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255화 (255/275)

255. 선거 제도

이제 33살인 최석정은 어릴 때부터 총명했다.

과거제를 폐지하지 않았다면 떼 놓은 당상(堂上)이었겠지만, 과거제가 사라지자 그럴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낭중지추(囊中之錐)는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법이다.

최석정은 최고점을 받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그런데도 동역에 있지 않았다.

자진해서 중역으로 근무지를 옮긴 최석정은 예맥남로를 따라 형성된 마을들을 꼼꼼히 분석했다.

그런데 예맥남로 주변은 황무지와 사막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히말라야산맥에서 내려온 빙하수가 강을 만들어 흐르고 있었다.

풍부하게 흐르진 않았지만, 강줄기를 따라 마을이 형성되고 조금이나마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물이 지하로 빠지는 것 같군.'

노년에 구수략(九數略)이라는 목판으로 된 수학책을 집필할 정도로 수학에 뛰어났던 최석정은 조사에 들어갔다.

그 결과 히말라야산맥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의 양에 비해 강물의 양이 너무나 적다는 것을 밝혀냈다.

최석정은 즉시 근처에 있는 조선전력공사 분점을 찾아갔다.

'이곳은 항상 물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제가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래요? 좋은 소식이군요. 하지만 제가 권한이 없으니 내용을 적어 주시면 바로 본사로 보내겠습니다."

최석정이 분석한 내용은 즉시 은동리로 전달되었고,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도 그럴 것이 공무원이 보낸 내용인데, 그 안에는 온갖 수학 공식과 풀이식이 적혀 있었던 거다.

그래서 수학을 알지 못하는 쌍식이 대신 민삼이가 대신 최석정을 만나로 중역으로 떠났다.

'그러니까 남로를 따라 수로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비용은 대충 이 정도 들고요?'

'대충이 아니라 정확히 그 정도 들 겁니다.'

최석정은 히말라야산맥에서 내려온 물이 지하로 빠지지 않게 콘크리트로 수로를 만들어 연결하자고 했다.

'음···, 수로를 방책으로 쓰면 따로 철조망을 세우고 유지보수할 필요도 없겠군요.'

'그렇습니다. 굳이 철조망을 세우고 관리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맥남로를 따라 철길과 도로를 깔았지만, 수시로 나타나는 야생동물로 인한 사고가 자주 일어나자 철조망을 설치하고 있었다.

조선에서 제일 중요시하는 것은 안전이었기에 시간과 돈이 추가로 들더라도 지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콘크리트로 수로를 놓으면 굳이 철조망을 세울 필요가 없었다.

'수로 위에 태양전지판도 설치하자고 되어 있는데 이건 무슨 이유입니까?'

'물이 증발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아···, 좋은 생각이군요.'

'또한 물로 인해 태양전지판이 너무 뜨거워지는 것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오···, 참말로 대단합니다. 어찌 그런 생각까지 할 수 있었습니까?'

최석정에게 반한 민삼이는 그를 조선전력공사에 영입했다.

예맥남로 수로 공사 총감독을 맡기기 위함이었다.

10m나 되는 넓은 수로가 건설되면서 예맥남로 주변은 몰라보게 변해가고 있었다.

연간 강수량이 100mm 이하인데도 물이 부족하지 않았고, 전기도 남아돌았다.

그러다 보니 유목민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물이 부족했기에 수시로 이곳저곳으로 양 떼를 몰고 떠돌아다녔던 유목민들.

더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수로를 따라 목장이 세워지고, '자동 물 공급기(Sprinkler)'에 의해 목장이 관리되자 피곤하고 힘든 유목민 생활을 청산하기 시작했다.

타클라마칸 사막

철도 ##########

도로 ===========

@ 목장과 마을 @

수로 ~~~~~~~~~~~

히말라야산맥

이처럼 수로가 방책 역할을 해줬기에 늑대 같은 맹수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수로를 따라 설치된 태양전지판에서 전력을 얻고 있기에 전기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밤이 돼도 마을 회관이나 마을 광장에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함께 모여 저녁을 먹고, 함께 만물상자를 보며 조선의 문화를 즐기고 있었다.

그 후, 최석정은 서역을 거쳐 신역으로 넘어갔다.

