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254화 (254/275)

254. 하늘에서 쏟아진 축구공

6개월 전.

연은 술 한잔하자며 찾아온 문식이와 대화를 나누다 뜻밖의 말을 들었다.

문식이는 제식 축구가 흥행에 실패하자 원인 분석에 들어갔다.

나름대로 문제점을 파악한 그는 술을 핑계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양까지 찾아온 거였다.

'그러니까 제식 축구가 흥행에 실패한 원인이 나라 간 빈부격차 때문이란 말이지?'

'맞아. 적어도 두 팀은 있어야 서로 연습이라도 하면서 실력을 키울 수 있잖아?'

'그치!'

'그런데 그 두 팀조차도 유지하기 힘든 소국들이 너무 많아서 답이 없더라.'

평양 박람회 때 선보였던 제식 축구는 큰 인기를 끌었다.

피가 난무하는 박진감 넘치는 경기는 사람이라면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제후국들은 따로 모여 제식 축구협회를 만들었다.

조선 프로축구협회처럼 회원을 모집하고 정식으로 경기를 개최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활성화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제법 잘사는 나라들도 있잖아? 그들은 왜 제식 축구를 하지 않지?'

'돈도 문제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조선 프로축구협회에 있더군.'

'뭐? 우리 축구협회 때문이라니 뭔 소리야?'

'하늘에서 퍼주는데 답이 있겠냐?'

'하늘에서 퍼줘? 어떻게?'

연은 조선 프로축구협회가 원인이라는 문식이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문식이의 말을 모두 듣고 나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협회 지원 때문에 그랬단 거군.'

'맞아. 미래의 고객들을 위해 상사들이 힘을 쓴 거지.'

동역에서 시작한 조선 프로축구 경기는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다.

제식 축구처럼 피가 튀기진 않았지만, 선수들의 기발한 묘기와 박진감 넘치는 경기는 관중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승패를 예측하고 돈을 걸 수 있는 복권이 있기에 축구를 좋아하지 않은 사람도 경기 결과에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제식 축구가 활성화될 기미가 보이자 조선 축구협회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경기마다 광고하고 정기적으로 후원까지 하고 있는 상사들을 찾아간 축구협회 관계자들.

'이대로 제식 축구에 관중을 빼앗기면 모두의 손해입니다.'

'손해라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야 사람이 많은 곳에 광고하고 홍보하면 되는 거잖습니까?'

'아직 모르시는군요,'

'뭘 모른단 말입니까?'

상사 관계자는 짜증을 냈지만, 축협 관계자는 신경 쓰지 않고 제식 축구의 문제점을 설명했다.

'우리 축구는 한 주에 한 경기 또는 두 경기를 뛸 수 있지만, 제식 축구는 잘해야 한 경기만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선수가 많아야 가능합니다.'

'부상 때문입니까?'

'맞습니다. 보호 장비를 착용한다 해도 제식 축구는 경기 때마다 부상 선수가 속출합니다. 또한 보호 장비값이 너무 비싸서 저변확대가 힘듭니다.'

막상 제식 축구 경기를 활성화하려고 했지만, 문제점이 너무 많았다.

'뭐든 해봐야 흥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식 축구는 그게 가능하지 않죠.'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말입니까?'

'많이는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귀사의 문양이 새겨진 축구공만 지원해 주십시오.'

'그거야 지금이라도 당장 해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몇 개나 필요하기에 여기까지 찾아왔습니까?'

'매달 1천 개씩 지원해 줄 수 있습니까?'

'1천 개요? 그 많은 축구공을 어디에 쓰려고 그럽니까?'

'주변국에 뿌릴 생각입니다. 굳이 우리에게 지원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직접 해도 된다는 말입니까?'

'네, 우리 축구협회의 문양만 추가로 넣어 준다면 상관없습니다.'

축협 관계자는 조선의 봉사 단체가 하는 일을 보고 묘안을 떠올렸다.

옷과 곡식 같은 생필품 위주로 주변국에 지원하고 있는 조선의 봉사 단체.

조선 백성들과 상사들로부터 넘칠 정도로 후원을 받고 있지만, 다른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조선의 백성들은 순수한 마음에서 후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사들은 그러지 않았다.

자사의 상품을 홍보하는 차원에서 후원하고 있기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물량을 봉사 단체에 후원하고 있었다.

