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248화 (248/275)

248. 권한과 책임과 의무 그리고 C4

유교 탈레반과 이슬람교도들이 바드샤히 모스크 사용권을 놓고 설전을 벌인 지 5일이 지났다.

하지만 해결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양쪽 다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단 거다.

경찰의 요청으로 조선군까지 와서 지켜보고 있기에 그런 거지만, 갈수록 인원도 많아지고 욕의 수위도 올라갔다.

"남의 종교 시설을 무단 점령하려는 네놈들이야말로 더러운 돼지 새끼다."

"뭐라고? 돼지가 얼마나 깨끗한데. 말도 안 되는 소린 하지도 마라!"

"뭐, 돼지가 깨끗하다고? 헛소리는 그만하거라. 분명 돼지는 부정한 동물이라고 경전에도 나와 있다."

"흥, 그 경전이야말로 잘못된 것이다. 내가 돼지를 키워봐서 아는데 돼지만큼 깨끗한 걸 좋아하는 동물도 없다. 그런데도 너희들은 돼지가 더럽다고 말하니, 해를 보고 달이라고 우기는 것처럼 한심하구나."

"이런 돼지만도 못한 것들이 감히 주둥이를 함부로 놀려? 해보자는 거야?"

"흥, 못할 것도 없지."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정칠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서로가 상대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모습은 답이 없어 보였다.

조선전력공사 라호르 분점으로 돌아간 정칠이는 바로 수화기를 들었다.

"정삼아?"

-어, 언니. 무슨 일입니까?

"네가 이곳으로 좀 와야겠다."

-어딘데요?

"파키스탄 지역 라호르."

-옝? 언제 거기까지 가셨어요?"

"알 건 없고 네가 좋아하는 일이다."

-그래요? 얼마나 챙겨갈까요?

"경기장 하나 날릴 정도면 돼."

-우와! 역시 언니네요. 그러지 않아도 심심했는데. 바로 갈게요.

통화를 마친 정칠이는 분점 요원을 찾아 쪽지 하나를 건넸다.

쪽지를 읽고 난 분점 요원.

눈이 똥그랗게 커지며 물었다.

"참말로 이대로 하실 겁니까?"

"빨리 끝내는 방법은 그게 맞을 거요."

"그러긴 하지만···."

"원인을 제거하는 게 제일 좋지 않소?"

"그래도···."

"이 문제는 내가 책임자니, 문제가 되면 내가 책임을 질 것이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부탁하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행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이제 조선에선 권한에 따른 책임은 명확했다.

조선제국의 첫 번째 황제의 자리에 오른 효종이 대신들을 모아 놓고 한 말이 있었다.

바로 권한과 책임과 의무에 관한 내용이었다.

'짐은 이 나라 조선의 황제로서 백성들을 안전하고 평화롭고 풍족하게 살게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또한 조선의 모든 것을 다스릴 권한도 있다. 그렇다고 함부로 권한을 휘두르지는 않을 것이다. 권한은 그에 따른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한다. 이는 짐만이 아니라 조선의 모든 관리들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조선의 백성들도 백성으로서 의무를 다해야 한다. 모든 조선의 관리들과 백성들은 짐과 함께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권한을 마음껏 누리길 바란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조선을 만들어가는 바른길이다.'

효종은 싸잡아 함께 노력하자고 말했지만, 연은 달랐다.

연은 황제에 오른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두가 합심하여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입니다. 하지만 이상은 이상일뿐 다다르기 힘든 목표입니다. 그렇더라도 우린 그 이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모두가 잘살 수 있는 길이라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백성들은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즐겁게 지내는 것이 권한이자 의무입니다. 하지만 백성들을 다스릴 권한이 있는 관리들은 항상 조심 해야 합니다. 잘못된 권한 행사는 백성들을 다치게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관리들은 권한을 행사할 때 항상 책임까지 염두에 두고 일을 해나가길 바랍니다.'

어찌 보면 그 말이 그 말인 것 같았다.

하지만 관리 중 한 명이 물었을 때 연이 한 말을 들어보면 달랐다.

'폐하, 권한이 없으면 책임과 의무를 질 필요도 없는 겁니까?'

'권한이 없다면 책임질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의무는 황제인 나나, 관리나, 백성이나 이 나라 조선에 살고 있다면 모두가 져야 합니다.'

'그럼 책임과 의무는 다른 것입니까?'

'당연히 다릅니다. 권한이 없는 일에 책임질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권한이 없더라도 아니 권한이 있는데 행사하지 않더라도 의무는 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 나라 조선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연은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권한을 행사하지 않아도 의무는 져야 한다고 말했다.

관리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권한.