중역에서 수로 공사를 하며 얻은 지식으로 서역과 신역에도 수로를 건설하기 위해서였다.

최석정은 쉬지 않고 돌아다녔는데도 즐겁기만 했다.

자신의 타고난 수학적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으니 그럴 수밖에.

그런데 그런 최석정을 눈여겨 본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수로가 건설되면서 득을 본 중역과 서역, 신역에 사는 백성들이었다.

그들은 최석정이야말로 앞으로 자신들을 이끌 새로운 총리로 봤기에 선거에 나가라고 등 떠밀며 자처해서 후원에 나섰다.

동역 백성들 또한 다르지 않았다.

비록 직접 혜택을 보진 않았지만, 아직도 치수(治水)야말로 백성을 위한 근본이라며 최석정을 지지했다.

얼떨결에 총리 후보에 나선 최석정.

조선 전역에서 압도적으로 백성들의 지지를 받고 제2대 총리직에 당선됐다.

이런 사실을 모두 알고 있는 연이지만, 사람의 성품은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기에 여러 가지 꼬치꼬치 물었다.

"혹시 마방진(魔方陣, Magic Square)에 관해 알고 있소?"

"폐하께서도 마방진을 알고 계십니까?"

"마법진(魔法陣) 중 하나 아니오?"

"맞습니다. 폐하. 역시 폐하께서는 세종대왕님 이후 최고의 과학자이십니다."

최석정의 칭찬에 연은 소리 내어 크게 웃었다.

조선 시대 최고의 수학자 중 한 명인 최석정이 존경의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왠지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그대 또한 대단한 과학자이자 정치가요. 그러니 백성들을 위해 노력해 주기 바라오."

"당연히, 당연히 그러겠습니다. 폐하."

연은 문식이로부터 최석정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의리의 사나이야. 그러니 팍팍 밀어줘 봐.'

'정말이야?'

'그럼! 신하들이 다 외면했던 경종(景宗)의 손을 잡아 준 이잖아.'

원 역사에서 영의정까지 지냈던 최석정은 희빈 장씨가 죽고 난 후 모두 그녀의 아들인 세자 윤(昀)을 버렸지만, 끝까지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아직 태자 순이 혼인을 하지 않았기에 경종이 될 윤이 태어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참 선비이자 참 과학자인 최석정의 등장에 문식이가 흥분했다.

'이야! 조선의 앞날이 갈수록 밝네. 혹시 치트키 쓴 거 아냐?'

'치트키는, 내가 잘하니 알아서 모이는 거지.'

아무튼 연은 새로 총리에 당선된 최석정을 정식으로 총리에 임명했다.

"앞으로 그대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그러니 행식이의 설명을 잘 듣고 앞으로 이 나라 조선을 잘 이끌어 가길 바란다."

"명심하겠습니다. 폐하."

조선의 선거 제도는 연이 살던 미래와 달랐다.

상대를 비방하는 것에 몰두했던 미래와 달리 조선의 선거는 정치적 경쟁자를 비방할 수 없었다.

선거에 후보로 등록됐단 것만으로도 문제가 없다고 봤기에 상대를 비방하고 모함하는 짓은 일절 허용하지 않았다.

대신 미래를 어떻게 개척할지 앞으로의 계획을 제시해야만 했다.

또한 당선된 후에도 전 총리와 함께 일해야 했다.

비록 6개월 동안이지만, 전 총리로부터 국정운영에 대해서 배우고 익혀야 했다.

연은 문식이와 상의 끝이 이처럼 선거 제도를 확정했다.

'정치란 어차피 나눠 먹기잖아. 그런데 그런 나눠 먹기조차 잘하지 못하는 놈이 정치를 하면 어떻게 되겠어?'

'싸움만 나겠지.'

'그치! 백성을 위한 정치는 하지 않고 싸움만 한다면 어떻게 되겠어?'

'개판이겠지.'

'맞아. 개들이 짖으니 나라가 시끄러울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이 보는 거야. 그러니 그런 정치는 처음부터 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해.'

문식이는 조선을 말아먹었던 당파싸움을 극도로 싫어했다.

비전(秘殿, Vision)을 제시하지 않고 정적 제거에만 몰두한 당파싸움의 끝은 망국을 향한 빠른 지름길였기에 그런 거였다.