그런데 후원이 필요한 나라로 후원품을 보내는 일이 문제였다.

조선전력공사 기관사들로 조직된 홍익회에서 국경 근처 도시까지 무료로 후원품을 배송해 주고 있지만, 막상 필요한 곳까지 운반할 지원자가 턱없이 부족했다.

돈과 물품은 지원하지만, 위험한 곳까지 직접 가서 고생하고 싶은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봉사 단체의 수장들이 모여 이문제를 해결했다.

별도로 '홍익배송협회'를 만들어 이를 처리하기로 한 거였다.

홍익배송협회는 현지인들을 고용해 배송을 시키고 그에 따른 보수를 지급했다.

하지만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조선과 달리 산간오지(山間奧地)에도 살고 있는 주변국 사람들에게 직접 지원할 방법이 없었던 거다.

하지만 이 문제는 재정이 빵빵한 프로축구협회와 홍보를 노린 후원 상사들이 등장하자 해결됐다.

자본과 영향력이 있기에 비행기를 이용해 후원품을 무차별 살포할 수 있었던 거다.

연은 문식이가 말한 하늘에서 퍼준다는 의미가 이해되자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흠···, 민간용 화물 운송기를 지원해 달라고 하더니 그거였군.'

'이제 축구공 없는 곳을 찾기가 더 힘들 거야.'

조선 비단으로 만든 하얀색 낙하산은 눈에 잘 띄었기에 현지인들에게 비행기로 후원품을 보내는 일은 무척이나 쉬었다.

먹을 것은 부족해도 축구공은 남아돌았고, 그 결과 조선 축구는 어느 곳에서나 대세가 되었다.

후원품 안에는 축구에 관련된 그림책과 조선의 프로축구 방송을 들을 수 있는 라디오도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겠어?'

'제식 축구는 포기하고 대신 올림픽을 열자.'

'뭐? 올림픽?'

'응. 가난해도 할 수 있는 경기만 선정해서 올림픽을 열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라 간 빈부격차를 해결할 수 있다고?'

'그것도 있지만, 많은 나라가 참가해야 더 재밌잖아.'

'단지 재미 때문에 올림픽을 열자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사실 빈부격차를 그냥 두면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아. 그래서 꺼낸 이야기야.'

'그건 그렇지. 하지만 묘안이 없으니 답답하네.'

'지금이야 네가 있으니 어떻게든 해결하겠지만, 나중엔 어찌할 거야?'

연으로 인해 쉴 새 없이 일어났던 전쟁이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조선의 우방국끼리 싸울 일은 없었고, 조선의 우방국을 침략할 간 큰 나라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평화의 시대가 열리고 있지만, 그것뿐이었다.

농업에 기반을 둔 소국들은 발전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운 좋게 중남미 대륙을 차지한 아파치 왕국은 풍부한 자원과 조선의 기술 지원으로 나날이 발전하고 있지만, 대부분 나라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문식이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로 돌아가 왕이 된다면 부귀영화를 누리고 주지육림 속에서 살겠다고 큰소리쳤던 문식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이루어지자 주변을 돌아볼 수 있었다.

'지금도 조선 국경에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고 있다며?'

'그게 제일 골치야.'

역병을 핑계로 국경을 폐쇄했지만, 그래도 꿈을 찾아 조선으로 건너오는 사람은 줄지 않았다.

예맥 기병대에 잡히면 바로 추방하고, 다시 잡히면 즉결 처형한다고 했지만, 목숨을 걸고 희망을 찾는 사람들에겐 해당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본보기로 몇 명 처형했지만, 소용없었다.

대기근과 역병은 사라졌지만, 조선의 지원을 맛본 사람들은 무작정 조선으로 가길 희망했다.

'너네도 문제지만, 주변국들도 골치잖아.'

'그건 그렇지.'

그러다 보니 조선과 인접한 주변국들도 넘치는 난민들을 처리하는데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나라 간 빈부격차가 너무 심해서 그런 거야.'

'나도 알지만, 해결할 방법은 없잖아?'

'왜 없어? 소형원자로 개발 끝났다며?'

'야코프에게 들었어?'

'우리 왕국에서 만든 최고급 와인이 맛있다고 마구 마시더니 술술 불던데.'

