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 어려운 자식 농사(1)
내전으로 붕괴하고 있던 스페인의 삼키고 이베리아반도를 차지하려 했던 프랑스.
역병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정신을 못 차린 루이 14세와 귀족들.
참다못한 파리 시민들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버렸다.
그 후, 시민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공산화가 된 프랑스는 연일 시끄러웠다.
프랑스 시민 혁명의 기수였던 자크 쿠로츠가 암살당했기 때문이다.
공석으로 남은 자크의 빈자리.
그 자리를 차지하고자 많은 이들이 나섰다.
그 결과 그러지 않아도 악취가 넘치는 파리 뒷골목은 피가 마를 날이 없었다.
그런데 자크를 따랐던 폴 멜랑숑이 나서자 극심한 혼란 속에 빠진 프랑스가 정리되기 시작했다.
'나! 폴 멜랑숑. 먼저 간 자크 쿠로츠의 뜻을 받들어 자랑스러운 내 조국 프랑스를 위해 나는 모든 것을 바칠 것이오.'
파리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권력을 쥔 폴은 권력투쟁으로 어수선한 공산당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자크 크루츠와 알베르 사르트르가 폭정만 일삼던 왕정을 무너트리고 공산당을 세운 이유가 있소. 그건 바로 우리 모두 잘 먹고 잘살 자는 것이었소. 하지만 몇몇 비열한 놈들에 의해 우리의 선지자였던 자크와 알베르가 암살당했소. 난 놈들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
폴은 자크와 알베르를 죽였다고 의심되는 당원들을 모조리 찾아 숙청했다.
그것도 한날한시에.
프랑스인들은 그날을 '붉은 금요일'이라 불렀다.
붉은 금요일 이후.
폴의 지휘 아래 프랑스는 발전하기 시작했다.
폴은 제일 먼저 시민들의 먹거리부터 챙겼다.
조선을 연구한 결과 제일 중요한 것은 먹거리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그리한 거였다.
하지만 전쟁과 역병으로 망가져 버린 농지와 사라져 버린 가축들을 바로 복원시킬 수는 없었다.
폴은 자신을 따르던 당원들과 합심해서 조선처럼 농업협동조합을 만들고 공동 생산 공동 분배를 추진했다.
처음에는 좋았다.
힘을 합쳐 망가진 농토를 개간하고, 곡식을 뿌리고, 수확까지 차질 없이 거두자 모두 폴을 연호했다.
축제를 열고 춤을 추며 풍년을 즐겼다.
그런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프랑스 시민들은 빵만 먹고 살 수 없었다.
'우리에게 고기를 달라!'
'고기가 없다면 우유라도 달라!'
앉으면 눕고 싶다고.
풍년으로 배가 부른 시민들은 이젠 고기를 찾았다.
하지만 고기를 구할 방법이 없었다.
기근과 역병으로 가축들을 모두 잡아먹어 버렸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폴은 가진 것을 모두 털어 주변국에서 젖소를 대량으로 수입했다.
육류용 소는 키워서 수를 늘려야 했기에 바로 도축할 순 없었다.
하지만 젖소는 바로 우유를 생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것으로 인해 프랑스가 다시 무너질 줄은 몰랐다.
폴의 지도하에 프랑스는 수입한 젖소를 개량하고 육성했다.
그 결과 프랑스에서는 우유가 남아돌았다.
폴은 남아도는 우유를 주변국에 수출하려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프랑스가 공산화되자 겁을 먹은 주변국들이 서둘러 조선의 우방국이 되었고, 프랑스와 국교를 단절해버렸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폴은 어쩔 수 없이 남아도는 우유를 치즈로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 한때 빵도 없어 굶주림이 일상이었던 프랑스에서 이제는 모든 음식에 치즈가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 못했다.
젖소에게 치명적인 젖소 유방염(Bovine Mastitis)이 번졌다.
거기다 인수공통전염병인 브루셀라병(Brucella)까지 확산하자 우유 생산량이 급감했다.
이는 협동 농장에서 대량으로 젖소를 키우면서 한 곳에 가둬 놓았기 때문에 생긴 문제였다.
그러지 않아도 위생이란 개념이 없던 프랑스다.
그런데 대량으로 젖소까지 키우자 전염병이 미친 듯이 빠르게 번졌다.
나폴레옹처럼 닭을 키웠다면 모두가 잘 먹고 잘살았을지도 모른다.
브루셀라병은 인수공통전염병이지만, 닭에게는 영향을 끼치지 않았고, 훨씬 키우기도 쉬웠으니.
