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260화 (260/275)

260. 황실 위원회(2)

연은 황실 위원회가 열린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바로 참석할 수 없으니 연기해 달라고 통보했다.

급히 처리해야 할 상황이 아니면 100일 정도는 미룰 수 있기에 그리 한 거였다.

순에게 황제의 자리를 선위한 연은 은동리로 거처를 옮겼다.

자신에게 의지하지 않고 순이 자립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거지만, 야코프의 부탁도 있었기 때문이다.

천재 핵물리학자인 야코프라도 통신과 반도체 분야는 연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연은 오랜만에 다시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연이 은동리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연은 수시로 조선의 우방국들을 방문했다.

가족끼리도 빈부 격차가 심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에 연은 상호보호조약을 체결한 우방국들을 돌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이 사는 모습도 보고 부족한 것이 있다면 지원할 방법을 찾아 도움도 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지금 연이 있는 곳은 조선의 우방국이 아니었다.

조선에서 전혀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아프리카 한 곳이었다.

우방국 말고는 타국의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은 조선인데 연이 이곳까지 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이제는 흰머리가 무성한 쌍식이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연에게 물었다.

"폐하, 굳이 이곳까지 올 필요가 있었습니까?"

"이곳도 사람 사는 곳 아니냐?"

"그래도 너무 위험한 곳입니다."

쌍식이는 활주로조차 없어 군함을 타고 와야 했던 이곳 다호메이(Dahomey) 왕국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몇 번이나 그냥 쳐버리자고 연에게 요청했지만, 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람을 구하는 게 먼저다'고 그 이유를 말할 뿐이었다.

아무튼 연은 쌍식이와 함께 최신 군함과 병력을 가득 태운 보급함을 이끌고 다호메이 왕국에 도착했다.

연의 안전에 위험을 끼칠 수도 있기에 철저히 준비한 거였다.

아프리카 대륙 서쪽.

토고와 나이지리아 사이에 있는 다호메이 왕국은 그 지역에서는 제국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인지 외교원의 노력에도 다호메이 왕국과 협상은 순조롭지 않았다.

또한 다호메이 왕국은 아프리카 최대 노예 시장이 있는 곳이기에 홍익을 추구하는 조선과는 상극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연이 이곳에 온 이유는 담판을 짓기 위함이었다.

"아무도 마중 나오지 않았군."

"그러게 말입니다. 그냥 전쟁을 선포하심이 어떻겠습니까?"

"흠···."

연은 침음을 흘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6개월 전.

아프리카 북부 지역을 여행하던 조선의 젊은이들이 실종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침 연은 브리튼 왕국에 있었기에 이 소식을 듣고 직접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

그런데 나쁜 소식이 들어왔다.

조선의 젊은이들이 납치된 후 노예로 팔려 갔다는 말이었다.

조서원의 추적 결과 젊은이들이 팔려 간 곳은 다호메이 왕국이란 사실을 알아냈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다.

아직도 아프리카에서는 노예 제도가 활발했기에 노예들이 탈출했다는 소식이 간간이 들려오고 있었지만, 조선인을 노예를 샀다는 말은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간덩이가 부은 놈들입니다. 감히 우리 조선의 아이들을 노예로 부리다니 제거하심이 답일 겁니다."

"일단 상황을 파악한 후 결정하자. 아이들을 구하는 게 먼저니."

"알겠습니다. 폐하."

생각에 잠긴 연이 눈을 떴을 때 바로 앞에 키는 작지만, 그 누구보다도 용맹한 기수가 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맥 기병대 사령관인 기수는 연을 따라 이곳까지 왔다.

혹시라도 모를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폐하, 모두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정찰을 보낼까요?"

"흠···, 일단 내일까지 기다려보자."

"알겠습니다. 폐하. 그럼 저는 가서 주변을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조심하거라."

"네, 폐하."

다호메이 왕국의 수도인 포르토노보는 '노예 해안(Slave Coast)'이라 부르는 이곳으로부터 북동쪽으로 24km 떨어진 곳에 있다.

이렇게나 가까운 곳에 해안 가까이 군함이 정박하고, 대원들이 상륙했는데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현지 원주민들만 놀란 사슴 눈으로 대원들을 조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날 저녁 다호메이 왕국과 협상하러 갔던 외교원의 관리들이 돌아왔다.

"폐하, 다행히 4명 모두 건강해 보였습니다."

"그래?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구나."

"그런데 협상이 순조롭지 않을 것 같습니다."

관리의 말에 쌍식이가 뿌루퉁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뒈지려고 환장을 했군. 폐하, 그냥 작전에 들어가시죠?"

"잠시만,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더냐?"

"우리 조선이 쓰고 있는 총을 4천 정이나 요구했습니다."

"한 명당 1천 정을 달라는 소리군."

또다시 쌍식이가 나섰다.