그 크기와 무게는 다르지만, 가진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 것도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라 봤다.

'폐하, 하지만 의무만 지면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각자가 짊어진 의무를 다한다면 상호작용으로 모두에게 득이 될 것입니다.'

'권한이 없는 데도 그렇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권한은 있다는 것은 의무가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네?!'

'백성을 다스릴 권한이 있는 나와 관리들은 책임을 지고 백성들이 잘살 수 있게 하는 것이 의무입니다. 다시 말해 나와 관리들이 가지고 있는 권한은 일종의 의무입니다. 나와 관리들이 권한이라는 의무를 잘 집행하면 그 이득은 백성들에게 돌아갈 겁니다.'

'그럼 권한이 없는 게 더 좋은 것 아닙니까?'

'어찌 보면 권한이 없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권한이 있다는 것 자체가 책임을 진다는 것이니까요. 권한이 없으면 책임질 일도 없고, 따라서 권한이 없는 게 편하게 사는 지름길이자 행복한 삶입니다. 우린 그런 세상을 만들 의무가 있고요.'

입신양명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어처구니없게 들리겠지만, 연은 권한이 없는 삶이야말로 행복이라 말했다.

또한 권한이 있다면 반드시 책임과 의무를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랬기에 정칠이는 자신이 생각한 해결책에 대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당당히 말한 거였다.

10일이 지난 후.

뿌연 먼지로 형체를 분간하기 어려운 육발이 한 대가 라호르에 나타났다.

"언니, 오랜만이요. 그런데 얼굴이···."

"지겹다. 빨리 해결하고 이곳을 떠나자."

숨이 허덕일 정도로 끔찍한 무더위가 가셨지만, 정칠이는 이곳에 더는 있고 싶지 않았다.

생각보다 라호르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은 살가웠다.

하지만 그 살가움이 관섭으로 느낄 정도였기에 피곤했다.

그래서 정칠이는 빨리 일을 마치고 떠나고 싶을 뿐이었다.

"알았어요. 언니. 제가 바로 끝낼게요."

정삼이는 사촌 형인 정칠이를 끔찍하게 아꼈다.

하나 남은 혈육이기도 하지만, 험난했던 시절을 함께 보내온 사이였기에 망가진 정칠이의 얼굴이 안쓰러웠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좀 과하게 작업을 진행했다.

어두운 밤.

바드샤히 모스크 북쪽에서 뭔가 작업을 끝낸 둘은 바로 분점으로 돌아간 후 세상 모르게 자고 있었다.

그런데 날이 밝자 분점 요원은 경찰서장과 함께 바드샤히 모스크를 찾아갔다.

오늘도 변함없이 설전을 벌이고 있는 유교 탈레반과 이슬람교도들.

그들에게 다가간 경찰서장은 확성기를 들고 크게 외쳤다.

-나는 이곳 라호르의 치안을 책임지는 경찰서장 진강종(真康従)입니다.

-보시다시피 체구는 작지만 이렇게 서장이 될 수 있던 이유는 모든 백성에게 똑같이 베푸시는 폐하의 하늘처럼 넓은 은총(恩寵)이 있어서입니다.

열도 출신인 진강종의 본래 이름은 마시오 야스요리였다.

우여곡절 끝에 사파비지역에 치안대원으로 온 야스요리는 그 누구보다 조선이란 나라를 사랑했다.

체구가 작아 항상 천대를 받아왔지만, 조선에서 사는 동안 그런 천대는 단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되려 자부심을 느끼고 당당해지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그랬기에 치안대원으로서, 경찰로서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그 결과는 달콤했다.

경찰서장에 임명된 날.

진강종은 펑펑 울었다.

절대 오를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조선은 열도 출신 백성에게도 똑같이 기회를 줬고, 똑같이 보상했다.

열도에 살면서 흔히 당했던 이지메(いじめ)는 없었다.

되려 조선말을 잘한다고 칭찬 일색이었다.

그런데 라호르 지역 경찰서장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건이 터졌다.

그것도 모두가 조심하는 종교 문제였다.

종교 문제만큼은 한 지역의 치안을 책임지는 경찰서장이라도 나설 수 없었다.

'잘해야 본전'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종교 문제는 답이 없었기에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권한이 있는 자가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의무라고 폐하께서 말씀하셨기에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묘안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조선전력공사 직원이 찾아왔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들고.

묘책이었다.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지만, 이 방법보다 더 나은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서장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모든 건 은동리에서 책임을 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요?'

'네, 그러니 빨리 해결합시다.'

알음알음 떠도는 소문으로 '은동리는 황실수호대를 지칭한다'고 들었기에 진강종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설사 내가 하는 일이 큰 문제가 된다고 해도 폐하께서 날 지켜주실 거야.'

