 해안가에 있는 핵융합 발전소로 가면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이걸 가동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소형원자로 하나는 필요하단 말이군."
"그치, 핵융합 발전소를 가동하려면 엄청난 전력이 필요하니까."
"그래도 1을 투입해서 10 이상 얻어 낼 수 있으니 그거면 된 거 아니야? 핵폐기물도 신경 쓸 필요도 없고."
"그것도 당분간이야."
방사능 위험이 없다는 소형원자로도 사용이 끝나면 핵폐기물 때문에 그 상태 그대로 한곳에 모아놓고 방치해야 한다.
거기다 소형 모듈형 원자로가 일반 원자로보다 더 많은 핵폐기물을 남기기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물론 기술이 더 발전하면 소형원자로에서 나온 핵폐기물을 순환해서 사용할 수 있지만, 아직은 그 기술이 개발되지 않았다.
그래서 연은 소형원자로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을 사람이 살지 않은 예맥 북로 북쪽에 보관할 시설을 만들라고 했다.
핵폐기물 순환기를 개발하지 못해도 어차피 세월이 지나면 반감기로 인해 언젠가는 위험이 사라질 테니.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핵융합 발전소가 더 많이 건설되면 더는 소형원자로를 쓸 필요가 전혀 없다.
따라서 핵폐기물로 인한 문제는 더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그건 바로 소형화였다.
"얼마까지 작게 만들 수 있어?"
"지금 쓰는 방식은 토카막(Tokamak)이지만, 따로 자기장 거울(Magnetic Mirror) 방식도 개발하고 있으니 기다려봐. 트럭에도 탑재 가능할 정도로 작을 테니."
"참말이야?"
"그럼. 자기장 거울 방식도 개발하고 있는 것 중 하나일 뿐이야."
"한두 가지만 파고든 게 아니었어?"
야코프는 다양한 방식으로 핵융합 발전기를 개발하고 있었다.
전생에도 소형원자로를 개발한 후에 핵융합 발전기 개발에 참여했으니 그에 따른 거지만, 무한할 정도의 지원을 받을 수 있자 욕심을 부린 거였다.
그래서 에너지 효율 때문에 장난감 취급받던 '관성 정전 가둠' 방식도 따로 연구하고 있었다.
"일단 알고 있는 방식은 다 만들어봐야지. 그래야 뭐가 진짜 좋은지 알 수 있잖아. 아무튼 고마워."
"뭐가?"
"이렇게 연구할 수 있게 해줘서."
"무슨 소리야. 덕분에 레이저 무기도 상용화시킬 수 있는데. 내가 더 고맙지."
야코프가 개발하고 있는 핵융합 방식 중 연도 알고 있는 방법이 있었다.
그건 바로 '레이저 빔' 방식이었다.
21세기 미국과 중국에서 추진하고 있는 핵융합 방식 중 하나인 강력한 레이저 빔을 이용한 핵융합 방식은 응용에 따라 엄청난 무기가 될 수도 있기에 연은 관심을 두고 있었다.
핵융합 발전소가 정상 가동 중임을 확인한 연은 진지하게 야코프에게 물었다.
"언제 완성돼?
"늦어도 2년 안에 떠날 수 있을 거야. 그래서 말인데 문식이에게 이곳에 와서 기다리라고 해줘."
"알았어. 그러지 않아도 그러려고 했어."
미래로 가자는 말에 거부했던 문식이가 생각을 바꿨지만, 야코프는 그 일을 거론하지 않았다.
술을 좋아했던 덕에 간암으로 고생하고 있는 문식이를 안쓰러워했을 뿐.
* * *
조선 제국력 38년(1696).
한양을 관통해 흐르는 경강 서쪽.
자주 물에 잠긴다고 해서 '너나 가져라'라는 뜻으로 '너의 섬'이라 불렀다는 설이 있는 모래섬은 정식으로 '여의도(如意島)라 명명됐다.
여의도(汝矣島)가 아닌 여의도(如意島)로 이름 지은 이유는 모든 일이 뜻대로 잘 되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사실은 이무기가 품으면 용이 된다는 여의보주(如意寶珠)에서 따온 거였다.
연은 야코프와 상의한 끝에 모래섬으로 남아있던 여의도를 개발하고 그곳에 거대한 핵융합 발전소를 지었다.
또한 미래로 떠나기 위한 시설까지 그 옆에 함께 지었다.
계획보다 2년이나 더 늦었지만, 아직 문식이는 살아있었다.
전처럼 좋아했던 술은 마실 수 없지만, 자신이 만든 미래를 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그의 생명줄을 이어놓고 있었다.
"고맙다. 나를 위해 이렇게 준비해 줘서."
"고맙긴. 먼저 가 있어. 잊지 말고. 잊어버리면 이곳으로 올 수도 없으니. 잘 기억해야 해."
"알았어. 그게 뭐가 어렵다고 잊겠냐. 걱정하지 말고 기다릴 테니 천천히 와."
연은 훗날을 생각해서 여의도 전체를 성역으로 지정했다.
여의도에는 한양 전체가 쓰고도 남을 전력을 생산하는 핵융합 발전소가 있기에 그런 거지만, 훗날 문식이와 야코프를 다시 만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디서 어떻게 다시 태어날지 모르지만, 잊지 않고 이곳으로 찾아오면 너를 반길 거야."
"고맙다."
"고맙긴."
연은 불편한 몸으로 바퀴 의자에 앉아있는 문식이를 꼭 안아주었다.
전생과 현생에 거쳐 단 하나뿐인 친구인 문식이가 떠나는 길이라고 하지만,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슬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흐르는 눈물은 감출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