"주실 겁니까?"

"그건 안 될 말이다. 놈들이 한 짓이 있는데 절대 줄 수 없다. 그래, 우리 아이들이 있는 곳은 확인했더냐?"

"네, 폐하, 만나자마자 위치 발신기부터 몰래 붙여 놓았습니다."

"잘했다. 쌍식아 너는 가서 기수를 불러오거라."

"네, 폐하."

연은 기수가 오자 바로 회의에 들어갔다.

* * *

현지 시각 새벽 4시.

코토누(Cotonou) 앞바다에 떠 있던 조선의 최신형 군함에서 버스보다 약간 작은 물체 두 대가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기수를 선두로 예맥 기병대가 말을 타고 포르토노보로 진격했다.

군함과 함께 온 보급함에 상륙정을 가뜩 싣고 왔지만, 상륙정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다호메이 왕국의 수도인 포르토노보까지 가는 길은 수렁과 벌투성이라 이용할 수 없었다.

연은 다호메이 왕국으로 출발하기 전에 정보를 얻고자 문식이에게 연락했다.

하지만 문식이도 다호메이 왕국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따로 알아보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다호메이 왕국은 문명국가였다.

수도인 포르토노보는 유럽처럼 도심이 잘 구성되어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왕국을 보호하려고 만든 성벽의 길이가 수도 주변 15km를 포함하여 16,000km나 된다는 사실이다.

우주에서도 보인다는 만리장성보다 무려 4배나 더 길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성벽을 쌓으려고 투입된 자재는 피라미드보다 100배나 더 많았다.

기원전 2세기 무렵 그리스 시인 안티파트로스가 말한 7대 불가사의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이 엄청난 성벽은 아직도 그 흔적이 뚜렷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이처럼 아프리카에도 문명을 이루고 있던 나라가 있었다.

그래서였다.

연이 고민하던 이유가.

자신의 말 한마디에 인류의 기원인 아프리카에서 문명을 이루고 살던 이들이 몰살될 수 있으니 참고 또 참았던 거다.

'지금까지 잘해 왔는데 이 일로 망칠 수는 없지.'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조선 젊은이들의 안전이었다.

-여기는 올빼미 1호. 둥지 나와라.

"여기는 둥지. 말하라 올빼미 1호."

-드디어 신호를 감지했다. 작전을 허가해 달라.

잡혀있던 젊은이들의 몸에 달아 놓은 발신기 신호를 포착했다는 말에 무전 교신을 하고 있던 대원이 고개를 돌려 연을 바라보았다.

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작전 허가가 떨어졌다. 선전하기 바란다."

-알았다. 이상.

명령을 내리고 기다리는 동안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조선 젊은이 4명의 생명이 걸린 일이기에 모두 침묵하며 맡은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짧지만 무척이나 길게 느껴진 시간이 지나자 무전 장비에서 수신 신호가 켜졌다.

-여기는 올빼미 1호. 알을 모두 수거했다. 깨진 알은 없다. 올빼미 2호도 무사하다.

"""와···!"""

임시 지휘소에 있던 대원 모두가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수고했다. 즉시 귀환하고 다시 지원에 나서기 바란다."

-알았다. 이상

이번 작전에 나선 올빼미 호는 직승기(Helicopter)였다.

그것도 700kW(약 천 마력)가 넘는 엄청난 출력을 가진 터보샤프트(Turbo Shaft) 엔진을 탑재한 무장 헬기였다.

연은 제트 엔진에 관한 과제를 연구원들에게 내주면서 헬기에 대한 과제도 함께 내주었다.

항공기에 주로 쓰는 터보프롭(Turbo Prop) 엔진과 헬기에서 주로 쓰는 터보샤프트 엔진은 기본 구조가 서로 같기에 그리 한 거다.

또한 대형 항공기에 쓰이는 터보팬 엔진의 전 단계이기에 연구원들도 많이 배정했다.

그 결과 탄생한 헬기가 바로 올빼미 호였다.

* * *

이제 조선의 우방국 중 군을 보유한 나라는 별로 없었다.

조선의 우방국이 된 나라들은 조선을 믿고 군을 폐지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군을 유지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에 그런 거였다.

대신 조선의 우방국들은 경찰력을 강화했다.

우방국들은 자국의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었다.

아파치, 준가르, 다두 왕국같이 자원이 넘치는 우방국들은 걱정하지 않았지만, 그러지 않은 작은 우방국들은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유구 왕국이 조선인 여행객들로 재미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조선인들은 열심히 일한 만큼 휴가도 넉넉하게 받을 수 있기에 여행을 좋아했다.

일도 중요하지만, 휴식도 중요하다는 문화가 펴져 있기에 조선인들은 휴가를 받으면 여행을 떠났다.

처음에는 조선 영토 안에서 여행을 다녔다.

