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253화 (253/275)

253. 호랑이 없는 곳에 나타난 용(5)

연이 보여준 '우방국 전력 공급 계획'을 본 정상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의견을 나눴다.

"그러니까 저 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는 우리가 마음대로 팔 수 있다는 말입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가격은 현재 보다 낮춰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엄청난 것 아닙니까?"

"그렇죠. 우리 왕국 같은 경우는 현재 가격보다 반이나 싸게 공급해도 반이 넘게 남는 가격입니다."

"그 이득으로 지원받은 돈을 갚아도 여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연탄난로에 붙여 조선 백성들에게 공급했던 열식 발전기는 이제 모르는 이가 없었다.

원리가 간단하고, 만들기도 쉽고, 아무거나 태우면 작동하는 열식 발전기는 사용하기도 쉬웠다.

그래서인지 아직 철기시대에 머무르고 있던 곳도 열식 발전기를 사용하는 곳이 많았다.

조잡하더라도 열식 발전기에 조선에서 수입한 전구를 구리로 만든 선으로 연결만 하면 불을 밝힐 수 있기에 그런 거지만, 그로 인해 위성에서 바라본 지구의 밤은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왜 조선전력공사 분점은 세워주지 않는다는 겁니까?"

"저기 나와 있지 않습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조선말이 서툴러서 읽어도 뭔 내용인지 파악이 안 됩니다."

"이런! 나에게 조선말을 가르쳤던 선생을 소개해 줄까요?"

"그러면 좋겠지만, 우리 왕국은 너무 가난해서···."

"내가 우정의 표시로 보내주겠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조선말부터 배우세요."

"고맙습니다."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

이는 왕가도 다르지 않았다.

연이 통치하고 있는 조선의 문화가 라디오와 만물상자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가면서 조선 황실의 일거수일투족 또한 알려지고 있었다.

'조선 황실의 종친은 신병교육대를 퇴소하기 전에 선택해야 한다며?'

'그렇다고 하더라고. 일반인으로 살면서 사업이나 정치를 할지, 아니면 황실의 종친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생을 즐길지 선택할 수 있다고 들었어.'

연은 조선의 복잡한 종친 규정을 바꿔 버렸다.

예기, 의례, 주자가례를 근거로 만든 황실 친족 구성을 '황제의 8촌'으로 단순하게 정리해 버린 거다.

또한 순위에 따라 작위를 주는 것도 폐지해 버렸다.

일부 종친들이 반대했지만, 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능력이 있다면 종친이 아니라 일반 백성으로서 그 능력을 보여야 할 것이오.'

효종 때, 종친도 출사할 수 있게 법을 바꿨지만, 종친으로서 눌릴 수 있는 특권도 제공하고 있었다.

하지만 연은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말했다.

'특권을 누리며 백성의 삶에 끼어든다는 것은 공정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백성의 삶에 끼어들 때는 종친의 특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타고난 권리를 포기하는 대신 원하는 대로 살 권리를 주겠다는 연의 말에 일부 종친들은 불만을 표했지만, 대부분 받아들였다.

종친으로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더욱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조선전력공사에 특채(特採)로 입사할 수 있다는 거였다.

어찌 보면 공정하지 못한 것 같지만, 그러지 않았다.

조선전력공사는 황실 기업이라 황족을 등용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입사 후 특별 혜택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인지 입사를 원하는 종친도 거의 없었다.

놀아도 '황족 품위 유지비'란 명목으로 장관에 준하는 급여를 지급하고 있기에 그런 거였다.

이는 모두 연이 예상했던 거다.

'꽁돈, 그것도 큰돈을 정기적으로 주는데 일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야.'

연은 인조와 인조를 따르던 간신들이 무척이나 돈을 좋아했고, 정기적으로 뇌물을 주자 모든 게 형통 되었던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로 인해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는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

또한 그런 자일수록 폼나는 인생을 살고 싶어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많은 종친들은 태황후와 황후, 공주들이 하고 있는 자선사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월급은 월급대로 받고 자선을 베푸는 모양새 나는 일까지 할 수 있으니 뽐내기 좋아하는 종친들이 모일 수밖에.

하지만 이것은 심심한 일이 되어버렸다.

조선의 복지제도는 이미 탄탄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기에 폼나는 일을 할 수 없었던 거다.

그러다 보니 종친들은 타국으로 눈을 돌렸다.

황실에 책정된 막대한 자선 예산이 남아돌았기에 멋지게 쓰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이 내용이 오전(誤傳)되고 있었다.