하지만 폴은 그러지 않았다.
조선인들이 가장 즐기는 음식이 닭으로 만든 요리란 걸 안 폴은 일부러 닭을 배척했다.
닭을 키워봐야 수출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에 그런 거였다.
거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갑작스레 찾아온 냉해로 인해 프랑스는 한해 농사를 망쳤다.
프랑스인들은 다시 굶주릴 수밖에 없었다.
다시 거리로 뛰쳐나온 프랑스인들.
먹을 것을 달라고 시위하기 시작했다.
결국 폴은 공산주의를 추구했던 자들이 밟았던 전철을 그대로 따르고 말았다.
강제로 시위를 진압한 폴은 시민들의 이동까지 차단했다.
또한 사상교육이란 이름으로 시민들을 획일화시켜 지배하려 했다.
하지만 한 번 혁명을 맛본 프랑스인들은 참지 않았다.
자신들을 억압하고 탄압한 폴을 몰아내기 위해 각지에서 들고 일어났다.
* * *
연은 은진이의 보고를 받고 생각에 잠겼다.
프랑스에서 내전이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이 칼 10세에게 있다는 사실을 들었기 때문이다.
칼 10세는 어지러운 상황에 부닥친 프랑스를 지켜만 보고 있지 않았다.
한때 잉글랜드의 영토였던 프랑스 서부지역을 다시 차지하기 위해 수작을 부렸다.
칼 10세는 프랑스의 왕 필리프 2세에게 빼앗겼던 아키텐과 노르망디 일대에 세작을 보내 민심을 교란했다.
무기까지 지원하며 반란을 선동했다.
그 결과 프랑스는 '동서 전쟁'이란 이름의 내전이 발발했다.
"은진아?"
"네, 폐하."
"너라면, 칼 10세를 견제하는 것과 공산화를 막는 것 중 어떤 걸 선택하겠느냐?"
"제 의견을 물으신다면 전 이렇게 하겠습니다."
은진이는 정리해온 보고서를 연에게 넘겼다.
연은 한 참 보고서를 들여다본 후 한숨을 내쉬었다.
은진이의 계획은 분명 조선에 이득이 될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너무나 잔인했다.
"이들은 믿을 수 있는 거냐?"
"네, 폐하. 조선에서 수학하고 있던 이들이라 조선을 따를 겁니다."
"그렇다면 추진하도록 해라."
"네, 폐하. 바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은진이의 계획은 칼 10세도 견제하고 동시에 공산화도 막는 것이었다.
프랑스가 시민 혁명으로 무너지자.
살아남은 프랑스 귀족들은 조선으로 넘어왔다.
조선과 무역을 하면서 거래 관계에 있던 상사들이 도움을 주었기에 가능한 거였다.
조선에 자리 잡은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조선인이 되고자 노력했다.
현실을 직시한 거다.
아무튼 은진이는 공산화된 프랑스를 위험 대상으로 봤다.
유럽 반도의 곡창지대를 차지하고 있기에 언제든지 힘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에 귀화한 귀족들을 프랑스로 보내 내전을 더욱 확대하고자 했다.
이들을 이용해 프랑스를 찢어버릴 계획이었다.
그래야만 조선이 더욱 안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런 거였다.
은진이의 계획에 따라 프랑스에서 넘어온 귀족들은 다시 프랑스로 돌아갔다.
자신들의 공국과 백국을 다시 찾기 위해서였다.
* * *
조선 제국력 23년(1681) 9월.
연은 성인 교육대를 마친 순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식사를 마친 연은 순과 함께 산책에 나섰다.
"앞으로 뭘 할 생각이냐?"
"세상을 돌아보고 싶습니다."
"혼인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이제는 모두가 20살이 넘어야 혼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너는 그들과 다르지 않으냐? 어머니와 할머니도 걱정하고 있고."
"훤이 있는데 무슨 걱정을 그리한답니까?"
"그래도 네가 태자지 않느냐?"
"그래서 세상을 돌아보고 오려 합니다."
"크흠···."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연도 순 때문에 골치가 지근거렸다.
순은 연과 달랐다.
특히 이성에 관한 순의 마음은 폭풍 속의 갈대였다.
한때 칼 10세의 막내딸과 결투까지 했을 정도로 좋아했던 여자아이가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한 순의 눈에 다른 이가 치고 들어왔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연은 문식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래야만 답답한 속을 풀 수 있었다.
'내가 왜?'