어느 곳이나 관청이 있는 도시라면 안전했기에 그런 거였다.

그런데 더 좋은 곳이 있다는 걸 알아냈다.

성인 교육대를 마친 젊은이들이 배낭(背囊, Backpack) 하나만 짊어지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기행문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납치되어 노예로 팔려 간 젊은이들도 그런 이들 중 하나였다.

아무튼 물가도 저렴한 따듯한 남쪽으로 여행하는 것이 조선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유구, 다두, 지팡구 왕국을 주로 다녔지만, 최근에는 아유타야 왕국이 가장 인기가 높았다.

아유타야 왕국의 나라이 왕은 조선과 수교하면서 개방정책을 펼치며 관광산업을 육성했다.

나라이 왕은 현명한 군주였다.

자국이 가진 것은 자연환경뿐이라는 걸 인지한 나라이 왕은 먼저 자국의 치안부터 안정시켰다.

'치안이 안정되지 않으면 우리 조선인을 귀국에 보낼 수 없소'라는 조선 외교원의 답변이 있었기에 그런 거였다.

또한 연의 적극적인 지원도 한몫했다.

순에게 황제의 자리를 넘긴 연은 우방국들을 돌면서 우방국들이 안정되길 바라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발전소와 상하수도 시설이었다.

이제 연은 더는 조선을 걱정하지 않았다.

전 세계인들을 모두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농지를 곳곳에 확보해 놓았다.

자원 또한 무궁무진할 정도로 넘쳐났다.

백성들의 수준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그랬기에 내부 문제만 없다면 조선은 영원할 거로 보았다.

그래서 외부로 시선을 돌린 거다.

연은 가까운 우방국부터 방문했다.

표면적으로는 조선전력공사가 설치해준 발전소와 시설들을 살피는 거였다.

그곳에 근무하는 직원과 대원들을 격려한다는 이유였지만, 진짜 원했던 것은 우방국들이 사는 모습을 확인하는 거였다.

그런데 연이 생각한 이상으로 우방국들은 발전해 있었다.

모두 전기 때문이었다.

전기가 들어오자 우방국들은 백성들의 삶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기로 인해 밤늦게까지 활발해진 우방국 도시들.

미친 듯이 생산성이 높아졌다.

전기에 이어 수도까지 개설되자 환경 자체가 변해버렸다.

물과 전기는 인류에게 그만큼 중요한 거였다.

물이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고, 황폐해지는 건 시간문제다.

그런데 그 물도 전기가 없다면 대량으로 공급할 수 없으니 전기야말로 인류 문명 발전의 가장 기본임이 틀림없었다.

아무튼 연이 이러는 이유는 모두 훗날을 위한 거였다.

20세기 말, 지구온난화로 인해 대두됐던 탄소배출권은 한마디로 '개소리'였다.

1997년 일본 교토에서 합의된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는 탄소배출권(ET, Emissions Trading) 거래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탄소배출권은 모든 나라가 같은 것이 아니었다.

이미 배출하고 있는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6개의 온실가스에서 줄이는 양만큼 돈을 받고 거래한다는 거였다.

따라서, 처음부터 공장조차 없는 가난한 나라는 앞으로도 영원히 공장을 지을 수 없었다.

공장을 짓고 가동하는 순간 탄소배출 비용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말이 좋아 탄소배출권 협약이지 지들만 앞으로도 잘 먹고 잘살겠다는 것이었다.

연과 문식이는 그런 내용을 알고 있기에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너네만 이렇게 발전하면 나중에 어떡하려고 그래?'

'그래서 돕고 있잖아.'

'우리 말고 다른 나라들 말이야?'

'그냥 두면 문제가 생기겠지?'

'지금도 문제잖아.'

문식이는 예맥 기병대가 주로 하는 일 중 하나가 조선으로 넘어온 난민들을 관리하는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문제가 될 원인을 아예 제거하는 게 좋을 거라고 연에게 말했다.

문식이가 걱정하는 것은 훗날이었다.

그토록 원했던 왕이 된 문식이는 연의 도움으로 자신이 꿈꾸던 이상적인 아파치 왕국을 건설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문식이는 이대로 가다간 후세에 틀림없이 문제가 생길 거라고 본 거였다.

그런데 뜬금없이 아프리카에서 문제가 생겼다.

그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이제는 모른 체할 수 없었다.

* * *

다호메이 왕국의 수도인 포르토노보에 도착한 예맥 기병대는 15km나 되는 성을 포위했다.

"사령관님. 준비는 모두 끝났습니다."

"수고했다."

기수는 들에 차고 있던 황금으로 칠해진 조3 소총을 꺼내 허공을 향해 연사했다.

-탕! 탕! 탕! 탕! 탕!

해가 뜰 무렵이라 무척이나 어두운 포르토노보에서 총성이 울려 퍼지자, 멈춰있던 모든 것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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