'조선 황실은 백성들을 보살피고 베푸는 일을 주로 한다고 하던데, 우리 왕실은 날마다 잔치나 열고 술이나 처마시면서 사치나 하니 이게 말이 되냐고?'

'그러게, 이건 아니지.'

'젠장! 이럴 바엔 뒤집어엎는 게 어때? 지들이라고 다르지 않잖아. 운 좋게 왕가에서 태어난 것뿐.'

'맞아! 능력이라곤 쥐뿔도 없는 것들이 설치는 건 더는 보고 싶지 않아.'

잘못된 정보는 과장(誇張, Exaggeration)되어 부풀어졌고 빠르게 확산되었다.

그러자 위기의식을 느낀 왕들은 조선을 따라 할 수밖에 없었다.

무분별하게 사치와 낭비를 일삼는 왕족들을 단속하고 백성들을 위해 베풀라고 강요했다.

'이러다 민란이라도 일어나면 우린 다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시오!'

기근과 역병에 이어 민란까지 일어나자 그동안 지배하던 제국과 왕국이 망하고 그 자리를 운 좋게 차지하고 있지만, 언제 자신의 차례가 될지 불안했던 거다.

그런 상황에서 조선이 우방국에 베푼 것처럼 우방국도 주변국에 베풀기 시작했다.

연이 한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팡구 왕국의 고마 나카토는 자신이 알고 있던 제국의 모습과 다른 조선의 행보가 궁금해서 연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폐하, 이처럼 도와주시는 이유는 알고 싶습니다.'

그때 연은 씩 웃으며 물었다.

'혼자 놀면 재미없지 않습니까?'

연이 100여 개국이나 되는 우방국에 발전소를 세워주려고 한 이유는 바로 재밌게 놀려고 한 거였다.

야코프가 주도해 건설한 은동 캠퍼스에는 각종 운동 경기장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중 야구장이 가장 큰 인기를 끌었다.

어릴 때 이후로 쭉 미국에서 살았던 야코프는 무척이나 야구를 좋아했다.

그래서 은동 공원 안에 야구장을 5개나 만들어 놓았다.

그로 인해 야구 또한 축구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야구는 축구보다 비용이 많이 드는 운동경기였다.

공 하나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축구와 달리 야구는 필요한 장비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조선과 아파치 왕국처럼 재정이 탄탄한 나라라면 몰라도 대부분 나라들은 아직도 농업기반이었기에 야구 경기를 할 때 필요한 장비를 구할 수 없었다.

제식 축구 또한 이런 이유로 아파치 왕국 말고는 흥행하지 않았다.

조선은 너무 야만스럽다는 이유로.

다른 나라들은 너무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제식 축구를 포기했다.

대신 조선에서 유행하는 프로축구 규칙을 따라 했다.

공 하나만 있으면 22명이 함께 뛰어놀 수 있기에 그런 거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조선의 우방국이 된 왕국들.

우방국 친선 축구 경기에 나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아직도 농업기반인 근세에 머무르고 있는 나라들이 대부분이었다.

대표선수를 조직하고 훈련 시켜 국제대회에 내보낼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게다가 기근과 역병이 도는 시기에 조선에서 빌린 막대한 채무도 그대로 남아 있었기에 근근이 먹고 사는 수준이었다.

그래서였다.

연이 우방국에 발전소를 세워주려고 했던 이유는 빌린 돈조차 갚지 못하는 우방국들을 위한 것이었다.

무작정 베풀기만 하는 연을 보고 쌍식이가 물었을 때 연은 이렇게 말했다.

'함께 발전해야 함께 즐길 수 있을 것 아니냐?'

물론 야코프가 소형원자로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면 하지 못했을 거다.

발전소를 짓고 운영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그럼, 발전소 부지(敷地, Site)만 조선에 조차(租借)해주면 되는 겁니까?"

"그렇다고 되어 있네요."

"분점은요?"

"분점은 시장 지배력이 너무 강해서 한 나라의 경제를 망가트릴 수 있기에 진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도 분점이 있으면 여러모로 편하지 않겠습니까?"

"그거야 잘사는 사람들은 좋겠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어찌합니까? 대신 조선 상사들과 합작을 추진한다고 했으니 기다려 보자고요."

연이 없는 은동리에 나타난 야코프.

그로 인해 지역 간 격차가 너무나 크게 벌어지고 있었다.

은동리가 있는 옹진반도가 21세기라면.

옹진반도 주변은 20세기 후반이었고.