'너 때문에 이놈이 심심하면 나에게 협박하는 거잖아.'
'잘 컸네. 내 눈에는 능력 있어 보이는데. 뭐가 문제야?'
'너처럼 혼인이라도 하면 다행인데, 한 달이 멀다 하고 대상이 바뀌니까 그러지.'
'그래! 멋진데. 그것도 능력이니 신경 쓰지 마. 신경 써봐야 골치만 아파.'
하지만 답답함만 늘어났다.
연은 순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혼내지 않았다.
21세기 기억이 있기에 화를 내봐야 좋을 게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대신 연은 순을 자주 불러 함께 밥을 먹고 산책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려 시도했다.
그런데 그것도 순이 성인 교육대에 입대하자 가능하지 않았다.
그래서 연은 이제 막 자라고 있는 막내 훤과 대화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훤은 또 달랐다.
어릴 때부터 말이 없던 훤은 내명부의 걱정덩어리였다.
농인(벙어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황후는 물론 태황후까지 근심이 태산을 이루었다.
어의가 말은 잘 알아들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부모의 마음은 그러지 않았던 거다.
그런데 4살이 한 참 넘어서야 말을 하기 시작한 훤이 사고를 치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폐하를 닮아서 그런다고 했지만, 연은 인정하지 않았다.
'내가 언제 저랬단 말이오?'
'태황후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무얼 말이요?'
'폐하께서는 저 나이 때 벌써 상사를 차리셨다고 하셨습니다.'
'크흠···.'
연이 생각한 어린 시절은 21세기 공식이었지만, 태황후가 말한 어린 시절은 조선전력공사를 세운 연이었다.
그러니 날마다 혼자 놀면서 이것저것 부수고 다시 만드는 훤은 연의 빼박이었다.
순은 효종과 태황후는 물론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가 말을 주고받았지만, 훤은 그러지 않았다.
훤은 언제나 혼자 놀았다.
그런 훤의 안전을 위해 나인(內人)을 3명이나 붙여 놓았지만, 훤의 행적을 놓치기 일쑤였다.
밤도깨비처럼 한밤중에 몰래 나가는 훤을 막을 순 없었다.
그래서 연은 훤에게 위치 추적 장치를 붙여 놓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것도 소용이 없었다.
경복궁 지하에 있는 기계실과 관제실까지 찾아다니는 훤을 추적할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연은 건물 안에서도 사람을 추적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했다.
덕분에 그 장치는 병원과 보안이 필요한 곳에서 잘 쓰고 있었다.
적외선 감지장치까지 내장된 추적 장치는 단추처럼 생긴 송신기를 수시로 감지해 현재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송신기 단추 없이 돌아다니면 바로 경보가 울렸기에 밤도깨비라 별명이 붙은 훤도 더는 숨을 수 없었다.
또한 건물 안에서 사람의 위치를 정확히 찾을 수 있기에 병원에서도 활발히 사용하고 있었다.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담당 의사가 있는 곳을 파악하여 그곳에만 안내 방송을 내보낼 수 있었다.
아무튼 그런 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추종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훤처럼 뭔가를 부수고 다시 조립하길 좋아하는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훤과 같은 아이들이 모이자 대형 사고가 일어났다.
먹을 것과 입을 것, 즐길 것이 넘쳐나는 조선이기에 백성들은 태평성대라 말하며 모두가 행복한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 조선에서.
그것도 수도인 한양에서.
조선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황실이 있는 경복궁에서.
비상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무슨 일이야?"
"방금 동쪽에서 로켓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날아오더니 폭발했습니다."
"뭐? 감히 누가?"
이제 경복궁은 조선전력공사 경비대가 지키고 있었다.
황실 수호대란 별칭을 현실화한 거였다.
그런데 그런 곳을 공격하다니.
그것도 대낮에.
경복궁은 즉시 비상이 발동됐고, 로켓으로 추정된 물체가 발사된 곳을 역추적해 들어갔다.
레이다부터 점검했지만 작은 물체라 탐지되지 않았다.
그래서 감시 카메라를 전부 분석했다.
"여긴···."
"왜? 어딘데?"
"바로 옆입니다."
"뭐?"
한 대원이 모니터에 표시된 지도를 가리켰다.
"바로 이곳입니다."
"이곳은···?"
"네, 맞습니다. 북촌초등학교입니다."
카메라에 잡힌 영상을 분석한 결과 로켓으로 추정되는 물체는 경복궁 바로 옆에 있는 북촌초등학교에서 발사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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