'나이 들면 정치도 못 하게 해야 해.'

'그건 너무한 것 아냐? 나이 먹은 것도 서러운데 정치도 못 하게 하면 빨리 죽으란 거잖아.'

'그렇게만 생각하면 안 돼. 굳이 나이 먹어서까지 더러운 정치판에서 놀 필욘 없잖아. 그런데도 악착같이 하려는 자들이 있어. 그런 자들의 특징이 뭔지 알아?'

'내가 어떻게 알아?'

'진짜 나라를 생각해서 그런 정치인도 있지만, 대부분은 노욕(老慾) 때문이야.'

'노욕?'

'사람이 나이 먹으면 경계해야 할 것이 3가지가 있어.'

'뭔데?'

'노욕, 노추(老醜), 노망(老妄) 이 세 가지지.'

'흠···.'

문식이의 말에 연은 반박할 수 없었다.

젊었을 때 잘나가던 정치인이 늙어서 노욕을 버리지 못하고 나라를 망처 먹은 예는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연임까지만 하게 하고, 출사도 환갑(還甲, 60세)까지만 할 수 있게 하면 될 것 같은데···.'

'환갑? 앞으로는 환갑 넘게 사는 사람이 많아질 건데 괜찮을까?'

조선 시대 평균 수명을 조사해보면 20대인 경우가 있지만, 이건 잘 못 된 거다.

20세기 전까지 유아 사망률이 극도로 높았기에 그리 나온 거였다.

산업화 초기였던 18세기 영국도 도시인의 평균 수명은 26세로 나오는데, 진짜라면 사회 자체가 유지될 수 없다.

조사 결과 조선 백성들의 평균 수명은 40대였고, 이제는 50세를 넘어 환갑인 60세까지 건강하게 사는 백성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공식아?'

'왜?'

'네가 조선전력공사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뭐야?'

'알잖아? 네가 한 말 때문이잖아?'

'그래, 전에 내가 말했지. 앞으로 미래는 기업이 세상을 지배할 것 같다고. 그래서 그런 거야?'

'알면서 왜 또 물어봐?'

매주 불타는 금요일 밤이면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며 한 주 동안 쌓인 피로를 날려버렸던 둘은 미래에 관한 생각이 같았다.

그건 바로 기업이 세상을 지배할 거란 거였다.

통신과 매스컴이 발달할수록 신기하게도 정보의 오류가 심각했다.

그 이유에 대해 문식이는 이렇게 말했다.

'알려고 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만 하는 현대인의 특징을 잘 공략한 거지.'

세상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수동적으로 변해갔다.

시키는 일만 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기에 그런 거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이익만 추구하는 기업과 그에 편승한 정치인들이야.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런데도 가만히 있는 사람들이야.'

문식이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 이득만 보려는 기업과 정치인들이 원인이라고 했다.

하지만 진짜 더 큰 문제는 그런 걸 알면서도 묵인하는 사람들의 의지라고 봤다.

그래서였다.

연이 조선전력공사를 세운 후.

지금까지 기업형태로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이제 조선전력공사는 황실 기업이 됐지만, 운영 방식은 변한 게 없었다.

조선전력공사는 누구나 자유롭게 입사 지원할 수 있고, 퇴사도 사표만 내면 된다.

또한 일반 회사처럼 인사고과(人事考課)에 의해 승진할 수 있었다.

경비대도 지휘권을 가진 장교가 아니라면 아직도 대원들은 계급이 없었다.

비록 입사 순서에 따라 선배와 후배로 부르고 있지만, 모두 동등한 사원이었다.

연이 이처럼 조선전력공사를 운영하는 이유는.

'어차피 기업이 미래를 지배할 거면, 황실 기업인 조선전력공사가 지배하는 게 더 좋지 않아?'

'물론이지! 나도 처음엔 이해 못 했는데 이젠 따라 하고 있잖아.'

연이 만든 조선에 관한 연구는 우방국뿐만 아니라 공산화가 된 프랑스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선전력공사라는 백성들을 위한 안전장치가 없기에 망해가고 있었다.

황실 기업인 조선전력공사가 하는 일은 다양했지만, 하나하나 따져보면 모두 백성들의 안락한 삶에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는 그러지 못했다.

그 결과 프랑스에서 내전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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