그 누구보다 영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조선 제국의 황제지만,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폐하라면 옳고 그름을 바르게 판단하실 거라고 진강종은 굳게 믿었다.

-제가 이렇게 나선 이유는 바로 폐하께서 걱정하시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각해 봤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진강종은 들고 있던 확성기를 내리고 주변을 살폈다.

모두 자신만 쳐다보고 있었다.

무섭고 떨렸다.

나서긴 했지만, 어찌 될지 알 수 없기에 겁도 났다.

하지만 나서야 했다.

이곳의 치안을 책임지는 경찰서장이기에 당당하게 권한을 행사해야만 했다.

열도에서 겪어 본 적이 있기에 종교에 미친 광신도는 답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진강종은 다시 확성기를 꽉 쥐고 들어 올렸다.

-지혜의 왕이라는 솔로몬도 이런 비슷한 문제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우···!"""

솔로몬이란 말이 나오자 양쪽에서 비난하는 소리가 퍼져 나왔다.

솔로몬이 어떻게 판결했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심장까지 떨려왔지만, 진강종은 침을 꿀꺽 삼킨 후, 더 크게 외쳤다.

-법에 따르면 저 모스크는 먼저 신청한 유교 탈레반에게 사용권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스크란 이슬람의 성전이기에 이슬람의 주장도 타당합니다.

-그래서 저는 솔로몬처럼 저 모스크를···.

진강종을 말을 하다 말고 북쪽을 가리켰다.

그 순간.

-쿠아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북쪽 습지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천지가 개벽할 만큼 엄청났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엎드려 두려움에 떨었다.

상상외로 큰 충격에 진강종도 머리를 감쌌지만, 짧고 가는 다리에 힘을 주고 버텼다.

시뻘건 불길과 함께 치솟은 검은 연기가 사라지고, 사방으로 퍼져나가던 먼지까지 잠잠해지자 진강종은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은 아무도 없는 저곳을 날려 버렸지만, 5일 안에 해결하지 못하면 저 모스크 차례입니다.

-이게 무얼 의미하는지 잘 아실 겁니다.

-그러니 가위바위보를 하든, 결투를 하든 5일 안에 협상을 끝내시길 바랍니다.

-저는 이만···.

진강종을 부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꽉 주고 한 걸음씩 당당하게 발을 뗐다.

* * *

조서원의 소식만 기다리고 있던 연은 쌍식이의 말을 듣고 활짝 웃었다.

"도대체 폭약을 얼마나 쓴 거야? 축구장보다 더 넓은 구덩이가 파였다니···. 그러다 사람이라도 다치면 어쩌려고 그랬데?"

"정삼이가 한 일이라 그 정도는 약과입니다."

"정삼이?"

"거 있잖습니까? 저곳을 날려버렸던···."

쌍식이가 동쪽을 가리키며 말하자 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임무를 완수한 이가 정삼이였어?"

"네, 폐하. 파견 나간 정칠이의 사촌 동생 정삼이가 한 일입니다."

"흠, 그 정도면 약과였군."

조서원에서 떠도는 말을 연도 알고 있었다.

'폭약 귀신'에 관한 무용담은 너무나 황당했기에 믿지 않은 요원도 있었지만, 연은 일을 시킨 장본인이라 모를 수 없었다.

그런데 그 폭약 귀신이 이번 일을 해결한 정삼이라니.

"연구원들을 괴롭히고 있다더니 언제 그곳까지 갔데?"

"정칠이의 요청을 받고 바로 비행기를 탔다고 합니다."

뭐든 분해하길 좋아했던 정삼이는 폭약의 매력에 푹 빠졌다.

거대한 성도 한방에 분해해버리는 폭약이야말로 그가 사랑하는 애인이자 친구였다.

그런 정삼이였기에 더 파괴력이 강한 폭약을 찾아다녔고, 은동리까지 가서 연구원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대단하군."

"그러게 말입니다. 정삼이가 아니었으면 이처럼 빨리 해결하지 못했을 겁니다."

"정삼이도 대단한데, 새로 개발된 폭약도 엄청나네."

전 세계를 지배할 정도로 막강한 무력을 보유하고 있는 조선이지만, 더 좋은 무기를 만들기 위한 연구와 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짐승이나 다름없는 인간들의 습성을 알기에 문명이 발달해도 전쟁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폭약 귀신 정삼이가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요구하자 폭약 기술은 놀랄 만큼 발전하고 있었다.

이번에 정삼이가 가져간 폭약도 새로 개발한 것 중 하나였다.

바로 RDX를 기본으로 한 콤포지션 C4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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