'이런···! 그래서 소형원자로로 뭘 하게?'

'다른 건 관여하지 않더라도 전기만 공급해주면 어떨까? 너 말처럼 전기만 있으면 사람답게 살 수는 있잖아?'

'흠···, 전기만 공급해준다···.'

연과 문식이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그리고 우방국에 소형원자로를 이용한 발전소를 세워주는 것으로 일단 해결을 보고자 했다.

* * *

조선 제국력 22년(1680) 5월.

조선이 제국을 선포한 지 어느덧 22년이 되었다.

그사이 조선은 놀랄 만큼 변해 있었다.

"돈 버는 것도 좋지만, 써보지도 못하고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란 말 있잖아. 그러니 좀만 더 고생하자고."

"언제까지 해야 하는데?"

"이번 물량만 처리하면 당분간 추가 물량은 없다고 하니, 빨리 끝내고 휴가나 떠나자고."

"참말이야?"

"응, 영업부에서 하는 말 들었어."

"그래?"

"그러니 좀만 더 힘내자고."

조선에서 우방국에 발전소를 세워주자 신기하게도 조선의 상사들이 바빠졌다.

농업 위주의 경제였던 조선의 우방국들.

풍부하게 전기가 공급되자 생활 방식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두운 밤이 되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지만, 길을 따라 설치된 가로등이 있기에 이젠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값싼 전기료 덕분에 더운 여름에는 선풍기로, 추운 겨울에는 전기 히터나 전기장판으로 시원하고 따뜻한 한 해를 보낼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전기용품을 만드는 조선의 상사들은 그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주문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자 몇몇 상사들은 직접 우방국으로 진출했다.

그전에는 전기 공급을 기대할 수 없기에 진출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지만, 이젠 풍부한 전기가 공급되고 있었기에 서둘러 진출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총리 선거는 시장 선거와 같이한다며?"

"경행식 총리가 이번을 마지막으로 총리를 그만두잖아. 그래서 시장 선거에 맞춰 총리 선거도 한다고 그랬어."

"그럼 누굴 뽑아야지? 아는 것 있어?"

"모두 쟁쟁해서 나도 누굴 뽑아야 할지 모르겠어."

행식이는 5년씩 두 번이나 총리직을 수행했다.

그런데도 아직 40대라 더 할 수 있지만, 조선의 법이 허락하지 않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조선의 선거법은 무척이나 단순했다.

임명직 공직자는 몇 번이나 할 수 있지만, 선출직 공직자는 연임만 가능했기에 두 번만 할 수 있다.

또한 범죄 경력이 있는 이는 출마 자체를 할 수 없기에 선출직 공직자가 되려면 평소에도 품행에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연은 민주주의가 최상의 제도는 아니지만,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고 봤기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선거가 무엇인지 가르치고 있었다.

또한 농업협동조합이나 마을 이장은 물론 시 외곽에 있는 주택단지 조합장도 선거에 의해 선출하라고 정해 놓았기에 조선인에게 선거는 이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 * *

조선 제국력 22년(1680) 10월.

연은 새로 선출된 총리를 행식이와 함께 만나고 있었다.

조선의 법에 따르면, 총리에 당선됐다고 해도 황제인 연이 거부하면 총리직을 수행할 수 없었다.

조선이란 제국의 정당한 주인은 누가 뭐래도 황제였기에 그런 거지만, 비열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자가 총리직을 수행하면서 조선을 망칠 수도 있기에 그리 법을 정한 거였다.

"폐하를 뵙습니다."

"어서 오시오. 수학에 무척이나 재능이 있다고 들었는데 총리가 될 생각을 하다니 이유가 무엇이오?"

"소신은 수학을 연구하다 이를 삶에서 쓸 방도를 생각해 봤습니다."

"흠···, 공약을 보니 현재 세금을 백성들의 삶에 맞게 조정한다고 되어 있던데 이것도 수학을 연구하다 그런 거요?"

"네, 폐하. 수학은 모든 것의 기본이라 보고 있습니다. 이를 백성들의 삶에 대입해 본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보다가 직접 나서기로 했습니다."

이번에 새로 총리에 당선된 이는 최석정(崔錫鼎)이었다.

게다가 영의정을 지냈던 완성부원군(完城府院君) 최명길의 손자였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