조선 전역은 20세기 중반이었다.

하지만 주변국들은 잘해야 20세기 초반이었고.

조선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대부분은 18세기 초입이었다.

게다가 아직 석기나 청동기 시대에 머무르고 있는 곳도 많았다.

그래서 연은 고심 끝에 결정을 내렸다.

'전기만 있으면 빠르게 따라 올 수 있을 거야.'

마침 야코프가 소형원자로까지 개발해 놓았기에 바로 추진하기로 했다.

공산화된 프랑스를 견제하기 위해서도 유럽 반도에 널려있는 소국들을 도울 필요가 있었다.

시민 혁명 이후 공산화가 된 프랑스.

처음에는 빠르게 발전했다.

기름진 영토에 인력을 강제로 투입하자 곡물 생산량은 미친 듯이 넘쳐났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조선의 우방국이 된 프랑스의 주변국들은 농업보다 상업과 관광업을 중시했다.

그와 달리 공산화가 된 프랑스는 공동 생산, 공동 분배만 외쳤고, 그것도 농업에 한정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이것이 먹혀들었다.

기근과 역병으로 너무나 굶었기에 배불리 먹는 게 소원이었던 프랑스인들은 만족했다.

그런데 사람은 밥만 먹고 살 수 없었다.

아니 조선전력공사에서 정기적으로 출시되는 기물이 없었다면 잘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프랑스의 지배 세력이 된 공산당원들은 프랑스인들을 철저히 감시하고 단속했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공산화된 후, 프랑스는 조선과 외교와 무역이 끊겼다.

그런데도 프랑스의 공산당원들은 많은 돈을 들여 조선의 기물들을 사들이고 있었다.

그들이 그토록 미워하고 증오했던 왕과 귀족들이 하던 짓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던 거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생산된 농작물 가격은 조선의 기물에 비해 형편없이 낮았다.

전 같으면 프랑스에서 생산된 와인과 예술품들을 조선에 수출해 해결할 수 있었겠지만, 조선과 국교가 끊어졌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러자 프랑스의 공산당들은 주변으로 눈을 돌렸다.

'제노바 왕국 정도는 하루면 될 것 같은데?'

'그러다 조선이 끼어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빌어먹을 조선이 항상 문제야.'

한때는 조선을 부러워했는데 이제는 조선을 증오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시민 혁명으로 권력을 쥐게 된 프랑스는 내부적으로 권력투쟁이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파리 시민을 위해 나섰던 자크와 알베르가 암살당했다.

그 후, 프랑스는 비열한 자들에 의해 암흑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이건 어때?'

'뭔데?'

'그곳에 당원들을 보내 우리처럼 공산화시키는 거야. 그런 후 자연스럽게 통합하면 되지 않을까?'

'오, 그거 좋은 생각이군.'

아무리 작은 나라라도 주변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모를 수는 없었다.

그래서 프랑스 주변국 정상들이 걱정했던 거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조선엔 황실 수호대라 일컫는 조서원이 있다는 사실을.

프랑스는 주변국을 공산화하기 위해 조심스레 당원들을 보내고 있지만, 조서원의 요원들에 의해 제거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를 오해한 프랑스는 내보낸 당원들과 연락이 끊기자 조사를 했고, 모두 죽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런 개자식들! 감히 우리 당원들을 죽여!'

'절대 그냥 둘 순 없어.'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음모를 꾸민 프랑스는 조선이 두려웠지만, 침략 전쟁을 계획하고 있었다.

말로는 '고통에 빠진 시민들을 구한다'고 했지만, 지배계급이 된 그들의 지위를 영원토록 지키기 위한 거였다.

갈수록 커지는 내부 문제를 침략 전쟁으로 해결하려는 것이었다.

은진이로부터 이런 내용을 보고 받은 연은 즉시 정상들을 불러들였다.

표면적인 이유는 '달에 사람을 보낸다'는 것이었지만, 내부적으론 이를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연은 참석한 정상들에게 항공모함을 보여주고 안심시켰다.

또한 발전소를 세워 프랑스의 야심을 꺾어 놓을 생각이다.

"모두 이해하셨나요?"

"""네, 폐하."""

"앞으로 우리 조선은 우방국들과 함께 미래를 개척해 나갈 겁니다."

"""와···!""""

"그 일환(一環)으로 우방국 체육대회를 개최하려 합니다."

연은 민간주도로 활성화되어 있는 축구는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올림픽 같은 국제 체육대회를 열기로 선언했다.

이는 문식이의 의견을 받아들인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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